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목적

by 별사탕

꿈꾸는 인간이 있다.


그는 길을 떠나 낯선 어느 골목이나 대로에 서 있다. 남들은 삼삼오오 떼를 지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가 보다 하고 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목적지 없는 길을 걷고 있다. 사실 그는 이 도시에 시험을 보러 왔다. 시험 결과는 썩 좋지도 절망적이지도 않았다. 온전히 시험관의 재량에 따라 합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뿐, 희망적이지도 않았다. 그런 마음이 작용했는지, 관광지 바닷가 도시의 휴일은 반갑게 다가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래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험을 보러 왔다는 하나의 목적이 해소되자 그때부터 길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목적지가 없다는 사실 하나가, 그를 떠돌게 했고, 식당을 찾아 들어가 뭔가를 먹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걸, 어떤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목적이 있음과 없음의 차이를 통해 느끼는 존재의 슬픔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격차의 중간이 그를 서글프게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 면에서 그는 생존을 이유로 살지는 않는 듯했다. 이유 없는 존재이거나, 존재가 이유가 없거나 둘 중 하나이겠는데, 무엇이 여기 있다는 사실은, 사실 아무런 이유가 없어야 한다. 존재 이유를 알 수 있는 존재는 그 무엇을 만든 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정작 당사자인 그것은 모르는 게 정당하다.

물건, 무생명한 점유(존재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물건에게 하는 말이다. 그것은 분명한 이유를 가지고 태어난다.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 사용할 목적이 그것의 사명이다. 그래서 내가 어디에 쓰인다는 것은, 신(있다면 말이다.)의 용도이지 인간의 용도는 아닌 것이다.

이 세상을 돌아다니는 행위는 목적이 있을 수 있기도, 없기도 하다. 목적은 이런 것이다.


어디에 가시나요?

일이 있어 부산에 갑니다.


일이라는 목적이 분명하다. 이게 존재 이유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단지 길을 가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목적이 존재의 이유일까? 아니다. 목적은 성취 혹은 방향을 의미한다. 목적을 성취한다거나 혹은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과 존재의 이유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목적은 일시적 과업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왜 하게 되었나요?

재작년부터 직업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직업은 생존을 위해 가지는 업이다. 거기에 부수하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누리며 군림하거나 그 반대로 업신여김을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존재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걸 금방 알 수 있다. 즉, 인간은 존재 이유가 없다. 자기가 자기를 만드는 세계에서는 분명한 존재 이유가 있다. 내가 나를 만들어나가는 세계, 그것은 헛된 욕망으로 들끓는 사회다. 욕망과 욕망이 비교되고, 헛된 것을 헛된 것으로 채워 나가며 행복하다고 즐거워하는 구성조직이 사회다. 그것은 서로를 위로하는 방식으로 서로를 응원한다. 그래서 그룹이 만들어지고 동행, 동반이 따르는 여정을 함께한다. 국가, 기업, 심지어 부부까지도 그들의 동맹은 유지된다. 그들이 말하는 여행은 이런 걸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행한다. 가야 할 목적지도 없고, 왜 왔는지, 그가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는 어딘가에 있어야 하고, 걸어야 하고, 사람들과 대화를 이어 나가야 하는 지리멸렬한 시간들이 나를 가득 채운다. 떠돌며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피로감을 느낀다. 걷고 보고 만지고 먹어본다. 이런 행위에는 아무런 이유가 없다. 배고파서 먹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어서 누구와 자는 것도 아니다. 모든 욕망은 기계처럼 자동화되어 있고 모듈화 되어 있다. 작동은 알고리즘에 따른다. 의지와 무관하다. 아니, 처음부터 의지가 없었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그를 의심한다. 누가 그를 만들었는지, 어떤 이유로 여기에 있어야 하는 것인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라는 기계 장치만을 확신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다시 담배를 피우고 싶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첫 모금에 즉각적으로 후회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목적도 이유도 없이 거리를 다니는 사람, 언젠가부터 그는 그래 왔다. 그래서 어디 새로운 곳에 단체로, 누구와 같이 가도 즐겁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왜 있을까에 대한 응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건 변함이 없다. 이렇게 혼자 낯선 곳에 떨어져 나와 있어도 그런 사실은 변함이 없다.


여행 좋아하세요?

글쎄요, 좋아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썩 나서기는 싫은 성격입니다.

싫어하시는군요.


상대는 한 순간에 그를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렇지 않다. 사람의 행동은 변한다. 마음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이유 없이 몸이 그렇게 하기를 원할 때도 있듯이 수시로 몸은 안정을 유지하다가도 어디로 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전에 그걸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몸이 그렇게 변하는 것을 마음이 그런 식으로 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는 철저히 유물론적이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나와 있는 것도 여행이라면 여행이다. 목적도 방향도, 이유도 없는 그런 여행, 그런 여행을 그는 평생하고 있다. 시험을 봐도 이유에 소명하지 못했고, 거리를 걸어도 방향을 정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는 늘 돌아갈 곳이 없었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남들은 귀소본능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이유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기차역 앞의 노천 광장에서도 잠을 청해 보았다. 비가 왔다. 얼굴에 떨어지는 비를 피해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유는 그렇게 나약하게 만들어진다.

똑똑한 사람은 이유를 모두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하고, 그렇지 못했다. 그는 이유를 모른 채 살았다. 열일곱이 되면서 딱 육십까지만 일하자고 마음먹었고, 열여덟이 되면서 공부를 왜 하는지 역시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건 시험의 폐단이었다. 그는 공부가 즐거웠다. 수학문제를 풀어낸 후의 즐거움, 몰랐던 걸 새로 알게 된 지식이 주는 즐거움, 이런 것들이 그를 즐겁게 했다. 거기에 시험이 끼어들면서 즐거움이라는 이유를 상실하고 말았다. 순수한, 다른 목적이 없는, 그 자체가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시험에 붙어야 하고, 평가를 받고, 나이가 들어서는 보수를 지급 받으면서 이런 과정이 철저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인간으로서의 비탄에 빠지게 되었다. 순수한 즐거움은 사라지고 억지로 즐거움을 만들고는 그것을 찾아다녀야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여행의 목적이라고 하지 않을까, 의심했다.


아름다운 사실 하나는, 우리에겐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 여행도 우리들의 삶도. 그러니 슬퍼할 일도 그래서 크게 낙심할 일도 아니다. 그가 여기 어딘가에 뚝 떨어져 혼자 나와 서있는 것처럼, 당신들도 언젠가 이런 낯선 곳에 서서 그와 같은 생각을 하며 거리를 단지, 걷고 있을 테니까. 그 때 걸음이 그를 걷게 하는 것이지 그가 걸음을 걷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멈추게 될 것이다. 그렇게 떠돌며, 낯선 자들과 함께 있어야 하고, 낯선 음식에 초대되어야 하며, 심지어 낯선 자들의 침대에도 들어가야 하는, 그게 바로 그와, 당신의 여행이다.


이제, 당신도 꿈을 꾸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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