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2020년 1월. 연일 계속 보도되는 코로나 19관련 뉴스가 모처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나를 어지럽게 했었다. 당시 중국 우한을 휩쓸고 있는 처참한 광경이 2015년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메르스의 기억을 되살려 제주행 비행기 예약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로 SF영화에 나오던 이야기들이 현실이 될 거라고 호들갑을 떨고 화성으로 우주선을 보내는 시대에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로 전 세계가 우왕좌왕하다가 2023년이 후반으로 넘어가는 지금도 종식 선언을 못하고 어물거리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2년째 계속되고 있고 언제 끝날 것인지 예측조차하기가 불분명하다. 이는 어마어마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러시아가 교전 당사국이어서 2차 세계대전이후 간헐적으로 벌어진 국지전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의 대립 그리고 중국의 개입여부 등 상황에 따라 언제 어떻게 핵 발사 버튼이 눌러질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우주여행의 비전으로 만물의 영장임을 과시하던 우리는 스타워즈 같은 최첨단 무기가 아닌 마치 2차 대전 같은 재래식 무기의 어딘가 어설픈 전쟁(사람이 죽고 사는 무자비한 전쟁이니 한편으론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을 치루고 있고, 여전히 코로나 바이러스 하나를 해결하지 못해서 팬데믹 종료를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과시하는 것처럼 만물의 영장인 것은 맞나? 우리는 우리 운명뿐 아니라 자연의 동료 생명체의 운명까지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는 한 걸까? 우리의 능력은 얼마나 되고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건설해야만 할까? 모든 것이 혼란스러운 지금 이를 한번 정리하며 생각해보도록 하자.
18세기 후반 우리는 증기기관을 만들었고, 기차, 자동차뿐 아니라 산업 생산시설의 기계화를 이루었다. 이른바 1차 산업혁명이다. 20세기 초반에는 전기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면서 포드자동차로 대변되는 대량생산이 가능해졌다. 2차 산업혁명이다. 1970년 이후부터는 전자기기와 컴퓨터 그리고 인터넷의 발달로 산업전반에 부분적으로나마 자동화가 이루어졌다. 3차 산업혁명이다. 이제 인공지능(AI),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 Internet of Things), 로봇 등의 발전으로 현실과 가상세계를 포함한 모든 것을 서로 연결하고 제어할 수 있는 초연결의 시대가 되어 사람의 개입 없이도 기계 스스로 일을 하는 완전 자동화를 향해 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다. 그림 1.1 (a)에서 보는 바와 같이 1, 2차 산업혁명이 오프라인(Off Line), 즉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 우리의 편의성과 효율성을 향상시켜 주었다면, 3차는 현실 세계의 우리가 디지털화 기술을 활용하여 온라인(On Line), 즉 가상의 세계에서 정보와 관계를 공유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우리 현실 세계의 삶을 한 차원 위로 향상시켜 주었다. 이제 4차 산업혁명이 꽃 피우면, 아날로그화 기술을 활용하여 가상 세계의 모든 정보와 관계를 직접적으로 현실 세계에 적용하고 구현함으로써 우리의 삶은 혁명적으로 변화하게 될 것이다. 즉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당시 세계 정상의 프로기사 이세돌 9단을 이겨버리고 조만간 사람이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올 예정이며, 우리가 모르는 것은 챗지피티(ChatGPT)가 친절하게 다 알려줄 뿐 아니라, 그림1.1 (b)에 보인 영화 아이로봇(I, Robot)처럼 로봇들이 사람의 일을 대신하는 세상이 우리 앞에 이미 와 있거나 다가오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컴퓨터와 로봇이 다 알아서 척척해주는 우리가 꿈꾸던 세상이 오면 우리는 마냥 행복할까?
그림1.1 4차 산업혁명의 미래
2004년에 개봉한 ‘아이로봇’은 2035년의 미래 세상을 배경으로 한 SF 영화인데, 우리에게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이 영화는 제작 당시로부터 30년 정도 지나면 4차 산업혁명의 꿈이 활짝 펼쳐질 것으로 예상하고, 우리 인간 보다 높은 지능과 행동 능력을 갖춘 로봇들이 인간을 위해 요리하고 아이들을 돌보는 가사뿐 아니라 인간 생활의 모든 편의를 제공하는, 우리 인류의 오랜 욕망인 무위도식(無爲徒食)의 세상으로 그려냈다. 물론 이 로봇들은 무슨 일을 하든 어떠한 상황이든 인간을 해롭게 하거나 해치면 절대 안 된다는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 적용되어 인간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도록 만들어 제공되었다. 어느 날, 로봇을 창조(?)한 래닝 박사의 미스터리한 죽음을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기 위하여 형사 윌 스미스가 수사에 착수한다. 그러나 이 형사는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로봇들에게 공격을 당하게 되고, 결국 로봇들과 사생결단의 대결을 펼친다. 가까스로 승리한 형사 스미스는 로봇들을 배후 조종한 슈퍼컴퓨터에게 “넌 왜, 어떻게 로봇 3원칙을 어기고 사람을 해쳤나?”라고 묻자, 컴퓨터는 “너희들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라고 대답한다. 난 이 장면에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슈퍼컴퓨터는 인간을 보호하는 ‘로봇 3원칙’을 지키기 위해 이에 방해되는 인간을 제거하는 결정을 스스로 진화해서 판단하는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우리 인간이 우리를 창조한 신을 넘어서기 위하여 바벨탑을 쌓는 것처럼 우리 인간이 창조한 로봇이 인간이 명령한 ‘로봇 3원칙’의 논리를 넘어서 또 다른 바벨탑을 쌓아 버렸다. 사실 우리는 최근 인공지능(AI)의 놀라운 능력을 챗지피티(ChatGPT)를 통하여 실감하고, 이에 감탄하며 조만간 무릉도원의 아름다운 꿈이 실현될 것이라고 열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공지능(AI)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학습을 통해 진화하기 때문에, 아무리 우리가 ‘로봇 3원칙’ 같은 각종 제한으로 방벽을 쌓아도 담쟁이덩굴처럼, 아이로봇의 슈퍼컴퓨터처럼 제한을 은근슬쩍 타고 넘어버려 어떻게 어디까지 진화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위험을 안고 있다. 이러한 위험성은 우리가 열광하는 인공지능인 챗지피티에게 물어도 자신의 진화에 대해서 우리와 비슷한 대답을 내놓는다. 한발 더 나아가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인공지능의 연구와 활용은 전문가와 정부, 그리고 시민단체가 머리를 맞대고 심도 있는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고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경고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의 아름다운 꿈에만 도취되어 위험성을 애써 도외시하려 한다. 내친김에 이와 더불어 예상되는 또 다른 문제점은 없는지 다른 각도에서 한번 알아보자.
그림1.2 기술혁명에 따른 일자리 변화 [참고 1.1]
그림 1.2는 산업혁명에 의한 기술발전으로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른 일자리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1, 2차 산업혁명으로 농업이 주류를 이루던 산업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많아지게 되고, 3차 산업혁명으로 서비스업이 주류를 이루다가 4차 산업혁명으로 인공지능과 로봇에 의해 완전 자동화를 향해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아직 시작 단계일 뿐인데 우리는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것을 알아서 신속하게 처리해주는 서비스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우버 택시를 시작으로 쿠팡의 새벽 배송, ‘배달의 민족’의 배달 서비스 등 셀 수 없이 많은 서비스들이 등장하여 우리의 편리함을 극대화 시켜주고 있다. 이를 우리는 공급자(AI)와 소비자(모바일 앱)를 직접 연결해주는 API(Application Programing Interface)라 한다. ‘배달의 민족’을 예를 들면, 우리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주문하면 ‘배달의 민족’의 인공지능(AI)이 가장 빨리 처리해 줄 가능성이 있는 라이더에게 오더를 내리고, 라이더는 이 임무를 정해진 시간 안에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 여기서 인공지능(AI)은 라이더의 임무 수행 여부에 따라 평가를 하고 이 평가를 다음 오더에 반영한다.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원하는 서비스를 신속하게 받을 수 있어서 좋고, 회사는 라이더를 효율적(?)으로 관리해서 영업이익을 극대화해서 좋은 한마디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시스템이다. 하지만 라이더들은 인공지능(AI)이 오더를 내려 주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API의 아래(Below the API)에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AI)의 명령을 받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은 피도 눈물도 없다. 지금처럼 효율만을 극대화하는 신자유주의의 세상에서는 비가 오든, 교통이 막히든, 몸이 아프든 상관없이 라이더(인간)는 인공지능(AI)이 시키는 임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지금은 시작단계라서 이 정도이지만, 완전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오고 아이로봇이 실현되는 미래의 세상이 되면 인공지능(AI)이 우리에게 우리의 꿈인 무릉도원의 세상을 만들어 줄 수도, 아니면 자신을 창조한 우리 인간을 오히려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 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림 1.2의 오른쪽 미래 부분을 검은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는 4차 산업혁명으로 열어질 우리의 미래가 우리에게 아름다운 꿈의 세계가 될지, 아니면 저주받은 암흑의 세계가 될지 예측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어떠한 방향으로 어떻게 진화하며 전개가 될지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사실 우리의 욕망을 추구하는 삶이 우리에게 우리가 원하는 풍요와 더불어 이러한 풍요에는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부작용도 따른다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우리는 어두운 미래인 부작용이라는 위험은 애써 무시하고 밝은 미래인 풍요만을 향해 달려간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능인 욕망을 충족해주는 풍요가 우리에게 너무나 달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때로 직관적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앞에서 언급한 미래에 대한 중요한 일에도 욕망이 개입되면 우리는 일단 직관적 결정을 해버리는 우를 범하는 비합리적 존재이다. 이와 관련해서 미국에서 일반인 1,000명에게 실시했던 한 설문조사[참고 1.2]를 살펴보자. 그들이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보여주고 “누가 죽어서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은 결과, 테레사 수녀를 선택한 사람이 79%, 마이클 조던 65%, 다이애나 왕세자비 60%의 순 이었다고 한다. 아니 테레사 수녀 같은 성인이 79% 밖에 안 된다고? 조단이 65%? 농구 잘하면 천국 가는 거야? 등과 같이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다양하게 반응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 중 테레사 수녀가 천국 가는 순위 1위라니까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또 다른 질문 “당신은 천국에 갈 거라고 생각하느냐?”에 87%가 “그렇다.”라고 답했다는 사실에는 웃음 밖에 안 나온다. 내가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해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는 꿈(욕망)이 중요한 것이다. 세상을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내로남불’의 전형이요, 우리의 비합리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앞에서 논의한 우리의 미래를 살펴보는 것과 같은 문제들은 현재의 우리뿐 아니라 우리 후속세대의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의 비합리성을 최대한 배제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우리의 미래에 대한 문제를 우주와 우리 인류의 역사 그리고 미래를 좀 더 객관적이고 보편화해서 다각적이고 심층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를 통해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자.
칼 세이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천문학자이다. ‘코스모스’는 대중적이면서 문학적인 문체로 이 거대하고 신비로운 우주와 우리 인류의 과거와 현재를 과학지식과 인문학적 서사로 기술하고, 이를 토대로 미래를 위해 우리가 앞으로 이루어 나가야할 것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이 칼 세이건의 이야기로부터 AI, 기후위기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 보기로 하자. 칼 세이건은 1996년 평생 그가 알아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우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2020년 내셔널지오그래픽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코스모스’를 다큐멘터리로 화려하게 부활시켰다. 이 다큐멘터리 “COSMOS II”는 1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주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넘나들면서 인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인류의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를 보여준다. 이 에피소드들 중 12화 ‘인류가 지구에 미치는 영향’에서는 진행자가 막 태어난 아기를 안고 아기에게 푸른 질소 하늘과 액체 바다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생명체가 있는 이 세계에 대하여 설명해주면서 “널 위한 미래는 지금까지 인류가 경험했던 것보다 더 길고 밝고 자유롭지. 그리고 위험도 느낀단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지 위험은 항상 있었거든. 살아남으려면 위험은 감수해야 해. 삶은 위험하지. 모든 세계에서 모든 시간동안 지구의 모든 곳에서 그랬단다. 우리 종족과 동료 지구 생명체는 생명의 미래가 암울해 보일 때면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지. 어쨌든 우리는 견뎌냈단다. 그리고 이제 널 지켜주고 싶구나.”라고 시작한다.[참고 1.3] 마치 우리의 평범한 아버지들이 자녀들에게 “이 세상은 네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보물 상자야. 네가 하기에 달려있지. 물론 살다보면 때때로 어려움도 겪게 될 거야. 하지만 너무 걱정 하지 마. 넌 할 수 있어. ‘하면 된다.’ 아이야. 그리고 너의 뒤엔 내가 있단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은가?
생각해보면 우리 인류의 삶의 원동력이자 우리를 만물의 영장이 될 수 있도록 한 근원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요 비전이었다. 바로 내일에 대한 희망, 욕망이 우리를 우주의 그저 그러한 먼지에서 스스로 인식할 줄 알고, 자신의 기원도 파헤칠 줄 알 뿐 아니라 달나라로 여행도 다녀오고 앞으로 화성에도 가게 될 유일한 생명체로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욕망도 그에 상응해서 더욱 커졌고 그러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지구의 바다, 땅, 대기를 우리 마음대로 뒤 흔들어 버려 지구환경을 바꾼 최초의 종족이 되었다. 인류세의 시작인 것이다. 우리는 지구환경의 큰 변화에 따라 지질시대를 크게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구분하는데, 그중 가장 최근의 신생대 제4기[홀로세(Holocene): 약 1만 년 전부터 현대]를 나누어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를 인류세로 구분하는 것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인류세의 시작 시점은 화석연료 사용이 급증한 1800년대 산업혁명으로 할 것인지 또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50년경으로 할 것인지는 학계에서 아직 논의 중이다. 인류세의 시작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우리의 욕망으로 인한 지구환경파괴의 결과가 기후위기로 우리의 목을 조여 오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인류세의 시작이 언제이든 기후 위기에 대하여 우리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기상 예보를 통해 기록적인 폭염이 올 것이라든가, 역대급 폭우와 태풍, 미국 여기저기에서의 초대형 산불, 유럽 어딘가는 기록적인 폭설 등과 같은 기후 이상 변화를 전해 듣고 있으면서도 마치 중동이나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국지 전쟁을 듣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들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실제로 세계기상기구(WMO)의 발표에 의하면 2015~2019년의 전지구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1.1도C 상승하였고, 최근 5년이 역사상 가장 더운 5년으로 기록되었으며,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의 ‘지구 온난화 1.5도C’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시기대비 전지구 평균기온이 1.5도C 상승할 경우, 극한 고온, 호우 및 가뭄 등 자연재해의 발생이 증가할 것이며 이러한 변화는 온난화 속도와 규모에 따라 더욱 심화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지금과 같이 온실가스 배출량의 빠른 증가는 지구온난화를 더욱 가속시킬 것이고, 빙하의 감소와 해수면의 상승, 이에 따른 물 순환의 변화와 극한 현상의 심화 등으로 기후 시스템의 변화를 더욱 빠르게 가져올 것이 분명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금 만물의 영장이 된 우리 인류 앞에 놓인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의 결실로 AI 로봇을 노예처럼 부리며 화성여행을 다니는 무위도식의 풍요를 누릴 수도, 아니면 반대로 AI의 노예로 전락하고 거기에 더하여 기후위기의 후폭풍으로 대멸종의 고난을 겪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이 다큐멘터리는 그리스로마 신화 하나를 들려준다. 태양신 아폴론과 트로이의 공주 카산드라의 이야기이다. 아폴론은 제우스의 아들로 태양신으로서 다재다능할 뿐만 아니라 얼굴까지 잘생겨 한마디로 요즘말로 ‘엄친아’였다. 그러다보니 카사노바처럼 신과 인간, 성을 가리지 않고 애정행각을 즐겼다고 한다. 어느 날 트로이 공주 카산드라가 마음에 들어 공주에게 나의 연인이 되어주면 선물로 미래를 예언할 수 있는 능력을 주겠다고 하였다. 아폴론의 연인이 되기로 하고 카산드라는 예언 능력을 받았는데, 하지만 이 예언 능력이 생기자마자 그녀가 가장 먼저 본 미래가 아폴론이 잠시 자기를 갖고 놀다가 떠나버리는 예언이라서 그녀는 그의 구애를 거절해 버렸다. 그러자 이에 화가 난 아폴론은 이미 주어버린 예언 능력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놔두고 카산드라의 예언을 아무도 믿지 않는 저주를 내려 버린다. 그 후 카산드라는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했지만 아폴론의 저주 때문에 아무도 그녀의 말을 믿지 않고 오히려 미친 사람 취급을 하였다. 실제로 훗날 카산드라는 트로이 전쟁 당시 미래에 벌어질 비극을 정확히 예언했지만, 결국 아무도 이를 믿지 않아 트로이는 멸망하고 말았다는 신화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예언의 저주인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우리 인류는 현명해서 이러한 예언의 저주 따위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CFC에 대한 과학적 사례를 들어가면서까지 이 다큐멘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나는 어렸을 때 시원한 수박을 먹으려면 밧줄로 묶어 우물 안에 넣어 놓아야 했고, 생선은 오래 보관하기 위해서 소금으로 염장해야만 했던 걸 생생하게 기억한다. 심지어 대학생 때에도 서울에서 자취하며 김치 없이 밥을 먹을 때가 많았다. 냉장고가 없으니 오래 보관하는 것이 어렵고 시골에 자주 내려 갈 수 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사실 냉장고는 우리 인류의 생활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지금은 냉장고와 에어컨 없이 사는 것을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아무튼 냉장고는 과학자들이 CFC라는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내면서 가능해졌다. 당시에 CFC가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알려져 냉장고 뿐 아니라 각종 생활용품에 까지 적용되어 CFC 사용량이 폭증하게 되었다. 그 당시 모든 인류가 CFC라는 신물질에 감동하고 있을 때, 마리오 몰리나와 셔우드 롤런드, 두 과학자는 우리가 이를 사용하고 난 뒤 이러한 CFC가 공기 중으로 흩어졌을 때 이들은 어떻게 될까? 하는 궁금증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조건에서 분자와 기체의 운동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의 연구 결과, CFC가 태양의 유해한 자외선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것을 알았고 이들은 우리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경제가 우선인 산업계는 이 과학자들을 무시했고, 평범한 사람들은 CFC가 주는 편의성에 눈 감았으며, 정부는 외출 시에는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하라는 안내가 전부였다. 롤란드와 과학자들의 경고가 카산드라의 ‘예언의 저주’가 될 수 도 있는 상황이었다.
part. 2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