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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 예정된 실패를 해마다 쓰는 이유

영화 일기#086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

*이 글에서 사용한 '버킷리스트'는 영화 외에는 1년 단위로 작성하는 신년 계획을 의미합니다.


새해 시작과 함께 꼭 하는 일이 있다. 막 펼친 새 다이어리 어딘가에 올해 이루고 싶은 일과 목표를 적는 일. '올해는 진짜 멋지게 보낼 거야'라는 다짐부터 '제발 이렇게 좀 살아봐라'같은 원망 어린 기대까지 요상한 계획들을 쓰는 시간을 가진다. 올해의 버킷리스트라고 하자. 운동, 독서, 공부, 여행, 이직 등 일상적인 것부터 개인적인 숙원 사업까지 다양한 것들로 종이가 채워진다. 내 의지로 가능한 일과 운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 섞여 있는 걸 보면 일반적인 계획표와는 다르다. 물론, 작성한 걸 대부분 이루지 못한다는 점에서 둘은 꼭 닮았지만.


이 리스트를 작성할 땐 진지하다. 내가 걸을 길을 미리 정하는 것만 같은 마음에 신중하고, 꼭 해내겠다는 투지도 넘친다. 더 나아가 이걸 다 이뤘을 때의 내 모습을 상상하면 뿌듯하기까지 하다 판타스틱한 드라마가 완성되는 한 해가 될 것만 같다. 하지만 얼마나 지났을까. 야근과 마감이 겹치는 힘겨운 하루의 반복 속에 그때 먹었던 마음은 점점 희미해져 간다. 이처럼 새해 가졌던 각오는 일상의 대기 속에 점점 희석되다 사라지고 만다.

올해는 조금 달랐을까. 고작 10일이 지난 시점에 이미 나의 버킷리스트엔 적신호가 켜졌다. 12월 31일이 1월 1일이 되었다고 사람이 쉽게 변할 리 없다. 새해라는 분기점은 지구의 시간 주기일 뿐, 내 삶을 리셋시키는 버튼이 결코 될 수 없다. 작심삼일은 아니다. 적어도 성장은 하는 사람이기에 작심팔일 정도는 될 거 같다. 아무튼 내겐 이미 나의 인생이 쌓여 형성한 관성이란 게 있고, 여기서 이탈하는 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어려워진다. 버킷리스트란 녀석은 1년 주기로 발동되는 잠깐의 자기기만 아닐까.


여기서 몇 가지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이런 걸 매해, 굳이 왜 그렇게 열심히 쓰는 걸까. 어떤 목표를 써야 나처럼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게 될까. 작성한 걸 다 이루면 그건 정말 행복한 삶일까. 그러던 중 오프라인 행사를 준비하며 <버킷리스트: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하 <버킷리스트>)을 보게 되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실제로 나의 한 해 목표를 작성하는 시점과 맞물려 조금 더 이입하며 볼 수 있었다.

<버킷리스트>는 부자이지만 외로운 남자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따뜻한 가족은 있지만 재력은 평범한 남자 카터(모건 프리먼)가 인생 말년에 꼭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서로의 결점을 보완하고 성장하는 전형적인 버디 무비의 구성을 따른다. 복잡한 이야기가 아니며, 영화가 말하는 주제도 간단하고 익숙하다. '우리의 시간은 유한하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건 가족의 사랑이다' 등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이 전형적인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건 두 배우의 이미지에 있다. 주름만으로도 희로애락을 표현할 수 있는 두 노년 배우의 힘은 영화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게다가 우리는 모두 그들과 같은 순간을 만나게 되기에 그들의 삶에 더 이입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이 영화가 변별점으로 내세운 건 우리 삶의 영원한 빌런 '죽음'이다. 영화의 초반부, 에드워드와 카터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분노와 비애 등 부정적인 감정을 느낀다. 여기서 '죽음'은 안타고니스트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그러다 <버킷리스트>는 죽음의 역할을 확장한다. 삶의 끝을 인지한 두 남자는 남은 하루에 조금 더 많은 의미를 새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이두 남자의 탈주가 시작되는 순간, 죽음은 두 사람의 삶을 해방하게 하는 동력이 된다. 후에 이 여정에서 두 남자는 본인의 삶에서 잊고 있던 가치를 만나고 행복을 느낀다. 여기까지 오면 죽음은 두 남자의 조력자이자 동반자가 되어 있다.

인생에서 가장 피하고 싶지만, 모두가 맞이하는 죽음. 부정하고 피하고 싶은 이 녀석이 정말 동반자나 조력자가 될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 속엔 '죽음의 순간을 미리 알 수 있다면, 그걸 알려고 할 것인지' 묻는 대사가 있다. 에드워드와 카터처럼 삶을 더 값지게 만들어 주는 동반자라면 미리 아는 게 나쁠 거 같지도 않지만, 늘 죽음과 동행한다는 점에서 우울할 것도 같아 고민이 된다. 이 질문에 관해 고민하다 매해 버킷리스트를 써도 좋을 이유를 찾았다. 해마다 작성하는 버킷리스트엔 유통기한이 있다. <버킷리스트> 속 인물들이 삶의 끝을 상정하고 계획을 만들었듯 우리는 올해의 끝이 12월 31일이라는 걸 안다. 이 시간의 끝은 늘 정해져 있고, 1년이란 기간은 시간의 유한성을 깨닫게 한다. 평소엔 막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버킷리스트를 통해 손에 잡을 수 있는 실체처럼 다가온다.


여기엔 '죽음'이라는 녀석도 개입할 수 있다. 몇 주전 지나간 2022년은 우리 삶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영원히 느낄 수 없고, 만날 수도 없기에 '죽음'이란 녀석과 닮았다. 2022년과 그때의 나는 죽어버렸다. 이런 의미에서 2023년에 이뤄야 하는 일이라는 건, 2023년의 내가 죽기 전에 이뤄야 하는 일과 같은 말이 된다. 그렇게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건 우리의 삶을 무수히 많은 죽음으로 환산하는 행위가 된다. '죽는다'라는 표현 앞에서 더 절실해지는 것이 떠오른다면, 시간의 유한성 앞에서 오늘에 절박함을 느낄 수 있다면, 버킷리스트를 쓰고 읽는 행위는 삶의 목표를 쓰는 것 이상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믿는다. 동시에 어떤 시기에만 할 수 있는 일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새해 계획을 썼던 종이를 다시 꺼냈다. 올해의 나만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올해의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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