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17. 2022

무너진 시대를 통과한 우리에게 건네는 위로

Appetizer#174 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나간 시간을 재현하는 드라마는 복원한 과거를 통해 지금 부재한 것을 다시 만나게 한다. 시청자는 그 작품 속에서 지금은 소실된 것들을 목격하며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유행이 지난 음악, 의상, 그리고 다양한 소품을 통해  마주하는 과거는 다양한 감정을 소환한다. 반가움, 그리움, 아쉬움 등의 정서. 이들의 여운은 멜로드라마의 감성과 만나면 더 파괴적이다. 이처럼 지금 만날 수 없는 시간과의 대면은 시청자의 감정적 붕괴를 예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소환한 과거는 무엇을 보고 느끼라고 말하고 있었을까.


망가진 시대 속 저항하는 청춘들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배경은 1997년 IMF 외환 위기 직후의 시간, 1998년이다. 국가 경제가 휘청였고 기업이 문을 닫았으며, 많은 가정이 무너진 시간. 그 거대한 파도 앞에서 개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어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시간. 많이 힘들고 아팠던 그 순간 속에서 백이진(남주혁)과 나희도(김태리) 역시 영향을 받고, 인생의 진로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진은 아버지 회사의 부도로 하루아침에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희도는 예산 문제로 펜싱부가 없어지면서 꿈의 포기를 강요받는다.


두 인물에게 일어난 일은 당시 많은 가정이 경험한 일이고, 이 시기를 통과하며 삶의 궤적이 바뀐 이들도 많았다. 물질적, 정신적으로 뻥 뚫려버린 곳이 있던 시간. 한 개인과 가정이 감당하기엔 당시 금융 위기는 너무 큰 파도였다. 여기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비슷한 세대의 인물들이 서로를 위로하며 무너진 삶을 복구해 나간다. 그 시대는 포기하라 했지만 그 세대는 포기하지 않고 몸부림치는 이야기.


우리에게 희도와 이진이 있었다면

1998년의 시간을 통과하며 일상과 주변인의 붕괴를 목격했던 이들에게 이 드라마는 몇 가지 방법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우선, 무엇인가를 포기해야 했던 시청자에게 희도와 이진의 행동은 '자신이 할 수 없어 가지고 있던 응어리'를 해소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 대리 해소라는 판타지를 통해 이미 빛이 바랬지만, 그때의 그들에게도 꿈이 있었던 걸 상기시키고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당시엔 여유가 없어 마음껏 돌아볼 수 없던 젊은 날의 시간을 지금이라도 조금은 음미할 수 있게 한다.


이 대리만족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더 직접적으로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면, <굿 윌 헌팅>의 명대사 'It's not your fault(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가 아닐까. 드라마 속 인물들에겐 망가진 시대를 견딜 버팀목이 있었다. 희도에겐 이진, 이진에겐 희도가. 그렇게 서로가 절망의 시간을 버티는 동력이 되어준다. 하지만, 저 시대를 실제로 통과한 이들에겐 그들만의 희도와 이진이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여유가 없던 시절이고, 그런 존재가 없었던 게 개인의 잘못도 아니다. 아마도 혼자 난관을 극복했을 많은 이에게 드라마는 '넌 희도(이진)가 없이도 그 시간을 잘 버텼어. 고생했어'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여전히 불친절한 '시대'라는 놈에게

그렇다면 1998년을 경험하지 못한 시청자에게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시대는 늘 청춘을 괴롭힌다. 취업, 학업 등의 시스템은 젊은 날의 시간을 제대로 돌아보고,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동한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시대가 나에게 포기하라고 할 권리가 없다'라고 말하는 드라마다. 설령, 그것이 거대한 판타지일지라도. 동시에 드라마 속 시간을 경유해 어른이 된 이들에게도 말한다.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희도와 이진이 되어주라고. 설령, 그것이 당연한 역할일지라도.


멜로드라마는 판타지 안에서 작동한다. 때문에 '스물다섯 스물하나'의 인물들이 경험 중인 현실이 실제 누군가가 겪었던 1998년과 다른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청량하게 연출된 이미지처럼, 그 시절이 그렇게 아름답게 기억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드라마를 응원한다. 기억 속에 묻어둔 그 시간이 힘들었다고, 지금이라도 위로받을 자격이 충분한 이들이 많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비잉 더 리카르도스] 최초의 시트콤이 무너지던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