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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내가 잊고 있던 당연함에 관하여

영화 일기#091 30일

영화가 하루의 전부였던 적이 있다. 영상 강의를 듣고, 공강 시간엔 옛 영화를 찾아보고, 저녁엔 영화관에서 신작을 본 뒤 노트에 그날 봤던 영화들 기록하던 그런 날이 있었다. 지금도 영화가 좋지만, 그때만큼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말하기 망설여진다. 많은 이유와 변명이 따라올 거다. 영화를 볼 수 있는 물리적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것, 예전에 만났던 작품만큼 내 감각을 자극하는 작품이 적어졌다는 것, 내가 원하지 않는 영화도 어른들의 사정으로 봐야 한다는 것 등.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기계적으로 영화관에 가고 글쓰기를 반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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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도 순수한 호기심만으로 선택한 영화가 아니다. 개봉 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하고 있어 출연하는 라디오나 연재 중인 글의 소재로 다룰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계산, 퇴근 후에 바로 볼 수 있는 시간대에 상영 중이라는 편의성을 고려해 예매를 결심했다. 그 외에 끌렸던 지점은 장르였다. 집중해서 대사와 이미지를 곱씹고 해독하는 일보다는 기분을 환기하고 현실을 잠시 밀어둘 수 있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30일>이 얕은 영화라는 것이 아니라, 이 영화가 예고편에서 추구했던 웃음에 더 눈이 갔다는 거다.


엄청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별을 고려하는 커플이 유예 기간을 갖고, 그 시간 동안 서로가 쌓아온 시간을 돌아본다. 익숙함에 잊었던 희미해진 감정을 느끼고, 변한 것은 사랑했던 연인이 아니라 자신과 상황이라는 걸 말하는 이야기. 그리고 곁에 있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속에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와 그것이 쌓여 이별의 도화선이 된다는 경고하는 그런 이야기. 450만 명을 동원했던 <내 아내의 모든 것>(벌써 10년 전 영화다)에서 영화관을 찾았던 많은 관객이 이미 학습했던 내용이다. <30일>도 이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작품이었고, '기억상실'이라는 변주를 통해 이 작품만의 변별점이자 특이점을 만들어 낸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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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익숙한 이야기를 가진 <30일>은 익숙하지 않은 방법으로 관객을 웃게 한다. 영화적 클리셰를 반복하다 전복하고, 이 간극을 재치 있게 활용했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드라마에서 볼 법한 익숙한(혹은 지루한) 장면이 전개되다 '이럴 줄 알았지?'라며 뒤통수를 치는 장면이 여럿 있다. 대중문화를 소비하며 이런 클리셰에 공감하지 못했고 답답함을 느껴봤을 이들을 위한 패러디였다. 물론, 이를 싫어할 관객도 있을 거다. 서브 캐릭터들의 서사가 단편적이라 캐릭터들의 깊이가 얕았고. 잠깐의 유머를 위해 도구적으로 소모되는 부분도 있다. 이런 탓에 그들이 만들어 내는 웃음이 이 산만하고, 때로는 장난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휘발성이 강한 유머와 짤로 더 기억될 것 같은 이미지를 가진 <30일>은 평소라면 가볍게 넘어갔을 작품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계적인 작업으로 고민 중인 지금의 내겐 이런 질문을 남겼다. 정열(강하늘)이 나라(정소민)의 소중함을 잃었듯 나도 영화라는 친구를 잊고 있지는 않았을까. 바이러스가 있든 없든 그 자리에 있었던 영화. 영화는 변한 게 없는데, 내가 변한 건 아닐까. 영화의 재미를 굳이 애써 찾으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영화 외에도 좋아하는 것들이 더 많아졌던 게 아닐까. 누군가는 이런 생각을 가진 내게 물을 거다. 한 편의 영화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게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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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온갖 생각 속에 헤엄치다 보면 영화라는 게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인다. 관람 시점에 따라 다른 모양을 다. 언제 어떤 감정을 가지고 관람하는가에 따라 그에 관한 반응이 바뀐다. 다수의 의견보다 더 재미있게 관람하기도 하고, 때로는 영화가 가지는 주제와 의미도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30일>은 좋은 타이밍에 만난 영화다. 아무튼 여전히 영화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아직도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는 걸 되새길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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