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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y 13. 2016

배우를 새로 발견하는 즐거움

Movie Appetizer#03 계춘할망

(비교적) 일상 속에 놓인 김고은, 그녀가 보여주는 몰입감

세련된 이미지를 양보한 윤여정의 푸근한 연기

우리나라 최고의 비주얼, 제주도의 열연


혜지(김고은)만 있으면 세상에 바랄 게 없는 계춘(윤여정). 그런 혜지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12년이 지나서야 혜지는 계춘의 품으로 돌아왔다. 계춘이 모든 것을 다 챙겨줘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제 혼자서 제 할 일을 다 할 수 있는 혜지. 그런 혜지를 보며 기특하면서도, 세월의 빈자리가 느껴져 아쉬워하는 계춘. 계춘은 돌아온 혜지가 어릴 적 좋아하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모든 걸 다 해주려 한다. 하지만 혜지는 뭔가를 숨기고 것 같고, 마을 사람들도 그녀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데…. 두 사람은 12년간 쌓인 비밀과 공백을 이겨내고, 다시 예전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배우 김고은

김고은이라는 배우만큼 많은 관심을 받는 ‘20대’, ‘여배우’도 드물다. 최근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20대 여배우가 아닌 그냥 배우로 불리고 싶다고 했지만, 한국 영화계의 독특한 상황 때문이라도 저 수식어는 더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 <은교>, <몬스터>, <차이나타운> 등 그녀가 선택한 영화는 여성이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역할, 그리고 여성이 주인공의 자리에 있음으로써 더 독특해지는 영화였다. 영화 속에 평범한 역할이 어디에 있겠느냐만, 유독 그녀는 한국 영화에서 잔혹한 상황에 놓인 여성을 자주 연기했다. (<은교>를 제외하면 피가 튀지 않는 영화가 없다)


김고은에 대한 관심은 그녀의 연기에 대한 물음표로 이어지기도 했다. 데뷔작 <은교>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던 연기력 논란은 <차이나타운>에서 점화되었고, <협녀, 칼의 기억>은 연기력에 대한 격렬한 의심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올해 <치즈 인 더 트랩>으로 연기력 논란에 붙여진 불은 수습한 상황. 이번 영화 <계춘할망>은 그간 김고은이 영화에서 맡았던 역 중, 그나마 평범하고 익숙한 여성 캐릭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처럼 (비교적) 공감대 형성이 쉬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김고은이 관객에게 얼마만큼의 몰입감을 가져올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스펙트럼을 넓힌 배우들

캐스팅 비화에서 윤여정은 자신의 도회적인 이미지가 계춘과 맡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듯 늘 그녀는 나이에 무관하게 세련된 도시 여성으로서 한국 영화사에 남아있었다. 이번 작품을 통해 화장기 없는 얼굴과 시골 해녀의 패션마저도 소화하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 속에 손녀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못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기대하시라. <계춘할망>의 창 감독은 해녀가 숨을 오래 참는 것과 계춘이 오랜 세월 혜지를 기다리며 인내하는 점이 닮아 있어 해녀라는 직업을 계춘의 직업으로 선택했다고 한다. 한 인물의 인내와 닳지 않는 사랑을 보여주기에 윤여정은 부족함이 없었다.


석호 역의 김희원도 전에 볼 수 없던 캐릭터를 맡았다. “이거 방탄유리야!” 등의 명대사를 가진 그는 영화에서 주로 악역으로 자리를 빛냈다. 하지만 <계춘할망>에서는 정이 넘치는 청년회장 역으로 따뜻한 이웃의 정을 보여준다. 명옥 역의 신은정 역시 <미생> 등에서 보여준 도시적 이미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샤이니 민호의 첫 연기 도전도 과하지 않게 잘 끝난 듯하다. 그리고 <치즈 인 더 트랩>에서 김고은과 호흡을 맞춘 박민지와 올해 가장 뜨거운 시작을 한 류준열의 색다른 모습도 볼 수 있다. 이처럼 <계춘할망>엔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배우가 바다 마을에서 보여주는 의외의 이미지를 보는 재미가 있다.



따뜻해질 수밖에 없는 공간, 제주도

<계춘할망>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하나의 배우는 ‘제주도’다. 이 공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풍경과 분위기는 계춘과 혜지의 이야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든다. 그리고 석호 등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따뜻한 행동이 억지스럽지 않고, 설득되게 하는 힘이 제주도라는 공간엔 있다. 아름다운 영상미를 곳곳에 배치해 동화적인 이야기를 풀어낸 감독의 노력이 보이며, 빛을 소중히 다룬 그의 연출은 인물의 따스한 감정과 영화의 주제를 더욱 풍부히 하는 데 성공했다.



<계춘할망>을 보며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다. 유승호가 출연했던 영화 <집으로...>. 여기에도 역시 할머니와 손자의 이야기가 있었고, 많은 관객이 감동했었다. 그리고 올 5월, 그보다 조금은 어둡지만 묵직한, 그리고 바다가 주는 깊은 정이 관객과 공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할머니와 손자 간의 관계가 아닌, 할머니와 손녀 간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그리고 같은 여성으로서 가질만한 고민을 어떻게 풀어놓았을지 생각하며 관람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하늘과 바다, 어떤 것이 더 넓을까. 지금 답을 내리지 말고, 영화를 본 뒤에 답을 말해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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