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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07. 2022

[비잉 더 리카르도스] 최초의 시트콤이 무너지던 날

Appetizer#173 비잉 더 리카르도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앞당긴 OTT 춘추전국시대. 각 플랫폼은 저마다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이미 많은 플랫폼이 경쟁 중이지만, 아직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비스도 많다.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런칭한 '아마존 프라임'도 그중 하나다. 국내에서는 낯설 수도 있지만, 이미 아카데미 시상식에 후보를 배출할 정도로 걸출한 작품을 만든 아마존 프라임. 이들은 재능 넘치는 극작가이자 연출자 '아런 소킨'과 함께 <비잉 더 리카르도스>라는 작품으로 저력을 증명했다.

<비잉 더 리카르도스>는 시트콤 '왈가닥 루시'(I Love Lucy)의 주인공 '루실 볼'(니콜 키드먼)과 그의 남편 '데지 아너즈'(하비에르 바르뎀)의 이야기다. '왈가닥 루시'가 만들어지는 순서에 따라 갈등이 전개되는 작품으로, 대본 리딩과 리허설 등을 거쳐 본 촬영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한 편의 시트콤이 시청자에게 가기 위해 날짜별로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볼 수 있으며, 1950년대의 스튜디오 시스템을 체험할 수 있게 한다. 우리가 몰랐던 화면 밖의 이야기, 그리고 스타의 뒷모습과 그림자를 볼 수 있어 흥미로우며, 할리우드가 꿈의 공장이었던 시대를 견학하는 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왈가닥 루시'는 시트콤의 시작을 알린 상징적인 작품이다. 주인공을 맡았던 '루실 볼'은 에미 상을 4회 수상한 시대를 풍미한 배우로, <비잉 더 리카르도스>에서는 니콜 키드먼이 연기했다. 분장과 의상 등의 겉모습부터 목소리 톤까지 루실 볼을 재현하기 위한 제작진과 니콜 키드먼의 노력이 보이며, 덕분에 빛이 바랜 과거의 시트콤에 생기를 더했다. 실제 루실 볼의 남편이자 '왈가닥 루시'의 남편이기도 한 데지 아너즈는 '하비에르 바르뎀'이 맡았다. 국내에서는 어두운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유쾌하고 발랄한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잘 몰랐던 매력을 드러냈다.


영화에 갈등을 더하는 건, 1950년대를 휩쓸었던 냉전 속에서 강한 힘을 행사한 반미조사위원회의 활동이다. '매카시즘'으로 유명한 이 시대는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으로 많은 이를 억압했고, 할리우드의 예술인들도 블랙리스트에 올라 제대로 활동을 할 수 없던 시기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 <비잉 더 리카르도스>의 루실 볼은 공산주의자로 의심을 받게 되고, 그녀가 중심인 '왈가닥 루시' 역시 큰 위기에 직면한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일주일. 더 완벽한 작품으로 인정 받으려는 루시 볼의 초조함이 증폭되면서 긴장감은 고조된다.


또한, 아론 소킨 감독은 루실 볼과 데지 아너즈의 위태로운 관계까지 조명하며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한다. 남편을 향한 의심과 가정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 사이의 대립. 이렇게 <비잉 더 리카르도스>는 시트콤을 만드는 과정 속에 두 가지 이야기가 있고, 대사까지 많은 작품이라 쉴 곳이 없다. 여기에 플롯까지 복잡하다. 루시 볼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플래시 백과 플래시 포워드 등으로 과거와 미래를 자주 오간다. 덕분에 125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여기서 영화의 편집이 빛나는데, <비잉 더 리카르도스>의 복잡한 플롯은 혼란스럽지 않게 잘 정돈되어 있다.



아론 소킨이 그린 밑그림과 이를 살아 숨 쉬게 한 배우들의 조화가 돋보이는 <비잉 더 리카르도스>. 이 영화가 미국의 영상 발달사를 되짚어가는 이야기엔, 억압의 시대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시트콤을 향한 그리움이 있다. 그리고 시트콤 밖에서는 웃을 수 없었던 한 배우의 애틋한 이야기가 있다. 제목의 의미를 곱씹으면 여운이 배가 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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