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녀는 일을 하지 않고도 꼬박꼬박 일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속으로 아싸 다리구를 외쳤다.
이 땅의 주인인 성씨는 성실한 농사꾼이었다. 그의 외모가 그의 성실함을 말해주었다. 거짓 없는 몸을 가진 성씨였다. 사시사철 검게 그을린 피부에 여윳살이라곤 조금도 없는 강마른 체형에 이제 갓 마흔이 조금 넘은 남자였다. 눈 또한 순하고 다감한 빛을 가지고 있었다. 긴 속눈썹에 그 큰 눈을 몇번 떴다 감으면 소가 눈을 껌벅이는 것처럼 순박하고 신실했다.
문제는 그의 형이었다. 형이라는 사람이 데데하게 살이 쪄서 부러 내밀지 않아도 앞으로 툭 내밀어지는 배에 땅딸한 키로 여기저기 설치고 다니는 성격으로 동네에서 말이 많았다. 땅딸이 이기동이라는 별호가 그를 대변했다.
이들 형제가 이 마을에 살기시작한 건 일제가 토지 조사를 하기 시작하던 때였다고 전해왔다. 당시 임자가 나서지 않는 조선인의 땅을 헐값에 일인들에게 넘기던 시절이었다. 베어낼 만한 재목도 없었던 산은 더 헐한 값으로 나왔고 심지어 논을 처분하면서 덤으로 묻어 넘어온 땅이었다.
그걸 일인들로부터 더 헐한 값으로 불하받았고, 부부가 그 땅에 들어와 진득하게 비탈을 개간해서 지어먹고 산 것이 오늘날 이 산의 임자로 살게 된 것이었다.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짓는다고 한 것이 지금의 집이었고, 그때의 그 말처럼 그들의 집은 이 동네에서 가장 규모가 큰 기와집으로 마을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석등이 마당에 있고, 작은 소나무 향나무 회나무들로 조경이 되어 있는 집은 그 집 뿐이었다. 늘 부엌 바닥에는 짚이 푸근하게 깔려 있었고, 하얀 회벽에는 소반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마당에는 일꾼들이 늘어앉아 새끼를 꼬고, 도리깨질을 하고 수확물들을 널어 말렸다.
나는 마당에 늘어선 그 집 사람들 사이의 틈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를 제재할 시간조차 주지 못하도록 그 집 마당을 쏜살같이 빠져나가 건너편 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뒤를 돌아봤지만 나를 잡으러 따라오는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밭과 밭 사이 겨우내 거름을 하려고 동네의 인분을 모아 놓은 거름밭의 담 위에 올라서서 내가 달려왔던 길을 뒤돌아 보았다. 작은 길을 따라 풀들이 자랐고, 나뭇가지로 지지대를 만들어 놓은 등걸에는 노랗게 호박꽃이 한창이었다.
발을 헛디디면 똥밭에 떨어진다. 나는 조심스럽게 걸어 옆 밭으로 뛰어내렸다. 그때부터 천천히 산길을 따라 걸었다. 연애바위가 있는 산 중턱까지 가볼 심산이었다. 마을에서 멀어지면서 온 세상이 고요하고 적막해 졌다. 사방의에서 새소리 바람소리가 맑고 깨끗한 공기처럼 다가왔다. 산 중턱에 커다랗게 박혀있는 바윗돌, 위는 평평하고 아래로는 둥글게 원을 그리며 흙속에 묻혀있는 거대한 한 개의 바위였다. 봄가을에 연날릴 때가 되면 온 동네 애들이 연애바위로 몰렸다.
멀리 학교가 보이고 학교 담을 연이어 갈대숲이 보였다. 갈대숲 옆으로 마을 사람들이 밭에 나와 일하는 모습이 보였다. 모두 저마다의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뭔가를 심는지 뭔가를 뽑는지 조금씩 일을 하는 장면이었다. 그들 한가운데 땅딸이가 서 있었다. 그리고 내가 올라온 가파른 산의 모습이 연이어 보였고, 바윗돌 위에 놓인 내 신발이 보였다. 발가락 사이에 까맣게 줄을 만든 때가 햇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도 바람이 시원했다.
마을 뒷산의 한쪽은 마을이 들어섰고, 나머지 반대편 한쪽은 계단식 밭이었다. 이 밭들을 다 지나면 옆마을로 건너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 아래 큰 도로를 따라 학교에 갈 수 있지만, 이 산길을 따라가면 바로 학교 앞으로 떨어지는 지름길이기도 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이 길을 따라 학교 가는 길이 훨씬 빨랐다. 큰길로 내려가 중학교로 가려면 어쩌면 버스를 타고 갈지도 모를 먼 길이었다.
무슨 소린지 땅딸이가 고함치는 소리가 산위로 울려 퍼졌다.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아마도 지랄지랄을 하는가 보았다.
밭이믄 지 밭이가? 지도 꼴랑 지동생 밭에 붙어먹고 살믄서. 지랄은 지랄이고?
할머니가 그들의 밭에 나가 잠시 품앗이라도 할냥이면 늘 그런 푸념을 섞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문을 들어섰다.
내가 뭐 한 푼이라도 얻어 쓸라고 간기가? 내가 엉, 내가!
할머니의 불만은 순전히 땅딸이의 잔소리 때문이었다. 늘 그의 잔소리에 이골이 나서 더는 소일거리 못하겠다며 앞치마를 털어댔다.
저 아래 밭 가운데 선 땅딸이가 누군가를 향해 팔을 뻗어 손가락질을 했다. 그리고 팩 돌아서서 밭에서 멀어져 갔고, 뒤따라 아줌마 하나가 일어났다. 그렇게 땅딸이는 앞서고 누군지 모를 아줌마 하나가 그 뒤를 따랐다. 갈대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땅딸이가 걸어 들어갔고 죄지은 듯한 아줌마가 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 들어가는 장면이 바위 위에 앉은 내 눈에 훤히 다 들어왔다.
그렇게 한참을 둘이 간격을 두고 걸어 들어가더니 학교담이 꺾이는 부분에서 땅딸이가 담을 끼고돌았다. 그리고 이어서 아줌마도 따라 돌았고, 그 둘은 갑자기 끌어안고 갈대밭을 뒹굴었다.
나는 저것도 땅딸이가 하는 지랄 중 하나인가 싶었다. 그리고 할머니가 불평 끝에 한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썩어 문드러질 것들이, 누굴 왕서방의 복녀로 아는 기가!
나는 왜 땅딸이를 동네사람들이 수군대며 왕서방이라며 눈을 흘기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거기엔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었을 것이고, 그 비밀은 아이가 알기엔 대단히 어렵고 복잡한 것이라고 대략 짐작할 뿐이었다.
그날 내가 본 것은, 뺑코의 무리가 막다른 골목 끝에서 함께 들여다 보고 있던 사진첩의 장면과 자꾸 겹쳤다. 왕서방, 복녀의 왕서방, 알 듯도 모를 듯도 한 땅딸이의 또 하나의 별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