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잡썰 Ep11. 팬이 슬픔을 느끼는 단계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후 겪는 감정의 단계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총 5가지 단계로 '부정 - 분노 - 타협 - 우울 - 수용'의 과정을 겪는다고 한다. 생각해보니 매년 자이언츠의 성적을 보며 겪는 일 같았다. 그러니까 가을 야구가 떠났다는 걸 매 시즌 확인하며 팬들이 경험하는 감정의 변화였던 것이다. 몇 주 전엔 분노였던 게 최근엔 우울, 그리고 수용 단계까지 온 것만 같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는데...
요즘은 하루아침에 야구에 무관심해진 것 같은 나 자신이 낯설다. 팀의 부진은 익숙하지만, 수용 단계에 너무 일찍 도달한 것 같다. 적어도 작년까지는 이 시점엔 특정한 선수의 플레이나 감독 코치의 결정을 꼬집으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근래 어떤 해보다 올해 매 경기를 챙겨봤고, 한 경기 한 경기 웃고, 욕하며 야구잡썰 녹음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 야구를 향한 관심이 차갑게 식었다. 주전 선수들의 부상으로 인한 이탈과 그로 인한 젊은 선수들의 기용. 재능 있는 새로운 얼굴을 보는 건 즐겁지만, 우리 팀이 성장에서 즐거움을 느낄 때 누군가는 오늘도 승리하고 있다. 타 팀 팬들이 승리에 열광하고 있을 때면 종종 박탈감 비슷한 걸 느끼게 된다.
팀 구성의 뎁스가 얇다는 문제가 눈에 띄지만, 이는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부상의 회복 외에는 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이런 상황을 초래한 구단의 계획과 그 결과에 관해서 논하고 싶지만, 아직 시즌이 반도 지나지 않아 이른 감이 있다). 원해서 부상을 당하는 선수가 없기에 그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날릴 수도 없고, 경험이 적은 선수들에게 개인의 역량을 기대하는 건 욕심이며, 이 선수단으로 감독에게 특별한 작전을 바라는 것도 사치다.
지금 자이언츠는 그들의 상황과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기에 뭐라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그래서 더는 아쉬운 점을 꼬집는 게 무의미하고, 이는 팀이 빠르게 개선될 여지가 없다는 걸 뜻하기에 더 슬프다. 기대와 실망은 비례한다. 더는 바랄 게 없고, 어떤 결과 앞에서도 감정적 동요가 적다. 모든 생각이 '이 악조건 속에서도 정말 열심히 싸웠다'에서 끝이 난다. 설레지 않고, 아프지 않다. 언젠가 배웠던 스토아학파의 '아파테이아'의 경지가 이것일까.
이번 시즌은 자이언츠는 극과 극의 기록이 쏟아지고 있다. 각종 최연소 기록과 함께 은퇴 시즌을 맞이한 자이언츠 히어로 이대호도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이번 주 일요일엔 연타석 홈런으로 여전한 힘을 과시했고, 3500루타라는 업적도 쌓았다. 팬들은 아직도 그를 보낼 준비를 못하고 있고, 끝내 하지 못할 것이다.
한태양, 김세민, 윤동희, 조세진 등 자이언츠의 미래는 조금 일찍 현재가 되었다. 과거보다 야구를 보는 즐거움이 줄었을 수도 있지만, 그들을 보고 새로운 희망과 즐거움을 찾는 팬들이 많다. 이들이 건강히 즐겁게 그들의 야구를 펼치는 시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부상 선수들도 하루빨리 돌아와 제 컨디션을 찾고, 나처럼 낙담하고 있는 팬을 다시 불타오르게 하면 좋겠다. 야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