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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노] 우리는 왜 악인들의 이야기에 매혹될까

영화 일기#087 카지노

'카지노' 시즌 1 후기 및 악인 전성시대에 관한 잡담


강윤성 감독의 상업 극영화 데뷔작이자, 그를 단숨에 흥행 감독 반열에 올렸던 <범죄도시>는 악인이 빛났던 영화다. 등장할 때의 성격을 끝까지 밀어붙이는 프로타고니스트 마석도(마동석)는 평면적인 캐릭터였다. 내외면적으로 시작부터 완성되어 있었고 극이 끝날 때까지 성격에 큰 변화가 없었다. 예상을 깨는 유머러스한 대사와 속이 후련한 액션은 매력적이었지만, 산발적인 탓에 그것만으로 극 하나를 책임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빛난 게 안타고니스트 장첸(윤계상)이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잔혹한 모습은 관객을 끝까지 긴장하게 했다. 그리고 극이 진행될수록 그 잔혹함이 처벌받기를 간절하게 바라게 하면서 영화의 쾌감을 극대화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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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성공에 '마동석의 압도적인 이미지와 통쾌한 액션만 있으면 성공하는 거 아니야?'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정말 그럴까. 근래 마동석의 이미지를 전시한 영화가 모두 좋은 평가를 받은 게 아니라는 걸(오히려 박한 평가가 더 많았다) 고려하면, <범죄도시>에서 장첸의 중요성을 간과하기는 어렵다. 마동석의 힘을 내세운 액션 영화에 그의 맞은 편에 서 있는 악인이 관객을 극에 몰입하게 하고, 이 반작용으로 마지막에 터지는 마동석의 주먹 한 방은 더 빛이 난다. 바이러스 시대 이후 최초의 천만 영화였던 <범죄도시2>에서도 그런 구도가 잘 보였다.


<범죄도시>와 구도는 다르지만, '카지노'도 악인의 영화다. 주인공 '차무식'이라는 캐릭터가 움직이는 기준은 법과 도덕이 아닌 돈이었다. 여기서도 최민식이 보여주는 중년의 차무식은 일관적이고 평면적인 성격의 소유자인데, 장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차무식은 시청자의 이입을 유도해야 하는 프로타고니스트라는 거다. 일반적인 수용자가 악인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그에게서 극적 희열을 느낄 수 있을까.


이를 위해 강윤성 감독은 차무식이라는 나쁜 놈의 성장기를 조명하며 인물에게 이입할 시간을 준다. 이규형이 연기한 청년기의 차무식은 우리 근현대사를 경유하고, 그 시대 소시민이 겪었을 시대의 아픔을 간직한 남자였다. 가난과 폭력의 그늘 속에 살던 소시민 차무식이 그 시대 안에서 살아남고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기 위해 택한 방법. 그것이 돈과 남성의 폭력적인 시스템이었다는 걸 납득시키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카지노' 시즌 1에서 보여준 차무식의 청년기는 '그 시절, 악인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를 담은 악인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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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서 악인인 프로타고니스트에게 이입할 때 관객이 얻을 수 있는 건 법과 규범을 일탈에서 오는 일종의 해방감이다. 우리가 결코 시도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악인은 거침없이 행하고, 거기서 우리가 억누른 욕망이 터지는 지점이 있다. 답답한 세상의 규칙 앞에서 한 번은 생각해봤을 지름길을 뛰어가는 걸 보는 재미.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본 적 없는 세상과 그 세상 속 규칙을 볼 수 있다. 그 속에서 악인들은 우리 내면에 감춘 악의 대리 수행자이자 모험가로서 활약하는 셈이다.


이런 악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늘 불안하다. 사회의 법과 규범은 한 번 일탈하기 시작하면, 더 큰 일탈이 요구된다. 그런 점에서 주인공은 점점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카지노'에서 최민식이 맡은 중년의 차무식은 장첸처럼 성격이 변하지 않고, 주인공임에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런데도 극은 점점 더 긴장감이 넘치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이때 차무식에게 일어나는 변화는 더 커져만 가는 돈을 향한 욕망과 잔혹성, 그리고 일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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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더 증가하는 탐욕성과 폭력성은 더 큰 화를 부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차무식은 더 지독해진다. 그는 돈이 걸린 문제 앞에서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걸 획득하거나 지킬 방법을 찾을 뿐이다. 욕망은 갈등할 시간이 없다. 더 커질 뿐이다. 이렇게 악인들은 동기가 명확하고, 미친 듯 그것만 추구한다는 점에서 기이한 개연성을 획득한다. '저 캐릭터는 정말 저렇게 움직일 것 같다'는 그 생각 덕에 이야기는 진실성을 획득하고, 우리는 몰입하게 된다.


차무식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 같다. 닥칠 위험이 계속 커져도 그는 절대 멈추지 않는다. 덕분에 극의 스펙터클은 더 확장되고, 거기서 시청자를 사로잡는 볼거리들이 전시된다. 그리고 하나의 장애물을 해결하면, 이후 더 독한 놈과 큰돈이 등장하면서 이런 구도는 계속해서 반복된다. 언제 전복될지 모르는 자동차가 점점 더 빨리 달리고, 이를 지켜보는 건 팽팽한 긴장감을 보장한다. 인간이 감춘 내면의 욕망을 숨기지 않고, 그를 엔진 삼아 목표를 달성하는 인간을 보는 건 지독하게 매력적이고, 그들이 어디로 갈지 가늠할 수 없어 이야기에 눈을 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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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악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 악인과 속성을 공유하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드라마가 인기다. '대행사', '글로리', '재벌집 막내아들' 등은 단순히 착하기만 한 캐릭터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동기와 욕망에 충실했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보여주면서 시청자의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재벌집 막내아들'의 마지막 회가 혹평을 받았던 것도 목표가 뚜렷했고, 자신의 목표를 영리하게 이뤄가던 진도준(송중기)의 상실과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이런 독한 캐릭터가 대중문화에서 주목 받는다는 건 새로운 쾌감에 반응하는 대중의 자연스러운 반응일까. 아니면 우리 사회 어딘가에 균열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증거일까. 그리고 이런 추세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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