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2
그러나 우리 인류는 환경 운동을 시작하였고, 이에 전 세계는 CFC 사용 전면금지로 화답했다. 만약 그 당시 롤란드의 경고를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무시했다면, 25억 년 전 오존층 형성 후에야 비로소 생명체가 바다에서 육지로 이동할 수 있었던 우리를 포함한 생명체들은 육지에서의 일광욕은커녕 25억 년 전의 바다 속으로 되돌아가야만 했을지도 모른다. 이 과거의 위기 극복 사례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었을까? 지금 과도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인한 지구온난화를 기후위기가 아닌 단순한 기후변화로 받아들이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감지된다. 심지어 마나베와 과학자들이 지구의 기후와 그 기압, 운량, 습도, 표면 조건, 바다와 바람의 흐름을 포함해서 이걸로 지구기후 모델을 만들어 50년 이상의 지구온도 상승을 정확하게 예측하여 보여주고 더 큰 기후과학자 집단이 이를 확인한 다음, 기후위기로 인한 암울한 미래를 그림 1.3의 시나리오 같이 구체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그림에서 SSP(Shared Socioeconomic Pathways)는 신규 온실가스 예측 경로로 여기서 SSP1은 기후변화 완화와 적응을 위한 사회・경제적 노력으로 사회불균형의 감소와 친환경 기술 적용 노력을 어느 정도 했을 때의 시나리오이고, 이에 비하여 SSP5는 기후정책이 부재해서 지금처럼 화석연료 기반 성장을 추구하는 기후변화 완화 능력이 낮은 고속성장의 시나리오이다.
그림 1.3 연도별 전 지구 평균기온 변화 시나리오 [참고 1.4]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대책을 소홀히 하고 화석연료 기반의 고속 성장을 추구한다면 SSP2 ~ SSP5 시나리오가 보여주는 것처럼 전지구 평균 온도는 급속하게 올라가 기후위기를 불러올 것이 확실하다. 심지어 SSP1처럼 나름 지속성장이 가능하도록 노력해도 기후위기의 임계점인 2도C를 넘기는 상황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인 IPCC 총회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이 1.5도C만 넘어서도 기후변화가 걷잡을 수 없이 가속화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판단에서 2018년 ‘지구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1.4 IPCC의 1.5도C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2010년 대비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적어도 45%, 2050년까지 배출량과 흡수량이 상쇄되는 탄소중립의 순배출을 제로로 만드는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PCC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위기를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 다큐멘터리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희망을 말한다. 너의 미래는 밝다. 비록 살아가면서 조금 어려움도 있겠지만 우리 인류는 그때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였으니 걱정 말고 너의 꿈을 마음껏 펼치라고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만약 카산드라의 예언의 저주가 현실이 된다면? 그때도 아이야 걱정 말아라. 우리가 방법을 찾을게 라고 할 것인가?
이러한 우리 미래의 문제를 “COSMOS II”의 마지막 에피소드인 13화 ‘신세계의 7대 불가사의’를 통해 좀 더 논의 해 보기로 하자.[참고 1.5] 이 마지막 에피소드는 “우린 미래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무게를 느낍니다. 하지만 우리만큼 불길할 때 어둠속에서 길을 찾아 별을 찾는 이들도 있었습니다.”라고 시작한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 앞에 드리워진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고 밝고 아름다운 미래의 비전을 과학자와 기술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다큐멘터리는 1939년, 6천만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의 한 복판에서 전 세계가 한줌의 희망도 보이지 않는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 가장 분노한 목소리가 세계무대를 장악하고 증오와 분열이 만연하고 있을 때, 뉴욕 만국박람회가 미래에 대한 짜릿한 비전의 게임 체인져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텔레비전 등과 같은 과학과 기술의 미래 비전의 제시가 어린 칼 세이건과 그의 동시대인들에게 더러운 연못에서 피어나는 연꽃과 같은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강조한다. 또 1964년 만국박람회에서는 달 탐사를 향한 우주선이 그 당시 미・소간 대립으로 전 세계에 드리워진 원자폭탄의 공포를 우주여행의 부푼 꿈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주선은 여전히 우리를 우주의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는 탐험가를 태울 수도, 반대로 원자폭탄과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실어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50년이 지난 지금도 여기에 이렇게 잘 살고 있고, 우리에게 준비된 미래, 풍요의 지구를 꿈꾸고 있다. 우리의 요술방망이 과학 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아름답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하쿠나 마타타’를 외치고 있다. 원자폭탄의 위협은 조금도 줄지 않았고, 기후위기 또한 심각한 상황인데 여러분은 정말 과학 기술이 모든 걸 해결해 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
이 다큐멘터리가 제시하는 달콤한 미래를 좀 더 들어보기로 하자. 2039년 뉴욕 만국박람회를 통해 우리의 간절한 꿈과 희망을 보여준다. 과학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이 가상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신이 자연의 비밀을 푼 방법을 1대1로 직접 설명해주고, 우주를 우리가 필요할 때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활용할 수 있는 해법을 담은 ‘은하대백과사전’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미생물학자들은 산업현장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발암성 용제인 TCE(트리클로로에틸렌)를 자연적으로 무력화 시킬 수 있는 강력한 미루나무를 선보이고, 이 세상의 수많은 쓰레기들을 자연적으로 정화시킬 수 있는 ‘생물 정화’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대기에서 추출해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 광물을 만들고, 우리가 기후 변화의 최악의 결과를 피할 방법을 찾았다는 걸 의미할 뿐 아니라 동료 지구 생명체와의 조화로운 삶이라는 위대함을 향한 우리의 야망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 다큐멘터리는 “큰 나무가 자라 많은 가지가 났고 6번은 거의 쓰러질 뻔 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장하고 있으며, 우리는 하나의 작은 가지에 불과합니다. 나무 없이는 살 수 없는 가지. 그리고 천천히 자연의 책을 읽는 법을 배웠습니다. 자연의 법칙을 배우고 나무를 가꾸기 위해 우주가 자신을 아는 길이 되기 위해 그리고 별들에게 돌아가기 위해...”의 마지막 멘트와 함께 끝마친다. 환상적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이 다큐멘터리의 마지막 멘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첫째, 우리가 자연위에 군림하는 만물의 영장이 아니라 우리는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으로의 전환, 둘째, 기후위기 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지금까지처럼 인공적인 것이 아니라 ‘생물 정화’같이 자연의 방법을 제시하는 것으로의 전환 등이다. 이는 우리의 세계관이 인본주의에서 자연주의로 그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혹시 영화 ‘아바타’가 떠오르지 않는가? 그림 1.4의 ‘아바타’는 2009년 개봉하여 전 세계 박스 오피스 1위는 물론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며 전 세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이다.
그림1.4 영화 “아바타(AVATAR)”의 스틸사진
여러분의 기억을 환기시키기 위하여 개봉 당시 영화 공식 싸이트에 실렸던 내용을 중심으로 줄거리를 소환해 보자. 가까운 미래, 지구는 에너지 고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나먼 행성 판도라에서 대체 자원을 채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판도라의 독성을 지닌 대기로 인해 자원 획득에 어려움을 겪게 된 인류는 판도라의 토착민 ‘나비(Na’vi)’의 외형에 인간의 의식을 주입, 원격 조종이 가능한 새로운 생명체 ‘아바타’를 탄생시키는 프로그램을 개발한다. 한편, 하반신이 마비된 전직 해병대원 ‘제이크 설리(샘 워딩튼)’는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가할 것을 제안 받아 판도라에 위치한 인간 주둔 기지로 향한다. 그 곳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된 ‘제이크’는 자원 채굴을 막으려는 ‘나비(Na’vi)’의 무리에 침투하라는 임무를 부여 받는다. 임무 수행 중 ‘나비(Na’vi)’의 여전사 ‘네이티리(조 샐다나)’를 만난 ‘제이크’는 그녀와 함께 다채로운 모험을 경험하면서 ‘네이티리’를 사랑하게 되고, ‘나비(Na’vi)’들과 하나가 되어간다. 하지만 머지않아 전 우주의 운명을 결정짓는 대규모 전투가 시작되면서 ‘제이크’는 ‘나비(Na’vi)’들과 함께 판도라의 생명체들의 도움을 받아 승리한 후 지구로 귀환하는 것이 아니라 판도라에 남아 새로운 삶을 사는 것으로 영화는 종영된다.
당시 이 영화 ‘아바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첫째, 창조적이고 환상적인데 재미있음, 둘째,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어버린 컴퓨터 그래픽과 이모션 캡쳐 기술로 요약된다. 나도 이런 여론에 고무되어 대단한 기대와 함께 ‘아바타’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에게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이 그렇게 창의적인 이야기인가? 하는 물음표였다. 물론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영화라는데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커서였는지는 몰라도 정말 모든 여론이 그렇게 이구동성으로 찬양할 정도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창의적인 영화였느냐에 대해선 의아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참고로 나는 영화 또는 문화 평론가가 아니다. 그저 평범한 공학도일 뿐이다. 이를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 바란다.) 솔직히 나는 “아바타”를 보면서 백인들이 원주민인 인디언의 땅을 강제로 뺏는 서부영화의 스토리에 미래의 스타워즈를 얹어서 3D로 잘 꾸며낸 영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엔 정말 환상적이고 창의적이네 라는 느낌을 못 받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비족들이 자연과 교감하면서 살고, 첨단 인공기술로 무장한 침입자가 아니라 자연친화적인(문명인 입장에서 보면 미개한) 나비족이 승리하는 설정, 주인공이 지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판도라’에 남는 엔딩 장면을 보면서 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 영화의 메시지는 분명 신선할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하게하는 울림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아바타’의 메시지와 우리가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의 메시지가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는가?
4차 산업혁명을 꽃 피워서 인공지능 로봇인 ‘아이로봇’의 시중을 받으며 무위도식의 삶을 영위하고, 환상의 행성 ‘판도라’에 여행을 다니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가질 수 있는 풍요롭고 아름다운 미래의 문턱에서 어찌하여 우리는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아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자는 미래를 제시하기 시작 하였을까? 도대체 왜 지금까지 자연위에 군림하며 마음대로 개발하면서 산업혁명의 선봉에 서서 세계를 호령하며 주류를 이루었던 서양의 세계관이 자연의 일부로 자연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동양의 세계관으로 패러다임 전환을 꾀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가 1차에서부터 4차 산업혁명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이룩했던 찬란한 우리의 업적들이 우리에게 풍요와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반면에 그에 상응하는 부작용의 대가도 예외 없이 톡톡히 치르고 있음을 깨닫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리라.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의 하나가 지금 우리가 쩔쩔매고 있는 ‘기후 위기’이고,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6차 대멸종을 맞이할 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인간의 방식에 한계를 느끼고 인간이 아닌 자연의 방식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시 다큐멘터리 마지막 멘트로 돌아가 이를 정리하자면, 우리는 지속가능한 우리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첫째,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라는 것, 둘째, 이를 위해 인위적이 아닌 자연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 등으로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의 획기적이고 다각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 나아가 이러한 시도들이 실제로 현실화된다고 해도,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지속가능하도록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음 사항들을 고려해야만 한다. 첫째, 우리가 자연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실천하는 것은 과학자나 정치가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미국 동화 ‘네 사람 이야기’가 우리에게 교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모두(Everybody), 누군가(Somebody), 아무나(Anybody), 그리고 아무도(Nobody)의 네 사람 앞에 중요하지만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하나가 생겼다. 그래서 모두는 누군가 그 일을 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았다. 모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그 일을 하지 않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결국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아무도 하지 않았을 때 모두는 누군가를 비난했다.”라는 재미있는 이야기 말이다. 이 동화는 사회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어떻게든 남에게 미루고 일을 그르치면 희생양을 찾는 우리네 삶을 유쾌하게 풍자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제안한 사항이 누군가에게 미루고 정책 당국자 같은 희생양을 찾아 비난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솔선수범해서 같이 변하고 같이 실천해야할 문제인 것이다. 둘째, 자연의 방법을 찾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해결해야할 용량과 처리속도의 한계를 극복해야만 한다. 나는 어릴 때 마을의 공동 우물 옆에는 어디나 미나리가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미나리는 벌레와 질병에 저항력이 강하고 생명력이 끈질기며 물을 정화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하수처리장 같은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우물에서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하는 등의 오폐수를 미나리꽝을 거쳐 가도록 해서 물을 정화 시켜 하천으로 내보내는 선조들의 지혜였던 것이다. 만약 마을 사람들이 지금의 아파트 단지처럼 집단으로 모여 살았다면 이들의 오폐수 미나리꽝이 옛날처럼 정화기능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었을까? 미나리의 정화 용량과 처리 속도로는 그 많은 양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다. 즉 이 다큐멘터리가 제시하는 “생물 정화”와 같은 자연의 방법은 부작용이 없는 자연친화적인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인공적인 오폐수처리 시스템을 양과 속도, 효율 면에서 따라갈 수 가 없다. 이는 우리가 자연의 방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오폐수의 양을 자연의 방법이 수용 가능하도록 획기적으로 감소시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지금처럼 원하는 풍요를 흥청망청 다 누리면서 쓰레기와 오폐수를 무분별하게 발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불어서 우리가 지속가능한 처리 시스템을 아무리 많이 공급해도 우리가 그 이상으로 많이 소비하면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즉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우리 모두의 생각과 행동이 이에 맞게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미래이자 우리의 후속세대에게 물려줄 미래가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공동선의 좋은 삶’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자연의 주인이 아니라 그 일부이고, 인위적이 아닌 자연의 방법으로 살아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정치 지도자나 과학자들에게만 맡겨 놓고 시민단체는 이들을 비판하고 재촉만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노력은 노력대로 그 이상의 노력을 경주하면서 이와 더불어 우리 시민 각자 각자도 모두 인위적이 아닌 자연친화적인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하고 자연의 방법으로 사는 것에 동참하여 실천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하여 미국 동화처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 하겠지 하고 미루고, 결국 아무도 하지 않는 우를 범하면 안 되는 것이다. 누군가 바꿔야 한다면 내가 먼저 바꿔야 하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 대부분이 이 중요한 사실을 이미 다 알고 있다. 우리는 적어도 이 지구에서 다른 누구 보다 똑똑한 지능을 갖고 있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자칭 만물의 영장이라 생각하며 사는 합리적이고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스스로 변화할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인다. 왜 그럴까? 우리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행동경제학자 다니엘 캐너먼은 인간은 비합리적이라 선언했다.(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3.2.2 How much is enough? 그림 19를 중심으로 기술하였음) 이와 관련하여 슈리너 히라의 실험 결과를 검토해 보도록 하자.[참고 1.2] 그는 애인이 있는 160명의 젊은이들에게 자신들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내가 먼저 달라지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아니면 “상대방이 먼저 달라지려고 노력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는 각각 전자와 후자의 문항을 선택한 두 그룹을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 결과 전자를 선택한 그룹은 서로의 관계가 시간이 지날수록 대체적으로 좋아진 반면, 후자를 선택한 그룹은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가 개선되지 않거나 오히려 악화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이는 상대방을 나에 맞게 바꾸려는 시도가 상대의 변화 보다는 오히려 반발심을 조장하고, 상대방이 먼저 달라져야한다는 주장은 나는 옳고 상대는 그르다는 확신에 기반 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캐너먼이 이야기하는 회상용이성 편향과 감정예측 오류에 의한 중대한 착각의 오류를 범하며 살고 있는 하나의 사례일 것이다. 상대가 나에게 잘해 준 것 보다는 내가 상대에게 잘 해준 것 위주로 기억하고 이를 회상하며 상대를 대하는 경향(회상용이성 편향) 때문에 서로 다투고, 상대와 연인으로 사귀면 행복할 거라는 단 꿈의 환상(주목착각의 감정예측 오류)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은 상대에 대한 배려나 노력을 소홀히 하면서 상대에게 사랑받기를 기대하며 사귀기 때문인 것이다. 결국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읽어내려고 서로 노력하지 않고 상대가 공감하지 않는 각자 자신만의 가치에 몰입하면 ‘착각의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들 인간사이의 관계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자연 속에 살면서 자연과 함께 우리가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우리 생각에 맞게 자연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생각과 삶을 자연과 조화되도록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우리 인간은 내일이라는 미래를 생각하면 대부분 긍정의 희망회로를 돌린다. 이러한 주목착각의 감정예측 오류는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는 인간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인간은 과거 또는 오늘의 삶이 힘들고 좀 불만족스럽더라도 내일은 좀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 내기 위해 힘들어도 오늘을 견뎌내며 살아간다. 우리의 미래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파스칼이 “인간은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걸고 내기를 한다.”라고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 인간은 캐너먼의 전망이론에서처럼 중요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이성적, 합리적 판단을 하기 보다는 인지적・이미지적 편안함을 추구하는 직관과 일단 소유한 것은 뺏기지 않으려는 심리현상인 소유효과 등으로 인한 ‘위험 회피 본능’ 또는 ‘위험 추구 본능’과 같은 비합리적 직관에 의해 결정하고 행동함으로서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일이 많은 것이다. 영화 ‘갓 오브 이집트’의 인상적인 대사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고, 늘 존재할 것이며, 그 누구도 날 보지 못하나 숨 쉬고 사는 모든 것들이 나를 믿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답은 “내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내일은 과거에는 존재한 적이 없어서 본적이 없고, 내일은 다가올 미래이지만 아직 오지 않은 현실이어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내일은 그 누구도 본적이 없지만, 우리 모두가 아무 의심 없이 자기에게 올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희망 회로’이다. 그러나 불확실성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우리에게 내일은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선물처럼 오늘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주사위는 우리가 던지지만, 내일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따라서 그저 이제 까지 잘 살아 왔고, 아니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잘 극복하며 이렇게 잘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다 잘 될 거야.”라며 희망 회로만 돌리면 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 앞에 다가올 준비된 미래가 아름답고 풍요로운 무릉도원이 될 수도, 핵전쟁이나 기후위기 등으로 최상위 포식자인 우리 인간이 사라질 6차 대멸종의 시대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생명의 핵심 요소인 정보와 에너지 측면에서 이들 모두 우리가 꿈꾸는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어 줄 수도 있지만, 동시에 첫째, 정보는 그 대표주자인 인공지능이 우리가 지금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처럼, 통제 불가능한 상황으로 진화할 가능성, 둘째, 에너지는 화석연료의 오남용으로 에너지는 고갈되고, 기후위기의 결과로 대멸종을 초래할 가능성 등에 의하여 우리를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수도 있음을 간과하면 안 된다. 게다가 기후위기는 지금이 바로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두 번 다시 회복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절체절명의 골든타임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로 지금이 풍요와 편리만을 추구하는 ‘욕망의 화신’을 달래고 우리의 순수 이성을 재정비하여 합리성을 회복하여 자연과 함께하는 무릉도원을 건설하면서 동시에 자연의 방법으로 대멸종을 피할 방안을 강구하고 행동에 나서야할 때인 것이다. 이를 위하여 ‘2. 우리가 걸어 온 길’에서는 우주와 우리 인류,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 인류가 그동안 살아온 발자취를 더듬어 보고, 성현들의 가르침을 교훈 삼아서 우리의 삶을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리고 ‘3. 우리가 가야할 길’에서는 우리의 행복과 우리와 세상이 조화를 이루는 ‘공동선의 좋은 삶’을 향해 우리의 세계관과 자아상을 재정립하여 존엄성을 회복한 다음, 마지막으로 ‘4. 나뚜라’에서는 존엄성을 구체적으로 실천하여 우리 스스로 존엄하게 살아감으로서 ‘공동선의 좋은 삶’을 실현하도록 구체적으로 노력하며, 실제 우리 인류의 삶 중에서 기후위기를 초래하는 가장 큰 요인 중의 하나인 무분별한 에너지 소비를 각 개인 차원에서 각자 생활 속에서 절약하고 실천하는 방법을 같이 논의 해보도록 하자.
1.1 이민화, 4차 산업혁명과 교육의 미래, 대학교육혁신포럼, 2017. 2
1.2 배연국, “Humanities”, GOLD & WISE, Feb, 2023.
1.3 National Geographic, "COSMOS II : 12화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 다큐멘터리, 2020.
1.4 권상훈 등, “전지구 기후변화 전망보고서”, 국립기상과학원, 개정판, 2020.
1.5 National Geographic, "COSMOS II : 13화 신세계의 7대 불가사의,“ 다큐멘터리,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