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Dec 05. 2022

[탄생] 이 영화에 벽을 느꼈던  몇 가지 이유

Appetizer#179 탄생

<탄생>은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의 삶을 담은 영화다. 박흥식 감독은 21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념 인물로 선정하기도 했던 이 존재의 발자취를 성실히 스크린에 옮기려 했다. 영화 속 카메라는 한 청년이 신부가 되기 위해 유학길에 올라 겪었던 고난부터 스물다섯 이른 나이에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충실히 따라간다. 실존했던 신부의 삶을 통해 우리 역사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온 과정을 담았기에 소재 면에서 종교 영화로 분류될 수 있으며, 실제로 바티칸의 프란치스코 교황 앞에서 시사회를 할 정도로 종교적 주목도 받았다.


분류를 종교 영화로 했지만, <탄생>은 조선의 청년이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길을 개척해나가는 강인한 태도에 초점을 맞추려 했다. 김대건 신부의 종교인이자 탐험가로서의 삶이 공명하는 작품이다. 우선, <탄생>은 산과 바다를 건너 서양의 문화를 접한 김대건 신부의 호기심과 학구열, 그리고 세상을 곳곳을 여행하며 보고 느낀 것들을 관객과 공유한다. 동시에 혹독한 대자연의 시련 앞에서 멈추지 않고 묵묵히 도전하는 청년으로서의 삶에도 집중했다. 믿음을 시험하듯 요동치는 파도, 영혼마저 얼어버릴 것 같은 설원 위를 통과하는 김대건 신부의 걸음은 처절하면서도 어딘가 에너지가 넘친다. 윤시윤의 투명하고 건강한 이미지 덕에 한 위인의 숭고함과 소년성이 동시에 잘 보이기도 했다.

이 작품이 더 흥미로운 건 김대건 신부의 장애물로 특정한 악인을 상정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영화는 종교를 박해하는 당시 조선과 권력자들에게 안타고니스트의 자리를 주지 않는다. 당시 시대의 분위기 속에 천주교가 마주했던 거대한 벽이 보이지만, 그것들을 나쁘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대신, 이 영화와 영화 속 김대건 신부는 세상이 변화하는 데 필연적이었던 충돌과 아픔으로 바라보려는 듯했다. 이를 통해 종교가 '무엇인가를 극복하고 이긴다'가 아닌, 세상 모두를 사랑하고 포용하려 한다는 자세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런 자세가 이 영화를 가장 종교적으로 만드는 요소일 거다.


전체적으로 안정적인 영화였고 차분히 관람했다. 좋은 배우들은 객석의 마음을 움직일 연기를 보였고, 대자연을 생생하게 담은 영상은 올해 내내 갑갑했던 마음을 환기해줄 만큼 시원스러웠다. 영화가 의도했던 종교와 종교인의 자세를 우직하게 보여주는 뚝심도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탄생>을 통해 영화적인 경험을 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오히려 151분이라는 시간은 부담스러웠고 유독 두꺼워 보였다. 시사회를 통해 보던 현장에서 중간에 이탈하는 관객도 여럿 보였다. 왜 이런 일이 있었던 걸까.

앞에서 이야기했듯 <탄생>은 인물과 배경, 이야기 등 영화의 이루는 요소가 종교를 향하고 있다. 관객도 이 점을 예측할 수 있기에 가볍게 웃고 즐기기 위해 이 영화의 관람을 선택한 이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오락성의 결여가 영화의 수용에 장애물이 될 수는 없다. 영화가 가진 무게를 견디고도 묵직한 울림을 주는 작품은 이전에도 많았으니까. 다만, <탄생>은 플롯의 구성이 단조로웠고, 김대건 신부와 카메라의 거리도 멀어 벽이 느껴졌다.


이 영화의 플롯은 김대건 신부의 삶을 시간순으로 재연하는 것 이상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방대한 사건을 나열하는 데 그쳤다. 더불어 <탄생>은 김대건 신부의 고난과 역경이 잘 보이지만, 그가 고뇌하는 순간은 거리를 두는 듯했다. 그의 슬픔은 보이지만, 그 이상으로 더 다가가 갈등하는 순간을 담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의 믿음은 이미 완성된 상태에서 극이 진행된다. 김대건 신부가 중심에 있지만, 영화 플롯을 움직이는 주도권이 그에게 없는 듯한 기이한 인상도 받았다. 한 종교인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숭고함을 표현한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관객이 그에게 다가가 몰입하게 할 수 있는 길을 막아버렸다.

모든 게 당연하고, 필연적이라고 말하고 고민을 배제한 인물을 따라가는 순간 그 영상은 영화보다는 재연과 자료로서의 가치가 더 부각되지 않을까. 이 영화의 제작 의도와 관람 이유가 상응할 때 가지는 힘은 엄청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관객이 이탈할 요소가 꽤 많아 보였다. 그런 관객 중 하나가 나였다. 훌륭한 인물의 삶과 아쉬운 구성의 이야기가 따로 움직이고 있어 아쉬움을 진하게 느껴야만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구 팬들을 위한 '롯데 자이언츠' 입문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