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Appetizer#05 아가씨
탐미주의자의 도화지
세 가지 시점 –차이와 반복
그의 친절 - 아름답거나, 지루하거나
일제 강점기, 혼란스러운 시대에 백작(하정우)은 귀족 아가씨 히데코(김민희)가 상속받을 재산을 원했다. 그는 숙희(김태리)를 히데코의 하녀로 추천한다. 숙희를 이용해 아가씨의 마음을 얻겠다는 계획. 히데코는 매일 이모부 코우즈키(조진웅)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는 외로운 여인이다. 저택 밖의 세상을 모르고 자라 순진하고, 고독한 히데코. 숙희는 그녀의 마음을 열 수 있을까. 그리고 백작은 아가씨의 재산을 모두 차지할 수 있을까.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기이한 저택에서, 순진한 아가씨의 마음을 얻기 위한 두 사람의 유혹이 시작된다.
칸에서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류성희 미술감독이 <아가씨>의 작업으로 벌컨상(뛰어난 영상을 만드는 데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상)을 수상했다. <아가씨>의 영상미는 칸의 인정이라는 인장을 새겼고, 이제 관객은 그 영상에 빠져들 일만 남았다. 박찬욱 감독은 (늘 그랬지만) 이번 영화에서 프레임 안에 놓일 피사체, 공간 등 미장센의 구축에 공을 들였다. 매력적인 공간 속, 아름다운 인물 곁을 카메라와 누비는 것만으로도 <아가씨>는 흥미로웠다.
한국, 일본, 그리고 유럽(영국)의 양식이 혼합된 저택은 각 문화의 아름다움이 섞여 귀족다운 분위기를 양껏 뿜어낸다. 이 공간은 다양한 문화가 유입되었던, 혼란스러운 시대의 반영이라 할만하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바꾸려는 인간의 욕망을 대변해주는 탐욕적인 공간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인물이 어떤 공간 속에 있는지’, ‘그 공간은 관객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는지.’ 등을 생각하며 관람하는 것도 <아가씨>의 즐길 거리가 될 수 있겠다.
<아가씨>는 세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는 이야기의 시점이 다르다. 하나의 시·공간을 다른 시점으로 풀어낸 1장과 2장, 그리고 그 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3장으로 구성된다. 서로 다른 시점으로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이러한 구성의 재미는, 각 장이 보여주는 차이와 변주 있다. 반복 속에 비밀이 있고, 발견이 있으며 이야기는 더 풍부해진다. 박찬욱 감독은 세라 워터스의 원작 『핑거 스미스』에서도 이 시점의 차이가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원작만큼 이 시선의 변주가 잘 표현되었을까. 관객은 두 가지 시점을 모두 보고, 퍼즐 조각들을 맞춘다. 그런 뒤에야 감독이 그린 거대한 그림과 대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퍼즐을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가 이 영화의 ‘대중성’을 판단하는 지표가 될 것만 같다. 이미 나홍진 감독이 구현한 <곡성>의 수수께끼에 관객은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영화를 입체적으로 보는 즐거움이 정점에 이른 시기,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로 영화의 미학을 추구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된다.
이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보자면, <아가씨>는 ‘상업성’이라는 측면에서 전작들보다 좋은 평가를 받는 듯하다. 미리 영화를 본 뒤에 작성된 기사들에서 그런 뉘앙스를 읽을 수 있다. 무엇이 상업적인가에 대한 고민 중, 이번 영화가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과 가장 다른 점이 어디인가를 살펴봤다. <아가씨>는 그의 전작과 비교해 친절함이 돋보인다.
그런데 역으로 이 친절함이 서사의 매력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이 영화가 시도한 '반복'이라는 전개 방법이 흥미로울 수도 있지만, 반복된 서사가 인물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방법엔 독이 될 수도 있다. 반복과 시선의 분산은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고, 이는 인물을 향한 이입을 차단하는 벽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아가씨>는 두 가지 시점이 있지만, 그 두 시점이 완성하는 이야기‘들’은 변주, 퍼즐, 수수께끼와는 다르다. 비교 항이 필요할 것 같다. 하나의 사건과 두 가지 시점. 이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구조이다. 홍상수 감독은 하나의 사건을 두 가지 시점으로 보여주면서, 두 가지 개별적 서사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 간의 차이를 발견하게 하고, 음미하게 한다.
하지만 <아가씨>는 이와 다르다. 두 가지 시선은 부족했던 서사의 구멍을 채우고 거대한 하나의 덩어리가 된다. 홍상수의 두 시점은 다른 반복이지만, <아가씨>의 두 시점은 같은 사건의 반복이다. 이 반복은 매혹적인 서사 장치가 될 것인가. 혹은 단순한 플래시 백이 될 것인가. 친절해서 아름답거나, 친절해서 지루하거나.
끝으로 박찬욱 감독이 구현한 여성 간의 사랑이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졌다는 해외의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아가씨>의 카메라가 취한 거리와 태도 중 어떤 점이 이런 반응을 불러왔을까. 이는 정당한 반응일까. 혹은 박찬욱 감독을 향한 무리한 과한 비판이나 비난일까. (<아가씨>를 <델마와 루이스> 그리고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등과 비교·대조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작업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판단은 관람한 관객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