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기#092 발레리나
최근 멀티플렉스에서 개봉하는 상업 영화에게서 감독의 색깔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미디어에서 거론되는 거장 반열에 오른 이들을 제외하면, 개인의 인장을 영화에 새기는 게 쉽게 허락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영화를 제7의 예술이라고도 하지만, 많게는 수백 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현대의 상업 영화는 하나의 상품이기도 하다. 제작자들은 상품으로서 소구될 지점을 고민해야만 하고, 거기서 감독은 욕심을 양보해야할 수도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작가주의'를 시도하기 힘든 환경이다. 그래서 이런 영화 산업의 분위기 속에 단편 <몸 값>으로 주목 받은 한국 영화계의 새로운 얼굴, 이충현 감독의 행보가 더 궁금했다. 비교적 제작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넷플릭스는 이 시대 새로운 작가가 될 수 있는 감독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었을까.
<발레리나>는 친구의 죽음에 복수하는 주인공의 뒤를 따라가는 영화다. 이 복수의 서사는 옥주(전종서>의 총이 스크린 안팎의 악인을 동시에 겨눈다는 데 특이점이 있었고, 여기서 이충현 감독의 작가적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만연한 디지털 성범죄를 조명하며 이를 후련하게 때려부수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동시에 악인을 지질하게 보이는 게 연출했다고 한다. 이 의도대로 영화 속 악인은 겉 멋에 취한, 하지만 별 볼 일 없는 인물로 옥주에게 제대로 맞서지 못한 채 처절하게 응징당한다. 현실 범죄와의 연결 고리를 통해 <발레리나>는 현실의 범죄와 피해자의 상처를 떠나 보내길 바라는 제의 같았고, 우리 곁의 법이 다 채워주지 못하는 대중의 분노를 해소하며 '영화적 정의'를 구현해내고야 마는 영화였다.
<발레리나>를 본 많은 이들이 영상미를 영화의 매력으로 꼽는다. 영화의 대기가 묵직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었는데, 범죄의 어둡고 축축한 기억과 고통을 형상화한 듯 많은 공간이 피처럼 붉은색으로 연출되어 있었다. 이를 무대로 옥주가 펼치는 액션은 스타일리쉬하면서도 범죄의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으로도 보일 수 있었다. 덕분에 영상미가 좋은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반대로 이 점을 꼬집어 '영상만 멋진 뮤직비디오 같은 영화'라는 평도 있다. 촘촘한 이미지 구성과 비교해 이야기 밀도가 낮고 인물 묘사도 아쉬웠다는 반응이다. 앞서 악인의 사연을 덜어내고 복수의 행위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관객이 영화 속 캐릭터에게 설득당하고 이입할 지점이 적어진 탓으로 보인다.
이야기가 비어있을 때 주인공의 행위에 이입하기 어렵고, 영화에 몰입하기 힘들다. <발레리나> 속 액션과 액션 사이의 공백이 생긴 지점에서 관객은 길을 잃고, 긴장감을 느껴야 할 부분마저 지나칠 수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수용한 이들에게 <발레리나>는 이미지만 과잉된 작품으로 기억에 남았을 수 있다. 감독의 연출 의도와 구현된 방식을 지지하지만, 보는 이가 영화를 따라가게 할 핵심 요소가 잘 보이지 않았다는 데도 공감할 여지가 있다.
액션으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존 윅> 시리즈도 초기엔 심플한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 대신 <존 윅>은 비밀스러운 규칙이 있는 영화적 세계가 호기심을 갖게 했고, 키아누 리브스가 '모잠비크 드릴'로 구현한 액션의 리듬과 타격감은 특별했다. 감각적인 액션 장면과 역동적인 편집은 그 자체로 스토리가 되는 효과가 있었다. 액션에 방점이 있는 <발레리나>도 이 장르적 성취가 있었지만, 단순히 액션 씬 및 상대하는 적의 숫자로만 봐도 대중을 만족시키기엔 쉽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비어있다는 느낌도 가질 수 있었던 영화다.
종종 작품의 좋은 의도와 주제를 강조하려다 영화 그 자체의 매력이 희미해지는 경우가 있다.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달되지 못하고, 부각하려 애쓴 것이 오히려 희미해지는 기이한 상황도 만날 수도 있다. <발레리나>의 화려한 이미지 뒤에서 공허함을 느꼈을 이들에게는 이충현 감독이 추구했을 영화적 정의가 잘 보이지 않았을 거다. 그들에겐 감독의 인터뷰 등을 통해 추가로 정보를 얻고서야 영화의 의도와 메시지에 온전히 닿았을, 영화 밖에서 완성될 영화였다.
이렇게 좋은 의도와 부정적인 반응을 목격할 땐 혼란스럽다. 선하고 정의로운 제작 의도가 영화 제작 및 홍보를 위한 도구에만 그치는 것이 아닐까라는 불안함과 씁쓸함. 이 영화는 현실을 모방하며, 현실에 '어떤 긍정적인, 유의미한 영향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문. 현실을 재료로 상품이 될 때 스스로가 역설의 괴물이 될 수다는 두려움까지. 산업 속에 숨 쉬는 영화가 영원히 가져가야 할 숙명으로 보인다. 어떤 상업 영화가 여기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