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팬들을 위한 '롯데 자이언츠' 입문서

Appetizer#178 죽어도 자이언츠

기온이 낙엽처럼 떨어지는 가을날. 야구장의 열기는 이 자연의 섭리를 무시한 채 한 없이 뜨거워진다. 정규 시즌을 마치고, 마지막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모든 걸 불태우는 포스트 시즌이 한창이다. 하지만 이 무대에 초대받지 못한 팀에겐 차갑고 잔인한 시간이기도 하다. 유독 이맘때 야구가 낯선 팀이 있다. 창단 40년이 훌쩍 넘은 프로야구 원년팀 '롯데 자이언츠'. 슬프게도 이 팀은 그 긴 시간을 흑역사를 쓰는 데 대부분 써버렸다. 만년 하위권, 가장 오래 우승을 못했고, 21세기엔 한국 시리즈조차 가지 못한 팀. 그래서일까. 문제가 많아 보이는 이 팀은 다큐멘터리로서 너무도 훌륭한 소재다.

22년 10월 가을 야구가 펼쳐지고 있는 이때, 롯데 자이언츠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죽어도 자이언츠>가 개봉했다. 개봉일마저 롯데 자이언츠가 올 시즌에도 못할 거란 걸 확신한 것만 같아 웃픈데, 제목부터 비장하고 애절하다. 그 어떤 실망을 준다 해도 자이언츠 팬은 자이언츠 팬일 수밖에 없다는 그런 의미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포스트 시즌 예매로 바쁘다고 하소연할 때, 먼저 끝난 롯데 자이언츠의 시즌을 정리하며 <죽어도 자이언츠>를 봤다. 죽어도 자이언츠 팬인 한 사람인 팬에게 이 영화는 어땠을까.


<죽어도 자이언츠>는 1975년 실업팀 창단부터 이대호의 은퇴가 있던 2022년까지의 시간을 한 편에 담았다. 프로야구가 시작된 계기를 시작으로 자이언츠의 발자취 중 굵직한 이정표를 조명하며 40년이 넘는 시간을 돌아본다. 그중엔 84년 우승처럼 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는 것이 있고, 동시에 연속 최하위 기록처럼 팬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하는 것도 있다. 여기서 인터뷰이로 카메라 앞에 선 선수들과 코치들을 보며 추억에 빠질 수도 있다. 이렇게 <죽어도 자이언츠>는 여러 소재와 인물을 통해 롯데 자이언츠의 긴 역사를 되돌아볼 수 있게 했다. 그 기록을 톺아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고, 때로는 뭉클해져 몰입할 수 있었다. 긴 역사가 주는 힘은 그렇게 강했다.

방대한 시간을 담았다는 건 아쉬움으로도 작동한다. 롯데 자이언츠를 넓은 시야에서 보고 느낄 수는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만이 하고자 했던 말이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지독한 부진의 원인을 구단 시스템이나 선수 개개인의 측면에서 분석하거나, 부산의 뜨거운 팬심 등 롯데 자이언츠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질 것이 많은 팀이다. 하지만, <죽어도 자이언츠>는 어떤 특별한 주제 하나를 뾰족하게 설정하지는 못했고, 야구팬과 한국 야구 등으로 외연을 확장하지도 않은 채 카메라가 자이언츠의 역사 안에 멈춰 있다. 주제는 모호하지만 타겟은 롯데 자이언츠로 매우 확실한 영화. 이 영화는 롯데 자이언츠 팬을 위한 영화로, 특히 롯데 자이언츠 입문서로 추천하기 좋은 작품이다.


<죽어도 자이언츠>는 자이언츠가 사랑했던 선수와 그들의 역사를 소개하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이미 수없이 보고 경험했던 희로애락의 순간들을 나열했다는 한계를 피할 수 없었다. 진득하게 하나의 질문을 던지기엔 한 편에 담고 싶었던 자이언츠의 이정표가 너무도 많았다. 여러 세대에 걸쳐 팬의 모습을 담아내고자 했던 야심도 결국엔 그들의 스케치 영상에 그쳤다. 그런데도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자이언츠 팬이었으니까. 이번 시즌이 일찍 끝난 자이언츠 팬에게 가을에 우리의 야구를 다시 보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일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내년엔 죽어도 가을에 야구하자 자이언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