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01. 난 잠깐, 제일 행복한 놈이었다

야구잡썰 Ep01. 자이언츠는 계획이 다 있구나

"1년 중 가장 슬픈 날은 야구 시즌이 끝나는 날이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감독이자, 푸른 피가 흐른다던 LA 다저스의 토미 라소다가 남긴 말이다. 프로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에겐 익숙하고, 공감할 수밖에 명언. 정규 시즌의 끝은 플레이 오프의 시작인데, 감독님이 저 말을 남겼을 때, 가을 야구에 초대를 받았을지 모르겠다. 만약, 가을 야구에 나가지 못했다면, 누군가는 요기 베라의 말을 빌렸겠지. "(월드 시리즈가) 끝날 때 까지는 끝난 게 아니야" 롯데 자이언츠의 가장 슬픈 날이 한국 시리즈가 끝나는 날이었으면 좋겠지만, 그것도 1세기 전의 일이다.


농담이 길었다. 저 명제가 맞다면 그 대우도 참이어야 한다. "야구 시즌이 끝나지 않는 날(개막하는 날)은 가장 행복한 날이다." 맞는 말이다. 단, 그날 승리하는 다섯 개의 팀에게만. 올해 야구팬 모두가 행복할 수 있었던 순간은 4월 2일 13시 59분까지였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시범경기 후 시즌이 끝나길 바라보기도 했지만, 역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1.jpg 롯데 자이언츠 개막전 승리(출처: OSEN)

난, 오늘 이 경기장에서 제일 행복한 놈이다

올해 롯데 자이언츠의 개막전은 특별했다. 이대호라는 전설적인 선수의 마지막 시즌의 마지막 개막전이 될 경기였다. 고척에서 열린 이 경기에 운 좋게 갈 수 있었고, 시즌 전에만 가질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상상만 가진 채 경기장에 입장했다. 한 선수의 마지막 개막전이 공교롭게도 내게는 인생 첫 번째 개막전이었던 날. 고척 돔엔 누군가의 끝과 시작이 만나는 순간이 있었다. 그렇다. 이렇게 난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별 거 아닌 사실에 의미부여를 하고서 야구를 내 인생의 드라마로 편집하고 있었다. 오늘 이겨야만 할 이유는 충분했다.


예정대로 경기는 오후 2시에 시작했다. 키움 선발 안우진의 시속 150km가 넘는 직구로 시작된 시즌 첫 경기에서 설렘이 허무와 분노로 바뀌는 데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삼구 삼진으로 시즌 첫 아웃카운트가 누구보다 빠르게 올라갔다. '올해는 다르네. 그 어느 때보다 빨리 질건가 보다.' 그래도 개막전이 열리는 곳에 있는 게 좋았다. 생전 본 적 없는 사람들이고, 이들 중 대부분은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다. 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 같은 선수를 응원할 때면, '아, 나도 이 사회 어딘가 속한 곳이 있구나' 이런 안락함을 느끼게 한다. 물론, 아쉬운 플레이에 같이 아쉬워하고 화를 낼 때는 '아, 내가 정상이었구나' 이런 안도감을 갖게도 한다.


그래서 여러 의미가 있던 첫 경기의 결과는? 예상했듯 자이언츠의 승리였고, 많은 역사가 기록된 하루였다. 롯데 답지 않은 번트 안타, 새로운 외인과 익숙한 불펜의 안정감, 거기다 내가 유니폼을 입고 간 롯데의 미래 한동희의 시원한 장타까지. 선취점을 주고도 역전한 게임이라 짜릿함은 몇 배는 더했다. 그리고 매해 패배 요정으로 놀림받던 내게 '올해는 다르다!'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게 해 준 승리 아닌가. '지금 우리학교는'에서 조금은 오글거렸던 그 대사를 말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오늘은 내가, 이 경기장에서 제일 행복한 놈이다!' 보러 간 경기마다 지는 게 익숙해지면, '보러 온 내 탓인가' 자존감도 떨어진다. 팬이 미안할 일 없게, 올해는 잘하자 자이언츠.

2.jpg 내가, 이 경기장에서 제일 행복한 놈이다!(출처: OSEN)


일요일에 질 거면, 기우제를 지내라

어제 좋았다면, 오늘을 경계해라. 자이언츠 팬들이 새겨야 할 말이다. 개막전에 높아진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지기까지는 단 하루면 충분하다. 전날이 모든 요소가 좋았다면, 일요일 경기는 올해 자이언츠가 품고 있는 폭탄이 터지고 한계가 보였던 경기였다. 산발적인 안타를 생산하는 응집력 없는 타선, 디테일한 작전의 부재와 중요한 순간 병살타, 그리고 승부처에서의 오버런 주루사.


개막일엔 많은 첫 번째 기록이 쏟아졌다. 시즌 첫 안타, 홈런, 타점, 득점 등등 하지만 롯데는 나의 인생 개막전 첫 번째 승리 외에는 굵직한 기록을 만들지 못했다. 그리고 시즌 두 번째 경기에서 기어이 시즌 첫 번째 기록을 작성하는 데 성공한다. 시즌 1호 끝내기 패배. 평범한 처음은 생략한다. 역시 자이언츠는 팬들의 마음을 뒤집어 놓을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시즌 중 몇 번은 보게 될 걸 거라 생각했던 시나리오의 경기.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기에 겪어야 할 일이지만, 알면서도 속이 쓰린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건 매년 보고 있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다.

3.jpg 불안 요소가 터졌던 시즌 두 번째 경기(출처: OSEN)

모든 패배가 짜증 나지만,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은 경기를 놓쳤을 때는 후유증이 오래간다. 특히, 다음 날 경기가 없는 일요일 패배는 혈압이 더 오른다. KBS 스포츠국의 저명한 PD는 일요일마다 지는 '기아 타이거즈'에게 SNL(Sunday Night Looser)이라는 별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경험해보니 그렇다. 야구를 잊게 하는 건 다음 야구 경기뿐이다. 때문에 월요일엔 일요일 경기를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러니 제발 일요일엔 질 거면 기우제를 지내라.


아니, 그냥 2022년은 개막전 후에 시즌이 끝났어야 했다.

사진 출처: OS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