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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 읽어주는 남자 Sep 20. 2016

낡지 않은 한 세기 전의 스타일

Movie Appetizer#20 매트릭스

한 세기 전의 세련됨
그녀들이 형제였을 때
17년, 2199년에 더 가까워진 현실


1999년.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며, 더 극한 표현을 빌려온다면 무려 한 세기 전이다. 그때 개봉한 <매트릭스>를 스크린에서 4K의 고화질 영상으로 재개봉한다. 이 소식을 듣고 한 편에서는 설렘이, 또 한 편에서는 우려가 반반씩 고개를 쳐들었다. 큰 스크린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와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의 액션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란 설렘. 그리고 <스타트렉>, <스타워즈> 등이 걸리는 스크린에서 봤을 때, 낡아 보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은퇴한 슈퍼스타가 다시 복귀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이와 같을까. 이 영화를 기다리는 마음이 꼭 그랬다.



한 세기 전의 세련됨

우려와 달리 <매트릭스>는 여전히 좋았으며, 현재 상영하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세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에 (이 영화 앞에서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열광하는 게 적절한 것인지 모르겠으나) 4K라는 고화질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건 테크놀로지가 주는 굉장한 선물이다. 워쇼스키 형제(현재 자매)가 세계관을 얼마나 치밀하게 정립하고 구현해 놓았는지, 그리고 그 세계에 어울리는 액션을 얼마나 잘 녹여놨는지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매트릭스>에서 보여주는 동양 무술과 불릿 타임(총알까지 포착할 수 있는 슬로우 모션) 등의 액션 및 효과는 만화적이고(혹은 게임) 투박하다. 조금만 잘못 표현했어도 유치하다는 평가를 들을 수 있던 시도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적절한 연출 덕에 이 액션 및 효과는 <매트릭스>라는 디지털 공간·캐릭터와 함께 영화의 톤 앤 매너에 잘 녹아들었다. 그래서 세월에 구애받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17년 전 게임(ex: 포트리스2, 스타크래프트 등)을 지금 보면 낡은 것 같다는 느낌이 있다. 혹은 17년 전 머리 스타일을 봐도 그런 걸 느낀다. 하지만 <매트릭스>는 세월을 타지 않는다. 17년이란 시간은 <매트릭스>라는 세계에 큰 균열을 주지 못했다.


사실 처음엔 이 영화에 관한 좋은 기억이 객관적 관람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신중했었다. 하지만 영화만큼 유명한 음악이 흐르고, 그 유명한 타임 불릿 효과로 화면이 느려질 때, 오히려 빨라지는 심박 수를 느끼며 확신했다. 역시 좋은데?



그녀들이 형제였을 때

<매트릭스>엔 낯선 자막이 하나 있다. 워쇼스키 형제가 감독이라는 자막. ‘워쇼스키 형제가 연출한 거 맞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17년 동안 변화가 있었다. 그들은 한 명씩 성전환수술을 했고, 남매를 거쳐 지금은 자매가 되었다. 이러한 변화가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줬는지 정확히 알기 어려우며, 규정하기도 힘든 일이다.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다만, 조심스레 <매트릭스> 3부작과 이후의 영화를 비교하는 것까지는 가능할 것 같다.


이들은 매트릭스 이후 <스피드 레이서>, <클라우드 아틀라스>, <주피터 어센딩> 그리고 <센스8>이라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그들이 그녀들이 된 이후, <매트릭스> 때부터 보여준 장기인 독특한 세계관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이어나가면서, 좀 더 섬세한 감성을 담으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그리고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는 (관객과는 멀어진 면이 없진 않지만) 규정, 표준화된 것들로부터 탈주하려는 면도 보여줬었다.



<클라우드 아틀라스>는 할리우드 주류 스토리 라인을 따르지 않는 파격적이고 복잡한 영화였다. 때문에 <매트릭스>를 기대한 관객에게 거대한 혼란을 던져줬고, 흥행에서도 큰 재미를 못 봤다. 이후 <주피터 어센딩>으로 돌아왔지만, 영화의 작품성, 완성도와는 별개로 여전히 대중과의 거리는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매트릭스> 3부작이 대중성을 가진 것이 우연이었던 걸까. 아니면, 흥행 이후 그들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영화에 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들이 걷는 인생의 진로와 영화적 변화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 걸까. 앞으로의 한 걸음걸음이 그 대답이 되어줄 것이다.



17년이면 충분했던 디스토피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과도기에 있던 시기에 <매트릭스>가 보여준 미래는 디스토피아였다.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삶이라는 암울한 세상. 17년이 흐른 지금도 이 영화가 던진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 속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말했다. ‘인류는 21세기 초 모두가 경탄하면서 AI의 탄생을 한 마음으로 환영했었지.’ 지금 우리 시대에 던지는 말이라 해도 잘 어울린다. 17년 만에 AI는 친숙한 기술이 되었고, 다양한 분야와 결합하며 그 분야의 한계를 돌파해 나가고 있다.


재미있게도 이런 AI의 발달을 가장 많이 우려하는 분야가 영화라는 점이다. 기계와 연애를 하는 <그녀>, 기계가 치안을 담당하는 <채피> 등 AI가 일상화되었을 때 있을 수 있는 새로운 현실과 그 문제점은 영화가 먼저 보여준다. 미래의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위험’을 경계하는 건 영화의 몫이 되어버렸다.



매시간 스마트 기기에 시야를 차단당한 삶. 인체의 에너지보다 휴대폰 배터리에 더 집착하는 세대. 공공장소에서 디지털 세계와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와이파이와 콘센트 플러그를 찾는 시대. 이런 디지털 의존도는 우리에게 무엇을 예고하는 것일까. <매트릭스>하나의 예언서가 되는 걸까. 아니면, 이미 우리는 매트릭스라는 세계에 진입한 걸까. 170년 뒤, <매트릭스>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그 시대에 이 영화를 볼 관객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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