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길
6월 30일에 출발하여 울룰루에 7월 5일에 도착했으니까 하루 600 ~ 700km씩 달린 셈이다. 여기서는 도시 근교를 제외하고는 하이웨이가 2차선이다. 아스팔트 상태도 별로다. 하지만 제한속도가 110km이다. 오고가는 교통량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그저 심심하면 한번씩 나타나는 로드 트레인(여기선 트레일러를 이렇게 부른다. 장거리 화물 운송의 효율을 위해 화물차 하나가 적게는 트레일러 두개, 많게는 4개씩 기차처럼 연결해서 끌고 다닌다.)과 여행자들의 캐러밴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이곳엔 우리나라 같은 산은 보기 힘들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풍광이라고는 그저 끝없이 펼쳐진 대 평원에 쭉 뻗은 2차선 도로하나, 간혹 눈에 띄는 캥거루 주의 표지판이 전부다.
<사진> 이런 길이다. 그냥 쭉...
당초 무지하게 지루하고 단조로울 것 같던 길 위에서의 매일 매일이 생각보다는 새롭고 흥미롭다. 사실 거의 똑 같은 풍경 같지만, 푸른 초원이 펼쳐진 목장지대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으며’ 한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잡목들만 그저 하릴없이 한들거리는 지평선이 나오고, 그런가하면 키가 2~30m는 됨직한 울창한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나를 반긴다. 그러다가는 어느새 잡초들 사이에 그야말로 듬성듬성 나무 한 그루가 외롭게 서 있는 마치 아프리카 사바나같은 풍경이 또 나를 사로잡는다. 사실 이정도만 가지고는 우리나라의 아기자기한 산천초목에 익숙한 내가 감동할 수가 없다. 알고 보면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황량한 대지위에 목마른 잡초와 나무가 처절하게 삶을 유지하고 있을 뿐인데..... 그런데 이렇게 시시각각 변하는 대지위의 풍경에 더해 파아란 하늘과 구름이 연출하는 풍경화는 정말이지 어떻게 표현하기가 힘들다. 양털 이불과도 같이 얇고 몽싱몽실하게 평평한 구름과 지평선이 평행을 이루고 저 멀리서 마주치는 장면, 새털 같은 구름들이 뭉게구름이 되었다가 또 흩어지고... 그랬다가 시커먼 비구름이 되기도 하고... 정말 대지와 하늘 그리고 구름이 제각각 다양하게 변하면서 조합되는 자연의 ‘버라이어티 쑈’라는 말밖에 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정말 압권이었던 것은 울룰루 방문 후 다시 똑 같은 길을 달려 돌아오는 길이었다. 6일 동안 갔던 길을 또다시 반복한다는 것이 제법 지루할 만도 한데, 또 다른 느낌의 연속이다. 갈 때는 태양과 대지가 주역이었다면 올 때는 구름이 주역이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풍경은 지평선 저 멀리에 시커먼 비구름이 마치 구름 기둥처럼 땅까지 맞닿은 부분이 있는가하면 그 옆은 구름 한점 없는 파란 하늘에 눈부신 태양이 대지의 한 부분을 비추고, 또 다른 한쪽은 거대한 구름 덩어리들 사이로 선명한 무지개가..... 동시에 눈앞에 펼쳐진 자연의 오묘한 풍경 앞에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다양한 대지위의 부시와 끝없이 펼쳐진 길.... 그 위에 떠 있는 태양... 그리고 이를 다양한 형태로 연출하는 구름.... 그리고 구름 기둥이 땅에 닿아 그저 잠시 소나기를 뿌릴 것 같던 지역은 시속 120km인 내 자동차가 무섭게 내리치는 비 기둥을 관통하는 데 30분이 넘게 걸린다. 이를 어떻게 말로, 인간의 창조물인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나는 매일 매일 내 눈 앞에서 벌어지는 버라이어티 쑈를 디카에 담아보려 몇 번 시도해 보았지만 결국 포기했다. 도저히 내가 느끼는 감흥을 그대로 담을 수 가 없다. 내가 화가였음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사실 이런 자연의 오묘한 풍경만으로 왕복 8000km의 12일간의 드라이브가 지루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게다. 이 지루하고 끝이 없을 것 같은 여정 사이사이에 나에게 적당히 이것저것 생각하도록 자극한 것들이 호주의 최장 직선도로인 ‘90mile Straight', 캥거루, 그리고 유칼립투스를 비롯한 잡목들이었다.
<사진> 호주 최장 직선 도로 안내판
<사족> 나는 이 길을 자동차로 달렸고... 어떤 이는 자전거로... 어떤 이는 손수레 끌고 걸어서 지나갔다. 아~ 오토바이 타고 간 사람도 있었다.
나는 WA와 SA의 경계지역인 Nullarbor Plain의 대평원을 지나면서 호주의 최장 직선도로(90마일[146.6km])를 달렸다. 아기자기하게 굽은 우리네 도로에 익숙한 나로서는 호주의 거의 모든 도로가 직선이었지만 시속 120km로 1시간 10분여 이상을 달려도 커브가 안나오는 직선도로가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길은 직선이라고 내 마음 저편에 규정해 버린 내 사고의 편협성을 질책했다. 나는 호주 최장도로를 통과하면서 도로는 커브도 있고, 오솔길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사물을 바라보면서 내 사고 인식의 패러다임으로 사물을 규정해, 고착화 했을 때 생길 수 있는 오류의 위험성을.... 새삼스럽게 떠올렸다.
갈 때(맑음)
돌아 올 때(흐림)
<사진> WA와 SA 경계 지역에 위치한 Nullarbor Plain이라는 끝도 없는 대평원이 있는데, 길 내륙 쪽은 대 평원, 반대쪽은 이런 해안선이다.
<사족> 난 여기서 영화 ‘빠삐옹’을 떠올리기도 했다. 왠지는 나도 모른다.
호주에서 도로 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 캥거루 주의 표지판이 아닐까 싶다. 사실 캥거루는 야행성이기 때문에 주간에 도로 주행 중 캥거루를 만나는 것은 흔치 않다.(나는 안전을 위해 야간 운행을 하지 않는 일정을 소화했음에도 8000km의 여정 중에 캥거루와 두 번 마주 쳤다. 한번은 저 만치 앞에서 두 마리가 평화롭게 ‘보잉’ ‘보잉’ 뛰어 길 건너는 목가적인 풍경을 즐겼고, 한번은 갑자기 바로 앞에서 뛰어드는 놈 때문에 급브레이크와 함께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세상을 하직한 캥거루와는 매우 자주 만난다. 여행 초기에는 어쩌다 이런 일을 당했니... 조심하지... 심지어 어미와 같이 누워 있는 어린 캥거루를 보면서는 가슴이 뭉클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눈앞의 캥거루 시체에 ‘어 또 있네’ 정도로 바뀌어 있는 나에게 ‘삶이 그렇지 뭐...’하면서 그냥 지나친다. 마치 잠자는 것처럼 온전한 상태로 누워 있는 놈이 있는가 하면, 까마귀와 독수리에 의해 처절하게 찢겨 지고 있는 놈, 이미 찢겨져 아무렇게나 조각조각 널려져 있는 놈, 아무에게도 선택(?)받지 않았는지 그대로 말라 미이라처럼 가죽만 남아 버린 놈... 그 위에 어디 싱싱한 먹이 없나하고 허공을 유유히 선회하는 독수리와 까마귀 무리... 다양한 형형색색의 앵무새 무리들도 있다. 이것도 자연의 버라이어티 쑈다. 아니 Eco-chain이리라...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자연은 그냥 그렇게 순환하고 있는 것이다. 내 여정의 길 위에서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까마귀와 독수리의 캥거루 장례식(이뮤, 소 등의 장례식도 있었다.)을 지나칠 때마다 ‘삶’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이것이 생명체라고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은 건조하고 황량한 이 땅위에 꿋꿋이(?) 버티고 서있는 유칼립투스와 오버 랩 되면서 내 상념은 클라이막스에 다다른다.
사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도시 전체가 유칼립투스(호주 전역에 걸쳐 자라는 대표 수종으로 캥거루와 함께 호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를 주종으로 하는 울창한 숲 속에 평화롭게 감싸 안겨 있을 뿐 아니라 맑은 하늘과 눈부신 태양 그리고 깨끗한 공기에 반해서 이곳이 정말 축복 받은 땅이라 여겼었다. 정말 끝내주는 자연 환경이구나.(사실 이것 때문에 이곳으로 이민 오는 교민도 있다니까 틀림없으리라) 근데 자세히 보니 여기처럼 끝내주게 혹독한 자연도 없지 싶다. 삶의 원천이라는 물이 없다.(우리나라 만세다.) 겉으로 보기엔 울창한 나무 숲 속(유칼립투스는 비교적 조건이 좋은 지역에서는 보통 키가 40~50m가 넘는 놈 들이 빽빽하게 들어 차 있다. 장관이다.)에 가도 물이 없다. 심지어 북쪽 아열대 기후지역에 가도 건기에는 물이 없다. 있다 해도 고여 있는 물은 썩어 있다(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들어 놓은 댐은 예외다...). 우리처럼 맑은 시냇물 보기가 나라님 만나기보다 힘들다.(아~ 바닷물은 무지 이쁘고 깨끗하다.) 하물며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이런 황량한 곳은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유칼립투스가 자라고 잡목이, 잡초가 자란다. 그렇다고 사하라처럼 그냥 모래만 있는 곳 또한 없다. 참 신기하다. 대단하고 끈질긴 생명력이다.
이곳 남서부 삼림지역엔 한솔제지의 조림지가 있다. 여의도 40배 정도(? 그렇게 기억한다.)되는 조림지가 10개(운 좋게도 벌목 현장에 견학할 기회가 있었다.)가 넘는다. 10년 전에 조성했다는데... 지금 그 키가 30m 정도 된다. 이 놈들은 공원에 자유롭게 자유로운 모습으로 자라는 놈들과는 달리 가지가 없었다. 그저 30m씩 쭉쭉 뻗어 있었다. 마치 전봇대들이 무슨 군대 열병식 하는 것 같다. 모든 나무의 가지는 저 30m 위 머리 부분에만 잎사귀 달고 있었다. 전문가 설명에 의하면 태양을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서로 경쟁(?)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경쟁에서 밀려 30m가 채 못 되게 자란 나무들은 태양을 받을 수 없어 고사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치열한 경쟁은 인간만 하는 게 아니었다. 어쨌든 이들 10개의 조림지를 돌아가며 1년에 한곳 씩 벌목을 한다.(벌목한 나무는 우드 칩으로 가공되어 제지공장에 보내진다. 종이 원료의 안정적 공급되겠다. 수출도 한단다. 대한사람 만세다.) 그럼 이론상으로 무궁무진하게 벌목이 가능하다. 놀라운 것은 벌목한 곳에 새롭게 나무를 심는 게 아니고 그냥 놔두면 잘려진 밑 둥에서 새순이 나온단다.(1년 뒤면 1m 정도의 키가 된다. 내 두 눈으로 확인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놈들은 산불에 새카맣게 타버렸는데도 거기서 또 새순이 돋아난다. 가히 한국의 소나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강인한 생명력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이런 혹독한 시련, 환난 그리고 고통을 극복하고 처절하게 삶을 유지 할 수 있을까? 이놈들을 한국에 옮겨 놓으면??? 소나무가 뭐라 할까? 또 이놈들은 우리 땅에선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상상도 해 보았다.
내가 어찌 이 상황에서 나의 삶이 행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정말 행복하다. 그러니 여행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평소에도 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실제로도 정말 운 좋은 쪽에 줄서서 살고 있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산다. 이번 여행도 우리 가족에겐 대단한 행운이었다. 변화무쌍한 일기 변화로 연출한 자연의 버라이어티 쑈도 그렇고, 일정대로 아무 사고 없이 돌아 온 것도 그렇고, 건강했던 것도 그렇고... 모두가 행운이다. 여행 출발 첫날부터 경찰에게 과속으로 딱지를 받고서 돌아 설 때도 마지막 인사가 ‘땡큐’였다. ‘그렇게까지?’ 하는 집사람에게 나는 사고 나기 전에, 여행초기에 미리 조심 운전하라고 경고해준 경찰이 얼마나 고마우냐고 대답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또한 달리는 레스토랑(?) 안에서 하루 종일 사랑하는 가족과 도란도란(? 사실은 디젤이었기 때문에 속삭일 수는 없었다.) 이야기 하는 즐거움은 지루한 여정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자연은 말이 없다. 그저 무심히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다. 貴大患若身(귀대환약신) !
유칼립투스가 나와 다른 점은 어차피 똑같이 주어지는 삶이지만 이번 여정처럼 내 나름대로 목표를 세우고 내가 만든 일정대로 하나하나 이루어 가면서 느끼는 성취욕이 있다는 거 아닐까? 하지만 見素抱樸(현소포박)하고 少私寡欲(소사과욕)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