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깨지는지 와장창, 하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고 사위의 고요 속에 귀를 세웠다가 다시 만화책에 코를 박았을 그 짧은 시간이었다. 후다닥, 한 마리 사슴이 방문을 열고 뛰어들었다. 단발을 한 그 사슴은 놀랍게도 아무 것도 입지 않은 알몸 상태였고, 내가 반쯤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 얼굴을 숨겼다.
니, 내 몬 본 기다. 못 봤다, 알제?
사슴이 바들바들 떨었다. 나는 사슴을 숨겨주고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 아내를 얻은 나무꾼을 생각했다. 사슴은 몸을 동그랗게 웅크린 채 내 옆에 바짝 붙었다. 나는 그날 무슨 일인지 학교를 가지 않았다. 아침밥을 먹고 자다가 다시 일어나 방문을 열어 마당을 한번 쳐다봤고, 부엌문을 열어 엄마가 있는지 확인했을 뿐이었다. 이쪽 방도 저쪽 방도, 심지어 부엌에까지도 아무도 없었다. 다시 방으로 돌아온 나는 방구석을 뒹굴거리다가 굴러다니는 만화책을 집어 들었던 참이었다.
모른다 캐라, 그 사람이 올끼다, 모른다 캐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았다. 옆을 돌아보고 겉으로 표가 나지 않도록 이불을 펑퍼짐하게 펴지도록 다독였다. 그리고 사슴이 웅크린 것을 뒤로 가리고 이불로 아랫도리를 감싸고 똑바로 앉았다. 방바닥에는 만화책을 펼쳐두었다.
밖에서 빠른 발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멀리 대문을 지나 집 안채로 들어오는 소리였다. 어느새 마당을 돌아 툇마루 앞에 누군가 서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친 숨소리가 방문의 창호지를 덜덜 진동시키는 듯했다.
요 있제! 있제!
굵은 남자 목소리는 울대를 컥컥대는 소리로 있냐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나는 겁이 덜컥 났다. 순간 차가운 두 손이 앉아있는 내 엉덩이를 꽉 잡았다. 두 손은 문 밖의 저것을 어서 처리해 달라는 애절한 목소리로 들렸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갈 수도,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앉은 채로 팔을 뻗어 방문을 냅다 열어젖혔다. 미닫이 문이 쾅하고 틀에 가서 부딪쳤다가 반동으로 조금 튕겨 나와 멈추어 섰다. 평소에도 아귀가 틀어진 문이었다.
사나이가 서 있었다. 후줄근한 런닝 바람에 면바지 차림으로 마당아래 두 팔을 벌린 채 죽은 고목처럼 강마르고 비틀린 채 서 있었다. 헝클어져 내려온 머리카락 안쪽에서 찢어진 눈이 희번득거렸다. 그 눈은 어떤 것도 보지 않고 있는 눈이었다. 단지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던 이유는 도망나온 사슴을 찾겠다는 시선이 아니라 그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무언가 모를 불안과 망설임에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혼란의 눈빛이었다.
번쩍, 번갯불이 짜자작 소리를 내며 세상을 촬영하는 것 같았다. 이어서 쿠르릉, 천둥소리가 하늘 밑장을 울렸다. 쩍 하고 하늘이 두 쪽이 나는 듯했다. 사슴의 손끝이 달달 떨려왔다.
아제 눙교? 우리 집에 만다꼬예?
비가 쏟아졌다. 하늘은 먹장으로 가득 찼다. 산 밑에 마을 전체가 검은 구름 아래 들어왔다. 먼 산에 걸린 검은 소나기 구름들은 3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간을 스쳐 지나간다. 잠시 처마 밑에 피했다가 다시 갈길을 가면 되는 갑작스런 일기였다.
사나이의 뒤로 솨아, 마당에 심어 놓은 꽃들과 담을 끼고 돌며 심어 놓은 사철나무 무궁화 살구나무들이 비에 몸을 내어 주며 젖어들었다. 바람에 날린 비가 사나의의 등으로 들이쳤다.
있제!
갑자기 세상이 어둠으로 변했다. 담장 밖의 세계도 짙은 회색으로 변하며 우리 집을 감싸돌았다. 사나이의 오른손 끝에서 빗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다급하게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빗속을 뚫고 달려 들어온 사람은 엄마였다. 뛰어 들어온 엄마는 사나이의 뒤에서 순간 멈추어 서서 입을 뗐다.
누고? 미옥이 아부진교? 와 거 서 있습니꺼?
사나이의 어깨너머에 머리 위로 수건을 싸맨 엄마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툇마루 위로 올라서지 않았다. 엉덩이 뒤의 두 손이 나를 꽉 그러안았다. 나도 사나이처럼 숨이 차 올랐다. 또 대문소리가 들리면서 지랄지랄거리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사나이는 몸을 획 돌려 왔던 곳으로 돌아나가 버렸다. 그 사이 엄마는 툇마루 위로 올라와 비를 피했고 멀어져 가는 사나이의 뒤를 쳐다보았다. 사나이와 마주친 할머니가 길을 피하며 처마밑으로 얼른 몸을 피했다.
누고? 와 저라노?
미옥이 아부진갑심미더.
그 사람이 와?
또 일이 있었던 갑지예
할머니는 툇마루에 앉아 비 맞고 있는 꽃들을 내려다보았다. 치마폭을 훑어 쌈지 속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 후 연기를 빗속에 날려 보내며 말했다.
괘안타, 저 작은 것들도 장대비를 다 맞고 안 크나? 지나뿌믄 언제 그랬나 싶을끼다.
그 사이 엄마는 방으로 뛰어 들어와, 이불속에 숨은 사슴을 들추어냈다. 그제서야 나는 사슴이 끝방의 미옥이 엄마라는 걸 알았다.
이래 가 우짜노, 으잉? 이래 가 살겠나 그쟈?
엄마는 아줌마가 아무 것도 입지 않고 달려들어왔다는 걸 알아차리고, 자신이 입던 몸빼바지와 런닝을 단스에서 꺼내 주었고, 아줌마는 고개를 들지 못한 채 이불속에서 옷들을 껴입었다.
하이고, 이를 우짜노? 맞았나? 여, 여 보래이.
엄마가 보라는 델 나도 무심결에 쳐다보았다. 아줌마의 입술은 터져서 피가 흘렀고, 눈 주변은 벌써 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아줌마의 예쁜 얼굴이 다 망가져 불쌍했다. 그 치렁치렁하게 등을 덮었던 머리카락이 들쑥날쑥 다 깎여 나가 단발이 되어 있었다.
새댁아, 찌빼뿌라, 이래 가 살겠나, 어데?
아줌마는 등을 도닥이는 엄마의 무릎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입을 틀어막고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아줌마의 눈에서 달구똥 같은 눈물덩어리가 뚝뚝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날 이후, 나는 알몸으로 뛰어 들어왔던 아줌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다.
새댁이고 헌댁이고, 여자는 고마 남자탓인기라. 뒤웅박 신세라 앙카드나.
할머니의 담배연기가 방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구수한 향이 방안을 감싸 안았다. 나는 만화책을 접어들고 할머니옆에 앉아 내리치는 빗물을 쳐다보았다. 마루에 있던 내 스케치북이 바람에 흩날리며 속에 끼워둔 종이가 마당으로 날려갔나 보았다. 내가 그린 6.25 반공 포스터 한 장이, 갑자기 내린 물이 만든 물줄기를 따라 마당으로 돌아 하수구 쪽으로 떠내려 가는 게 보였다. 선생님한테서 잘 그렸다고 칭찬받은 그림이었다. 내가 봐도 선생님이 칠판에 그려준 철모를 쓴 미군의 모습과 똑같이 그렸다고 스스로 만족한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을 빗물에서 건져내지 않았다. 다시 말려서 보관할 수 있겠지만, 한번 일어난 일을 돌이키는 짓은 내가 할 일이 아닌 듯했기 때문이다. 뭐든 되는대로, 벌어진 채로, 지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라고 아버지는 늘 말씀하셨다. 붙잡지 말라, 내버려 두어라, 억지는 잘못된 인연을 만든다, 그러니 뭐든 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가끔 얼굴을 볼 수 있는 아버지는 알 수 없는 그런 말을 남기고 또 사라졌고, 그렇게 한 달도 갔고 두 달도 지나갔다. 그러면서 오늘 빗물에 떠내려 가는 그림을 보면서 나는 아버지가 말한대로 하는 것이었다.
내가 미안타, 못 볼 거 봤제?
아줌마가 말하는 못 볼 것이 어떤 걸 가리키는지 헷갈렸지만, 아줌마는 내게 보여주지 말아야 했을 장면들에 대해 미안해하는 것만은 마음으로 전해졌다. 엄마가 쪄온 감자를 나눠먹었고, 누룽지 튀긴 걸 들고 왔고, 사과를 깎아 먹었다. 아줌마는 웃다가 장난치다가 또 떠들다가 원래 밝은 성격으로 다시 돌아왔고, 미옥이는 잘 놀고 있더라 하는 엄마의 염탐을 듣고 그렇게 더 한참을 우리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다 되어서야, 남편 저녁을 차려야 한다면서 슬금슬금 방을 나갔다.
뒷춤에 차고 있던 칼 봤제?
밤에 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할머니가 담배를 피워 물고 말했다. 그 말은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혼자서 두런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안 내보내믄 사달이 날끼다!
밤이 깊었고, 세상은 다시 고요해졌다.
일요일 아침에 우리 동네 아이들은 모두 시내 큰 교회로 달려 내려갔다. 내가 교회입구에 섰을 때 입구에 벗어놓은 아이들의 운동화가 산처럼 쌓여 벗어둘 틈이 없었으므로 나올 때 어떻게 신발을 찾을지 걱정을 하게 만들었다. 커다란 대청마루에 개인 방석을 깔고 그 위에 모두 무릎을 대고 앉은 모습이 보였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앉아 앞을 쳐다보았다. 사람과 사람 사이 틈도 없이 껴앉은 사람들로 와글거렸고, 이내 마이크가 켜지고 목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그 많던 사람들의 입이 한꺼번에 잠잠해졌고, 누군가의 숨소리가 쌕쌕거리는 소리까지 들려올 지경이 되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길 잃은 어린양, 우리들의 형제자매들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로 시작된 목사라는 사람의 기도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나는 누가 감으라고 해서 눈을 감는 이런 행위를 처음 해보는 시간이었다. 어둡고 갑갑한 시간이 흘러갔다.
오후 3시가 넘어가면 학생들이 하나둘, 삼삼 오오 짝을 지어 하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산에서 내려오는 개천을 따라 오르막길을 사람들은 올라왔다. 그 길에 연결된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커다란 마을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의 집도 그 그물망 속 어느 한 개의 집이었다.
국민학생, 중학생, 나중엔 고등학생이 걸어 올라왔고, 저녁 먹을 무렵이면 집집의 가장들이 무얼 하나씩 손에 들고 각자의 집을 찾아 올라왔다.
그중에 6시쯤 되면 퇴근하던 남자가 있었다. 늘 하얀 와이셔츠에 양복 기지바지를 다려 입고 나타난 그 사람은 마을에 잠깐 살다가 사라졌다. 학교 다니는 우리 아이들을 모아 놓고 와이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린 채 6.25 때 사용한 미군의 기관총에서 1분당 발사되는 총알의 수를 우리들에게 물었다.
전쟁이 사람을 그렇게 빠르게 많이 죽이는 거야. 원자폭탄에 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들은 그 남자가 우리를 놀래키려고 말했던 증거자료의 수치와 통계에 놀란 것이 아니라, 그의 말씨가 예쁘고 고상한 서울 말씨라는 게 더 신기하고 놀라울 뿐이었다. 시골에서 볼 수 없는 깔끔하고 잘생긴 서울 사람이었다. 우리들에게 학습지를 보여주었고, 그걸 매일 풀면 좋은 중학교엘 간다고 자랑했다.
우리들은 그가 학습지를 팔러 다니는 외판원이라고 생각했고, 그 누구도 집에 가서 학습지에 대해 말하는 애가 없었다. 돈이 들었고, 공부를 그렇게 하고 싶은 애들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만이 학습지에 씌어있는 상식 코너, 과학지식 코너 이런 네모 안에 든 글이 눈에 들어왔고, 남자가 말하는 사이사이 그 글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발샘내, 숨 쉬는 소리, 땀냄새를 적절히 섞어주는 선풍기 소리에 익숙한 일요일 오전 한나절을 교회에서 보내는 사이 여기저기서 코 고는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이 보채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도 목사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날카롭게 마룻바닥 위를 지배했다.
나는 얼른 이 지루한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아멘과 동시에 어른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나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입구로 뛰어나가 내 신발을 찾아 신었다. 어서 빨리 마을로 돌아가 아이들과 뛰어놀고 싶었다. 그때 내 어깨를 잡는 손이 있었다.
국수 먹고 갈 거지?
하얀 와이셔츠의 그 남자였다. 차림은 변함없이 반듯하게 잘 다려진 하얀 와이셔츠와 옅은 쑥색 기지바지였다. 어쩔까 망설이는 사이, 뒤이어 나온 사람에게 그는 다시 정중하게 인사했다.
뒤뜰에 점심 드시고 가세요.
예, 선교사님. 그 국수 먹으러 왔는걸요.
깔끔하게 주고받는 서울 말씨였다. 그리고, 그 남자가 선교사로 불린다는 걸 알았고, 나중에 안 일이지만 목사도 될 수 있어 교회에서 비전 있는 자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남자가 다시 보여, 왜 우리 같은 구석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는지, 하며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아이들이 밀려 나왔고, 나는 그들과 함께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야, 너그들 그 아제, 선교사라는 거 아나?
그기 뭔데?
나중에 목사도 되는 갑던데?
그라믄 높은 사람 되는 거 아이가?
맞다!
그런 사람이 와, 우리 동네 같은데 사는데?
이런 얘기들을 지껄이며 우리들은 마을로 돌아왔고, 병원이 보이는 마을 밑에 이르렀고, 멀리 만화방이 바라다 보였을 때는 마치 희망봉을 바라보는 콜럼버스 같은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병원을 지나쳐 오른쪽은 마을로 올라가는 도로고, 왼쪽으로 접어들면 만화방이었다. 물론 병원과 만화방 사이에는 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건물 밑으로 천이 되어 흘러내리는 비밀통로가 있긴 했다.
야, 야. 저 봐라 저!
뭐? 어데?
한 녀석이 턱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만화방 쪽이었다.
저거, 켈로 아이가?
켈로? 뺑코 말이가?
나는 그쪽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뺑코의 뒷모습이 맞았다. 스포츠로 깔끔하게 깎아 올리 머리가 위에서부터 아래로 역삼각의 세모꼴을 했고, 바짝 마른 체형에 새다리처럼 가는 다리에 미제 청바지가 홀대처럼 다리를 싸안고 있는 차림이었다.
나는 뺑코보다, 그 옆에 선 여자의 뒷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아줌마였다. 둘이 만화책을 빌리러 가는 것이 틀림없었다. 나와 함께 다녔던 극화를 빌리러 가는 길인가 싶었다. 하지만 극화를 같이 빌리기엔 상대가 너무 어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아무 것도 모를 것 같은 나 같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이 남보기에도 크게 이상스레 보이지 않을 텐데, 아줌마의 이상한 선택이었다.
우리는 힐끗힐끗 뺑코와 아줌마를 훔쳐보며 건물 사이, 병원과 만화방 사이 동네사람만 다니는 하천 통로를 향해 내려갔다. 잘못 건너뛰면 물에 빠져 더러운 오물에 신발이 젖고 옷을 버릴 수 있는 악취로 뒤덮인 개천길이었다. 하지만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우리들 같은 동네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에 적합할 뿐이었다.
우리가 병원을 돌아 마을 입구가 멀리 보이기 시작했을 때, 건물들 사이 개천길을 따라 올라온 아줌마와 켈로가 길 위로 불쑥 나타났다. 큰 길을 건너면 마을로 들어서는 거였다. 그들은 지름길로 우리들 앞을 질러 나왔던 것이다. 아줌마가 켈로의 어깨에 올린 손을 얼른 내리고 만화책을 담은 보자기를 켈로에게서 받아 가슴 앞으로 안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둘은 사이를 벌려 마을로 들어섰고, 심지어는 켈로가 아줌마 앞으로 걸어나가 오르막을 먼저 올라가는 발길을 재촉하기도 했다.
니, 와 몸을 베베 틀어 샀노?
벤소갈라꼬...
하모, 가지 그라나?
무서버서...
다 큰기 뭐 무섭다 카노?
이번 참에 혼자 함 댕기 봐라.
화장실은 건물 끝에 혼자 외떨어져 있었다. 아줌마가 새들어 사는 한 칸짜리 집 옆에 담을 끼고 독립되어 있었다. 마당을 가로질러야 하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 현관을 지나쳐 또 어두운 회랑 같은 처마밑을 죽 걸어 나가 건물을 돌면 그 끝에 아줌마집이 나오고, 그 옆에 귀신 나올 것 같은 사당 같은 집이 한채 서있었다. 그것이 변소였다. 신문지가 벽에 붙은 쇠꼬챙이에 여러 장 꿰어있었고, 한쪽에는 시커먼 연탄을 줄 맞춰 세워 놓은 풍경이 떠올랐다. 변소 건문도 검게 칠이 되었고, 그 속에 연탄까지 모두 검은색 일색이었다. 그리고 똥덩어리가 무한대의 깊이로 떨어지는 아래의 지하세계는 절대로 발을 헛디뎌서는 안 되는 범접 불가한 지옥의 공간이었다.
엄마는 밖에 서있고, 거기에 나는 들어앉아 아랫배에 힘을 주며 늘 변소풍경을 만들었다. 무섭긴 했지만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 하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기며 어둠을 뚫고 나갔다. 변소문을 활짝 열어두고 자리를 잡고 앉아 엉덩이에 힘을 주었다. 빨리 일을 끝내고 자자는 심산으로 꼬챙이에 꽂힌 신문지를 미리 빼들고 마구 구겨댔다.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온몸이 오싹해지면서 나왔던 똥이 안으로 쏙 들어갔다. 그렇게 꼼짝 않고 귀만 쫑긋해졌다. 사방이 고요한 칠흑 같은 밤이었다.
흑흑흑...
분명 여자의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아줌마의 집에서 가늘고 또렷하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미옥이 아줌마의 낮은 울음 소리는 늦은 밤 어둠 속으로 낮게 깔렸다. 내 눈은 열린 변소의 문 밖 어두운 어떤 곳을 응시했다. 잡풀들이 깔린 흙바닥 너머 희뿌연 블록 담벼락이 보였고, 어둠을 넘어 담벼락 위로 그 무엇이 곧장 내게로 넘어올 것만 같았다.
아줌마의 울음은 끊어졌다 이어졌다를 반복하며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간간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남자가 괴로워하는 음성도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한 사람이 담배를 피우며 내 쉬는 한숨소리에 섞여, 아줌마는 구슬피 울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아줌마의 남편이 마당에 서있던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아줌마가 또 다시 슬픈 일을 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종당에는 두 사람이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고, 아줌마는 앓는 소리를 내며 뭐라 낮은 소리를 질러댔다. 남자의 목소리는 지금까지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기라도 하는듯 땅이 꺼져라 한숨을 뱉어 냈다.
가끔 박쥐가 검은 하늘을 펄럭거리며 날아다녔고, 고요가 지속되었다. 나는 신문지를 싹싹 소리가 나도록 비벼 종이를 헐게 만들었다. 이 어둡고 무서운 현실로부터 벗어나 얼른 닦고 방문을 열고 집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싶었다. 깊은 지옥 같은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 몇 덩어리가 퉁 소리를 내며 똥칸을 울렸다. 나는 얼른 신문지로 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늘어난 팬티를 올려 입고 그 위로 런닝 자락을 가지런히 하고 다시 그 위로 잠옷바지를 끌어올렸다.
그때 덜컹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변소 옆에서 들려왔다.
미옥이 데리고 교회로 와.
하얀 와이셔츠를 빳빳하게 다려 입은 선교사의 뒷모습이 멀리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다음 주 일요일 그의 교회로 가면 일용할 양식을 준다는 그의 말에는 긴가민가했다. 나는 그가 선교하려는 세계평화나 인류의 구원에도 관심이 없었다. 보지 못한 사탕을 입에 넣어주거나, 고픈 배를 채워 줄 잔치국수를 준다거나 하는 것에도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 교회 입구에 나레비 서서 검은 치마에 하얀 교복을 입고 서 있던 누나들을 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중에 유독 윤이 나는 까만 머리카락에 보조개가 쏙 들어간, 가슴이 봉긋하게 솟은 누나가 이상하게도 제일 보고 싶었다.
아줌마는 그 달 말 미옥이를 데리고 동네에서 사라졌다. 갖은 살림살이 세간은 그대로 버려둔 채였다. 아줌마들이 모여 야반도주했다고들 했다. 나는 국어 사전을 찾아 야반도주를 찾아보았다. 깊은 밤 도망감, 아줌마가 미옥이와 함께 아무도 모르게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이었다.
나는 아줌마가 버리고 간 극화들의 권수를 헤아려보았다. 모두 열권이었다. 만화방 주인이 찾으러 오기 전에 내가 갖다 줘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중 '여대생의 이중생활' 한 권은 내가 감춰놓고 두고두고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빌린 사람이 야반도주해서 남은 게 아홉권이라고 말하면 모두 해결될 것 같았다.
동네 아줌마들이 볕에 붙어 서서 수군대기 시작했다.
인자 켈로는 어짜노?
그마마 했으믄 됐다 아이가.
뭐가 또 있었나?
니 몰랐나, 저 밑에 재석이 아부지도 들락거맀다 안카나?
정말이가? 시상에!
그라이 누구를 믿겠노? 그쟈?
니 서방이나 간수 잘해라, 에라이 문디 가시나!
누가 할 소리를 씨부리노?
양푼을 끼고 골목을 지나가는 아줌마가 한마디 던졌을 때에야 그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그들 왕서방한테 안 가나? 돈푼이라도 줄랑가?
깔깔거리는 소리가 담을 타고 동네를 돌아 퍼져 나갔다. 나는 어떤 일요일,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엎드려 만화책을 보고 있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아줌마가 아버지 등에 올라타고 앉아 아버지 등뒤에서 살가운 웃음을 흘리며 말을 붙이며 깔깔대고 있는 장면이었다. 아버지 또한 그러는 것이 싫지 않은지 그대로 엎드려 만화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열린 부엌문 밖으로 엄마는 점심 상을 차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에서 선교사가 사라졌고, 자연스럽게 마을의 아이들은 시내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 대신에 하얀 교복을 차려입은 여고생 누나들이 세명씩 5명씩 모여 마을로 올라왔다. 누나들은 동네 아이들을 모아 놓고 손뼉을 치며 노는 놀이를 가르쳐 주었다. 서로 돌아가며 무릎을 치고 손뼉을 치고, 옆사람의 손뼉도 쳐가며 틀린 사람을 잡는 놀이였다. 나는 누나의 손바닥을 때리며 참 달달하고 보드럽고 고운 손바닥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번씩 때릴 것이 아니라 늘 내 손을 잡아주는 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나들이 온날 밤에는 유독 까만머리카락에 보조개가 쏙 들어간 그 누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러나, 좀처럼 누나의 얼굴은 자세한 모습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단지 뭉개진 그림처럼 뿌옇게 내 마음 속에 그려질 뿐이었다. 나는 더 또렷하게 누나의 얼굴을 가지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 누나의 얼굴은 여대생의 이중생활에 나오는 딸의 얼굴로 변해 있었고, 그녀의 얼굴 위로 한가득 물이 흘러 얼룩졌다. 그리고 입술 끝에 삐죽 삐죽 털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