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가 걸어온 길 : 생각
독일의 신경생물학자 게랄트 휘터는 플라톤의 영혼론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학을 파헤치며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는 인간의 고유성을 찾아내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기 위하여 철학자 칸트의 “인간이 본능에 구속되지 않는 ‘도덕적 자율성’을 가질 때 다른 생명체와 구별되며, 도덕적 행위의 주체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한 인용구를 사용하길 주저하지 않는다.[참고 2.10] 물론 굳이 칸트의 이야기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인본주의에 매몰되어서 이 자연의 다른 생물과 같은 부류로 언급되는 것을 생리적으로 싫어한다. 이는 미국 텍사스 주의 한 여론조사(2010년)를 보면 분명해진다. 여론조사 문항이 ‘현재의 인류가 앞서 존재했던 생물종으로 부터 진화했다고 생각하나?’라고 물었을 때 동의가 35%, 비동의가 51%로 과학기술이 현저하게 발달한 현대에서도 여전하게 진화론에 반대하는 정서가 매우 강함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인간에 대한 언급을 배제하고, 자신의 신앙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답변할 수 있는 문항으로 ‘생명체가 시간이 시작된 순간부터 현재의 모습으로 존재했다고 생각하나?’로 바꾸어 물었을 때는 ‘그렇다.’가 22%, ‘계속해서 진화해 왔다.’가 68%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를 지지하는 그룹이 창조론을 지지하는 그룹 보다 3배 이상이 되었다.[참고 2.3]
2010년이면 지금으로부터 불과 10여 년 전이고, 1969년 닐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해서 20여 시간이나 머물다온 지 벌써 50여 년이나 훌쩍 지났으며, 애플의 아이폰이 대중화 되면서 4차 산업혁명의 서막을 알리던 시기인데, 과학적인 진화론에 대한 반감이 여전하게 강한 것은 종교적인 이유, 그리고 인본주의에 기반한 인간의 생각이 서구 기독교적 신념으로 중무장하여 인류가 하찮은 하등 동물로 부터 진화했다고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심각한 모멸감이 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할 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 세상을 하느님이 우리 인간을 위해 창조해 주었다고, 그래서 우리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고 우기고 있는 우리는 어찌하여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면서까지 지키라고 던져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를, 부처가 가르쳐준 자비를 일요일에만 생각하면서 갈수록 자본주의 탐욕의 늪으로 빠져 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전쟁, 기후 위기 등을 자초하여 6번째 대멸종을 초래하고 있는 것일까?
자 이제 우리의 조상인 인류가 진화하면서 생각이 어떻게 탄생했고, 어떻게 작동했으며,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하나씩 알아보자. 600만 년 전 침팬지로부터 분리 진화하면서부터 만물의 영장을 넘어 만물의 창조주를 넘보는 현재까지 인류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시대상황에 따라 인간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작동해 인간의 방식으로 자연에 변화를 가하여 문화를 만들고, 이러한 문화로 인해 만들어진 형태인 문명을 이룩해 내면서 인간의 생각이 발전하고 변천을 해왔다. 생각의 역사를, 인문학적 사조를 칼로 두부를 자르듯이 년도 별로 정확하게 구분하여 서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긴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우리 조상들이 약 600만년을 살아오면서 어떤 생각으로 살아 왔는지, 이에 따른 생각의 흐름을 한번 따라가 보고자 한다. 이를 대표적인 키워드로 표현하면 그림 2.4에 표현한 바와 같이 “생각의 터전(평등) → 생각의 변화(계급) → 생각의 변화(종교) → 생각의 탄생(철학) → 생각의 독립”으로 변천해 왔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2.9 우리 인류가 지나온 길을 더듬어 생각의 변천과정을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그림 2.4. 생각의 역사
2.2.1. 생각의 터전 : 평등
침팬지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약 600만 년 전에 갈라져 나온 우리 인류는 유인원들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숲에서 과일을 따먹으면서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다만 우리 인류는 다른 유인원에 비하여 뇌의 용량이 약간 큰 행운을 누렸고, 이는 유인원들이 그저 생존을 위한 단순한 프로그램에 만족하며 오늘날까지 살아온 것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지능이 높은 우리 인류는 짐승 뼈, 나뭇가지 등을 도구로 활용하여 식물을 채집하고, 작은 동물을 사냥하면서 삶을 이어 갔다.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단백질 섭취가 가능해지고, 이로 인하여 뇌의 용량은 더 커지게 되는 선순환의 진화를 진행하게 되었다. 400cc에 불과했던 초기 인류의 뇌 용량은 500만 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증가하여 초기의 두 배가 넘는 1,000cc에 이르게 되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약 50만 년 전으로 추정되는 베이징원인(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이다. 베이징원인의 화석이 발굴된 같은 지층에서 불에 탄 벼와 다량의 사슴, 코뿔소, 호랑이, 하이에나 등 동물의 뼈, 가공한 흔적이 있는 석기 등이 발견된 것이다. 인류가 불을 다루는 최초의 생명체가 된 것이다. 불을 다룬다는 것은 음식을 익혀 먹었다는 것이고, 이는 자연 상태의 거칠고 딱딱한 음식물의 조직을 부드럽고 연하게 만들고 쉽게 소화할 수 있게 함으로서 뇌에 충분한 영양을 공급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충분한 단백질은 뇌의 용량을 키우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커진 뇌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뇌가 커지면서 불과 동물의 뼈, 석기 등 도구를 다루게 되고,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면서 뇌가 커지는데 필요한 충분한 영양 섭취가 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마침내 약 4만 년 전에는 우리 인류의 마지막 진화 단계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했다. 이러한 진화 과정을 Zallinger는 1970년 ‘진보의 행진(The March of Progress)’이라는 그림(침팬지→오스트랄로피테쿠스→호모 에렉투스→호모사피엔스와 같이 계단식의 선형적으로 진화하는 모습으로 여러분도 한번쯤은 본적 있는 유명한 그림)처럼 생각하거나, 헤켈이 1874년 발표한 ‘인류의 기원’에서 하나의 줄기에서 출발하여 여러 가지로 나뉘는 나무줄기처럼 진화했을 것으로 생각했다. 초기 진화학자들은 우리가 유인원으로부터 진화했지만, 우리 자신을 생명의 정점으로 올려놓거나, 인간을 진화 다양성의 가장 높은 가지가 받쳐주는 성공과 지배의 위치에 올려놓음으로써 인간의 자부심을 회복하려 노력했다.[참고 2.3] 하지만 이는 최근에 생물학자들에 의해서 어떤 종은 더 높고, 어떤 종은 더 낮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라 밝혀졌다. 최근에는 수십억 년 전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 5차례의 대멸종을 포함한 변화와 자연선택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는 중에 다양한 종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들이 출현하였고 한동안 공존하였다. 그 중에 변화와 자연선택에 따라 뇌 용량이 커진 종은 호모 에렉투스,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고, 그렇지 못한 종들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류로 살다가 멸종되었을 것이다.[그림 2 참고] 어떻게 설명을 하던 지구상의 여러 동물중의 하나로부터 진화해서 결과적으로 우리 인류의 마지막 진화 단계인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이다. 이들의 뇌 용량은 1,500cc까지 커지게 되어 뇌 용량 크기에 걸맞게 언어와 도구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를 우리는 구석기 시대라 부른다.
뇌의 용량이 급격하게 커졌다는 것은 바로 생각의 물질적 터전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문화와 문명을 이루어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 되는 토대가 마련 된 것이다. ‘생각의 터전’이란 바로 뇌인 것이다. 불의 사용은 생각의 터전인 뇌의 용량만 키운 것이 아니었다. 불에 익힌 고기와 음식은 부드러워 씹을 때 힘을 덜 들여도 되기 때문에 턱 뼈와 근육이 얇아지면서 구강 내부 또한 넓어지게 되었다.2.9 이렇게 넓어진 공간은 혀를 이전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했고, 이에 따라 언어의 사용 능력이 가속화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생각’이 ‘언어’와 함께 서로 연동되어 인간이 하는 생각의 양은 물론이고 질적으로 그 이전과 비교하여 괄목할만한 발전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점차 세계에 대한 자신만의 전략을 구체적으로 수립하고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약 1만 년 전의 신석기 시대로 점차 넘어가게 된다.
이때부터 우리 인간은 양적으로 커지고 질적으로 발달된 뇌를 바탕으로 하여 자신의 생각을 보다 더 전략적으로 구현해 나가게 된다. 예를 들면 초기에는 도구로 사용할 만한 돌의 모양을 고르거나 큰 돌을 깨뜨려 그 중 쓸 만한 파편 조각을 골라 사용하다가 자신이 원하는 도구의 모양을 생각한 후 그 모양대로 돌을 갈거나 쪼아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BC 5,000년경 양사오문화에 이르면 기하학적 무늬를 구사하고, 사람 얼굴을 한 물고기를 그리고, 초기 글자로 간주할 수 있는 부호들을 사용한 흔적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흔적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구석기 시대 인간과 달리 사물을 추상하여 그렸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의 의미는 사물을 개별적인 상태로만 보지 않고, 사물의 공통성이나 의미에 따라 범주로 묶어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참고 2.9] 이는 인간의 생각이 생각의 물질적 터전을 기반으로 한 단계 진화해서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에 비하여 자신의 위치를 점점 상승시키도록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의 저서 “원더풀 라이프(Wonderful Life)”에서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는 별 볼일 없었던 작은 생명체가 캄브리아기에 간신히 살아남은 덕분이다. 그리고 행운의 재앙이 찾아와 지구 위를 걸어 다니던 가장 웅장한 동물들을 멸종시킨 덕분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행성에 존재하게 된 것은 자연선택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행운도 그만큼 따라준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참고 2.3] 그의 말대로 우리 인간은 진화론의 정설인 변화와 자연선택, 그리고 침팬지의 2번 염색체 융합, 불의 사용, 공룡의 멸종 등의 행운 덕분에 마침내 자기 자신의 존재를 탐험하고 설명할 능력을 갖춘 유일무이한 종으로 살아 남았다. 한편 인류학자들은 우리 인류는 뇌가 커져서 앞에서 언급한 행운을 얻었지만, 반면에 두개골이 커져 그 대가로 출산의 고통과 고령자의 지혜를 얻었다고 설파한다. 첫째 출산의 고통은 스스로 출산하는 일반 동물들과 달리 누군가의 도움 없이 출산이 어렵다는 것을 뜻하고, 둘째 고령자의 지혜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학습이 필요한 우리 인간에게 식량생산, 출산과 육아, 전쟁 수행 등에 매우 유용한 생존 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뇌의 큰 용량에 걸 맞는 뇌의 역할이 많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하여 훨씬 긴 시간동안 학습이 필요할 뿐 아니라, 불과 도구를 사용하면서 새롭게 습득한 경험과 지식이 바로 고령자의 지혜이기 때문에 이를 후속 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생존과 진화에 매우 유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우리 인간은 홀로 살기가 매우 어렵고, ‘생존’과 ‘번식’을 위해 가족규모 이상의 집단생활이 유리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이상과 같이 인류학적으로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은 어려서부터 교육을 통해 배워서 누구나 알고 있다. 현대에도 우리 인간은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에 혼자 들어가 살아남기 어려운데, 약 50만 년 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개인행동을 하며 생존하기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당연히 진화의 키워드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BC 5,000년경 양사오문화 유적은 당시 우리 인간이 모계사회를 이루고, 빈부 격차나 사람간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는 있었지만 계급적으로 우월한 위치의 지배자는 없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 했으며, 공동으로 의사 결정하는 대단히 평등한 사회였다.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원천은 자연선택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즉, 미적인 것이든 종교적, 정치적, 성적인 것이든 우리의 선택은 첫째, 환경에 대한 성공적인 적응의 직접적인 결과이거나 둘째 과거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인해 비롯된 간접적인 결과이다.[참고 2.3] 이러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우리 인류는 신화, 의식, 상징을 중심으로 종교적 사회 집단화하여 경험이 풍부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부족사회를 이루어 공동생산, 공동분배로 빈부 격차나 계급이 없는 평등 사회를 누리며 살았다. 이것이 식량을 구하고, 전쟁을 수행하고, 자식을 나아 기르는데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다.
2.2.2. 생각의 변화 : 계급
이제 우리 인간은 신석기 후기에 들어서게 되었다. 우리 인간이 불과 도구를 사용하면서 생각의 물질적 터전을 마련하고, 그 토대 위에 생각을 전략적으로 구현하게 되면서 다른 생명체는 물론 이전의 자신에 비해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단순하게 채집과 사냥에 의존하며 먹이를 찾아 떠돌아다니다가 강 주변의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고, 농업 생산량이 증가하자 인구가 증가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적어도 일정 기간 이상을 한 곳에 머물러야 가능하다. 이러한 농경이라는 반복적이고 주기적인 삶의 형식으로 정착하자, 인간의 생각이 새로운 삶의 방식에 본격적으로 작동해서 우리 인간의 방법으로 자연에 변화를 가하여 ‘문화’를 발생 시켰다. BC 3,000년 ~ BC 2,000년 사이에 일어난 룽산문화 유적은 이전 양사오 문화와 달리 농업생산력이 급격하게 상승한 시기임을 보여준다.[참고 2.9] 농업생산력이 증가하자 그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잉여 생산물이 나왔다. 잉여 생산물이 생겼다는 것은 이것을 누가 차지할 것이냐의 소유 문제가 대두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사냥하고, 함께 채집한 수확물을 다 같이 둘러 앉아 나누어 먹던 시절에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유재산이라는 새로운 생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것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자,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고, 땅을 개간 할 때 개별적인 능력의 차이가 구현되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능력에 따라 사유재산의 차이가 나타났으며, 이것이 어느 순간 권력이 되고, 결과적으로 부족사이에 계급이 형성되게 되었다. 또 농업의 규모가 커지고, 야생동물을 길들여 목축을 하게 되면서 점점 근력의 힘이 능력이 되었고, 권력이 되면서 점차 힘이 센 사람 즉, 남성이 공동체를 주도하는 관념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남성 주도 관념은 남성 스스로의 능력에 따라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본인 주도로 생활하는 것이 당연시되기 시작하였다. 사유재산을 소유하고 권력을 갖게 되자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존재의 지속에 대해 고민하다가 ‘혈연’을 매개로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소유재산 상속 또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자식 중에 남성에게 물려주는 관념이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형성되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확신하는 자식하게 재산을 물려주려는 욕구는 부인으로서의 여성을 독점할 수 있어야만 실현이 가능하다. 남성은 내 재산과 권력을 물려줄 자손이 나의 피를 이어받았느냐, 아니냐의 혈통이 중요하고, 여성은 내가 낳은 자손이 성공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나와 자손을 보살펴 줄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모계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진화심리학의 설명을 한번 들어보자. 현대의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이 후천적으로 습득한 요인에 의한 것 보다는 유전자에 의한 선천성에 방점을 찍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우리 인간이 갖고 있는 질투심이 남성과 여성이 서로 다른 요인에 의해 촉발된다고 설명한다. 남성의 경우 혈통이 중요하기 때문에 배우자의 성적인 부정 행동 자체에 질투심이 촉발되는 반면에, 여성의 경우 자손의 성공이라는 점에서 보면 남성이 공급하는 자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배우자의 성적인 부정 행동 보다는 배우자가 다른 여자에게 사랑에 빠졌는가가 질투심 촉발의 요인이라 설명한다.[참고 2.3]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갖고 있는 질투심의 촉발 요인을 이렇게 분석할 수 있다면 이는 신석기 후기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이 농경생활을 하면서 사유재산이 생긴 덕분에 갖게 된 유전자 때문이라고 투정을 부려야만 할 것 같다.
다시 신석기 후기로 돌아와서, 농업생산량의 증대로 생긴 잉여 생산물은 사유재산의 상속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모계의 평등한 부족사회에서 근력을 내세운 남성 중심의 계급사회로 변화하는 동인이 되었다. 농업의 발달은 비옥한 땅을 중심으로 우리 인간을 정착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인구를 증가시켰고, 이렇게 증가된 인구는 바로 사회 형성으로 이어졌다. 이제 질서 관념이 필요했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계급이 출현하게 되었다. 여성 중심의 모계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장자 상속사회로, 부족사회의 경험 많은 지도자는 권력을 가진 지배자로, 부족 간의 평등 관계는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변화되었다. 이는 우리 인간이 처음에는 별 생각 없이 그저 생존을 위해 서로 도와가며 평등하게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며 살다가, 사유재산이 생기면서 ‘혈연’을 매개로 자신의 존재를 생각하고 이를 지속하려는 ‘생각의 변화’[그림 2.4의 2번째 단계]로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는 인구가 더욱 증가하여 성읍 도시가 출현하고, 이는 고대 국가의 형성으로까지 이어지는데, 사회 규모가 커질수록 계급사회는 더욱 공고해졌고, 혈연을 매개로한 장자상속에 의한 세습으로 이어져서 추후 본격적으로 남성성과 태양, 남성적 왕권을 중심으로 하는 이데올로기로 부상하게 된다.
이렇게 계급사회가 형성되고 인구는 계속 증가하여 남성중심의 세습 지배 이데올로기로 체제를 유지하는 문명사회를 이루고 살았는데,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4대문명이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가장 오래된 문명으로 이집트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인디아 문명, 황하 문명을 말 한다. 인구가 증가하고 사람과 사람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지면서 사람과 사람 간의 경쟁이 생기고, 이에 따라 차별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었다. 지배계급과 피 지배계층,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소유와 쟁취라는 생각의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하였고, 이를 위한 인간의 서사가 태어났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그전까지 구전되어 왔던 이야기들을 BC 3,000년 경 문자로 기록한 인류 최초의 고전 ‘길가메시’이다.[참고 2.5] 이 길가메시는 고대 우리 인류의 대 서사시로 창조신화에서부터 부와 명예, 권력, 영원한 삶 등에 대한 욕망과 이와 더불어 다가오는 생노병사에 대한 회한 등이 쓰여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에 쓰여 진 길가메시를 통해 고대 인류의 삶이 인공지능 로봇을 창조할 정도로 발전한 현대의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시대를 불문하고 희망과 용기, 좌절과 두려움, 욕망과 자만 등의 인간 존재의 보편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이는 지금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고민(기후 위기, 빈부 격차, 전쟁 등)과 비슷한 사유를 과거의 우리 인류도 가졌을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답도 성현들에게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이야기, 생각의 변화가 어떻게 진행하였는지 계속 알아보도록 하자.
2.2.3. 생각의 변화 : 종교
이제 혈연을 매개로 세습하는 남성중심의 계급사회가 점점 발전하여 우리 인간이 국가를 형성하게 되었다. BC 1,600년에 출현한 중국의 은나라로 여행을 떠나 보자. 이 무렵 서양은 BC 1,800년 에 함무라비왕이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였고, 우리나라는 BC 2,333년 에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신화가 있다. 여기서 은나라를 살펴보는 이유는 갑골문(甲骨文)이라는 문자로 은나라 시대에 새겨진 기록 때문이다. 철학자 최진석에 의하면 “은나라 사람들은 조상신이나 하느님인 상제를 굳게 믿고 그들로부터 답을 얻기 위해 제사나 사냥, 전쟁 등 세상사의 큰일이 있을 때 마다 항상 점을 쳤다. ...중략... 갑골문에는 인간과 신의 관계가 반영되어 있었다.”[참고 2.9] 사실 우리 인간의 종교적 행위는 초기 인류일 때부터 이어져 왔다. 실제 네안데르탈인의 고대 무덤에서 종교적 상징과 토템(totem)의 흔적들이 발견되었다. 그 옛날 홍수와 가뭄, 그리고 추위 등으로 척박한 자연 환경은 채집을 하든지 사냥을 하든지 허기진 배를 채우기도 힘든 상황에서 자신 보다 크고 힘이 센 맹수들에 둘러 쌓여있어 생존하기도 버거웠을 우리 조상들은 무서움에 떨면서 무언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생물학자 케네스 밀러는 “신화, 의식, 상징을 중심으로 응집할 수 있었던 사회집단은 종교가 없는 사회집단에 비해 먹을 것을 모으고, 전쟁을 수행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데 더 효율적이었고, 따라서 살아남아 자신의 유전적 재능을 오늘날의 인류에게 전승하는데 성공했을 것이다.”[참고 2.3] 이러한 종교적 유전자가 현대의 우리에게 전승되어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인간을 닮은 인공지능을 만들어 내는 오늘날에도 아주 오래전 과거 못지않게 온갖 종류의 종교가 인간의 문명에 스며들게 되었을 것이다.
다시 BC 1,600년의 은나라로 돌아가 보자. 성읍도시에서 부족사회 형태로 살던 우리 인간이 은나라라는 거대한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서를 유지하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다. 당연히 지금까지 활용해온 혈연을 매개로하는 장자 상속의 세습 지배 이데올로기 만으로는 부족했을 것이다. 은나라 사람들은 하느님인 상제를 믿고, 상제가 폭풍, 홍수, 가뭄, 질병, 전쟁 등과 같은 자연의 질서를 해결해 준다고 믿었다. 따라서 하느님인 상제에 무탈하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야 하는데, 이 제사를 지내는 것은 최고 권력자만이 할 수 있었다. 이제까지 우리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이해하고 존재를 지속하는 매개가 혈연이었다면, 은나라는 혈연 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하느님 즉 상제를 지배 이데올로기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국가의 최고 권력자와 귀족들은 경험적이고 구체적인 차원에서 설명하는 혈연이 아닌 그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하느님 상제에 의해 존재를 보장 받고, 혈연의 장자 상속(후에 종법제도로 제도화 됨)을 통해 존재의 지속을 보장받게 되었다.
이는 우리 인간이 자신이 가진 능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상징, 의식, 신화 등 종교적 행위들의 대상을 초월적인 하느님으로 구체화하는 ‘생각의 변화’[그림 2.4의 3번째 단계]를 통해 인간 존재의 지위를 스스로 격상시켜, 하느님 상제의 천명을 통해 존재를 보장받았다는 의미이다. 당시의 사람들은 하느님이 내리는 명령인 천명은 시류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절대적이고 완벽하다고 믿었다. 따라서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권한과 이에 따라 천명을 받는 권한을 독점한 국가의 왕과 그의 지배그룹은 이러한 새로운 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위를 인정받고 권력을 유지하였다. 또한 자신의 나라와 권력의 세습이 하느님의 천명과 함께 하기 때문에 멸망하지 않고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혈연으로 장자가 상속하는 권력 세습의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히게 되고 오래 가지 않아 무너지게 된다. 혈연으로 이어지는 장자가 항상 지배자로서의 탁월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다는 보장이 없고, 세상은 넓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새롭고 능력 있는 인재는 언제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토와 인구 등 국가의 규모가 그전에 비하여 엄청난 규모로 확장되면서 소수의 권력자 그룹이 절대 다수의 피 지배 계층을 다스리는 상황으로 전개 되었고, 이는 소수의 권력자에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고도의 통치 이데올로기와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에 다수의 피 지배 계층 사이에서 불만이 쌓여 언제든 주변에서 중심을 공격할 수 있는 동인(動因)이 서서히 잉태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국가 단위에서 왕과 백성간의 지배 이데올로기 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규모 공동체, 예를 들면 조그만 마을에서도 부와 권력의 격차에 의하여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문제이고, 이러한 계급사회에 대한 폐해는 오늘날 우리사회에 이르러서도 오히려 더 증폭되고 심각한 사회 문제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문제는 나중에 우리가 해법을 찾아야 될 문제이니까 당연히 기억해 놓고, 계급 사회와 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까지 진행한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해 갈 것인지 계속 따라가 보자.
2.2.4. 생각의 탄생 : 철학
이제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BC1,046년에 건국한 주나라로 들어 가보자. 이 비슷한 시기에 서양은 고대 그리스(스파르타, 아테나이 등)의 고대 국가 시기이고, 우리 한국은 여전히 고조선 시기이다. 중국기록인 ‘한서’에 의하면 BC1,000년 고조선에 범금팔조라는 8조(條)에 해당하는 법률을 제정했다는 기록이 있다.[참고 2.11] 이 기록으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우리 고조선 사람들의 생각도 중국 은나라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종교적 통치 이데올로기로 질서를 유지했고, 하느님의 천명으로 죄인을 종교적 제사를 지낼 때 죄를 처벌했으며, 노예제도를 시행하는 계급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이던 동양이던 시대흐름에 따른 우리 생각의 변화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시 은나라 말기로 돌아가면, 몇 번에 걸친 장자 세습에 의해 자동적으로 왕위에 오른 왕은 통치 능력이 없어 권위를 상실하고, 절대 다수의 피 지배 계층은 피폐해진 생활고에 원성이 들끓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천명을 받은 은나라의 왕을 폐하고 천명을 받지 않은 주나라를 세우는 것은 정당성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때 우리에게 오늘날까지도 중요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덕(德)’이라는 개념이 출현한다.[참고 2.9] 왕이 자신의 ‘덕(德)’이 없어 피 지배계층을 잘 보살피지 못하면 하느님의 천명을 잃고, ‘덕(德)’이 있으면 얼마든지 천명을 얻을 수 있다는 명분으로 주나라는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했다.
주나라 또한 여전히 은나라와 같이 하느님의 천명에 기반 한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피 지배계층을 다스렸지만, 주나라에서는 은나라와 달리 하느님의 천명의 득실이 인간의 ‘덕(德)’에 달려 있다고 생각하는 개념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하느님에 대한 우리 인간 자신의 위상과 책임이 상향되었음을 의미한다. 천명은 하느님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덕(德)’이 있으면 받을 수 있는 관계로 향상 된 것이다. 주나라에서 인간의 위치가 은나라에 비하여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예기’의 기록으로 확인 할 수 있다. “은나라 사람들은 신을 받들었다. 백성들에게 신을 모시도록하면서 신을 중시하고 예법을 경시 하였는데, ..... 주나라 사람들은 예법과 베푸는 것을 중시했다. 신을 공경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대신 항상 사람을 가까이 하는 일에 정성을 기울였다.”[참고 2.9]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 것이다. 그저 하느님의 천명에 무작정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인간의 일은 인간의 능력에 의하여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나서야 하느님의 천명을 받겠다는 것이다. 이제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덕(德)’이고 이를 토대로 신과 인간뿐 아니라,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와 소통을 위한 마음가짐과 절차가 예(禮)이며, 우리 인간은 이러한 예(禮)를 통해 ‘덕(德)’을 지키거나 회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생각은 ‘덕(德)’과 예(禮)를 구체화하고 체계화 시켜 우리 인간이 이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지침을 제시하였다. 명실상부한 인간의 생각이 아니 철학이 탄생[그림 2.4의 4번째 단계]한 것이다.
주나라는 이러한 인간의 생각을 바탕으로 거대한 국가를 효율적으로 통치할 수 있는 봉건제도, 종법제도, 조세제도 등을 정비하였다. 그러나 통치체제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다 하여도 장자 세습의 종법제도가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하였고, 결국은 군웅할거(群雄割據)하는 춘추전국시대를 맞는다. 여기에 조세제도가 공동생산 공동세금을 내는 정전제(井田制)에서 토지면적에 따라 일정량의 세금을 납부하는 초세무로 바뀌면서 토지로부터 어느 정도의 자율성이 확보되자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재산을 형성할 수 있는 토대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더불어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기존의 지배·피지배 구조가 역전되어 부를 형성하는 그룹이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노예 수준의 백성인 소인 중에 상업 등으로 부를 축적한 소인이 생겨나고, 혈연을 기반으로 한 세습귀족인 군자 중에는 가산을 탕진하여 비루한 군자가 생겨났다. 군자와 소인의 이분구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명실상부(名實相符)가 아니라 명실상치(名實相馳)가 되어 주변과 중심, 신과 인간 사이에 힘의 역전 현상이 일어나 사회가 대 혼란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동서양 공히 군웅이 할거 하고 국가와 국가끼리 전쟁의 연속이었다.
이 시기가 바로 그림 2.1에 보인 축의 시대이다. BC 500년 경 인도에서는 붓다가, 중국에서는 노자와 공자,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스라엘에서는 엘리야, 예레미야, 이사야가 등장한 것이다. 이에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 1949년 그의 저서 ‘역사의 기원과 목표’에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류의 모든 정신적 기원으로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시대로 축의 시대라는 개념을 제시 하였다.[참고 2.5] 왜 하필이면 우리 인류의 위대한 성현들이 이 시기에 집중해서 등장하여 거대 사상을 설파하였을까? 아마도 ‘덕(德)’이 그 당시 우리 인간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중심 기반이자 통치 이데올로기였는데, 실제로는 ‘덕(德)’이 실천되지 못하고 오히려 아이러니하게도 서로 죽고 죽이는 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사회상에 대한 우리 성현들의 깊은 사유의 결과 아니었을까? 더러운 물속에서 연꽃이 피어나듯이 대 혼란 속에서 진정한 인간의 생각이 확립되고 철학이 꽃을 피운 것이다.
공자는 논어 〈이인〉에서 “군자회덕 소인회토(君子懷德 小人懷土): 군자는 덕을 생각하고, 소인은 땅을 생각한다."고 하고, 또 논어 〈자로〉에서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각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를 도모하는데, 소인은 조화를 추구하지 않고 똑같아 지려고만 한다."라 하였다.[참고 2.9] 공자는 그 당시 통치 체제인 군자와 소인의 이분구도를 인정한 상태에서 ‘덕(德)’을 실천하라 외쳤다. 한편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목적은 최고선(最高善)인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고, 이 행복은 지적인 덕과 품성적인 덕을 실천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는 윤리사상을 설파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덕(德)’의 실천을 설파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가 정복왕 알렉산더 대왕이다. 어찌하여 우리 인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위대한 성현들의 가르침인 ‘덕(德)’을 실천하지 않고, 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을까? 이 위대한 성현들의 가르침에 오늘날을 사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해답은 있을까? 축의 시대 위대한 성현들의 사상은 다음 절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2.2.5. 생각의 독립 : 인간
BC 221년 진시황이 군웅할거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천하를 통일하여 진나라를 건국한다. 이전 춘추전국시대에 철기시대로의 산업 대전환이 일어났고, 비록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제자백가가 출현해 찬란한 문화를 이루었으며, 각 나라마다 서로 다른 부국강병책을 실행했기 때문에 수공업의 발달과 더불어 상업의 규모가 급속하게 확대 되었다. 상업으로 부를 축적한 소인 계층은 계속 강해지고, 혈연의 장자 세습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던 군자 계급은 점점 약해져 명실상부(名實相符)가 아니라 명실상치(名實相馳)가 되는 추세로 이동하게 되었다. 철기시대로의 산업 대전환이 소인과 군자 간의 계급 구도에 균열을 가져왔고, 심지어 소인과 군자 간의 계급 역전까지 벌어진 것이다. 진시황은 천하를 통일하기 위하여 소인들로부터 성장한 신흥자본가 계급을 제후로 임명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함으로서 지배계급의 명실상치(名實相馳)한 혼란 상황을 명실상부(名實相符)하도록 하여 체제를 효율적으로 안정시켰다. 또한 이 철기시대로의 산업 대전환으로 말미암아 산업 생산력이 증대 되어 이전에 비하여 우리 인간의 삶이 풍요로워졌다. 이는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해결하고 다룰 수 있는 범위가 넓어져, 스스로의 자긍심을 키우는 원동력이 되었고, 이에 따라 하느님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져 그 권위가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진나라는 유가사상에 의해 나라를 통치하던 이전의 나라들과 달리 법가에 의해 나라를 다스렸다. 결정적으로 진나라는 하느님의 뜻이 하나도 개입되어 있지 않은 ‘법(法)’을 제정하고 이 법으로 나라를 운영하였다. 이는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천명으로부터 완전하게 극복해서 인간 스스로의 생각으로 삶을 살아가는 생각의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최진석은 “철학은 믿음에서 생각으로, 신에게서 인간으로 이동하는 역사를 보여준다.”고 말한다.[참고 2.9] 춘추전국시대에 소인-군자의 계급체계가 흔들리고 통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면서 이를 하느님이 지켜줄 것으로 믿었던 당시 사람들은 천명에 의심이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이 땅에서의 문제는 천명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인간이 스스로 해결해야할 일이라는 시대적 문제의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제 우리 인간은 천명에 의한 믿음의 힘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힘으로 제시한 인간의 길인 ‘도(道)’[그림 2.4의 5번째 단계]를 표방한다. ‘도(道)’가 출현하고 나자 춘추전국시대에는 세계를 해석하는 두 개의 중심축이 ‘천’과 ‘덕’이었는데, 이제는 세계와 관계하고 세계를 해석하며 또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새로운 두 개의 중심축인 ‘도‘와 ’덕‘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도가 천명을 극복하려면 천명이 가지고 있던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 사실 천명은 천자가 독점함으로서 주관성, 임의성 등의 한계로 의식 수준이 높아진 절대 다수의 피지배계층으로부터 믿음을 상실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최진석은 “‘도(道)’를 중심에 놓고 인간의 길을 건설하려는 모든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 안에서 투명성, 객관성, 그리고 보편성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 시켜야 한다.”[참고 2.9]라고 설파 하였는데, 이와 같이 천명을 극복하고 ‘인간의 길’의 건립을 시작했던 성현으로 동양은 노자와 공자 그리고 서양은 소크라테스가 있다. 이들 성현을 비롯한 동서양 철학의 시대적 변화와 흐름에 대해서는 다음 절 ‘축의 시대’에서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도’와 ‘덕’으로 생각의 독립을 이룬 우리 인간은 약 2,200여 년 동안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었고, 4차례의 산업혁명으로 이제는 우리 인간이 우리를 닮은 ‘인공지능 인간’을 창조하려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한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우리 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고, UN인권선언을 도출해 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현재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 세대 간 갈등, 높은 실업률, 정치 불신, 기후위기 등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는 근본 이유는 무엇일까? 어찌하여 우리 인류는 초창기의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평등사회를 이루며 살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문명이 발달할수록 적자생존의 무한경쟁 그리고 경쟁에서 도태된 그룹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 무위도식의 계급사회 체제로 치달리고 있을까? 춘추전국시대에 철기시대로의 산업 대전환이 소인-군자의 이분구도의 계급 체계를 와해시켰듯이 우리 인간이 생각의 독립을 이루고 4차 산업혁명으로 산업 대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현대와 미래사회에 직면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는 있는 걸까? 이제부터 ‘축의 시대’에 등장한 위대한 성현들의 생각과 이후의 철학 흐름을 따라가면서 같이 고민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