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나뚜라 08화

2.3 축의 시대_3

2.3.3 소크라테스와 서양철학

by 이성룡

2.3.3. 소크라테스와 서양철학

지금까지 서양사상의 양대 축 중의 하나인 ‘구약’의 헤브라이즘을 토대로 한 예수와 기독교 세계관의 흐름을 알아보았다. 이제부터는 서양사상의 나머지 축인 소크라테스와 헬레니즘으로부터 시작한 서양철학과 세계관의 흐름을 따라가 보도록 하자. 소크라테스는 페르시아전쟁(BC 492년)에서 그리스가 승리하여 아테네가 서서히 세력을 떨쳐 나가던 시기(BC 470년)에 태어났다.[참고 2.21] 서구문화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한 고대 그리스의 위대한 세 인물인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가운데서 바로 첫째 인물이다. 지금 우리는 그림 1에 보인 우주의 탄생과 소멸 과정에서 바로 야스퍼스가 이야기한 ‘축의 시대’를 여행하고 있고, 물론 동양에도 비슷한 시기에 위대한 성현들이 탄생했고, 세계와 자아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깊이 있게 이루어졌다.[참고 2.5] 이들에 대해서도 앞으로 같이 살펴볼 것이지만, 우선은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소크라테스가 살았던 시기는 근대 서양사 전반에 영향을 미친 고대 그리스의 고전기(BC 500년 ~ BC 323년)로 철학, 예술, 정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황금시대를 누리던 시기였다. 정치와 문화의 발달로 사회가 안정되고 풍요로워지자 인구가 급증하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에 폴리스들을 건설하였으며, 이러한 폴리스들은 스파르타와 아테네 등과 같은 강력한 폴리스를 중심으로 정치와 문화적으로 교류하면서 문명을 이루어 갔다. 고대 그리스의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것은 이 두 도시국가가 국가를 다스리는 정치제도의 표준 모델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스파르타는 소수 지배계급에 의한 엘리트주의로, 엄격한 수직적 신분제도에 의한 군사강국을 추구했다. 반면에 아테네는 다수의 시민에 의한 민주제로 권한과 의무를 평등하게 분배함으로써 경제와 문화의 유연한 플랫폼으로 경제 강국을 추구했다. 고대 그리스 이후 현대로 이어져 오는 과정에서 이들 두 정치・사회체계는 국가 통치와 사회 체계를 고민하는 모든 시대와 국가의 전형이 되어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의 황금기인 이 시기에 페르시아 전쟁(BC 499년 ~ BC 449년)이 3차례에 걸쳐 50년 동안 이어졌다. 이 전쟁으로 잃은 것도 많았지만, 아테네는 해상권을 확보함으로써 전례 없는 번영기에 접어들었다. 이는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에게는 위협으로 다가왔고, 결국 두 세력 간의 갈등은 BC 447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은 길고도 참혹한 싸움이었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포함한 대다수의 도시국가가 인구의 절반 가까이를 잃었고, 국력도 엄청나게 쇠퇴하였다. BC 404년 아테네의 항복으로 마침내 전쟁은 끝났지만, 그리스 전역은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처참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생존을 위해, 이념과 이해관계로 대립하고 투쟁하였다.2.5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했고, 삶의 의미와 자신의 존재는 무엇인지 의문을 가졌다. 바로 이 시기를 소크라테스가 함께 살았고, 이 처절한 환경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깊은 사유를 통해 철학의 씨앗을 뿌렸다.

100년 가까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회적 가치보다는 개인의 이해에 몰두하기 시작하였고, 심지어 돈을 받고 지식을 파는 소피스트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혼란스러워진 아테네 소피스트들이 상대주의적이고도 회의주의적인 어정쩡한 태도에 머물렀던 데 반해, 소크라테스는 정의, 용기, 절제, 경건 등 진리와 도덕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절대적인 가치 기준을 확신하고, 이를 사람들 앞에서 논리적인 방법으로 가르침을 설파했다. 소크라테스는 현실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세술보다는 근본적인 인간의 본질과 정의로운 행위를 규명하려고 노력하였다. 즉, 인간 행위의 진정한 주체는 스스로의 영혼(자아)인데도 사람들이 자기의 소유물(명예와 재산과 육체 등)에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종속시키고 있으며, 이 때문에 정치적·도덕적 부패가 일어난다고 설파 하였다. 그리하여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일갈함으로써 사람들이 자신의 무지를 깨달아 스스로의 존엄성을 자각하고 도덕의식을 실천하도록 노력했다. 이는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정치인들과 기득권 계층에 눈에 가시가 되었고, 결국 이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고, 사형에 처해졌다.[참고 2.21] 소크라테스는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탈옥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거부하고 이성적 올바름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지켰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플라톤, 칸트, 헤겔 등 서양 철학의 한 획을 그은 사상가들에 비해 내세울 만한 학문적 체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소크라테스를 철학의 모범으로 삼는 것은 바로 이렇게 ‘사유하는 인간의 전형을 보인 철학자의 삶’ 때문이다.[참고 2.5]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과 삶을 일치시킨 철학자의 전형이라는 면에서 감히 철학의 기원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소크라테스에 의해 바탕을 마련한 그리스 철학은 플라톤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종합되어 더욱 보편적인 학문체계를 갖추게 되었다. 플라톤은 어린 시절에 전쟁의 참혹함, 아테네 제국의 몰락 등을 경험하면서 폭력적 통치행위를 일삼았던 과두정권이 몰락하고 새로 들어선 민주정권에 정치적 희망을 품게 되었다. 그러나 BC 399년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민주정권에 의해 사형을 당하자,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이 갖는 의미를 되새겨본 뒤 정치적 포부를 접고 일생을 철학에 바치기로 결심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참된 선을 이성으로 통찰함으로써 도덕적 인격을 발전시켜 인간의 궁극적 행복을 달성하는 것이다’라는 명제를 계승하여 형상이론(이데아론)으로 완성하였다. 형상이론은 우리의 감각으로 인식되는 물리적 세계는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감각적 지식들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지만, 지성으로 파악한 형상(정의, 도덕, 아름다움 등)들의 영역은 영원불변하고 완전하며, 최고의 단계로 선(the Good)의 형상이 존재한다는 명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참고 2.22]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데아(형상)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넓은 동굴 속에 어릴 때부터 온몸이 묶여 오로지 앞만 볼 수 있도록 허락된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오직 감각으로 느끼는 것들과 동굴 속에 비치는 그림자가 현실세계라고 인식하게 되는 ‘환상’에 빠질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신념으로 사슬을 풀었다면, 그 사람은 지금까지 인식했던 것이 ‘그림자의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고, 동굴 밖에 현실이 존재할 거라는 ‘추론’을 하게 되어 동굴 밖으로 빠져 나가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마침내 동굴 밖으로 나온 사람은 난생 처음 태양을 마주하게 되지만, 너무 눈이 부셔 눈을 감아 버리게 된다. 우리의 편협하게 고착된 ‘지성’이 진리의 ‘이데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적응하게 되고 태양을 바라볼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드디어 ‘지성’이 진리를 깨달아 ‘이데아’를 제대로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이 사람은 동굴안의 동료들에게 새로운 세계, 이데아를 알려주기 위하여 동굴 안으로 되돌아 들어간다. 그러나 동굴 밖에서 깨달은 참된 진리의 ‘이데아’를 알려주기 위하여 밝은 곳에서 서둘러 갑자기 어두운 동굴 안으로 들어온 이 사람은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원래부터 동굴 안에 있었던 사람들 보다 ‘그림자의 환상’조차 판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사람이 동굴 밖에서 깨달은 ‘이데아’를 설명 할수록 동굴 안에서 환상 속에 빠져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깨달은 자를 조롱과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위험한 선동자로 몰아 해치려 하지 않을까? 마치 도탄에 빠져 구세주를 목 빠지게 기다리던 유대인들이 자신들을 구해주겠다고 나타난 예수를 사형시켜버린 것처럼 말이다.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는 진리로서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이것이 현실의 환상과는 어떻게 다른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들에 의하여 비난받고 종국에는 죽음에 까지 이르게 되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의 의미를 설파한다.[참고 2.5] 이에 따라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올바름(正義)이란 무엇인가?', '올바름은 올바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가?' 같은 윤리적 문제를 직접 다룬다. 즉, 개인의 올바름은 영혼을 이루는 3부분, 즉 이성·욕구·기개(의지) 등이 저마다 제 기능을 조화롭게 수행하도록 이성이 선(善)으로 유도할 때 나타나고, 공동체의 올바름은 구성원들 모두가 자신에게 할당된 역할을 수행하도록 선(善)의 이데아를 통찰한 철학자가 지배할 때 나타난다고 말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영혼의 이성·욕구·기개의 3요소에 따라 공동체의 역할을 지혜를 추구하는 철학자, 욕구의 충족을 바라는 자, 현실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는 활동가로 구별하여 공동체를 통치자·생산자·군인의 3계층으로 나눈 다음,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위하여 이성·욕구·기개의 3요소에 각각 상응하는 지혜·절제·용기가 각 계층에게서 각기 중요한 덕목이 된다.[참고 2.22] 결과적으로 플라톤은 현실세계의 한계를 초월하고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지혜로운 ‘이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이에 따라 어리석은 다수에 의한 우민화된 민주제를 불신하고 지혜로운 철학자가 지배하는 철인정치의 사회체제를 꿈꾸었다. 물론 그의 철인정치는 현대의 다원화・민주화 세계에서는 그 한계와 문제점을 비판받고 있지만, 이데아론으로 대표되는 플라톤의 사상이 서구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다. 이는 철학자 화이트 헤드의 “서양의 2천년의 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로 대변된다.

플라톤의 선(善)의 이데아는 서양 철학뿐 아니라 종교를 포함한 학문과 사회 문화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쳐, 서양인들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플라톤 이후 서양인의 세계는 영원불변하고 완전무결한 진리의 세계인 ‘이데아’, 즉 지혜로운 이성적 활동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진짜 세계와 수시로 변화하고 언젠가는 소멸하는 불완전한 현실의 세계, 즉 우리의 오감에 의해 진짜처럼 경험되지만 실은 환상의 세계로 나뉘었고, 자아와 세계, 신과 인간, 선과 악, 천국과 지옥, 빛과 어둠으로 분절되었다.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서양인의 근원적인 사유체계로 자리 잡아서 자아와 세계가 독립적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자아가 주체가 되는 순간, 세계는 자아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참고 2.5] 이제 인간은 세상의 주인으로서 물질적 자연을 분석하고, 자신들을 위해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당초 4대문명으로 각자 비슷한 시기에 시작해서 비슷한 문화로 살아가던 동양과 서양은 이제 점점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서양은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자연을 파괴하고 산업화의 길을 질주하여 서양 주도의 근현대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분절된 절반의 세계의 가치만을 인정하고 필연적으로 나머지 절반의 세계에 폭력을 가하게 된다는 비극적 한계를 근현대에 이르러서야 서구사회가 깨닫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현대 서양 철학자 미셀 푸코는 "본질이나 중심을 기반으로 형성된 철학에서는 그런 것들이 기준이 돼 결국 이 사회를 구분하고 배제하며 억압하는 권력으로 군림하게 된다." 즉 푸코는 본질주의적인 근대 서양을 구분, 배제 그리고 억압이라는 틀로 정리하고, 본질의 내용이 도덕적으로 선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본질인 한 기준으로 성장 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기준인 한 사회를 구분하고 차등화 할 수 밖에 없다는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설파하였다.[참고 2.9]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실재론’이다. 내가 있고, 나의 오감에 의해 인식되는 외부세계가 나의 외부에 나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유, 즉 눈에 보이는 물질의 세계가 환상이 아니라 진짜 세계이고, 이 세계는 나라는 존재의 출현이나 소멸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관점이다. 이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인본주의 문화를 꽃 피우고 과학기술을 혁신적으로 발전시켜 우리 인류에게 만물의 영장과 풍요로운 삶을 안겨주었지만, 무분별한 산업화의 폭력으로 자연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를 가져와 화성으로 피난 가는 궁리를 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 것도 사실이다. 앞의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 보면 자아가 오감으로 받아들인 외부 세계가 진짜가 아니라 환상의 세계일 수 있다면, 자아는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사유의 전환이 일어난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 인식되는 외부 세계는 이를 인식하는 주체인 자아에 의해 인식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결국 세계는 자아와 무관하게 독립해서 존재하지 않고, 나에게 인식되는 외부 세계는 바로 나의 내면세계라고 이해하는 ‘관념론’, 일원론적 세계관으로 ‘실재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를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인식과정’을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그림 2.9는 다음백과의 고등교육 물리에 나오는 ‘눈에서 색을 인식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다. 나에게 인식되는 나의 외부 세계는 나의 감각 즉 오감에 의해 모습과 색깔, 냄새와 맛, 소리와 감촉 등으로 드러나는 물질의 세계이다. 이를 그림 2.9의 눈의 인식과정으로 한번 알아보자.

그림2-9.png

그림 2.9. 눈의 인식과정 [참고 2.23]


예를 들어 우리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노란 바나나가 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노란 바나나로 인식하게 되는지를 그림 2.9를 참고하면서 알아보기로 하자. 우리가 시각적으로 사물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태양, 촛불 등과 같은 광원에서 나오는 빛의 에너지 즉 입자이자 파동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빛이 없는 곳에서는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없다. 아무튼 빛의 입자가 바나나의 표면과 만나 일부는 흡수되고 일부는 반사되는데, 반사된 빛의 입자의 일부가 수정체를 통해 눈으로 들어오고 망막의 시각 신경을 자극한다. 시각 신경 세포는 이 빛의 에너지를 받아들인 뒤에 이를 전기적 신호로 변환한다. 변환된 전기 신호는 시신경을 따라 뇌에 전달된다. 뇌에서 전달된 이 신호들을 종합하여 해석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이미지를 나의 자아가 인식하게 된다. 한마디로 나의 내면에 드러난 외부 세계의 이미지는 나의 뇌에 의해 해석된 이미지인 것이다.[참고 2.5] 실제로 바나나에 대한 시각 정보가 눈을 통해 시신경을 따라 뇌에 전달될 때까지의 과정에는 그저 빛 에너지에 대한 전기 신호 정보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의 뇌가 나의 내면에서 전기신호 정보를 해석해서 노란색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눈앞에 다양한 색상들로 드러나는 외부 세계는 사실 나의 내면이 해석한 내면의 세계인 것이다.

이제 플라톤 이후 이원론적 세계관으로 뿌리내린 서양 사상은 나의 외부 세계는 내가 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나의 내면세계가 해석한 세계라는 인식과정을 이해하면서 내면세계의 인식주체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이는 서양사상 전반에 스며들어 실재론이 갖고 있는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외부 세계를 내면세계의 반영으로 생각하는 일원론적 세계관을 서서히 탐구해 나가다가 18세기 칸트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탐구하고 반영하기에 이른다.

다시 그림 2.9의 인식 과정으로 돌아가서 칸트 이전의 서양사상가들은 그림 2.9와 같이 외부의 세계를 정신적으로 받아들이는 활동을 인식이라 하고, 이러한 인식 과정에서 어떻게 하면 참된 인식, 참된 진리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에 골몰하였다. ‘참된 진리란 무엇이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인간 이성의 한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서양사상가들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으로 분류되었다. 먼저 합리론은 인간은 선험적인 ‘이성’이 있고, 이 이성을 토대로 수학과 논리학 등과 같은 연역법으로 이끌어내는 지식만이 참된 인식을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표적인 사상가로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등이 있다. 반면에 경험론은 이성적 분석만으로는 유의미한 진리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실재하는 외부 세계를 관찰, 실험, 체험을 기반으로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경험’을 통해 귀납법으로 도출하는 지식이 참된 인식이라 생각하였으며, 로크, 버클리, 흄 등이 대표 학자이다.[참고 2.5] 하지만 합리론은 논리의 기본 토대인 선험적 ‘이성’에 대한 완전하고 보편타당한 정의를 입증하는데 실패하였고, 경험론은 외부 세계의 관찰을 통한 귀납적 명제가 기본적으로 관찰의 범위의 한계성 때문에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참된 진리를 보장할 수 없는 문제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각각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이성 원칙과 경험사이의 늪에서 이들 관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라이프니츠는 현상을 지성화 했고, 로크는 오성(悟性) 개념을 감성화 하는 근본적인 오류에 빠져 버렸다. 합리론이든 경험론이든 이러한 오류에서 벗어나 참되고 완벽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먼저 오성과 감성이 두 가지 전혀 다른 표상 원천임을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참고 2.24] 오성과 감성을 명확하게 이해한 다음, 이를 전제로 오성을 선행 원칙으로 하는 양자의 결합을 통해 사물에 관해 객관적으로 타당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다.

칸트는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하여 철학과 교수가 되고도 무려 11년 동안 연구 결과 한편 발표하지 못하고 깊은 사유에 빠져 있었다. 드디어 1781년, 칸트는 그의 나이 58세에 이르러서야 “순수이성비판”을 발표했다. 칸트는 인간이 경험에 의한 것이 아닌 선천적으로 갖고 있는 선험적 인식능력으로 ‘순수이성’을 정의한다. 이 ‘순수이성’은 감성, 오성(悟性), 이성의 세 가지 능력을 갖고 있는데, 외부 세계의 공간과 시간에 존재하는 ‘물자체(物自體, thing-in-itself)’를 우리가 인식할 때 먼저 오감을 통한 감성의 직관 능력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직관적으로 걸러진 표상은 오성(悟性)을 통해 분량・성질・관계・양상의 범주를 파악하여 개념적으로 객관적 타당성을 확보, 인식은 더욱 고도한 수준으로 나아간다. 이제 마지막으로 이성에 도달한다. 이성은 오성이 만들어낸 개념과 판단에 관계하고 선험적 능력에 더하여 논리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추리 능력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성에 의해 ‘개념에 의한 철학적 인식과 개념의 구성에 의한 수학적 인식’이 모두 가능해 지는 것이다.[참고 2.24] 무슨 말인지 참 어렵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림 2.9의 인식과정으로 다시 돌아가서 이를 칸트의 순수이성으로 설명 해보자. 우리가 외부의 어느 시간과 공간에 있는 바나나를 오감을 통해 감성이 직관적으로 인식하면, 이를 오성(悟性)이 분량・성질・관계・양상의 개념을 사용하여 일반화 한다. 마지막으로 이성이 감성의 직관과 오성의 개념을 연결하고 원인과 결과, 가능성 · 현실성 · 필연성이라는 상호작용 형식의 개념을 적용하여 사유하고 추상한 결과로 ‘맛있는(또는 맛없는) 바나나 또는 상한(또는 싱싱한) 바나나’의 개념을 형성하고 인식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아 · 우주 · 신과 같은 형이상학적 관념에 접근할 때도 앞서 언급한 바나나와 같은 객관적 실체를 관찰하는 경험적 방법을 취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고 할 때 시공간에 의한 제한과 시공간의 초월이라는 모순된 명제를 모두 포괄해야 하는 이율배반의 상황에 처해, 상반되는 두 명제가 동시에 참으로서 증명되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는 형이상학적 개념 등이 이율배반을 불가피하게 요구한다고 해서 이들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이율배반을 무의미한 상황으로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가치를 부여하였다.[참고 2.24] 즉 칸트는 모순율은 경험 영역을 분석적으로 인식할 때는 보편적이고 완전히 충분한 원리로서 시인해야 하지만, 형이상학 영역에서는 모순율을 진리성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고 이율배반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근대 철학에서 헤겔의 변증법으로 가는 새로운 지평을 활짝 열었다.

이를 정리해보면 칸트는 외부 세계의 ‘물자체’를 순수이성에 의해 개념적으로 해석하여 인식하기 때문에 인식한 결과가 참된 진리이기 위해서는 ‘순수이성’ 즉 감성, 오성, 이성이 각각 완벽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인식의 주체인 순수이성의 한계와 능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다. 이제까지 합리론이든 경험론이든 간에 과학은 자연을 철학・종교는 형이상학적 개념을 외부 세계의 탐구 대상으로 삼았다면, 칸트는 그러한 탐구를 진행하기 전에 먼저 그 대상이 어떻게 나의 내면에 인식되었는지를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 눈 앞의 보이는 바나나든 형이상학적 관념이든 나의 내면세계인 순수이성에 의해 해석되어 나에게 인식된 개념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라 이거 동양의 범아일여 사상하고 비슷한 것 아닌가? 내 눈 앞에 펼쳐진 세계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이미 나의 인식과정을 통해 내면에 그려진 현상세계라는 관념론의 가능성이 보이는 것이다. 어쨌든 칸트는 인식의 대상을 문제 삼기 전에 인식 주체의 인식 능력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칸트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우리가 참된 진리를 추구하는데 우리가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 인식대상 보다 인식주체가 중요하다는 칸트의 주장은 현대의 뇌과학자들에 의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그 한 사례를 들어 살펴보자.

신경과학자이자 의식연구 전문가인 스티븐 로리스는 2016년 다큐멘터리 “죽음 그 이후, 사후세계”에서 신비적 종교적 영성체험으로 알려져 있는 임사체험의 사례들을 분류하고 이를 확인해 보기 위하여 본인이 직접 체험을 통해 검증하는 연구를 진행해서 발표하였다.[참고 2.25] 그 결과 신비로운 빛의 터널, 평화와 안식이 충만한 다양한 광경, 영혼의 유체이탈 등의 임사체험이 뇌의 거짓 체험이라고 설명한다. 스티븐 로리스는 전투기 조종사들의 중력을 거스르는 극한 비행체험이든, 심장마비와 뇌졸중 같은 질병이든, 아니면 사일로 사이빈 같은 항정신성 약물에 의한 것이든 이로 인해 경험하는 임사체험의 공통점은 뇌의 산소 결핍으로 인해 뇌가 인식체계의 통제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임을 밝혀내 보여준다. 예를 들면, 전투기 조종사 훈련용 원심분리 장치에 들어가 9.7G까지의 극한의 순간에 빛의 터널을 경험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외부의 간섭이 완벽하게 차단된 무반향실에 들어가 백색만 느낄 수 있도록 눈을 차단한 채, 백색소음만을 헤드폰을 통해 듣도록 했을 때 새소리와 낮 익은 목소리, 그리고 벽을 보는 체험을 한다. 이에 대해 실험 주관자는 뇌가 과거의 경험을 회상으로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 체험이라 평가한다. 또 오른손을 볼 수 없도록 차단한 상태에서 볼 수 있는 곳에 고무손을 놓고, 고무손과 오른손을 같이 문지르면 마치 고무손이 내 손인 것 같은 상황이 되고, 이때 갑자기 고무손을 꺾어 버리면, 마치 멀쩡한 자기 오른손이 꺾인 것 같은 고통을 느끼는 착각에 빠지는 경험(이는 시각 인지가 촉각 인지 보다 더 강하고 우선적이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설명)도 보여준다. 여기 더해서 스티븐 로리스는 뇌졸중으로 시상세포만 손상된 환자의 촉각 실험에도 참여한다. 이 환자에게 MRI 촬영을 하면서 발바닥에 차가운 타일을 갖다 대면, 이 환자는 자기가 어린 아기였을 때 걷기 위해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고, 자기 엄마가 자기 두 팔을 잡고 자기가 걷는 것을 도와주는 모습이고 느낌은 발바닥이 차가웠다고 말한다. 이러한 체험은 시상세포 손상으로 뇌가 손상된 세포를 대체하여 복구하기 위한 배선 교체로 인한 뇌의 인식체계의 혼선 때문으로 실험 주관자는 설명한다.

이상의 여러 직간접 체험의 결과와 분석들은 우리 자아의 내면세계가 외부 세계를 받아드릴 때 인식과정에서 인식의 주체가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를 다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입증해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칸트는 이제까지 이원론적 실재론의 세계관에 눌려 그 한계를 절감하고 있던 서양사상가들에게 일원론적 관념론의 세계관으로 전환할 수 있는 물꼬를 열었고, 이제 서양사상은 관념론으로 서서히 흘러 헤겔에 이르러 그 꽃을 피우게 된다.

헤겔은 기존의 합리론과 경험론만이 아니라, 칸트에서 피히테와 셸링으로 이어지는 관념론의 오류와 편향을 비판함으로써 관념론을 완성하였다. 헤겔은 형이상학적 개념의 본질을 인식할 때 이율배반의 모순율이 '명제'와 '반명제'의 상호 침투와 지양을 거쳐 ‘종합’으로 나아가는 피히테의 변증법적 논리를 적극 수용했지만, 이를 인식하는 인식주체가 선험적으로 주어졌다는 동일률을 정립 명제로 출발하는 피히테의 논리에는 비판적이었다.[참고 2.24] 따라서 헤겔은 인식 대상 뿐 아니라 인식주체도 스스로 자기를 타자화 하는 분열 과정을 거쳐 회복된 동일성 즉 “밖으로 향하면서 곧 다시 자기 자체 내로 반성・복귀”한 동일성만이 진정한 주체이자 실체라는 이중적 변증법 관계를 형성하여 변증법의 역동성을 최고로 끌어올림으로써 관념론을 완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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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0. 단위 계단 함수(Unit Step Function)


관념론이 대단한 것 같기는 한데, 무슨 소린지 잘 모르겠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변증법에서부터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우리는 어두워지면 무심코 스위치를 눌러 전등을 밝힌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스위치를 누르기 전까지는 전등이 꺼져 있다가 스위치를 누르는 순간 전등이 켜져 어둠을 밝히는 것이다. 마치 그림 2.10의 단위 계단 함수처럼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등이 꺼져 있다가 켜지는 순간, 그림처럼 꺼짐(0)과 켜짐(1)이 섞여있는 이율배반의 모순율이 발생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우주의 탄생(그림 2.1 참고)에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태초에 텅 빈 공간만 존재하던 우주에 약 137억 년 전 어느 순간에 빅뱅이 일어나 우주가 탄생한다. 그런데 빅뱅이 일어나기 직전에 우주가 아무것도 없는 그야말로 텅 빈 상태였다면 빅뱅은 일어날 수 없다. 텅 비었는데 무언가로 꽉 차있는 이율배반의 모순율이 발생하고 '명제(꽉 들어참)'와 '반명제(텅 빔)'의 상호 침투와 지양을 거쳐 ‘종합(빅뱅)’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논리로 우주의 탄생을 우리가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외부 세계와 자아, 유(有)와 무(無)를 분절하는 이원론인 실재론으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 외부 세계가 바로 자아의 내면세계로 인식의 지평을 확장해야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서 주역의 우주론(태극), 노자의 유무상생(有無相生) 등 동양사상이 소환되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이제 서양사상의 세계관도 일원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헤겔 이후 서양의 세계관은 이원론적 실제론에서 일원론적 관념론이라는 거대한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이후 서양 사상가들은 관념론을 완성하였지만, 여전히 형이상학적 개념의 본질에 대한 절대성에 매달리는 헤겔의 절대정신을 비판하면서 포이어바흐, 마르크스 등은 관념 보다는 물질을 강조하는 유물론을 추구하였고, 니체, 사르트르 등은 개체와 유한성을 강조하는 입장으로 발전해 나아갔다.[참고 2.5] 포이어바흐는 헤겔의 절대정신을 사라져야 할 신이 부활해 버린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세계가 인간의 의식에 의해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하며, 이성이 아닌 감성의 우위를 주장하였다. 이는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다윈의 ‘진화론’에 의해 인간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동물에 일부라고 하는 과학적 사실의 지지를 받으면서 서양 철학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붕괴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니체는 근대 이성을 계산적 이성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성이 아니라 동물적인 권력에의 의지가 우주의 본질이라고 설파한다. 여기에 더하여 프로이트는 인간의 의식 활동을 지배하는 근본적인 힘은 이성이 아니라 무의식, 즉 인간의 근본적인 뿌리는 이성이 아니라 본능적 욕망을 기초로 하는 무의식이라 주장한다.[참고 2.9] 여기에 더하여 칸트로부터 출발하여 헤겔에 이르러 꽃 피운 서양의 관념론 철학은 에드먼트 후설로 대표되는 20세기 현상학으로도 이어진다.[참고 2.5] 후설은 지금까지의 수많은 종교와 사상은 현상 너머에 존재하는 절대 본질을 가정하고, 현상보다는 본질의 실체를 탐구해 왔는데, 하지만 이는 칸트의 ‘물자체'처럼 현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학문적 탐구대상이 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후설은 어떤 전제나 선입견의 개입 없이 눈앞에 드러난 현상세계를 분석해야만 세계에 대한 더 순수한 지식을 얻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후설의 현상론은 현상을 보는 주체인 의식과 현상으로서의 세계를 별개가 아닌 하나의 연관 속에서 통합적으로 탐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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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1. 산소 원자의 모형 [참고 2.26]


실재론의 세계관으로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가 관념론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는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현상 너머에 완벽하고 절대적인 이데아의 세계가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져버리기가 정말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상세계를 탐구하는 현대 물리학이 현상을 넘어선 세계의 실체를 보여준다. 다시 그림 2.9의 인식과정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 세계의 바나나는 우리가 인식하는 형태대로 내용이 꽉 차있다고 느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대부분 텅 비어 있다. 우리가 그렇게 느끼는 것은 바나나를 이루고 있는 원자들의 전기적인 반발력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외부에 펼쳐진 세계, 우주의 행성들을 바라보며 탐구하다가 현대에 이르러 물질의 내부도 우주처럼 구성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물질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원자는 그림 2.11과 같이 원자핵과 전자로 이루어진다. 원자핵은 전기적으로 ‘+’ 전하를 띠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지고, 질량은 원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그 크기는 원자의 1/10,000 정도로 작으며, 전자는 ‘-’ 전하를 띠고 그 수가 양성자의 수와 같아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을 띠고 있다. 우리는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의 전하량에 따라 원자를 구분하는데, 그림 2.11처럼 원자핵의 양성자 전하량이 8이면 산소가 되고, 전하량이 1인 원자는 수소로, 전하량이 2인 원자는 헬륨으로 구분하고, 나머지 모든 물질도 이와 같은 방법에 의해 구분한다.[참고 2.26] 여기서 그림 2.11과 같은 원자의 구조를 굳이 꺼내어 설명하는 이유는 원자를 구성하는 원자핵과 전자가 질량은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부피는 원자의 1/10,000 정도 밖에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서이다. 이를 다시 표현하면 원자 내부의 대부분(99.99%)가 텅 비어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우리가 텅 비어있는 공간에 태양, 지구, 수성, 금성 등등이 듬성듬성 떠돌고는 우주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우리가 잔뜩 기대하고 있는 현상 너머의 세계는 미안하지만 없다. 텅 비어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이 우주처럼 우리에게 보이는 물질, 심지어 나의 몸을 포함한 모든 물질의 내부 세계 또한 텅 비어 있다. 다만 0.01%의 원자핵과 전자 그리고 그들로 인한 에너지가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현대물리학 등의 과학기술의 발전, 특히 20세기 양자역학의 등장은 서양철학이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으로부터 후설의 현상학까지 일원론적 세계관으로 전환하여 나아가는데 기폭제가 되었다. 이제 서양의 세계관은 본격적으로 사유 보다는 그동안 무시되었던 경험이 새롭게 부각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이제 이성 보다는 감성이, 정신 보다는 육체(욕망)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집단에서 개별로, 보편에서 특수로, 본질에서 현상으로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그동안 분절하여 인식했던 모든 것(자아와 세계, 신과 인간, 존재와 부재, 삶과 죽음)이 실은 하나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내 앞에 펼쳐져 있다고 믿는 외부 세계는 실체 자체가 아니라 나의 인식 능력이 해석해서 만들어낸 나의 내면세계이다. 따라서 나의 외부이든 내부이든 내가 인식하는 세계는 나의 존재와 함께 생성되고 나의 죽음과 동시에 소멸한다. 결국 보는 자아와 보이는 세계가 나뉘지 않고 같은 근원이라는 동양의 위대한 스승들의 사상(우파니샤드의 범아일여, 노자의 도와 덕, 붓다의 일체유심조 등)이 칸트와 헤겔의 관념론을 거치면서 현대 서양철학에서도 궁극적으로는 같은 세계관을 갖고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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