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삼이

by 별사탕

야, 영삼이가 뭐 되고 싶다 했는지 아나? 연탄장사란다! 연탄장사!


동네 아줌마들이 햇살이 내려 쪼이는 담벼락에 붙어 앉아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영삼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을 못했다. 공부 때문인지, 학비 때문인지 알 수없었지만 그는 늘 낙천적이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빨래판에 연탄을 올려놓고 머리에 이고 나를 때, 영삼이는 등짐을 지고 같이 날랐다.

연탄 배달은 마을의 진풍경이었다. 우리 같은 아이들은 손에 손에 검은 탄을 하나씩 들고 마을로 올라오는 길을 따라 올랐다. 이렇게 동네 아이들까지 다 나온 것은 자기 엄마가 연탄을 나르니 그 자식들도 덩달아 일하러 나온 것이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누가 돈을 준다고도 하지 않았는데도 온 동네 사람들이 줄 서듯 동네 아래로 내려가 누구는 맨손으로, 누구는 빨래판으로, 누구는 양재기로, 또 누구는 전문 장비를 동원해서 연탄을 날랐다. 우리 집에 200장, 우석이네 집에 300장, 등너머 지주네 일꾼 마당 광에 500장 이런 식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영삼이는 오후 서너 시, 우리가 학교를 파하고 마을로 돌아올 때면 늘 마을 중턱 우물가 위쪽에 서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또래 친구들이 모두 학교에 가버렸고, 중학생 동생들이 돌아올 시간부터 고등학생이 된 친구들을 기다리면서 늘 거기에 서 있었다.


니는 와 만날 거 서있노?


하고 우물에 온 아줌마가 물으면,


아아들 안 기다립니꺼.


하면서 멀리 마을 아래로 시선을 던져놓고 있었다.


와, 니도 학교 가지 그랬나?

언지예, 지는 연탄 배달 할낍니더.

와, 하필이모?

한 장 날라주믄 돈을 안 줍니꺼? 그래가 나중에 연탄 공장 채릴라꼬예.

야, 니 그 푼돈 모아서 언제 연탄 공장 지을라카노?

다 뜻이 있는 쪽에 길도 안 있겠심니꺼?


그때부터 동네 아줌마들에게는 영삼이가 기특하고 대견한 존재로 이름이 오르내렸다. 특히 자식들이 산으로 들로 돌아치면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 어김없이 영삼이의 이름이 끌려 나왔다.


영샘이는 연탄 배달해 가 돈 벌라카는데 니는 뭐시될라꼬 그래 싸돌아 댕기쌓노? 으잉?

니 줄돈 있으모 영샘이 연탄 공장 짓구로 거다 보태주겠다, 참말로!


이런 식이었다.


어떤 겨울의 길목, 진짜 영삼이가 마을에 나타났다. 낮부터 축구부 합숙소 운동장이 사람들로 분주했고, 마을이 생긴 이래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온 적은 없을 만큼 작은 운동장이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사람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머리 위에선 마이크 소리가 쩌렁쩌렁 울렸고, 소리가 나는 쪽을 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몰려 선 맨 앞으로 나가야 했는데, 나는 그쪽으로 나가고 싶은 생각조차 먹지 않았다. 그저 사람들이 이렇게 빽빽하게 많은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을 뿐이었다. 아이들과 어른들 사이를 헤집으며 잡기 숨기 놀이를 하며 군중들 사이에서 놀았다.

갑자기 마이크 소리가 절벽 만나듯 뚝 끊어졌다. 함성이 터졌고, 모든 사람이 박자에 맞춰 일제히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이어졌다. 메아리쳤던 확성기의 소리가 사람들의 육성으로 대체되었다. 동시에 하늘에서 삐라가 내려왔다. 하늘을 가득 메운 하얀 종이들이 하늘에서 팔락거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은 한 장씩 삐라를 주워 들고 누군가를 따라 운동장 입구 쪽으로 몰려 나갔다. 순식간에 사람들이 운동장에서 사라졌다. 꿈같은 일이었다. 사람들이 빠져 나간 자리에는 동네 아이들이 듬성듬성 부표처럼 떠 있었다. 학교의 소사 아저씨가 입구에 나타나 떨어진 삐라를 줍기 시작했다. 나는 사방을 둘러보았다. 마이크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곳에는 빈 연단이 보였고 그 위에는 역시 텅빈 단상이 하나 서 있었다. 아이들이 삐라를 밟으며 다시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온 운동장에 흩뿌려진 삐라들 위로 천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 날이 내가 20원짜리 망원경으로 달을 보았던 그 밤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나도 삐라를 한 장 주웠다. 동그란 얼굴의 남자가 웃고 있었고, 그 아래로 숫자 2가 동그라미 속에 들어있었고, 그 옆에 굵은 글씨로 김영삼이라고 쓰여 있는 종이였다. 나는 놀라 소리쳤다.


영샘이다!


최연소한 나이, 스물다섯 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는 그 사람이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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