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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봄 대신 밤이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

영화 일기#093 서울의 봄

천만 관객 이야기가 나오는 영화에 관해 말하기엔 늦은 감이 있다. 실제 인물이 오버랩되는 뛰어난 연기, 어둠의 질감을 다채롭게 살린 촬영, 기교 없이도 긴장감을 증폭시키는 편집 등 많은 요소가 빛났다고 호평을 받고 있다. 시간 순서로는 근래 개봉했던 <남산의 부장들>과 <택시 운전사> 사이에 위치한 <서울의 봄>은 영화에서는 낯설 수도 있는 시기를 소환한다. 비어있다고 하지만, 모르는 이가 없는 우리 근현대사의 변곡점. 김성수 감독이 12 · 12사태를 가져오며 어떤 점을 조명하려 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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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은 군사 반란의 중심에 선 '전두광(황정민)'을 극의 중심이자 안타고니스트로 내세운다. 그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 생전에 현대사를 피로 물들이고, 민주화의 희망을 밟은 인물이었다. 영화는 그런 면을 놓치지 않는다. 전두광은 개인의 목적을 위해 군인의 본분을 져버리고 권력 앞에 선 가장 탐욕스럽다. 그런데 전두광은 영화적으로는 비교적 단면적인 캐릭터로 묘사되었다. 그는 딜레마 앞에서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밀어붙이는 결단력 있는 모습으로 하나회를 결집 시킨다. 영화는 전두광이 고뇌에 빠지는 인간적인 면을 애써 비중 있게 담으려 하지 않았고, 덕분에 절대악이자 광인으로서의 면모가 잘 보일 수 있었다.


<서울의 봄>에서 인간적인 고민에 빠지는 건 절대 악이 아닌, 하나회 인물들이다. 여기서 '인간적'이라는 건 인류애 등을 상기시키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의미가 아닌, '기계적인'의 반대어 정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전두광의 행위가 군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임을 하나회 인물들도 알고 있지만, 그들은 생존과 욕심을 위해 반란에 가담한다. 카메라는 이들의 우유부단함과 불안함, 공포심 등을 응시하며 책임을 다하지 않는 어른들의 겁먹고 못난 얼굴 하나하나를 스크린에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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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은 우리가 알던 최고의 악은 전형적인 모습으로 두고서 비겁한 어른들의 초상을 전시하는 데 더 공을 들였다. 유독 연극적으로 보일 만큼 지질하게 묘사된 책임자들에겐 감독이 그들의 책임을 묻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영화의 주요 테마 중 하나는 '책임감'이었고, 김성수 감독은 개인의 소임을 다했던 이들의 행동을 짧게라도 임팩트 있게 담으며 책임감의 무게를 표현했다. 덕분에 제 몫을 못 한 고위 공직자들의 선택이 더 초라하고 추악하게 보일 수 있었다.


이렇게 <서울의 봄>은 절대 악 뒤에 가려진, 비겁한 선택들이 모여 서울은 봄 대신 밤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고 씁쓸하게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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