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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Feb 15. 2023

[타이타닉] 영화가 재난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방법

Appetizer#183 타이타닉

<아바타: 물의 길>이 코로나 시대에도 흥행 기록을 써 나가고 있는 시기에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또 다른 물 이야기가 스크린에 소환되었다. 아카데미 시즌이기에 다시 언급될 그 영화 <타이타닉>이 개봉 25주년을 기념해 재개봉했다. 전문가와 대중,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이 작품이 쌓은 업적은 말 그대로 역대급이다.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후보 지명 및 최다 수상, 역대 영화 흥행 순위 3위(개봉 당시 1위) 등 굵직한 기록이 많다. 이 흥행 기록을 깨 버린 것도 <아바타>였는데, 제임스 카메론은 다방면으로 대단한 길을 걸어온 감독이다.


제임스 카메론은  VFX 및 특수 효과에 관심이 많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놀라운 건 이 효과가 시간이 지나도 세련미를 유지한다는 데 있다. <터미네이터 2>, <아바타> 등 그의 영화에 사용된 시각 효과는 시간이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았고 여전히 빛나고 있다. 1991년 작인 <터미네이터 2>의 'T-1000(로버트 패트릭)'에 활용된 시각 효과와 <아바타>에서 3D 그래픽으로 구현된 판도라 행성의 이미지는 현대의 이미지와 견주어도 어색함이 없다. 시각 기술만 뽐낸 채 그 외의 것들을 등한시한 영화가 흔했고, 공개 당시엔 화려했던 이미지가 시간의 흐름 앞에서 촌스러워지는 것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제임스 카메론의 영화는 이런 점을 초월했다. 그는 기술을 예술로 끌어올렸고, 그의 영상은 시대를 관통하는 불멸성을 얻어 소환될 때마다 세련된 울림을 준다.

물론, 25년 전 <타이타닉>을 재관람하며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되는 지점도 있다. 대표적으로는 그 어떤 테크놀로지로도 복원할 수 없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을 꼽을 수 있다. 지금도 중년의 멋진 이미지를 뽐내고 있지만, 거대한 스크린 앞에서 마주한 <타이타닉> 속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이미지엔 압도적인 아우라가 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얼굴이 익스트림 클로즈업으로 잡힐 때, 객석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오는 걸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우리가 잊고 있던 그의 소년성은 관객의 마음을 붕괴시킬 만큼 파괴적이었다.


이미지가 가진 의미에 관해서만 말했지만, <타이타닉>은 지금 이 시기와 공명하는 지점이 있고, 그래서 더 큰 울림을 전하는 영화다. 1912년 있었던 '타아타닉호 침몰'이란 재난을 스펙터클한 영상으로 재현했던 <타이타닉>은 그 사건으로 사라져간 수많은 이들을 호명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마련해 뒀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에서 노년이 된 로즈(글로리아 스튜어트)의 길었던 삶을 사진으로 요약해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이를 통해 그녀가 잭(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희생으로 얻은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다. 대사가 없는 장면이지만, 로즈가 죽은 자의 몫까지 다양한 경험을 하며, 최선을 다해 살았음을 볼 수 있다(대부분 잭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들이다). 

이어서 영화는 침몰한 배 위에서 사라져간 이름들을 직접적으로 소환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영화의 막이 내리기 직전, 로즈는 꿈이라는 통로를 거쳐 타이타닉호의 승객들과 재회하고, 잭도 과거에 그랬듯 그녀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로맨틱하면서도 슬픈 순간을 조명하며 <타이타닉>에서 로즈는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려 애썼고, 과거의 승객들은 자신을 기억해줘 고맙다는 듯 웃음으로 답했다. 살아남은 자와 죽은 자가 다시 호흡하고 서로를 위로하는 순간. 이는 어쩌면 영화만이 만들 수 있는 시간이지 않을까(꿈과 영화의 유사성을 찾으려는 시도가 많았다는 걸 생각해보면, 로즈가 꿈을 통해 이런 순간을 만났다는 게 특별해 보인다). 그렇게 <타이타닉>은 영화가 재난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상처받은 많은 이들에게 언젠가 영화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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