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의 素懷

호모사피엔스에 대항하는 네안데르탈인

by 별사탕



전국시대, 장의가 식객 노릇을 할 때, 주인집의 벽옥을 훔친 도둑으로 몰려 치도곤을 당한 후 집으로 기어서 돌아온 일이 있었다. 평소 밥벌레라고 자신을 구박하던 형수를 보자 장의는 말했다.


"형수님, 제 입 속의 혀는 성한가요?"


그랬던 그가 진나라의 재상이 되어 금의환향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장의의 형수는 버선발로 마을 입구까지 뛰어나와 장의가 탄 가마 아래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장의가 형수에게 물었다.


"전날에는 그렇게 나를 구박하더니, 오늘은 이게 무슨 일이신가요?"


형수는 쩔쩔매는 시늉을 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지금은 진나라의 재상이시잖아요."


장의는 당시 연횡이라는 외교정책으로 진나라가 주변국을 정리 합병하는 데 공을 세웠다. 말로써 한 것이다. 당시 교육은 말하기, 즉 수사가 가장 중요한 과목이었다. 정치판에서 권모술수에 능한 말하기를 가르친 것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은 기정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좀 더 들여다 보면, 소위 군자와 성군은 명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법이다. 명분이란 무엇인가, 원리 원칙이며 인민의 뜻이라고 하는 거대한 타자의 이익을 대변했다. 즉, 내가 나서는 것은 나의 작은 이익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이 주변을 움직였고, 말과 행동에 힘을 싣게 되는 연유가 된 것이다.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그리고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어느새 세상이 이런 세상이 되어버렸구나 하는 낭패감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은 워낙에 뿌리가 깊어서 인간의 근원적 모습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좌절을 겪게 되는 부분이다.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 그들이 하는 말과 행동 이면에 감추고 있는 이기적 욕심이 훤히 보이는 것은 맹목적인 자세로 세상을 살아온 나 자신을 당혹스럽게 한다. 그들의 말과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아무런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이 포인트에서, 수사학의 필요성을 느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나를 지키기 위한 수사학, 말하기 전략을 배워야 할 때인 것 같다.


장자는 군자를 물에 비유했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박하고, 소인의 사귐은 술과 같이 달다.(君子之交 淡若水 小人之交는 甘若醴)


물처럼 담박하다는 말은 그 속에 아무것도 없는 뜻이다. 감추는 게 없다는 말일텐데, 타인들이 감추고 있다는 이기적인 목적 같은 것이 끼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기 시작했다. 반대로 내 속에 든 것을 확인해보니 아무것도 없다. 있다고 한다면 원리, 원칙, 규정, 인간의 도리, 심하게 말하면 이기심보다는 이타심이 앞서는 그 무엇들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걸 발견하게 된 계기가 타인들 때문이다. 타인들이 드러내 놓는 각종 이기적 언변들에 대적할 만한 것이 내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뜻일 게다.

그 때서야, 아! 하고 깨달은 바가 생겼다. 어릴 때부터 니 생각을 말해봐, 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바보라 그랬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식견을 마련하지 못한 미성숙한 상태라 그랬을 거라 짐작을 한다. 하지만 지금에도 역시 그 사정은 같다. 사회 전반적으로 이해에 관계되는 특히 나 자신 개인의 이해와 관계되는 부분에 있어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래도 그만이고 저래도 그만인 상태를 늘 유지하고 있다. 죄다 나와 아무 관계없는 일들이다. 일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그들이 하게 내버려두어라. 하지만 원리와 원칙에 어긋나고 집단의 큰 틀에 어긋난다면 그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바로잡는다. 철퇴로 내려치고 사정없이 욕설을 퍼부어서라도 바로잡는 데는 앞장선다.


각설하고, 그래서 장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소진과 함께 절친이기도 하면서 라이벌이기도 했던 두 사람을 사마천같은 사람은 천하의 모사꾼이라고 평가하는가 하면, 제갈량같은 사람은 나라를 바로잡았던 인재들이라고 후평을 하기도 한다. 통일의 업적을 세운 장의를 온 백성이 싫어한 이유는 그 방법이 소인의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토사구팽 당할 것을 염려한 장의는 자신의 무기 잔꾀를 부려 진나라를 탈출한다. 그는 탈출한 지 1년만에 자연사했다.

지금 현생인류속에, 권모술수에 능했다는 사피엔스의 후손들 속에 어쩌면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정직한 품성의 네안데르탈인의 부류도 드문드문 살아 있지 않을까? 그들이 이끄는 정의의 길로 인류는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거짓은 짧고 진실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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