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컬: 100] 이 프로그램의 유일한 탈락자

Appetizer#184 피지컬: 100

몹쓸 마음이지만, 싸움 구경은 재미있다고 한다. 'A와 B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호기심을 갖게 하는 질문. 이런 상상에 날개를 달면 더 흥미롭다. 서로 다른 분야, 혹은 함께 대결할 수 없는 대상 간의 대결을 이야기하면 밤을 새워도 시간이 부족하다. 사자와 호랑이, 아이언맨과 헐크, 권투와 태권도 챔피언, 마이클 조던과 르브론 제임스 등등 말이다. 이런 부류의 호기심에서 '피지컬: 100'에 관심을 가졌다. 각 세계관 최강자가 모여 경쟁할 때,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궁금했다. 더불어, 패배라는 게 익숙하지 않은 자존심 강한 이들이 패배 앞에서 보여줄 반응도 궁금했다. 조금은 유치한 마음에서 시청을 시작한 셈이다. 그런데 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뭔가 달랐다.

still_04.jpg


분노가 아닌 존중의 서사

최근 몇 년간 'Show Me The Money' 등으로 대표되는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한국 대중문화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생존을 위한 처절하고 치열한 몸부림, 시청자를 홀리는 감동적인 무대, 장애물을 넘어서는 스타 탄생의 드라마가 중심에 있는 프로그램이지만, 자극적인 경쟁 구도가 이 프로그램들의 동력이었음을 부정하기 힘들다. 누가 더 뛰어난가를 가리는 곳에서 경쟁의 과열은 필연적이고, 이를 팔짱을 끼고 구경하는 건 흥미로운 볼거리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방송계는 '악마의 편집'으로 누군가를 프로그램 화제성을 위한 제물로 바치고, '솔직함'을 미덕으로 내세워 승부 후 일그러진 패자의 얼굴을 노골적으로 비추기도 한다. 참가자의 치부, 분노, 짜증을 전시하며 시청률을 확보한다.


'피지컬: 100'도 3억 원이라는 엄청난 상금을 건 경쟁이기에 치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한 분야의 정상에 있는 이들이 모였기에 자존심 싸움도 상당하다. 하지만 승부 후 '피지컬: 100'의 참가자들이 보여준 태도는 타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참가자들보다 훨씬 성숙해 보였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다. 패배 후 대부분의 참가자는 자신의 운동량이 부족했음을 탓하고, 더 강한 육체를 가진 이들의 승리를 함께 기뻐한다. 이 프로그램에서 패자가 자신의 토르소를 직접 부순다는 건 그래서 더 인상적이다. 그들은 경기에서 패한 게 아니라 수련이 부족한 자로서 무대를 떠났다. 이건 탈락의 서사가 아닌 인정의 서사였고, 분노가 아닌 존중을 남긴 승부였다.

still_04.jpg


프로그램 취지에 충실한 서사

기존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스타 서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출연자 개개인의 역사를 가져와 연민 동정의 서사를 만드는가 하면, 작위적으로 악인과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교묘히 영웅이 승리하는 서사를 연출하기도 한다. 한 출연자가 이겨야만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려는 것만 같다. 이는 시청자의 공감과 몰입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이겠지만, 각 출연자의 재능을 평가하는(것만 같은) 자리에 개입해 프로그램의 취지와 경쟁의 공정성을 헤칠 위험을 갖고 있다. 시청자 투표가 있는 서바이벌이라면 특히 더 경계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이와 비교해 '피지컬: 100'은 참가자의 출신, 전공 등을 소개할 뿐 개인의 서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소비하거나 특정인을 악인으로 소비하지도 않았다. 대신 각 라운드에서 어떤 근육이 가장 유리한 지를 어필할 뿐이었다. 각자의 분야와 성취에 초점을 맞춰 최고와 최고의 대결이라는 프로그램 취지를 끝까지 지켜낼 수 있었다. 그 덕에 전개가 빨랐고 최후의 승자를 단정할 수 없어 긴장감도 컸다. 누군가는 타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과 비교해 스타를 탄생시키지 못해 아쉽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스타를 조명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더 강한 육체를 탐구하려 했고, 이 부분에서 충분한 성취가 있었다.

still_02.jpg


노력이 보상 받는 서사

앞서 경쟁의 공정성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었는데, 이는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미덕으로 꼽을 수 있다. 이런 프로그램은 현대 사회에서 무너져 가는 공정한 경쟁을 대리해서 구현하려 한다. 참가자 모두에게 같은 조건과 기회를 부여해(혹은 부여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어) 그들의 능력 위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환상성을 갖게 한다. 지역, 학벌 등을 초월해 자신의 재능을 중심으로 도전하고 평가받는다는 이상적인 경쟁.


더 나아가 '피지컬: 100'은 공정한 경쟁보다 더 정직한 가치를 내세운다. 내가 흘린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원칙. 종목을 초월해 근육과 근력 등의 신체 능력은 개인이 투자한 시간만큼 결과를 얻을 수 있다(물론, 약물 복용이라는 나쁜 길도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 이렇게 노력에 대한 보상이 확실한 게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이 프로그램의 경쟁은 각자가 투자한 시간을 확인하는 자리가 된다. 누구와의 싸움도 아닌, 나의 한계에 도전하고 서로가 노력한 시간에 박수를 보냈던 '피지컬: 100'. 이런 대결 앞에서 노골적인 개싸움을 기대한 나 스스로가 가장 유치한 사람이었고, 이 프로그램에서 유일한 탈락자도 나였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타이타닉] 영화가 재난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방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