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예수와 기독교
2.3.2. 예수와 기독교
사실 예수는 야스퍼스가 이야기한 ‘축의 시대’의 성현이 아니다. 이 시대의 성현들인 붓다, 노자, 공자, 그리고 소크라테스 등의 성현과는 500년 정도 차이가 난다. 아마도 비슷한 시기의 성현으로 언급하자면 ‘구약’으로 거슬러 올라가 예레미야, 이사야를 살펴봐야 하겠지만, 현대를 사는 우리 인류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서방세계의 생각과 믿음의 뿌리가 기독교라는 점에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할 성현으로 선택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종교의 교리가 아니다. 약 2,000년 전의 예수의 생각과 오늘날 전 세계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기독교 세계관의 흐름을 따라가 보고자 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서양사상은 ‘구약’성서를 토대로 한 헤브라이즘과 그리스, 로마 시대의 사상이자 문화인 헬레니즘이 근간이 되었다. 이 중 소크라테스와 헬레니즘으로부터 시작한 서양철학의 흐름은 다음 절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이 절에서는 ‘구약’의 헤브라이즘을 토대로 한 예수와 기독교의 세계관을 알아보기로 하자.
‘구약’성서에 따르면 BC1,030년에 사울이 고대로부터 유대인들이 거주하던 지역을 통일하여 이스라엘을 세웠다.[참고 2.5] 이 이스라엘 왕국은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솔로몬 왕을 거치면서 한때 안정된 국가를 유지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BC587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바빌로니아 왕국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였다.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의 수도 바빌론으로 포로로 잡혀가 50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BC537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바빌로니아 왕국이 멸망해서야 풀려났다.[참고 2.13] 하지만 그 후로도 유대인들은 고대 그리스의 알랙산더 왕에게 정복 당한 것을 시작으로 로마제국 등 주변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과 지배로 한 번도 제대로 된 독립 국가를 갖지 못하고, 차별과 핍박의 처절한 삶을 살아야 했다. 이렇게 서러움을 삼키며 전 세계로 흩어져 떠돌던 유대인들은 멸망한지 무려 2,500여년이 지난 1948년에서야 이스라엘을 다시 건국하게 된다. 아마도 유대인처럼 역사상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나라 없이 핍박 받으며 떠돌았던 민족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처절하게 지배 받았던 민족의 신이 자신들을 지배했던 제국의 신이 되고,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 인류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기독교가 된 것이다. 마치 더러운 흙탕물 속에서 깨끗한 연꽃이 피어나듯이 무자비한 침략과 처절한 피지배 계층의 고통 속에서 ‘예수’가 나타났고, 기독교가 등장한 것이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동안 나라를 잃고 주변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아 처절한 삶을 살면서도 ‘구약’에서 약속한 자신들을 구원해줄 구세주를 간절하게 기다렸다. 이때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예수가 탄생한 해를 기원원년으로 정한 서력기원(예수 탄생 이전은 BC[Before Christ], 탄생 후는 AD[Anno Domini]로 표기)에 따르면 당연히 AD 1년이어야 하지만, 당시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BC 7년 ~ BC 4년으로 추정된다. 이는 예수탄생에 대해 기록한 ‘마태오 복음 1장’의 헤롯 1세와 정권 교체기(BC 4년), ‘루가 복음 2장’의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시행한 유대 인구조사(BC 8년과 BC 6년)에 근거한 것이다.[참고 2.14] 사실 예수의 출생년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 이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하자. ‘예수’라는 이름은 히브리 어의 여호수와(Jehoschua)를 그리스 어로 옮긴 것으로 접두어 Je-(Jahveh 야훼, 하느님)와 히브리 어 Hoshea(구원, 구세의 의미)를 합성한 말로 구원의 하느님, 구세주를 의미하는 말이다. 예수는 그를 구세주로 믿고 있는 기독교는 물론이고, 여타의 다른 종교나 사회에서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겨지는 인물이다. 기독교인들은 그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신'으로 여기며, 이슬람교에서는 그를 ‘구약’의 중요한 선지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겨 존경한다. 동양의 힌두교에서도 유지의 신 비슈누의 화신으로 붓다를 생각한 것처럼 예수도 신에 대한 의식을 일깨워주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 화신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있으며,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예수에게서 비폭력 무저항 운동의 영감을 얻었다고 할 만큼 우리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현이다.[참고 2.14] 기독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구원의 하느님 ‘예수’를 성현으로 칭하는 것 자체가 불경이고 모욕일 수 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종교 교리를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무자비한 살육의 전쟁과 노예와 같은 처절한 삶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는 그 당시의 인류에게 가르침을 준 성현으로서의 ‘예수’와 그로 인한 기독교의 생각, 세계관을 같이 살펴보자는 것이니 너무 나무라지 마시라.
‘예수’의 세계관은 완벽하고 절대적인 창조주 하느님과 그가 창조한 이 세계가 있고,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가고 있다는 이원론으로 ‘구약’의 세계관과 기본적으로 같다. 다만 예수의 가르침 중에는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과 거피취차(去彼取此)와 같은 관념론적 일원론의 세계관과 비슷한 세계관도 보여 이원론의 세계관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자와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예수의 생각에 집중하기로 하자.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는 로마가 통일제국을 건설하고 아우구스투스(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유대지역까지 통치하던 때이다. 막강한 로마제국의 말발굽 아래 유대인들은 신음하고 있는데,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도자들인 율법학자들은 ‘구약’과 ‘율법’의 이론과 의식에만 매달려서 정작 유대인들의 사회적 고통에 대해서는 외면하였다. 율법학자들은 당시 성전을 관리하면서 유대교 율법서인 ‘탈무드’등을 편찬하는 등 ‘구약’성서의 정경을 확정하고, 성서원문의 순수성을 지키려 노력[참고 2.15]한 점은 인정되나, 이교도인 로마제국 통치하에서 법을 집행하는 재판관의 자문역을 하면서 유대인들 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정작 ‘구약’과 ‘율법’은 말로만 외치고 실제로 실천하지 않는 위선적인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에 예수는 율법학자들의 위선적인 행태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이를 바로잡고 ‘율법의 완성’을 위하여 이 땅에 왔다고 선포한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분명히 말해두는데, 천지가 없어지는 일이 있더라도 율법은 일 점 일 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마태오 5:17~18>
또 예수는 이러한 ‘율법의 완성’을 위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실천해야할 새로운 계명으로 ‘사랑’을 설파하였다.[참고 2.16]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 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 하여라. <요한 13:34~35>” 이어서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마치 노자의 천지불인(天地不仁)과 비슷한 우주의 진리, 질서의 관념으로 설명한다.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 중략 ...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 주신다. 너희가 자기를 사랑 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 <마태오 5:43~48>
여기서 예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구체적으로 이러한 사랑의 실천 방법으로,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도덕적 지침으로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루가 6:27~31>”라고 설파한다. 예수는 갈릴레아 호수 주변 언덕에서 사람들에게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며 살면 참된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예수의 산상설교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 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1~10, 루가 6:20~23>
예수는 사랑으로 살아가라는 삶의 도덕적 지침과 함께 하느님에게 올리는 기도의 참된 의미와 방법에 대하여도 가르침을 주었다. 먼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위선적인 기도, 빈말을 되풀이하는 의미 없는 기도, 재물을 탐하여 모시는 기도는 할 필요 없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도하라고 설파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인의 맨 처음 기도인 ‘주의 기도’ 이다. 여기에 더하여 진정한 기도는 자신의 ‘길흉화복’을 위해서 기복적인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이라고 설파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온 세상이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받들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 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 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 하시고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마태오 6:7~13, 루가 11:1~4>
“너희 중에 한 사람에게 어떤 친구가 있다고 하자. 한밤중에 그 친구를 찾아 가서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내 친구 하나가 먼 길을 가다가 우리 집에 들렀는데 내어 놓을 것이 있어야지‘ 하고 사정을 한다면 그 친구는 안에서 ’귀찮게 굴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도 나도 다 잠자리에 들었으니 일어나서 줄 수가 없네.‘ 하고 거절할 것이다. 잘 들어라. 이렇게 우정만으로는 빵을 내어 주지 않겠지만 귀찮게 졸라대면 마침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청을 들어 주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나는 말한다. 구 하여라, 받을 것이다. 찾아라,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구하면 받고 찾으면 얻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 생선을 달라는 자식에게 뱀을 줄 아비가 어디 있겠으며 달걀을 달라는데 전갈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하면서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루가 11:5~13, 마태오 7:7~11>
지금까지 살펴 본 예수의 가르침은 ‘구약’에서처럼 하느님의 말씀대로 기도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면 나중에 죽어서 하느님의 나라(천당)에 갈 수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당시의 유대인들의 생각이나 현대를 사는 우리나 이에 대해서는 별로 다르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은 이미 2,000년 전에 참된 도덕적 지침인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면, 하느님의 나라가 지금의 현실과 동 떨어진 사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여기 현실세계에서 하느님의 나라가 실현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즉 예수는 같은 사람들끼리 이렇게 무자비한 고통을 주고받고, 서로 아귀다툼하는 혼란의 현실 속에서 진정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모두 참된 행복을 누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바로 이 현실세계에 건설하자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그 당시 유대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극에 달해 빈부격차가 극심한 현대의 우리에게도 절실한 것이 아닐까? 당시 오랜 세월동안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아 노예와 다를 바 없이 핍박에 시달리면서 ‘구약’의 예언이 실현되어 자신들을 구원해줄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던 유대 민중들에게 예수는 선지자이자 구세주였다. 하지만 로마제국과 결탁하여 기득권을 누리던 율법학자와 제사장들에게는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선동가였고,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아갈 위험한 혁명가로 생각하였다. 마침내 예수는 로마가 아닌 유대인 자치기구의 결정에 따라 신성모독과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십자가에 매달려 사형 당했다.
예수가 처형당한 후, 예수의 가르침과 죽음이 기독교의 토대가 되고 세계적인 종교로 확대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사람이 바울(AD 10년 ~ AD 60년경[?])과 아우구스티누스(AD 354년 ~ AD 430년)이다. 먼저 바울은 예수의 제자가 아닐 뿐 아니라 예수 생전에 예수를 만난 적이 없었다. 바울은 예수 사후에 예수가 이 세상을 구원하러온 구세주임을 믿고,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하느님인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고, 죽음으로써 이를 완성했다고 믿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의 토대를 세웠다. 바울은 여기에 더해 "이제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8)".[참고 2.17] 라고 설파하였다. 이는 기독교가 유대교 내부에서 예수를 따르는 유대교의 소종파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종교로 성장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의 신비주의적 교리를 신에 의한 인류의 구원이라는 형이상학적 철학쳬계로 기독교 탄생에 기여를 하고, 유대종교를 외연 확장을 통해 보편종교인 기독교로 성장하는데 역할을 하였다면, 아우구스티누스는 바울이 토대를 세운 기독교 복음을 현대의 기독교 사상체계로 정립하고 확립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확립한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첫째, 삼위일체론, 둘째, 원죄론 그리고 셋째, 구원론으로 정리 된다. 먼저 삼위일체론은 아버지인 하나님과 그의 성자(예수), 그리고 성령(하나님이나 또는 예수님의 거룩한 영)은 그 본질과 능력과 영광에서 똑같으며 영원히 한 몸이라고 하는 이론이다. 이에 따라 예수는 하느님인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고 하는 신인설(神人說)이 거부할 수 없는 기독교의 교리로 정립되었다. 다음 원죄론은 하나님이 창조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는 바람에 현실세계의 고통과 반드시 죽어야 할 운명을 지니게 되었고, 아담의 피를 물려받은 우리 인류도 태생적으로 원죄의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원론은 원죄의 대가로 삶의 고통에서 헤매는 우리 인류의 비극을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차마 볼 수 없어 예수의 십자가형과 부활을 통해 그 죄를 대속(代贖, 대신 갚아준다는 뜻)하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린 피야말로 신의 은총의 표식이고, 죄인일 뿐인 우리 인류가 그 창조자 하나님 앞에서 하나도 내세울 것이 없지만, 하나님 자신인 예수의 가르침과 십자가의 희생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립한 기독교의 정통 교리다.[참고 2.18]
또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신국론〉을 통해 플라톤의 ‘이데아’ 즉 그리스 철학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기독교 교리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기독교 사상체계를 세련되게 정립하는 동시에 이원론적 세계관에 이미 익숙한 서구 유럽인에게 거부감 없이 수용될 수 있도록 하였다.2.5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에 의하여 역사적 배경만으로는 너무도 이질적인 서양 세계관의 두 축인 그리스•로마 철학의 헬레니즘과 ‘구약’의 헤브라이즘이 로마제국의 역사 속에서 만나 서구의 신학사상뿐 아니라 철학사상의 배경까지 공유함으로써, 실제로 그리스•로마 철학과 기독교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2천 년간 공존하며, 세계를 주도하게 되었다. '신국', 곧 신의 나라는 세상나라(Civitas mundi)와 구별되는 개념이다. 즉, 신의 나라는 이데아에 따라 세상을 창조한 기독교의 신이 자비를 베풀어 우리 인류를 구원해주는 영원하고 완벽한 생명의 나라이고, 세상나라는 이교도의 신, 즉 로마의 신이 이끄는 나라인데, 로마의 신이 로마인을 현세적이고, 쾌락 추구적인 부정적 성향으로 이끌어 당시 게르만족의 침입을 받아 로마가 위기와 혼란에 빠진 원인이라고 설명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세상에는 신의 나라와 세상나라가 서로 얽혀 있지만 세상나라는 저마다 자만과 탐욕을 기반으로 하는 이기적인 나라이고, 신의 나라는 저마다 겸손과 사랑을 기반으로 하는 숭고한 나라이기 때문에 결국 ‘이데아’이며 도덕적인 신의 나라가 승리한다고 믿는다.[참고 2.19] 이러한 플라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는 기독교의 이원론적 세계관은 서양 철학과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중세와 근대로 이어졌고[참고 2.5] 현대 세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서양 철학은 18세기에 이르러 이원론적 세계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칸트(1724년 ~ 1804년)와 헤겔(1770년 ~ 1831년)을 거치면서 관념론의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갔지만, 반면에 기독교는 절대적이고 완벽하고 유일한 창조주 하느님을 포기할 수 없어 이원론적 세계관을 2천 년 이상을 유지하며 헤겔의 관념론, 다윈의 진화론 등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물론 기독교 내에서 이원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시도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바로 에크하르트(1260년 ~ 1327년)를 대표로 하는 기독교 신비주의이다.[참고 2.5] 에크하르트는 철학적 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아닌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내면 안에서 광활한 세계를 보았고, 인간의 영혼과 신이 궁극적 합일을 신비한 체험을 통해 직접 경험했다. 에크하르트는 이를 바탕으로 문자로서의 교리 보다는 신실한 체험, 즉 깊은 침묵 속에, 하느님의 임재를 기다리고 경험하는 관상(觀想)으로부터 출발하여 정적(靜寂)과 무(無)의 경지인 내면의 심연으로 내려 갈 때, 신의 실재를 체험할 수 있으며 하느님과의 합일(合一)을 이룰 수 있고, 비로소 인간은 완전한 자유에 도달하며, 최고의 덕을 달성할 수 있다고 설파한다.[참고 2.20] 이러한 상태에 이르기 위한 실천 방법이 바로 관상기도(觀想祈禱)이다. 즉 에크하르트는 완벽하고 유일신인 창조주 하느님이 있고 그의 피조물인 나와 세상이 있는 이원론이 아니라 인간 자신의 마음속에서 신이 탄생한다고 다음과 같이 설파한다.[참고 2.5]
많은 단순한 이가 신은 저기에 있고 자신들은 여기에 있는 것처럼 신을 보아야 한다고 착각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신과 나, 우리는 하나다. 인식을 통해 나는 신을 내 속으로 들어오게 하고, 사랑을 통해 나는 신 안으로 들어선다. -에크하르트-
에크하르트는 베다의 범아일여, 노자의 도와 덕의 일치, 붓다의 일체유심조 등의 관념론과 동일한 맥락으로 일원론의 세계관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에크하르트의 생각은 당시 중세 교회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받았고, 결국 1326년 유일신이 아닌 범신론을 전파한다는 죄목으로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에크하르트의 생각은 유일신이 아닌 인간과 신이 합일을 이루는 범신론적 관념과 중간에 교회의 권위를 매개하지 않고 신과 인간을 직접 연결하는 사상을 인정할 수 없어 당시의 교회에서는 배척당했지만, 교회 내부적으로는 종교개혁을 주창한 마틴 루터에게 영향을 주었고, 외부적으로는 신플라톤주의에 심오한 영향을 미쳐 서양 철학이 이원론적 실재론에서 헤겔의 일원론적 관념론으로 대전환하는 역할을 하였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펴본 예수와 기독교의 세계관은 동양 ‘베다’의 일원론적 관념론과 달리 서양 철학의 이원론적 실재론과 생각으로 공유하면서 발전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에크하르트의 신비주의를 거치면서 서양 철학은 헤겔에 이르러 일원론적 관념론으로 사상체계의 대전환을 이루고, 기독교 또한 조금씩 일원론적 사유로의 전환 가능성이 있음을 엿 보았다. 이쯤 되면 도대체 세계관이 무엇이 길래 일원론과 이원론, 서양과 동양을 들먹거리는 지 의아해 할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오늘날 인문학이 핵심적으로 다루는 탐구 주제가 바로 1) 나는 무엇인가? 2) 세계는 무엇인가? 3) 세계와 자아의 관계는 무엇인가? 의 세 가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절 ‘소크라테스와 서양 철학’을 살펴보면서 같이 알아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