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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Sep 07. 2016

제이슨 본이 아니라 송강호가 필요했던 이유

Movie Appetizer#18 밀정

김지운 감독의 1920년대 첩보물
세 명의 천만 배우
역사 속 개인의 얼굴, 송강호의 표정


1920년대, 조선인 출신임에도 일본의 경찰이 된 이정출(송강호). 일본 경찰은 그에게 의열단 조직의 중심 정채산(이병헌)을 찾아오라 지시한다.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의열단원 김우진(공유)에게 접근하고, 순조롭게 중국에서 정채산을 만나는 데 성공하는 이정출. 하지만 그가 일본 경찰 소속이라는 것도 탄로가 나고, 임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런데 그때, 그의 임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일이 일어나는데……. 조선과 일본의 경계에서 이 남자는 살아남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지속해서 소환되는 일제 강점기

김지운 감독이 3년 만에 복귀하면서 고른 무대는 1920년대였다. 최동훈, 이준익, 허준호 그리고 박찬욱에 이어 그가 선택한 시간도 일제 강점기다. 류승완의 <군함도>까지 제작 중이니 국내에서 명성이 있다는 감독은 차례로 이 시대를 방문하고, 역사를 다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김지운 감독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류승완은 <다찌마와 리>에서 이미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특별한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밀정>과 <군함도>는 전작보다 역사적 리얼리티를 그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감독들의 행보와 교집합을 보인다 할 수 있다.


↑↑↑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김지운 감독 <밀정>에서 겪은 이 말한 창작의 고통:-)


이 시대가 어떤 속성을 가지기에 이렇게 무대로 불려오는 걸까.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적 시간은 그 속에서 많은 인물을 몸부림치게 했고, 그들에게 곪아 터진 상처를 새겨줬다. 그리고 그 상처는 국가적, 민족적 상처로 오랜 시간 숙성되어, 100년 가까이 된 지금에서야 거대한 스크린으로 이식되는 중이다. 그 시대엔 인물의 다양한 갈등과 상처로 이루어진 비극적 드라마가 있고, 근대적 변환기의 경성이 보여주는 도시의 스펙터클은 영화가 구현을 시도해볼 법한 것들이다.


최동훈은 ‘암살 작전’이라는 스릴러의 장르적 쾌감과 ‘미츠코시 백화점’이라는 스펙터클로, 박찬욱은 독특한 미적 양식과 에너지가 풍기는 ‘코우즈키 저택’의 미장센으로, 이준익은 시대적 혼란 속에 자괴감을 느끼는 ‘동주’라는 인간의 내면으로, 그리고 허준호는 고국을 떠나야만 했던 소녀가 시대에 휩쓸린 ‘비극’으로 그 시대를 각자의 스타일로 표현했었다.



김지운이 소환한 1920년대 스파이

<밀정>의 김지운 감독은 1920년대 속에 은밀한 작전을 펼치던 스파이에게 관심을 가진다. 그는 첩보물이라는 외연 아래, 아군과 적군의 경계가 모호한 공간 속에 던져진 인간의 불안한 표정을 카메라에 담음으로써 그 시대를 소환하고, 그 시대의 혼란을 말한다.


해외에서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스파이 브릿지> 등 냉전 속, 첩보원을 중심에 둔 걸출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영화는 스파이를 통해 불신과 혼란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시대와 그 속의 불안한 공기를 관객이 호흡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이제 우리에게도 역사적 시간을 스파이의 시선으로 볼 기회가 온 것 같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불신의 시대를 카메라에 담으려 애를 쓴 영화다. 이 영화에 액션을 과시하는 장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액션 등의 볼거리는 영화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김지운이 설계한 액션은 오프닝을 제외하고는 기교를 최소화한다. 대신 <밀정>은 인물의 표정으로 만들어지는 분위기와 그 흔들림 속의 내·외적 갈등을 잡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첩보물이란 ‘민첩’하고 몸으로 말할 게 많은 장르에(‘007’ 시리즈 혹은 ‘본’ 시리즈) 송강호라는 중년의 육체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었다.



세 명의 천만 배우와 엄태구

공유는 올여름, <부산행>으로 천만 배우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이 덕분에 <밀정>엔 천만 배우를 무려 세 명이나 등장한다. <괴물>, <변호인>의 송강호와 특별출연한 <광해>의 이병헌까지 한국이 자랑할 만한 배우들을 한 스크린,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병헌과 송강호는 아카데미시상식의 회원이기도 하니 월드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이병헌의 비중이 궁금한 관객들에게 살짝 귀띔해 주자면, 그는 <암살>의 조승우가 맡은 김원봉과 유사한 역이며, (체감상으론) 그보다 더 많은 대사를 소화한다.


하시모토 역의 엄태구도 에너지를 뿜어낸다. <잉투기>로 존재감을 알린 뒤, 착실히 필모를 쌓아온 그는 이번 영화에서 여태 눌러왔던 감정을 다 토해내듯 살벌한 연기를 한다. 독기가 오른 일본 경찰 하시모토는 송강호의 이정출 앞에서도 흔들림이 없었고 덕분에 첩보물의 장르적 긴장감은 극대화 될 수 있었다.



역사 속개인의 얼굴

<스파이 브릿지>에서 마크 라이런스는 스파이 역할을 맡았었다. ‘스파이’라 하면 기대할 수 있는 민첩하고 냉철한 이미지와 달리 그는 액션으로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차분하고 고요한 눈빛 등의 표정과 분위기를 통해 냉전 시대 속에 파묻혀버린 스파이의 고뇌와 피로를 보여줬다. 불투명한 조국과 그보다 더 깜깜한 자신의 미래 앞에서 정체성을 고민해야 하는 존재. 그렇게 지쳐가는 것이 <스파이 브릿지> 속의 스파이 ‘루돌프 아벨’이었다. 마크 라이런스는 그의 표정으로 냉전 시대의 공기를 토해내는 데 성공했고, 그 덕분에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밀정>엔 송강호의 얼굴이 있다. 물론, 그의 얼굴은 <스파이 브릿지>의 마크 사일러스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는 더 불안했고, 더 많이 꿈틀거리고 있으며, 우리에게 익숙한 송강호의 표정도 함께 가지고 있다. 더 이야기해서 관람의 재미를 빼앗지 않겠다.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김지운 감독이 그 표정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생각해보면 좋은 관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송강호라는 연기 귀신의 표정을 되새김질하며 영화의 재미를 극대화하길. 어수룩한 송강호의 얼굴과 비장한 이정출의 얼굴이 겹치고, 그 표정에서 균열이 보일 때, <밀정>은 관객에게 말할 것이다. 그게 이 영화의 주제야!


↑↑↑ 한지민 캐스팅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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