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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Oct 07. 2022

[인생은 아름다워] 모두가 알아도 언제나 따뜻한 이야기

Appetizer#177 인생은 아름다워

뮤지컬 영화는 이야기가 잠깐 멈추고 그들이 준비한 플레이리스가 끼어든다. '끼어든다'라고 다소 불편한 듯한 표현을 쓴 건 영화의 내러티브 전개에 반하는 면이 없지 않은 탓이다. 등장하는 음악과 춤은 이야기를 전진시키지 않고, 특별한 정보도 전하지 않는다. 인물의 감정을 멜로디와 춤을 통해 증폭시켜 관객이 인물에게 더 이입하게 한다. 이야기에선 이탈할 측면이 있고 극 전체로 봤을 때 몰입을 깨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화려한 덕분에 관객의 마음을 훔치기 쉽지만 동시에 극 전체의 완성도를 보장하기가 쉽지 않은 장르. 그게 뮤지컬 영화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모처럼 한국에서 기획한 뮤지컬 영화다. 국내엔 극 중간에 뮤지컬적인 연출을 시도한 작품이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뮤지컬을 내세운 작품은 오랜만이다. <원스>,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라라랜드>, <위대한 쇼맨> 등 외국의 뮤지컬 영화가 꾸준히 사랑받았던 걸 생각하면 의외일 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국내 배우가 한글로 노래하며 대사를 주고받는 게 낯설었을 거란 예상을 해볼 수 있다. 아니면 국내 제작진이 뮤지컬 영화가 가지는 화려함과 환상성을 스크린에 제대로 전시할 자본과 역량을 확보하지 못했던 탓일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 2년 전 개봉을 준비했던 <인생은 아름다워>는 어떤 매력이 있기에 자신감을 갖고 스크린 앞에 설 수 있던 걸까.

영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 '과거의 소환'에 있다. 이문세의 '조조할인', '솔로예찬', 임병수의 '아이스크림 사랑' 등 우리에게 익숙한 노래의 플레이 버튼이 눌러지는 순간 관객은 어떤 향수에 젖어들 수밖에 없다. 이 추억의 노래들은 그것이 흘러나왔던 어떤 순간을 환기하는 매개체로 작동한다. 그 시대를 경험했다면 자신의 기억 속에서,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미디어나 대중문화가 재생산하고 있는 레트로한 분위기에 빠져 아련함에 빠질 수 있다. 이런 추억 혹은, 가상의 추억 여행이 주는 감정적 여운은 강하고, 영화/드라마에서 꽤 많은 성공을 거둬왔다. 더불어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 감성을 증폭하기 위해 뮤지컬 씬을 의도적으로 촌스럽게 연출했다. 빛 바랜 영화의 비디오와 오디오가 환기하는 강렬한 분위기를 외면하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류승룡, 염정아 두 배우의 활약도 두드러진다. 20대 청년 시절의 이미지부터 두 아이의 부모가 된 중년의 삶까지 표현한 두 배우의 표정엔 호소력이 있었다. 덕분에 어디서 본 듯한 일상적인 이야기임에도 관객을 웃고 울렸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많은 상업 영화가 보여준 중년 부부의 매너리즘을 반복하면서도 류승룡, 염정아의 아이덴티티를 더해 특별한 부부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 80년대의 시대 분위기를 재현한 굵직한 에피소드와 그 시절부터 함께했던 공간과 소품이 두 배우와 어우러져 지금 우리와 호흡할 수 있는 지점을 확보하기도 한다. 예상할 수 있는 플롯과 진부한 캐릭터임에도 이 영화만의 색깔이 있다고 느낀다면, 몇 세대의 기억을 관통하는 데 성공한 두 배우의 이미지와 연기 덕이다. 그리고 낯선 뮤지컬 장르에 관한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이 역시 두 배우가 성실히 준비한 춤과 노래 덕이다.

이런 점을 제외하면 냉정히 <인생은 아름다워>는 여러 가지 전형성을 피해 가지 못한 작품일 수 있다. 그런데 영화가 강조한 과거의 소환이 뮤지컬 장르의 형식적 특성과 만나며 감성이 증폭되는 지점이 있어 흥미롭다. 앞서 말했듯 <인생은 아름다워>가 촌스러운 연출을 내세우며 과거를 소환한 데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투영되어 있다. 동시에 최대한 오래 그 시절의 분위기를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욕망도 작동한다. 그리고 이런 욕망들은 뮤지컬 영화에서 뮤지컬 씬이 어떤 이야기를 정지시키고 전개를 지연시키는 속성과 만나, <인생은 아름다워>가 의도했던 감성을 증폭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 영화를 보며 옛 시절을 오래 음미하고 싶은 관객에게 뮤지컬 씬은 그들의 아련함을 더 진하게 물들인다. 영화의 주제가 장르의 형식과 겹쳐 공명하는 멋진 순간 아닌가. 


많은 미디어에 소개된 덕분에 우리에게 익숙한 문장들이 있다. '시간은 금이다', '정직하라', '오늘 할 일을 미루지 말라' 등. '우리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 차 있다'라는 것도 그런 익숙한 문장 중 하나일 거다. <인생은 아름다워>도 결국 그 익숙한 메시지를 전한 작품이다. 하지만 역으로 말하면, 그 당연하다 생각하는 걸 우리가 자주 잊기에 더 자주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코로나 시대 이후 스크린에서 이렇게 직설적으로 우리의 삶이 행복하다는 걸 말한 작품이 드물었기에 <인생은 아름다워>가 반갑다. 잠깐 잊었던 우리네 삶의 아름다움을 확인하게 했던 화려한 매개체. 행복과 아름다움은 몇 번을 확인해도 질리지 않기에 이 영화로 한 번 더 확인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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