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05. 직관이 야구팬에게 끼치는 영향

야구잡썰 Ep05. 패배 요정으로 살았던 지난 10년의 기록

야구장에 가는 걸 좋아한다. 종종 방문해서 볼 수 있는 운동장은 TV에서 보던 그것과 생각보다 꽤 다르다. 이곳에서 답답한 일상을 잠깐 잊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벌써 설렌다. 학업, 업무를 비롯해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일은 너무도 많다. 이 스트레스를 단번에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광활한 야구장의 뷰와 그 안에서 응원하는 팬들의 함성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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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배요정, 직관 10년패의 기억

경기장에 가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응원하는 팀의 승리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아니? 난 야구 보는 게 좋아서 가는데?'라고 말하는 팬이 있다면, 둘 중 하나일 확률이 매우 높다. 아직 야구에 덜 빠졌거나, 패배 요정(패요)이거나. 직관에서 승률이 좋은 팬은 승리 요정(승요)이라 하고, 낮은 팬은 패요라 불린다. 100경기 이상 진행하는 리그에서 한 경기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가는 날은 꼭 이겨야 한다. 내 팀이 단 한 번 이길 수 있다면, 그건 내가 가는 날이어야만 한다.


난 패요였다. 단순히 승률이 낮은 게 아니라 지독한 패요였다. 2008년 4월 19일 목동 구장에서 있었던 롯데 자이언츠와 우리 히어로즈의 경기에서 승리를 본 이후, 다음 승리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2018년 5월 10일 잠실 구장에서 있었던 LG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맛봤고, 길었던 연패의 역사를 끊을 수 있었다. 3674일 만에 경기장에서 경험한 감격적인 승리였다. 돌이켜 보니 2008년의 그 승리가 20대 최초이자 마지막 승리다. 맙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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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동안 10번 정도 야구장을 갔기에 엄청나게 많은 패배를 목격한 건 아니었지만, 그 기간동안 느꼈던 감정은 암울했다. 한 번은 잠실에서 있었던 LG와의 3연전을 모두 보러 갔다가 다 패배한 적도 있었다. 친한 선배님의 자녀분은 롯데의 패배가 다가오자, 혹시 경기장에 내가 있는 게 아닌지 묻기도 했단다.(그날은 다행히 그 현장어 없었다) 이렇게 언젠가부터는 내가 야구장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주위의 자이언츠 팬들은 두려워했고, 반대로 타 팀 팬들은 나를 경기장에 모시고 가겠다고 난리였다.


한두 번은 웃을 수 있지만, 연패가 쌓이면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 내가 가서 지는 걸까?' 경기는 그들이 하는데 내가 사과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이 몹쓸 상황. 마지막엔 자존감을 완전히 잃고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겠지 뭐' 그들의 패배의식이 나를 완전히 점령한 것이다. 이럴 땐 유독 내 인생도 가망이 없어 보인다. 직관 패요가 된다는 건 이렇게 무섭다. 다행히 저 10년패 이후엔 3할 정도의 승률은 기록했었고, 올해는 개막전 직관을 승리하며 패요의 망령에서 벗어났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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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롯라시코에서 만난 인연

지난 주말 LG와의 3연전을 모두 경기장에서 보는 호사를 누렸다. 금요일 경기는 일정이 나오자마자 LG팬인 후배와 계획했을 정도로 기다렸던 날이다. 롯데와 LG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훌륭한 팀이지만, 그 긴 시간 동안 성적도 좋지 못해 울분이 많이 쌓인 팀이기도 하다. 엘지의 마지막 우승은 1994년으로 롯데와 2년 차이가 난다. (이젠 이것도 꽤 크게 다가온다) 그리고 2000년대 성적도 롯데처럼 상당히 좋지 않았다. 이런 역사 탓에 특이한 경쟁심리가 생겼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 LG의 배신(?)으로 서로 노는 물이 조금 달라진 느낌이 있지만 두 팀이 붙으면 늘 팽팽했다. 최근 몇 년간의 상대전적도 막상막하였고, 경기 자체도 팽팽했다. 좋은 경기력으로 승부를 가릴 수 없을 때도 있었지만, 나쁜 경기력으로도 명승부를 만들 수 있다는 걸 보여준 롯데와 LG의 경기. 언젠가부터 이 환장할 승부에 팬들은 스페인 프로축구 전통의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의 매치 '엘클라시코'에서 이름을 따 '엘롯라시코'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롯데가 '꼴데'라는 비극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기에, 엘꼴라시코라고 불리기도 한다)


놀랍게도 이번 3연전은 롯데가 모두 승리했다. 그 옛날 3연전 스윕패를 두 눈으로 목격했던 트라우마를 완전히 지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전 엘롯라시코가 실책과 어이없는 플레이 등으로 팬들 속을 뒤집어 놓는 명승부였다면, 이번엔 두 팀 다 좋은 경기력으로 눈을 즐겁게 한 경기의 연속이었다. 매 경기 자이언츠는 수비 때 슈퍼맨처럼 하늘을 날았고, 그 호수비를 바탕으로 LG의 강력한 공세에도 분위기를 넘겨주지 않았다. 이 팀에게서 탄탄한 수비가 바탕이 되는 야구를 얼마 만에 보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그렇게 분위기를 넘겨주지 않다 홈런 한 방으로 경기를 가져오는 야구. 올해 자이언츠는 재미있는 야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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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억에 남는 건 첫 경기다. LG팬과 함께 1루 외야에서 관람했기에, 주변엔 대부분이 LG팬 분들이었다. 초반에 롯데가 점수를 낼 때마다 소리를 지르기는 했지만, 맘 편히 즐거워할 수는 없었다. 4:0으로 앞서가던 경기는 4:4까지 따라왔고, 그 공간에서 즐겁지 못한 건 나뿐이었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였다. 즐거워하다 따라 잡히고, 마지막엔 맥없이 경기를 내어주는 흐름.


시간이 흘러 8회 초. 자이언츠에겐 기회가 왔고, 다음 타석은 시범경기 때부터 장타가 많았던 지시완. 같이 간 일행은 앞선 타석에서 범타로 물러난 지시완의 기록을 보며 '삼진을 당할 차례'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난 이번 시즌 홈런이 없는 선수라 '지금 홈런을 칠 차례'라고 맞섰다. 그리고 몇 분 뒤, 지시완은 그 타석에서 홈런을 쳤다. 난 두 팔을 벌려 외야로 다가오는 공을 반겼고, 아주 잠깐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많은 팬이 내야석에서 응원하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외야에서 내게로 다가오는 홈런공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홈런 직후 주변은 잠깐 고요해지고, 뒤 이어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온다. 나 역시 자리에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내 주변을 살폈다. 이 기쁨을 함께 공유할 누군가가 없을까라는 기대. 그리고 건너편 응원석에서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은 팬과 눈이 마주쳤다. 그가 다가왔고, 우리는 말없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말이 필요 없는 순간이었다. 타지에서 나를 숨기고 조용히 지내다 고향 사람을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외국에서 우연히 한국 사람을 만나면 이런 기분일까? 아니, 이건 야구팬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자 감동이다.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몰랐고 앞으로도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4월 29일 그날의 승리의 떠올릴 때엔 분명 서로가 등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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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어강? 이제는 이렇게 기억하세요

새로운 승리 요정의 등판으로 주말 시리즈를 스윕한 자이언츠는 이번 주 4승 1무 1패를 기록했다. 4월 성적 전체 2위로 몇 년만에 가장 좋은 페이스로 정규리그를 시작했다. 시즌 초 전문가 투표에서 롯데의 5강을 꼽은 이가 거의 없기에 큰 이변이라 할 만하다. 예년보다 탄탄한 조직력을 보여주고 있고, 어린 선수들도 승리라는 경험 아래 쑥쑥 성장하고 있다. 이쯤 되면 미디어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왜 이 팀이 강팀이 되었는지를 분석하려 할 것이다.


몇 년 전, 시즌 중에 '기아 타이거즈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라는 기사가 나온 적이 있다. 좋은 의미로 쓴 기사였겠지만, 이 기사 이후 기아의 성적이 뚝 떨여졌었다. 이런 경험 이후 팬들은 설레발을 극도로 경계한다. 생각해보면 롯데 자이언츠는 스토브 리그 때부터 설레발 기사가 양산되고는 한다. '올해는 다르다'라는 기사를 몇 년째 보고 있지만, 긍정적인 의미에서 달랐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22시즌 자이언츠는 돌풍을 보여줬기에 '롯데는 어떻게 강팀이 되었나' 같은 기사가 분명 쏟아질 것이다. 팬들에겐 저주와도 같을 '롯어강'. 하지만, 올해는 이렇게 기억하며 이 설레발을 떨쳐버리자. '롯데를 어필한 건 강편뿐이다!' 난 이 공간과 야구잡썰을 통해 22시즌 시작부터 롯데의 강함을 어필했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그러고 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