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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Mar 21. 2022

[소년심판] 판결 뒤에도 웃을 수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

Appetizer#175 소년심판

범죄를 저질러도 괜찮은 나이는 없다. 하지만 범죄에 연루되어도 처벌받지 않는 나이는 있다. 법은 '만 19세 미만인 자'를 '소년'으로 규정하고, 비교적 관대하게 처벌하며, '만 14세 미만인 자'는 형사 미성년자로 분류, 처벌하지 않는다. 이는 법의 관대함일까, 아니면 법이 명시한 구멍일까. '소년심판'은 몇 가지 범죄를 통해 이를 묻는다.

살인, 절도, 가정폭행, 성범죄 등 드라마가 다루는 범죄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이들은 뉴스에서 본적 있는 사건이 바로 오버랩될 정도로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있기에 섬뜩한 기시감도 느끼게 한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우기 마주하는 실제 사건들이 더 잔혹하고 충격적이라 비현실적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이처럼 허구의 이야기가 다루는 범죄가 극적인 효과를 줄 수 있을지 의문마저 드는 시점에 '소년심판'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대개의 법정물은 사건의 트릭과 범행 과정, 그리고 진범을 밝히거나 숨기는 부분에 초점을 맞춘다. 극에서 일어난 범죄라는 퍼즐을 맞추기 위해 증거와 증인을 확보하고 편결을 뒤집을 한 방을 준비하는 것. 이 과정에서 범인의 동기가 드러나고, 그 상황에 관객(시청자)을 서게 하면서 범인의 자취를 따라가게 한다. 범죄의 인과성을 밝히고,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이 과정 속에 피해자는 사건의 배경이 되거나 주목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범죄자가 중심에 있는 퍼즐로 입장하는 관문으로 서 소비되는 존재. 피해자는 장르물에서 그렇게 소모되고는 한다.

'소년심판'이 정의를 추구하려는 서사는 그렇게 새로운 지점은 아니지만, 피해자를 조명하는 방식은 특별하다. 형량을 결정하는 판사가 주인공이기에 범인을 쫓는 수사보다는 사건을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심은석(김혜수) 판사는 기존 장르물에서 외면받았던 피해자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며 범죄의 무게를 결정한다. 드라마 속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게도 저마다 범죄를 저지른 이유가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의 어려움, 세상의 부조리, 특정 행동의 필연성 등을 내세워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하지만, 심은석 판사는 그들의 선택과 행동으로 인해 망가진 피해자의 삶, 그들이 잃어버린 기회에서 판결의 근거를 찾는다. 이 캐릭터를 통해 피의자를 보호하고, 피해자를 외면하는 법의 아이러니를 비췄다.


이 설정을 부각한 탓에 드라마 속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표현된 점엔 장단이 있다. 심은석 판사는 소년범을 혐오하고, 부정적인 시선에서 교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지만, 차태주(김무열) 판사는 아이들의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걸 확신하며 상반된 모습을 보인다. 이들의 가치관은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기에 시청자가 두 입장 모두 동의하고, 이입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소년범에게 어떤 판결이 가장 적절한 판결인지 고민하게 만들어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하지만, 심은석과 차태주 판사의 말과 행동이 종종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있어 아쉽기도 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들이 믿는 가치관이 의인화된 것 같아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현실을 소환하는 잔혹한 사건과 피해자를 조명하는 방식, 그리고 소년범과 소년법을 향한 팽팽한 시선의 대립. 이런 요소 탓에 '소년심판'은 굵직한 사건이 해결되어도 인물들이 쾌감을 느끼거나 기뻐하지 않는다. 드라마 속 판사들은 남겨진 피해자와 완벽할 수 없는 그들의 판결 탓에 법정을 나선 뒤에도 고민을 거둘 수 없다. 또한, 이 드라마의 시청자 역시 비극의 나선 위에 선다. 이야기가 끝나도 '소년심판'이 호명한 현실 속 피해자를 떠올리면 결코 웃을 수 없다. 법정을 나와도 웃을 수 없는 판사와 드라마가 끝난 뒤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시청자가 남겨진 이야기. '소년심판'은 그런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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