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83 범죄도시2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법과 절차에 막히는 경우가 있다. 함께 살기 위해 정해놓은 것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는 아이러니. 한 사회와 국가가 모든 개인의 목소리를 듣는 건 불가능하거나,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기에 무용해 보이기도 한다. 악인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그림자 속에서 자신들의 영토를 확보한다. 이들을 중심에 두고 시민은 고통을 호소하며 공권력을 탓하고, 공권력은 현실적 한계에 무력함을 느낄 것이다. 이 두 집단의 장애물을 하나의 작은 팀이 모두 해결한다는 점에서 <범죄도시2>는 현실이 도달할 수 없는 판타지 영화였다. '액션'이라는 장르는 페이크였고, 관객이 실제로 쾌감을 느낀 건 저 '판타지'라는 장르에 있었다.
범죄도시를 움직이는 동력은 마석도(마동석)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마석도는 악인이 범죄를 저질러야 나타날 기회를 얻고, 그들의 흔적을 따라가는 수동성을 보인다. 그는 철저히 끌려다니게끔 설계되었다. 그렇다고 마석도가 무능하거나 약한 캐릭터로 설정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마석도의 힘은 영화 내에서 최대치를 찍고 있다. 그는 어떤 범죄자를 만나도 여유가 있고, 절대 질 것 같지 않다. 관객이 기대하는 것도 마석도와 범죄자의 팽팽한 싸움이 아니다. 어떤 빌런이라도 마석도 앞에서는 두려움을 느끼고 좌절하다 응징을 받는 걸 보고 싶어 한다. 나쁜 놈들도 무서워하는 게 있길 바란다. 그래서 '범죄도시' 세계관에서 마석도와 최후 빌런의 대결은 예정되어 있지만, 이야기는 이를 계속 유예한다. 그 시간 동안 악당은 더 악랄한 짓으로 관객의 분노 지수를 올려둔다.
그래서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건 악인의 행위다. 이들은 마석도와 대면하기 전, 관객을 가장 화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이후에 터질 마석도의 주먹 한방이 가장 통쾌할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범죄도시2>는 실제 있었던 사건과 인물을 모티브로 기시감과 섬뜩함을 느낄 수 있는 범죄들을 전시했다. 필리핀과 동남아 지역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노린 잔인한 사건들. 이게 말이 되나 싶을 정도로 인간성을 상실한 타락한 존재들. <범죄도시2>는 과거 현실에 있던 범죄자들과 스크린 속 복제된 그들의 이미지를 향해 마석도가 한 방을 날림으로써 많은 이의 분노와 울분을 갚아준다.
동시에 이 영화는 시스템이 손쓸 수 없는 범죄 속에 사라져 간 이들에게 국가와 공권력을 대신해 마음을 전하고 한을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종종 <범죄도시 2>에서 개연성이 무너지는 장면이을 목격해도 관객은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보고 싶었던 판타지(범죄자들의 완벽한 패배와 그들을 응징하는 초월적인 힘)의 재현에 더 주목했고, <범죄도시2>는 코로나 바이러스 시대 이후 첫 번째 천만 관객 동원 영화가 될 수 있었다.
<범죄도시2>는 과거의 시간을 재구성하며, 그때 우리 곁에 있었으면 좋았을 '강하고, 때로는 질서도 무시할 수 있는 영웅'을 넣어뒀다. 현실에서 이 정도로 강하면서 다른 절차보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갈 공권력을 볼 기회는 드물다. 이런 의미에서 <범죄도시2>는 '판타지' 영화다. 우리의 현실과 영화의 판타지 간의 괴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은 마지막에 있다. 사건을 해결한 석도는 등을 보인 채 터널을 빠져나간다. 쓸쓸히 퇴장하는 듯한 그의 모습은 승자가 아닌 패자 같다. 스크린 건너 우리의 사회엔 자기 자리가 없다는 듯 그는 카메라로부터 멀리 떠나고 있다. 고전 영화 속 무법자들도 그랬다. 국가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개인의 힘으로 해결한 영웅들은 국가와 함께 서 있을 수 없다. 국가는 그들의 한계와 무능함을 인정하지 못하기에. 그래서 우리는 거짓말 같은 영화에 더 열광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