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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3. 2024

베테랑 2의 쌍곡선

베테랑도 실패한다


 내가 베테랑 1을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에 없다. 그래서 찾아봤더니, 아... 어이가 없네 유아인, 지나가던 아트박스 사장 마동석! 하고 떠오른다. 개봉 당시 사회문제화 되었던 재벌의 횡포와 갑질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시사성을 획득했고, 악을 응징한다는 측면에서 관객들의 공감을 사면서 대단한 인기몰이를 했던 기억도 난다. 공공의 적에서 설경구검사가, 황정민형사로 변신한 버전.

 하지만 잘 나가던 유아인 배우가 신상의 문제로 나락으로 떨어졌고, 그가 주연을 한 영화들이 줄줄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왜 이런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 놓지 않으면 안 될까? 사실 베테랑이라는 영화의 흥행은 악의 구축에 있었다. 서도철(황정민 분) 형사의 역할이란 것이 원래 미미했을 정도로 악의 존재감이 컸던 선악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런 전작에 대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상태에서 베테랑 2를 봤다. 몇 가지 문제가 눈에 띄었다. 서도철 캐릭터가 그 존재감에 있어 살아나고 있지 않았다. 범죄도시의 마동석이 가지는 비주얼적 포스에 미치지 못했고, 법을 수호한다거나, 법을 무시한 집행에 전념한다거나 하는 막무가내성 캐릭터라이징도 약했다. 배우 황정민효과가 사라졌다. 동시에 황정민의 시대가 막을 내리는 건가?

 그렇다면 정해인은? 순한 얼굴에 내비치는 악인의 풍모는 눈빛에서 살아나지만 애매모호하다. 선악의 대결은 그 대립이 분명해야 관객에게 먹힌다는 철칙이 있다. 하다못해 소프오페라로 불리는 안방극장에서도 지켜지는 룰이다. 새로운 구도를 만들지 못할 바에야, 지정된 클리셰라도 따라야 하는 것이 연출의 도리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해치와 가짜 해치의 활극은 볼만한 그림에 그쳤다. 이 속도감 넘치는 액팅이 류승완감독의 전매특허가 아니었던가. 나는 이 시점에서 영화가 왜 이렇게 짜부라졌을까를 생각해야만 했다. 제작사의 무리한 요구와 자체 심의, 외부적 환경이 류승완감독을 쫄리게 한, 그 무엇이 있었을 거라는 추측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면 편집의 오류? 무엇이 되었건 그들의 내부사정인 셈.


 극장을 메웠던 관객의 감상은 둘로 갈리는 듯하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비판적 시각과 그만한 영화가 흔한 일은 아니라는 측면에서 초호화 캐스트를 자랑하기도 한다. 실제로, 타이틀롤이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가수 조관우가 나왔어? 개그맨 안상태도? 이런 식으로 까메오 출연자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건 영화를 보면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할 재미를 준다.


 지금까지 언급한 흥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캐릭터, 선악구도를 빼고서라도 심각한 문제가 있다. 스토리라인의 지리멸렬함, 매너리즘, 구태의연함은 치명적이다. 강력계형사팀이 해치의 존재를 인지하자, 벌어지는 갈등요소들은 위기감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았고, 이중구조로 설정한 인질극은 입체감을 상실했다.

 왜 그럴까? 원래 큰 물은 도도히 흘러간다. 스토리도 그렇다. 잔 줄기는 그저 큰 줄기의 흐름을 도울 뿐, 흐름의 본질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그럼 잔 줄기들이 하는 역할은? 재미와 긴장, 조였다 풀었다 하는 몰입과 소격을 반복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적 극현실 속에 살고 있는 관객이 얻고자 하는 것은 감정적 공감을 통한 카타르시스이다. 그러나 현대의 관객은 더 고차적인 극적현실 속에 살고 있다. 메커니즘이 발전하고 새로운 메커니즘이 대중화된 지 오래며, 그러한 기법이 무대와 카메라에 도입되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현실에 있다. 관객이 영화로부터 소격 되는 순간, 관객은 상황의 부조리함에 대해 각성하기 시작한다. 그 각성이 볼품없는 스토리를 강하게 이끌어가는 것이다. 이때부터 스토리는 감독이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주도해 나간다.


베테랑 1에는 있는데, 베테랑 2에는 없는 것,
그건 관객이 알고 있다.
관객이 아는 걸 감독이 모르면 안 된다.
영화는 감독이 만들지만, 그 영화를 완성하는 것은 관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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