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원짜리 기억

by 별사탕

인간은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답을 찾고 있는 동물로 보인다. 그래서 두고 두고, 머릿속에서 해결이 안 되는 사건과 사고, 각종 에피소드 이벤트들이 가시가 박혀 있는 살틈을 어루만지며 소가 여물을 반추하듯 늘어나는 위장의 갯수만큼 지난 일들을 되씹어보는 것이다.

그 망원경은 20원짜리였다. 아마도 학교 앞 문방구 어니에선가 산 것이 틀림없었다. 표면이 오돌토돌한 연두색 플라스틱 통에 유리알 큰 것과 작은 것을 경통의 앞 뒤로 붙였고, 눈을 대는 접안 렌즈 쪽과 대상물을 향하는 대물렌즈를 담고 있는 반대편 테두리가 검은 색이었던, 그 테두리 안에 작은 것과 큰 것의 유리를 끼워 넣은 20원짜리 망원경.

나의 이상한 이야기는 이 망원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집집마다 저녁을 해먹고 나서, 고등학교 후문 뒤에 그 학교의 축구부가 합숙하며 운동하는 작은 운동장에 나와 노는 것이 동네사람들의 저녁 한 때 일과였던 시절이었다. 나는 운동장 가운데 서서, 20원짜리 망원경의 경통을 쭉 빼들고 접안렌즈에 눈을 갖다 댔다. 그리고 노랗게 빛나는 달덩어리를 찾기 위해 허공을 망원경 잡은 오른 팔로 두리번거렸다. 망원경 안에는 노랗게 밝은 달이 눈부신 빛덩어리로 휙휙 두어번 왔다 갔다 했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고함 소리와 뛰어 다니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그렇게 고함치고 뛰어 다니는 아이들 한 가운데, 나는 별을 관측하러 나온 천문학자가 되어 오늘 처음 개시하는 장비를 빼들었던 것이다. 꼼짝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뻗은 팔에는 망원경이 들려 있었고, 한쪽 눈을 질끈 감은 외눈은 좁은 렌즈 안으로 눈알을 다 쏟아 부을듯 접안통을 눈두덩 안으로 바짝 밀어넣었다. 모름지기 관측자의 자세는 그래야 했다. 나는 그 때 혹시, 달에 살고 있다는 토끼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동그랗게 달이 대물렌즈의 유리창에 가득 들어왔다.

이제 부터 천문학자의 관측기술이 필요하다. 초점을 맞춰야한다. 모든 관측의 시작, 초점맞추기였다. 대물 경통을 내쪽으로 당겼다가 천천히 밀어내며 적당한 크기로 달의 크기가 확보되면 멈춘다. 천천히 경통을 멀리 뻗어내며 촛점이 맞을 때까지 화면을 확대해 나간다. 나는 속으로 관측자의 주문을 외었다.

천천히, 천천히...

대물 경통이 대안 경통 밖으로 빠져나가며 달이 조금씩 커져갔다. 20원짜리였다. 그런데, 한 순간! 나는 선 채로 온몸이 빡 굳어버렸다. 주문을 외던 입도 벌어진 채 함께 멈추었다. 망원경 속에는 아폴로 11호가 달에 갔을 때와 같은 화면이 등장했던 것이다. 달의 분화구가 하얀 줄기로 빛을 냈고, 우와우...! 나는 속으로 캄탄사를 연발했다. 접안통과 접물통을 그 위치에 고정시킨 채 달의 구석구석을 눈으로 훑었다. 여러 개의 빛나는 분화구 아래로 검은 그림자가 바닥에 깔려있는 지면, 그리고 전체적으로 밝게 빛나는 평평하고 둥근 면적들, 그것은 늘 보던 노란색의 달을 뚫고 망원경이 달 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갑자기 뒤통수에서 딱하는 소리가 났다. 이부가리로 깎은 내 뒤통수를 누군가 내려친 거였다. 달과 망원경 사이를 유지하고 있던 일직선의 관측 각도가 한 순간에 무너졌고, 대물렌즈 통 안에서 달이 심하게 흔들리며 사라졌다. 아주 짦은 순간이었다.

아이, 씨!

나는 뒤를 돌아볼 여유도 주지 않고 바로, 다시 접안렌즈를 눈두덩에 갖다 붙였다. 다시 달을 화면에 잡고, 천천히 천천히... 달과 대물렌즈와의 거리를 조절해 나갔다. 이번에는 '야, 잡아봐라' 하는 소리가 들리며 내 바깥에서 뻗어온 팔이 나를 밀쳤다. 몸 전체가 통째로 관측지점에서 떠밀려 나갔고 망원경은 금세 눈에서 떨어져 나갔다.

뭐고!

그러는 사이, 손에 들렸던 망원경이 다른 손에 의해 나꿔채 나갔다. 종만이었다. 나는 달아나는 종만이에게 버럭 화를 내며 그를 뒤쫓았다. 그렇게 운동장을 반 바퀴 돌았고, 흙바닥을 뒹굴던 망원경을 다시 주워들고 헉헉거리는 숨을 고르며 다시 눈에 들이댔을 땐 이미 달의 분화구는 사라지고 없었다. 엄마가 언덕 위에서 목청이 터져라 내 이름을 부를 때까지, 나는 망원경을 눈에서 뗄 수 없었다. 다시 재생되지 않는 화면만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나는 안타까움으로 가득찬 좌절을 그날 밤 맛보았다.

종마이 새끼!

종만은 나보다 3살이 많았던가, 내가 다닌 국민학교에서 운동회 모자를 삐딱하게 쓰고 아이들의 물건을 뺏어 주머니에 한가득 넣고 실실 웃어대던 모습을 학교에서 본 적이 있었다. 6학년 완장을 차고 있었다. 나는 그때서야 종만이 나와는 거리를 둘만큼 뭔가 격차가 나는 사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동네에서는 언제나, 늘 꾀재재하고 더러운 천변의 물떡집 아들에 지나지 않았다. 산으로 올라가는 개울 옆 학고방 안에 신발벗고 방문을 열고 올라서게 되어 있는 그 좁안 안 마당에다가 연탄불을 두개 놓고 한쪽은 큰대야를 올려 놓고 국물을 졸이는 속에 대꼬챙이에 가래떡을 꽂아 담가놓고 팔았다. 나머지 연탄 화덕엔 오징어 다리나 설탕과자 같은 걸 굽거나 끓여 팔았다. 어찌보면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는 동네 천덕꾸러기 같은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학교에서는 완장을 찼던 것이다. 순전히 덩치때문이었다. 종만이는 웬만한 중학생보다 키가 컸고 얼굴과 살이 붙어 몸집도 퉁퉁하게 떡대가 좋아 보였던 아이였다.

나는 그후 어떻게 하면 분화구에 환히 불을 밝힌 달을 망원경 속에서 다시 볼 수 있는지 연구, 아니 기구했다. 간절하게 빌었단 얘기다. 늘 주머니에는 반으로 접은 그 20원짜리 짧은 단망경을 넣고 다녔고, 주머니 밖으로 끄집어냈을 때 연두색의 그것이 늘 내 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안도감, 애착물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는 분리불안과 동시에 안타까움, 과거의 영광을 언제든 재현할 수 있다는 우연적 필연을 바라면서 밤마다 나는 아이들로부터 뚝 떨어진 곳에 서 있거나, 하늘이 뚫린 야적 창고에라도 들어가 하늘을 향해 망원경을 길게 펴고 대안 렌즈의 유리알을 눈꺼풀에 밀착 시켰다. 밤이 오면, 달이 뜨기만을 기다리면서 나는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주문을 외며 은하수 어느 틈엔가, 시간이 멈춘 어느 지점에 나는 붙들려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어딘가, 나를 데려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뒷자리 2인석에, 내가 안에 엄마가 바깥에 앉았다. 여전히 변함 없이 나는 손에 든 망원경의 오돌토돌한 표면의 감촉을 느끼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버스가 덜컹하고 급정거를 했다가 다시 갔다. 그러는 사이에 나는 망원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런데 내가 앉은 자리는 바퀴가 불쑥 올라와 좌석도 무릎을 세워 앉는 그런 불편한 자리였다. 망원경이 떨어져 그 요철 부분을 타고 넘어가 앞자리로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난감해졌고 안절부절 못했다. 앞에 가서 앞사람의 다리를 들고 그 속에 떨어져 있는 망원경을 꺼내야 했다. 나는 속으로 어쩔 줄 몰라 엄마를 한번 쳐다봤고, 다시 앞사람의 뒤통수를 쳐다 봤다가 할 뿐이었다. 누군가 이 사태를 해결해 주었으면 싶었지만 버스는 달렸고 엄마는 내려야할 정거장을 계산하느라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버스가 서자 엄마가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내려야하는 정거장이었다. 나는 엄마 손에 끌려 나가면서 계속 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엄마손을 뿌리치기 위해 힘을 주며 연방 망원경이 있는 좌석의 바닥을 쳐다보았다. 안경쓴 어른이 앉은 자리였다. 엄마 손을 뿌리치고 달려가려는 순간, 엄마의 더 큰 손아귀 힘에 끌려 버스에서 강제 하차 당하고 말았다.

20원짜리 망원경과의 결별은 그렇게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둥글게 자기 몸을 굴리고 있을 버스 좌석 밑에 있는 그 망원경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 망원경이 보여주었던 달의 분화구를 떠올린다. 그리고 6학년 완장을 차고 있던 종만이를 생각한다. 수학여행을 서울로 가서 돌아오지 않았던 종만이나, 한번 손에서 놓쳐버린 것이 영원한 작별이 되어버린 20원짜리 망원경이나, 모두 나에겐 속절없이 헤어져 버린 것들이다.

그리고 다시 반복되지 않는 재생불가능한 그 장면에 대한 기억, 우물 옆에 덕이네 집 문간에서 아이들의 아랫도리를 내리게 하고, 학교에서 쓰는 핀셋으로 꼬맹이들의 고추를 뒤적거리면서 내가 천문학자였던 것처럼, 그는 생리학자가 되어 심각한 표정으로 아이들의 신체를 관찰하며 진지하게 어둠에서 반짝이던, 종만이의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20원짜리가 만들어준 것이 20원짜리 기억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거기에는 잴 수 없는 깊이의 샘이 있었다.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이해 할 수 없는 불가사의한 현상이었으며, 그래서 더 오래 지워지지 않는 삶의 기록이 되어 내 가슴에 남아 있게 되었다. 그것은 나에게만 일어난, 아무도 납득시킬 수 없는, 그래서 아무도 모르는, 믿든지 말든지 한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 일과, 또한 이일과 관련한 어떤 이야기도 말할 수 없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