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가 걸어온 길 : 생각
2.1 우주의 탄생과 소멸
코로나 19 확산으로 전 세계가 혼란에 빠져있다. 2019년 말 발생했다고 추정되는 이 전대미문의 호흡기 바이러스는 초기엔 모두들 사스나 메르스 정도의 호흡기 증후군으로 생각하고 방역에 집중하면 수개월 내에 퇴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바이러스 전파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정상급 선진국들도 뾰족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해 허둥대다가 방역에 실패하여 지역 봉쇄와 해제를 반복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은 백신을 통한 집단면역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자 유수의 제약회사들이 경쟁적으로 백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다. 마침내 2021년 봄, 백신접종을 시작했고 코로나 19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봄을 만끽했다. 그러나 인류의 도깨비 방망이인 백신접종을 진행하고도 2021년 여름, 2년이 다되어가는 이 시점에, 백신접종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하루 확진자가 10만을 오르내리는 등, 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 확산이 오히려 악화하고 있으며, 코로나 19는 변이를 거듭하며 인류의 방역 대책을 비웃고 있다.
4차산업 혁명으로 인공지능, 로봇 등을 통한 또 다른 창조자가 되는 꿈에 부풀어 있던 인류가 코로나 19 바이러스 하나에 어쩔 줄 몰라 하며 삶의 이정표를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언제 종식될지 조차 가늠할 수 없는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의 미래 상황을 아무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진단을 통해 거버넌스, 의료체계, 경제 사회생활 등이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예측, 제시하고 있다. 수많은 전망 중에 눈길을 끄는 내용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POLITICO MAGAZINE, 2020년 3월 19일자 코로나 위기 이후를 예측하는 기사 중에 컬럼비아 대학 Peter Coleman 교수의 진단이다.[참고 2.1]
Coleman 교수는 세계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영국에 대한 56일간의 융단폭격인 블리츠(Blitz)동안 영국국민들이 극도의 공포 상황에서 오히려 이타주의, 동정심, 관대함 등 인간의 선함이 상승하였음을 지적하면서 이와 유사한 변화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즉, Coleman 교수는 코로나 19 팬데믹이 초래한 인류의 사회시스템에 대한 엄청난 충격은 50년 이상 우리를 유도해온 정치적, 문화적 양극화의 프레이밍에서 빠져나와서 더 큰 국가적 차원의 연대와 융합, 상관관계 재정립을 통해 양극화 감소를 향한 변화의 에너지를 형성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는 우리 인류가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꼭 필요한 변화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적자생존의 무한경쟁을 추구하는 신자유주의가 만연한 현재의 사회 환경에서, 이렇게 극도의 위기 상황이 오면 어떻게 오히려 이타심이 발현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 인류가 600만 년 전 침팬지로부터 분리되어 만물의 영장이 되기까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한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 인간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기 위하여 먼저 우주에 대하여 살펴보자. 그 이유는 칼 세이건이 “코스모스”에서 한 이야기로 충분할 것 같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수사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되어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되어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 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참고 2.2] 덧 붙여서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해 우주에서의 우리 인류 그리고 인류의 정신에 대한 케네스 밀러의 이야기도 있다. “우리 인간은 그저 우주의 먼지만으로 이루어진 존재가 아니라, 아마도 유일하게 의식과 자각을 갖게 된 우주의 일부이기도 하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하게 된 우주다. 그리고 그 의식이 생겨나는 자리, 우주의 자기인식이 일어나는 중심부는 다름 아닌 인간의 뇌이다.”[참고 2.3]
2.1.1 우주의 탄생
그림 2.1. 우주의 탄생과 소멸
우주는 지금으로부터 약 137억 년 전에 점과 같은 상태였던 초기 우주가 매우 높은 온도와 밀도에서 대폭발(빅뱅)이 일어났고, 그 후 온도가 점차 낮아지면서 물질이 생성되었으며, 이 물질과 에너지가 은하계와 은하계 내부의 천체들을 형성하면서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 이는 1929년 허블에 의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사실을, 1965년 펜지어스와 윌슨에 의해 우주배경복사의 실재를, 그리고 우주의 질량에 따른 원소 분포가 수소 75%, 헬륨 25%, 그리고 나머지 원소가 1%도 안 되어 초기 고온의 대폭발의 설명과 잘 맞아 떨어진다는 점 등의 여러 과학적인 사실들에 의해 입증되어 과학계의 정설이 되었다.[참고 2.4]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이야기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대폭발이 어떻고, 우주배경복사가 어떻고 하는 전문 과학의 내용은 무시해 버리자. 우리의 훌륭한 과학자들이 다 입증해 주었으니, 약 137억 년 전에 빅뱅이 일어나 오늘날과 같은 우주가 형성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만 기억하자. 지금 우리는 그림 2.1의 우주의 시작과 끝에서 가장 왼쪽에 자리한 약 137억 년 전의 빅뱅에 의한 우주 탄생에 대해 알아보았다. 물론 이 빅뱅 이론은 지금은 모두에게 친숙하지만, 1927년 르메르트가 처음 제안했을 때 과학계의 반응은 싸늘했다. 하지만 구약성서에 기반을 둔 전 세계 54%를 차지하는 기독교 계열 종교인들에게는 다윈의 진화론처럼 강한 거부감으로 다가오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빅뱅이 창세기의 “빛이 있으라” 에 익숙한 종교적 세계관과 암묵적으로 유사해서였는지도 모른다.[참고 2.5]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그렇다면 빅뱅 이전의 우주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0”이었을까? 적어도 빅뱅이 일어나려면 그 조건에 맞게 매우 높은 온도와 밀도를 형성해야 하는데, 우주가 “0”상태 라면 빅뱅이 일어날 수 없다. 에딩턴의 통찰처럼 마치 구름 한 점 없던 맑은 하늘에 스르륵 구름이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무언가는 있어야 설명이 가능하다.
이에 대한 과학자들의 해답이 “다중 우주”이다. 이는 우리 우주만이 유일하고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우주가 우리도 모르는 여러 우주와 시공간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이론이다. 다중 우주론은 1957년 휴 에버렛 3세가 양자역학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제안한 개념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를 종합해 보면 레벨1에서 레벨4까지의 네 가지 모형과 여기에 더해 브레인 우주론까지로 정리할 수 있고, 이들이 오늘날에 이르러 우주론의 거대 담론 중의 하나로 다뤄지게 되었다.[참고 2.5] 또 숨이 막힌다. 다중 우주를 이해하기 위하여 양자역학이 어떻고, 슈뢰딩거의 고양이 실험이 어떻고 이런 거는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우리의 훌륭한 과학자들이 이미 입증하고 정설이 되었다. 분명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텅 빈 공간에서 어느 날 느닷없이 빅뱅이 일어나 현재의 우리 우주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는 다중우주가 되었든 무엇이 되었든 빅뱅 이전에 카오스 상태의 무언가가 있었고, 이들이 아주 높은 온도와 밀도의 점의 상태가 되어 빅뱅이 일어나 현재의 우주로 지금도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빅뱅이 일어난 후 대폭발로 인하여 발생한 크고 작은 다양한 물질들이 중력에 의해 서로 끌어 당기기도하고 밀어내기도 하면서 서서히 팽창하면서 우주의 거대한 형태를 이루어 나갔다. 이렇게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약 50억 년 전에 드디어 태양이 탄생한다.[그림 2.1 참고] 이를 아서 에딩턴은 다음과 같이 유추했다. “우주 공간을 떠돌던 태초의 가스 구름층이 서서히 밀도 있는 덩어리를 형성해 갈 것이고, 밀도가 충분히 높아지면 그 안에서 핵반응이 일어나 빛이 발산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태양과 같은 별이 될 것이다.”[참고 2.6] 이 에딩턴의 유추는 그의 제자 세실리아 페인에 의해 지지를 받았다. 페인은 태양이 90%의 수소와 10%의 헬륨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석하였고, 태양의 연소를 설명하기 위하여 아인슈타인의 E = mC^2 을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우리 지구에서 대기 중의 수소는 밀도가 낮아 결합할 수 없지만, 수천 킬로미터 두께의 태양 중심부에 있는 수소는 서로 결합이 가능할 만큼 충분히 고온 고밀도 상태로 압축되어 핵융합이 일어나 헬륨 원소가 생성될 것이다. 4개의 수소 핵이 결합하면 질량은 1+1+1+1의 헬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질량은 이 보다 0.7% 작은 3.993의 헬륨이 된다.[참고 2.6] 이 0.7%의 질량 감소가 E = mC^2 에 의해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분출되는 것이다. (이 질량 0.7%의 크기는 작지만, 빛의 속도 C가 그것도 제곱으로 곱해지는 것만큼의 에너지는 매우 크다. 게다가 태양은 매초마다 400만 톤의 수소를 핵 융합한다고 한다.) 바로 이 어마어마한 태양으로 부터의 핵융합 에너지가 지난 50억 년 동안 우리 인류를 포함한 이 지구상의 생명체들을 양육해 왔다.
그런데 수소와 헬륨만으로는 생명체가 살 수 없다. 지구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이 땅의 생명체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 태양의 핵융합 에너지만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때 등장한 과학자가 프레드 호일이다. 호일은 생명체에 필요한 원소들의 탄생과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초기에 태양의 핵융합이 상대적으로 낮은 온도인 2000만도에서 일어나고, 그 결과인 헬륨은 2000만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는 탈 수 없어 장작이 탄 후의 재처럼 쌓이게 되고, 이 핵융합이 반복적으로 진행하다 보면 태양은 더 이상 밖으로 팽창 할 수 없게 되어 내부로 무너진다. 이렇게 별이 내부에서 폭발한다면 점점 뜨거워질 것이고, 그 중심부는 거의 1억 도에 이른다. 이렇게 높은 온도에서는 좀 더 무거운 원소의 커다란 핵도 충분히 압축되어 연소가 가능하다. 드디어 헬륨이 연소되어 탄소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고, 이렇게 내파가 계속 진행되면 별은 더욱 뜨거워져 더 무거운 핵 들이 생성되었으며, 산소, 실리콘, 황 그리고 나머지 원소들까지도 분출 하였다.[참고 2.6]
자 이제 그림 2.1의 태양의 탄생으로 되돌아가 보자. 약 137억 년 전 빅뱅이 있었고, 약 87억 년 정도가 지난 50억 년 전 쯤 태양이 탄생하고, 그와 동시에 그 전부터 우주에 떠돌아다니던 수 없이 많은 폭발물 덩어리들이 중력에 의해 이합집산 하면서 태양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덕택에 중심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고, 자기 주변의 물질을 끌어당겨 행성으로 탄생하여 태양계를 형성하게 되는 데, 그 중 태양으로부터 세 번째 행성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이다. 우주 탄생으로부터 약 91억 년 정도의 숙성 기간을 거쳐 지금으로부터 약 46억 년 전, 드디어 우리 인류가 살아갈 터전이 생긴 것이다.[참고 2.5] 물론 이 때의 지구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매우 뜨거운 상태로 물질이 끓고, 대류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카오스 상태였다. 이렇게 불안정한 지구가 생명체가 탄생할 정도로 안정화되고, 태양의 에너지와 함께 적절한 환경이 조성 될 때까지 약 8억 년이 걸렸다. 그림 1에 표시한 네 번째 이벤트, 바로 지구 최초의 생명체가 약 38억 년 전에 탄생 한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의 공통 조상이 탄생한 것이다. 이를 우리는 루카(LUCA, Last Universal Common Ancestor)라고 부른다.[참고 2.5]
물론 지구 최초의 생명체 루카의 탄생 과정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생명의 시작이 창조냐 진화냐의 종교적 문제도, 무엇이 생명인가 라는 철학 문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원인은 정확하게 모르지만 약 38억 년 전에 루카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1936년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에서 수소, 산소, 물과 같은 무기물로부터 유기물, 원시 세포, 생명체로 화학적 진화하는 가설을 발표하였고, 이는 1953년 스탠리 밀러에 의해 실제로 실험을 통해 재현되었다.[참고 2.5] 물론 이 실험이 과학적으로 완벽한 입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과학 시간에 배웠던 공식들처럼 항상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것이 아닌 마치 진화론의 돌연변이처럼 논리적 비약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자도, 철학자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논쟁에 끼어들진 말자. 확실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8억 년 전에 이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인 루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과학적, 철학적 반론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그 탄생과정을 스탠리 밀러가 가장 그럴듯하게 설명했다는 것을 아는 것 정도로 만족하자. 이제 지구는 본격적으로 안정화되기 시작하였고, 이를 우리는 지질시대라고 한다. 루카의 출현 이후로도 약 32억 년 이상의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생물의 종류와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지질시대를 은생누대(생명체가 출현하였으나 생명체 활동이 활발하지 못했던 초기 약 32억 년 동안의 시기)와 현생누대(다양한 생명체가 출현하여 활발한 활동을 하기 시작한 약 5억 7천만 년 전의 캄브리아기부터 현재까지)로 구분 한다. 하지만 현생누대에 다양하고 많은 생명체가 활발하게 살았다 하더라도 생명체에게 지구는 아직 가혹할 정도로 불안정한 상태(화산활동, 해수면 상승, 운석 충돌 등)여서 캄브리아기부터 약 5억 년 동안 5차례의 대멸종의 시련을 겪으며 버텨왔다. 약 5억 7천만 년 전부터 공룡이 나타나기 이전까지의 고생대에 3차례의 대멸종이, 그리고 공룡의 시대인 중생대에 두 차례의 대멸종이 있었는데, 바로 약 6,600만 년 전의 제5차 대멸종으로 우리가 잘 아는 공룡을 비롯한 지구 생물의 75% 이상이 멸종되었다. 이 후 공룡이 사라진 지구를 포유류가 차지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현재까지를 신생대라 부른다. 이제 약 600만 년 전에 탄생한 우리 인류에 대하여 알아볼 차례이다.
2.1.2 인류의 탄생
지금까지 약 137억 년의 우주 탄생 과정을 그림 2.1의 도식과 함께 개략적으로 알아보았다. 빅뱅이 있었고, 태양이, 그리고 지구가 생겨났고, 약 38억 년 전 최초의 생명체가 출현한 이후 험난한 자연 환경 속에서 진화와 소멸을 반복하다가 드디어 우리 인류의 조상이 출현 한다. 케네스 밀러는 “인간의 본능”에서 지구상의 생명체 출현에서부터 인류가 탄생하기까지의 여정을 다음과 같이 한마디로 기술하였다.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이유는 별 볼일 없었던 작은 생명체가 캄브리아기에 간신히 살아남은 덕분이다. 그리고 행운의 재앙이 찾아와 지구 위를 걸어 다니던 가장 웅장한 동물들을 멸종시킨 덕분이다.”[참고 2.3]
약 6,600만 년 전 제5차 대멸종으로 공룡이 사라진 뒤 다양한 포유류가 등장하고, 6,000만 년 가까이 진화를 거듭하다가 드디어 우리 인류의 조상이 출현한다. 이를 알아내기 위하여 많은 진화학자들이 화석을 찾아 다녔다. 물론 화석은 우리 인류의 신체적 역사를 이야기 해주고 있지만, 이것 보다 월등하게 많은 정보를 보여주는 것이 있다. 바로 인간의 유전체(genome)이다. 1866년 멘델이 생물이 진화과정에서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변화 없이 전달되는 유전자를 설명한 이래 1940년 대 유전 물질인 DNA를 확인하면서 분자생물학이 1970년 대 까지 급속하게 발전하게 되었다. 마침내 우리 인간과 침팬지가 DNA의 98~99%가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인간과 침팬지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각각의 혈통으로 갈라져 나온 매우 가까운 친척 관계임을 말해 준다. 2007년 페어뱅크스는 지금으로부터 약 500만 ~ 600만 년 전에 우리 인류의 조상이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뒤 침팬지 혈통에는 없는 나노그 위유전자가 인간의 혈통에만 등장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또 다른 사례로 1982년 유니스와 쁘라까슈의 연구에서 침팬지를 포함한 유인원의 염색체는 24쌍인데, 인간은 유인원의 24쌍 중 2번 염색체 1쌍이 1개의 염색체로 융합되어 23쌍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발견했다.2.3 이러한 유전자 연구들은 우리 인간이 약 600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진화의 결과를 확인해 주는 것이지 진화의 원인까지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아주 오래전 약 600만 년 전 어느 날 우리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의 2번 염색체가 무슨 목적이 있어서, 어떤 방법으로 융합되었는지 우리는 아직 정확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현대 진화학을 관통하는 모든 생명체에게 적용되는 마지막 키워드인 생존과 번식[참고 2.8]하는 과정에서 우리 인간도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변화와 자연선택(variation and natural selection)에 의하여 진화한 결과이고, 모든 면에서 다른 영장류와 똑같은 집단에 소속된 동물의 한 부류라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진화를 보여주는 가장 직접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증거는 화석 기록에서 나온다. 처음에는 자바원인이, 그 다음에는 네안델타르인이, 베이징원인이 이어져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화석 기록은 본질적으로 종류와 양적인 측면에서 파편적일 수밖에 없어 현대 인류와 우리의 조상과의 사이의 연결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 큰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레이먼드 다트와 루이스 키 같은 선구자들이 최초의 화석 기록을 발굴한 이후 오늘날 까지 수많은 표본들이 땅 밑에서 고생물학자의 손을 거쳐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과학 문헌으로 정리되는 동안 시간과 공간상의 간극을 충분하게 채울 만큼 자료의 양이 풍부해졌고, 그런 자료를 분석할 수 있는 도구(예를 들어 DNA 염기서열 등을 분석하는 도구)가 더욱 강력하고 정교해 졌다.[참고 2.3] 이에 따라 인류가 약 600만 년 전에 침팬지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진화해 왔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인류가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었는지도 비교적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2.2. 화석 연대에 따른 인류의 뇌 용량 변화 [참고 2.3]
이러한 노력의 하나로 니컬러스 마츠키가 2000년도까지 발견된 모든 인류 이전 두개골 화석들을 년대별로 두개골의 뇌 용량을 정리하여 스프레드시트 프로그램에 각기 입력한 후 그 결과를 그래프로 출력해 보았다. 이 자료는 Buckner와 Krienen이 호미닌 뇌의 진화를 분석하여 2013년에 발표한 논문의 그래프[그림 2.2]와 거의 비슷하였다.[참고 2.3] 이제 이러한 방대한 자료와 정밀한 분석 도구 덕분에 진화론을 부정하기가 매우 어려워 졌다. 그림 2.2에서 보는 바와 같이 243개 이상의 두개골 화석 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초기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부류의 특징인 400cc 정도의 작은 뇌에서 시작해 거의 모든 시점에서 광범위하게 다양성을 보이다가 지수 함수적으로 급성장하여 현대 인류의 특징인 다양한 뇌의 크기로 진화하였음을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의 뇌는 어떻게,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영장류와 달리 용량이 커져 만물의 영장이 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을까? 이를 진화학자들은 약 50만 년 전에 직립 보행을 한 최초의 화석 인류인 베이징원인(호모 에렉투스)의 흔적으로 설명한다. 베이징원인의 화석이 발굴된 같은 지층에서 불을 사용한 흔적(불에 탄 벼와 다양한 동물들의 뼈, 가공한 흔적이 있는 석기 등)을 발견한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할 점은 이 지구상에서 불을 다룰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우리 인간이고, 불을 다룬 최초의 흔적을 베이징원인의 화석에서 발견한 것이다. 이는 사냥한 고기를 불에 익혀 먹었다는 것이고, 생고기를 먹는 일반 동물들에 비하여 단백질 섭취가 훨씬 용이하고 많아져 그림2.2와 같이 뇌의 용량이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뇌의 용량이 급격하게 커졌다는 것은 바로 생각의 물질적 터전이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최진석은 “생각은 인간이 한다. 인간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작동해 인간의 방식으로 자연에 변화를 가하는 것,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결과를 ‘문화’라 한다. 그렇게 해서 이뤄진 세계의 형태가 바로 ‘문명’이다.”[참고 2.9] 라 했다. 우리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문화와 문명을 이루고 오늘날 만물의 영장이 된 것이다. 우리 인류는 뇌가 커져서 만물의 영장이 되는 행운을 얻었지만, 반면에 두개골이 커져 그 대가로 출산의 고통을 얻었다. 이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출산이 어렵다는 의미이다. 또한 인간은 뇌의 큰 용량에 걸 맞는 뇌의 역할이 많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하여 훨씬 긴 시간동안 학습이 필요하다. 이것뿐만이 아니라 사실 현대에도 우리 인간은 맹수가 우글거리는 정글에 혼자 들어가 살아남기 어려운데, 약 50만 년 전에 우리의 조상들이 개인행동을 하며 생존하기는 불가능하였다. 당연히 진화의 키워드인 생존과 번식을 위해 부족사회를 이루고 살았다. 이러한 인간의 사회적 행동이 만들어 질 수 있는 원천은 자연선택이론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즉, 미적인 것이든 종교적, 정치적, 성적인 것이든 우리의 선택은 첫째, 환경에 대한 성공적인 적응의 직접적인 결과이거나 둘째 과거 환경에 대한 적응으로 인해 비롯된 간접적인 결과이다.[참고 2.3] 이러한 자연선택의 결과로 우리 인류는 신화, 의식, 상징을 중심으로 종교적 사회집단화한 부족사회를 이루어 살았으며, 그 덕에 오늘날까지 살아남았다. 이것이 식량을 구하고, 전쟁을 수행하고, 자식을 나아 기르는데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었고, 이렇게 유능한 유전적 재능을 현대 인류에게 전승하는데 성공함으로서 오늘날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며 살게 된 것이다.
이쯤 되면 이렇게 소속감을 기반으로 공동생산 공동분배의 종교적 사회집단화의 유전자를 이어 받은 우리 인류가 어떻게 적자생존과 무위도식의 탐욕의 굴레에 빠져 신자유주의의 세상으로 진화했는지 매우 궁금하다. 우리 삶의 방향은 바로 생각의 방향이고, 가치의 충돌은 생각의 충돌이며, 제도의 변화는 생각의 변화와 직결되기 때문에[참고 2.9] 우리가 어떻게 살아 왔고, 그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알아 볼 필요가 있다. 이는 궁금하더라도 조금 참고, 먼저 우주의 생성과 소멸을 마무리한 다음에 다음 장에서 같이 우리의 생각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하자.
어쨌든 문제는 우리 인류가 지구라는 행성을 지배하는 것을 넘어, 이것이 물질과 에너지의 범지구적 순환 체계뿐만 아니라 다른 생명체들의 존재 자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슬픈 일이지만, 어쩌면 우리는 지구의 6번째 대멸종을 주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참고 2.3] 그렇다면 우리가 최소한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보고 우리의 생각을 어떻게 바꾸어야 될 것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때가 아닐까?
2.1.3 우주의 소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의 주 에너지원인 태양의 에너지가 엄청나게 크긴 하지만, 영원무궁한 에너지는 아니다. 태양의 질량은 2×1027톤이지만 매일 핵융합을 위한 수소의 연료로 그 중 7×1012톤을 소모하기 때문에 앞으로 약 50억년 정도가 지나면 태양의 연료는 거의 다 사용하고 없어져 갈 것으로 추정 된다. 이런 상황이 되면 태양의 중심부에는 헬륨의 재만 남게 되고, 태양표면 쪽에 아직 남은 수소 연료와 핵융합 반응을 하기 위하여 한 단계 위로 전이를 시작할 것이다. 이에 따라 태양의 외곽 층은 다시 팽창 할 것이고, 이러한 반응이 계속 진행되면 태양은 계속 팽창해서 수성궤도에 도달하고, 다음은 금성, 그리고 지구에 도달하여 모든 것이 녹아내리거나, 아니면 태양의 질량 감소로 중력이 작아져 약 110억 년 동안 일정한 궤도를 회전하도록 붙들고 있던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이 튕겨져 우주 어디론가 날아가 버릴 것이다. 태양계가 무너지는 이러한 태양의 소멸 과정은 약 10억년 정도 유지할 것으로 과학자들은 짐작한다.[참고 2.6]
그림 3. 거대은하 M87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 [참고 2.7]
이제 우리는 그림 1.1의 우주의 탄생과 소멸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여기서 인도의 과학자 찬드라 세카르가 등장한다.[참고 2.6] 이젠 빅뱅이 아니라 블랙홀 이다. 찬드라는 아인슈타인의 E = mC^2 에 내재된 통찰력을 블랙홀에 적용하였다. 만약 어떤 거대한 별이 엄청난 압력을 받고도 유지 될 수 있다면, 그 여분의 압력은 에너지를 의미하고 그것은 E = mC^2 에 의해 좀 더 많은 질량으로 작용해서, 중력은 더욱 강해져 중심부를 더욱 강하게 압축하여 별의 내부는 계속 안으로 빨려 들어가게 될 것이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 결국은 부피가 0이고 밀도가 무한대인 한 점으로 압축되어 블랙홀이 된다. 이 블랙홀은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보다 커서 빛조차 우주공간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참고 2.7] 그림 2.3은 2019년 4월 이벤트호라이즌망원경 프로젝트 연구진이 인류 최초로 관측에 성공한 블랙홀의 모습[거대은하 M87 중심부에 있는 블랙홀이고, 지구로부터 5,50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질량은 태양의 65억 배임]이다. 결국 태양의 소멸과 함께 태양계로부터 떨어져 나온 지구를 포함한 행성들은 우주 어딘가의 이러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 소멸하게 될 것이다.
우주는 신기하게도 우주가 탄생 되었을 때와 완벽하게 반대의 형태로 소멸을 맞을 것으로 추정 된다. 약 137억 년 전 에딩턴의 유추처럼 다중 우주 어딘가를 떠돌고 있던 에너지 E 가 어느 순간 스르륵 모여 드는 구름처럼 엄청난 고온•고밀도 상태가 되어 빅뱅이 일어났다. 이 높은 밀도는 거대한 양의 방사선이 아인슈타인의 E = mC^2 에서 에너지 E 쪽에서 질량 m 쪽으로 밀어 넣어졌음을 의미한다. 우주의 탄생이다. 이제 반대로 태양의 소멸과 함께 시간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앞으로 약 60억 년이 지나면 남아 있는 모든 물질은 블랙홀에 의해 질량 m 쪽에서 처음 이전의 에너지 E 의 자리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것이다. 이때의 에너지 E 는 텅 빈 다중 우주의 어느 공간에 방사선으로 흩어져 있을 것이다.[참고 2.6] 우주의 소멸이다.
마치 잔디 위에 누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어느 순간 스르르 구름이 모여들었다가 한 순간 흩어져 다시 맑은 하늘이 되고, 다시 구름이 모여드는 것처럼 아마도 이 우주 역시 빅뱅과 블랙홀에 의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할 것이다. 물론 우리가 상상 조차하기 힘든 아주 오랜 세월[적어도 200억 년]이 걸리겠지만 말이다. 이는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낮과 밤 그리고 계절이 계속 순환하는 것처럼 우주도 순환의 고리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우주의 탄생과 소멸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알아보았다. 서두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우리는 과학자도, 철학자도 아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이론들은 우리가 다 이해해야할 필요는 없다. 그림 2.1에 보인 것과 같이 탄생과 소멸을 반복하며 순환하는 우주의 아주 티끌만한 시간과 공간 속에 우리 인류가 살고 있다는 것만 기억하자.
지금까지 거대한 우주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니, 다음 장에서는 이 우주 속에 있는 우리 인류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