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거리는 나귀 목의 방울소리가 아직도 유씨부인의 귓전을 맴돌았다. 아침 나절부터 응봉산을 타고 내려왔던 터였다. 단장을 짚고 목이 높은 모자를 쓴 서양인들이 셋셋 넷넷씩 어울려 항구와 호텔을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제물포라는 곳은 참으로 신세상이라는 생각이 들게했다. 일본군들이 일제히 내지르는 함성들 또한 갯터 마당을 들썩이게 했다. 거기에 조선인 장사치들과 하루벌이 일꾼들이 까맣게 그을린 얼굴로 듬씻한 모양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들 가운데를 방울 소리 딸랑거리며 헤치고 나선 것이었다. 나씨가 견마를 잡고 길녀가 뒤따른 모양새였다.
"저 건너엔 마을도 있으니 유람차 한번 건너 갔다 오시지요."
천대운이 월미도 유람을 유씨부인에게 권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유씨부인은 모든 것이 다급했고 불안했다.
"이 황차에 유람이라니요?"
마다했던 유씨 부인이었다. 그렇지만 길녀가 지속적으로 유씨부인의 귀에 말을 넣었다.
"저 건너 산에서 왜놈들이 대포를 쏘아대고 난리가 났습지요. 작년 세밑에 아라사 배들이 죄다 배가 깨졌어요. 저 꼭대기에 올라가면 이 쪽이 한눈에 들어옵지요. 도련님 안고 오르시면 눈앞이 확 트일 것이옵니다."
또 한 날은 이런 말도 하였다.
"월미산에 오르시면 저 서양배안이 한눈에 들어옵니다요. 타실 배를 미리 보아두는 것도 해롭지 않을 것이옵니다."
벌써 천대운의 객주에 머문지도 일주일이 되어 가고 있었다. 밥값은 못할 망정 눈에 자꾸 띄어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은 영 싫은 성미를 지닌 유씨부인이었다. 천대운에게 넌지시 건너 서메 다녀올까 한다는 운을 띄우기가 무섭게 천대운은 일을 실행했다.
"정판수는 거룻배 한 척을 물색하고, 길녀는 음식을 준비하렷다. 거처를 임해별장으로 하고 장서방에게 연락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대령토록 하라."
그렇게 해서 물자와 사람들로 넘쳐나는 항구를 뚫고 들어온 것이다. 활력이 넘쳐나고 있는 항구였다. 그러나 거기엔 왠지 모를 기운이 빠진 듯보였다. 살아는 있지만 맥은 짚이지 않는 눈든 소경같은 허깨비 같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듯했다.
"작년 섣달에 온 마을이 다 내쫒겼습죠. 왜놈들의 군대가 배를 타고 들어가 언덕 곳곳에 흙으로 담을 쌓아올리고 굴대를 놓고 포를 걸어 놓았죠. 내쫒긴 주민들이 몽땅 저기 언덕초입에 있는 감리서로 매달려 갔습죠. 죽일듯이 대드는 사람들을 감리서 판관들이 모두 옥에 가두고 왜놈의 군대에 집을 판 죄를 물었답니다."
일본이 아라사와의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주민들을 모두 내쫓은 일이 있었다. 거기에는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상민부터 양반 관리의 집까지 모두 헐값에 사들여 허물어 버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 자리에 포진지를 조성하고 허구헌날 포를 쏘아 댔으니 법을 집행하는 감리서로서도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상부를 통해 일본공사에게 항의를 접수해달라고 요구할 밖에 다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작년 초 겨우내 치렀던 전쟁을 인천사람들은 목격한 바 있었다. 남의 땅에 외국군대끼리 맞붙어 싸우는 꼴은 대체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뻔하고 분명한 사실 하나는 조선땅을 두고 아라사는 몰라도 일본은 분명 먹으려 덤비는 꼴이라는 것 쯤은 세살 먹은 아이도 그 속내를 빤히 들여다 볼 줄 알았다.
미곡 가마를 재 놓은 부둣가를 지나 각종 석재와 목재를 져나르는 인부들이 힘을 쓰는 모습들을 바라보며 유씨부인은 나귀의 등에 흔들리며 거룻배를 대놓은 잔교를 향해 나아갔다. 배에 오른 유씨부인은 천대운의 안방에게 천택을 맡기고 온것이 못내 마음이 놓이질 않았다. 두 여식과 함께 노는데 여념이 없는 천택이었으나 차고 앉아 돌보지 않고 있는 마음이 못내 아쉬웠지만 동네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던 붙임성 좋은 아이였다.
거룻배에 오르기전 뒤를 돌아 천대운의 집께를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서양집이 산꼭대기에 자리잡아 바닷가를 호령하는 듯했다. 그 아래 기와가 네모를 만들어 아랫채와 윗채로 나눠진 모습이 대궐에 붙은 문지기의 집 같이도 보였다.
"걱정 마시어요. 아씨들이 잘 돌보아 줄 것입니다요."
눈치 빠른 길녀가 유씨부인의 소개를 짐작하고 하는 말이었다.
"어서 타세."
유씨부인은 배와 잔교 사이에 걸친 도판을 밟고 배에 올랐다. 찬바람이 바다쪽에서 불어올라왔다. 모두의 옷자락이 세차게 바람에 날렸다. 길녀와 유씨부인이 흔들리는 배 안에 들자 납작 몸을 낮추어 선실이라고 만들어놓은 덮개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나씨는 별도의 배에 나귀를 실어 함께 오기로 하고 사공이 노를 들어 잔교 바닥을 속으로 집어 넣고 땅을 밀어냈다. 천천히 배가 밀려 나가며 선수가 돌았다.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지붕을 스쳐지나갔다. 끽끽 거리는 노의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오기도 했다.
"마님, 월미산에 오르면 아직도 일본 군인들이 있을지도 모르오니 함구하시고 그쪽은 쳐다보지도 마셔야합니다."
"왜놈의 군병이 아직도 있다는 겐가?"
"그러하옵니다. 저기 벌판에 군병들의 막사가 보입지요? 저것들이 모두 그네들 거처이옵니다. 밤이 되면 마을로 올라와 처녀를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습죠."
"뭐라?"
유씨부인은 섬찟 놀란 기색으로 변했다.
"지금은 마을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으니 염려 놓으셔요. 별장이라는 덴 나리꼐서 친밀하게 지내온 한성 이대감댁이라는 양반의 별장이라 그 청지기가 믿음직하옵니다."
청지기라는 사람이 마을이 들고 일어났을 때 앞장서 인천감리서에 달려갔던 인물이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성격 또한 괄괄해서 인근에 시비 붙을 만한 살함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가 섬 안에만 있다는 것이 제물포 사람들은 천만 다행으로 여기고 있을 정도로 괴팍하기로 소문이 나있었던 것이다.
배는 오가는 거룻배들을 지나쳐 거대한 일포드호를 향해 나아갔다. 사공은 일포드호가 정박해 있는 월미도 앞바다를 바라보며 마을의 초가가 보이는 섬의 오른 쪽 귀퉁이를 향해 노를 저어갔다. 섬에 가까워질수록 거대한 철선의 모습은 경관을 압도했다. 배의 중간중간에 박혀있는 거중기의 기둥은 월미산의 꼭대기에 필적했다.
"작년에는 포와로 가는 배가 사람들을 태웠습죠. 배가 떠나기 한달 전부터 사람들이 제밀 포구로 모였습죠. 배를 타려고 강화 해주에서들 내려도 오고, 여기 내리교회 사람들이 젤루 많이들 갔었습니다요. 들리는 소문으로는 죽을만큼 고생들을 하고 산다고 합디다요먼, 여기만큼이나 하려고요."
어떤 사람들이 아미리가행 배를 타는지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땅에서 살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저히 더 이상 살 수 없게 된 살함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인가. 유씨부인은 자신과 같은 처리의 사람들이 집도 절도 없이 떠도는 유랑인처럼 이국땅으로 흩어져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씨 가실 때 저도 데리고 가시오."
길녀는 자신의 속내를 이실직고해버렸다. 유씨부인은 순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얼굴로 길녀에게 물었다.
"왜 고국을 떠나려 하오?"
사공이 젓는 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길녀는 끽끽대는 노소리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님, 절대 다른 생각은 마셔요."
깊은 숨을 다시 들여마신 길녀는 천천히 숨을 뱉어 내며 조곤조곤히 자신의 속을 풀어나가기 시작했다.
"천대인 나으리의 아들을 보았습니다요. 안방 마님의 몸시종으로 본가에서부터 모셨던 아씨마님을 뵈올 면목이 서지 않는구만요. 약게는 작은 집으로 한밑천 잡아 살게되면 좋을 거라고도 생각했습죠. 천대인과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게 생각처럼 안되는게 여자 맘인가 싶구만요. 정리 깊어지고 속을 터놓게 되니 아씨에게 죽을 죄를 졌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 아들은 지금 어디서 크고 있소?"
"객주선으로 한나절 가는 동리에서 잘 크고 있지요."
"어미가 자식을 버리고 갈 수 있겠나? 그것도 한번 가면 살아 생전에 오지 못할 곳인데?"
"4년을 기약한 돈벌이라고 들었습니다요. 소인, 그저 이 시기를 모면하고 싶사옵니다."
" 이 시기라니?"
"아씨마님의 성격에 아닌 것은 절대로 보지 못하는, 차디찬 성격이옵지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나면 어떤 사달이 날 지 아지 못합겝니다요."
"그렇다고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하는 나일세. 내가 무슨 힘으로 자넬 데리고 가겠는가?"
"그건 마님도 마찬가지일 것이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길녀는 고개를 돌려 사공쪽을 내다 보았다. 마을의 초가가 제법 형체를 갖추고 가깝게 보였다. 물가를 따라 만들어 놓은 잔교가 멀리서도 확연히 눈에 들어왔다.
"어이, 사공!"
"어이, 박서방!"
사공이 물가에 나와 선 사람과 인사를 주고 받는 고함이 가늘고 긴 여운을 가지고 수면 위로 흘렀다.
"조반은 자셨나?"
"숭늉에 한그릇 말아 먹고 나온 참일세."
"그래 먹고 뭔 기운을 쓰겠는가? 조기나 한마리 얹어 달라 허지?"
"뭐 장한 일한다고 생선 살을 올려 주겠나? 장부란 게 나라잃고 어디가서 기운 못 쓸세!"
사공과 주고 받는 그들의 말이 처량하고 눈물겨웠다. 밖에 나온 사내들이 씩씩하지 못한 근본 이유가 그런 데 있다는 걸 유씨부인은 새삼 알게 되는 일이었다. 자신의 지아지도 그런 꼴로 돌아간 것 또한 같은 이유라 생각했다.
그 새 배는 출렁거리며 월미도에 선착했고 유씨부인은 길녀의 부축을 받으며 땅을 밟았다. 바람이 불어오는 바다의 뒤편 쪽이라 고요한 정취를 자아냈고, 해뜨는 쪽에 위치한 터라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유씨부인은 누비 장옷을 어깨에 내려 걸치고 조바위 끈을 느슨하게 풀어 맸다. 토끼털 배자를 고쳐 입고 자신이 건너온 바다를 바라보았다. 자신이 타고온 배를 따라 또 한 척으리 배가 들어 오고 있었다. 배 위에는 나귀가 눈을 가린채 멍석 위에 서있고, 고삐를 선두 말뚝에 단단히 비끌어 맨 것이 보였다. 나귀 뒤에는 나씨가 소매속에 손을 찔러 넣고 서있는 게 보였다.
나귀의 고삐끈을 잡고 배에서 내린 나씨는 나머지 행장을 사공으로 부터 건네 받아 나귀의 짐 망태 속에 담아넣었다. 그 앞에 안장에 얹은 요위에 오르기를 권하는 나씨의 말을 유씨부인은 거절했다.
"아닐세. 저기 초가들 위에 있는 저 집같으니 가차워 걸을만 하네."
물가에서 바라보아 낮은 초가들이 몇채 모여있는게 보였고 그 위로 제법 번듯한 기와 얹은 집이 자리를 잡고 잇었다.
"저 집 청지기에게 문안하고, 뒷산으로 올라가면 섬을 일주할 수있는 폎탄한 길이 나오지요, 그 길을 타고 한바퀴 돌면 먼 바다 끝에 맑은 날은 소청 백령 해주까지 보일듯할 겁니다요."
유씨부인, 나씨, 길녀 그리고 나귀 한마리가 쩔렁쩔렁 방울소리에 맞춰 얕은 언덕을 올랐다. 마당에 나와 놀던 아이들이 자리에 가만히 서서 일행 쪽을 쳐다보았다. 머리에 수건을 맨 아낙들은 부엌문을 열고 솥에 물을 끓이는지 김을 내고 있었고 널어 놓은 그물 코를 손질하는 남정네들은 마당 한구석에 자리잡고 안자 있는 것이 보였다. 나귀의 방울소리가 끊이지 않고 딸랑거렸다.
마을이라고 하기엔 작은 가구수였고 화전민들이 어울려 잠시 살고 있는 터쯤으로 보였다. 바다 물결이 찰랑대며 마을 아래에 잠겨 있었다. 사람들도 산 기슬에 그런 모습으로 스며 들어 살고 있는 듯했다.
"게 누가 있소?"
나씨가 몇개단을 올라가 기와집의 대문을 두드렸다. 잠시후 문이열리며 반갓을 쓴 건장한 사내가 나타났다.
"오신다는 얘긴 일찍 들었나이다. 드시오소서."
허리를 숙이며 사내가 한쪽으로 비켜섰다. 일행이 문안으로 들어서자 마당을 쓸던 하인들이 마당 한쪽으로 물러서며 고개를 숙였다.
"실례하오."
유씨부인은 고개를 숙여 사람들에게 인사했다.
"안으로 드시지요. 주인께서는 늘 도성에 계신지라, 이집은 제가 간수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불편한 데 없도록 지성으로 모시겠사옵니다."
"그렇게 애쓰실 필요 없습니다. 잠시 출타나온 사람인 것을..."
나귀를 외양간에 매어두고 행랑에 앉아 쉬는 나씨를 바라보며 유씨부인은 길녀를 동반하여 청지기가 권하는 대로 손님자리가 마련된 누마루에 올랐다. 차 주전자와 찻종, 청자 잔이 하나 놓인 소반, 한쪽에 송화다식을 가지런히 놓아 찻상의 모습을 갖추었다. 유씨부인이 좌정하자 청지기가 찻물을 내렸다. 한 번 두 번 우린 찻물로 잔을 부시고 찻물을 우렸다.
"전라도 담양의 대나무의 이슬을 목고 자랐다는 죽로차라 하옵니다."
청지기의 예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맑은 향과 맛이 더함도 모자람도 없는 듯하오."
"주인의 성품이옵니다."
"보답할 길이 없어 아쉬움만 남습니다."
"시종어른의 누가 되지나 않을까 미려되옵니다."
누마루 대청에서 내려다보는 제물포 포구는 산 정상의 서양건물이 빛을 반사하여 멀리서도 하얗게 빛났다. 그 아래로 민둥산을 타고 내려오는 기슭에 청과 일의 조계지가 나뉘어져 있었고, 저멀리 뚝 떨어져 조선인들의 촌락이 볼품없이 서로에게 기대어 다 쓰러져가는 모습으로 겨우 땅에서 일어서 있었다.
유씨부인은 길녀의 말을 곱씹었다. 나역시 마찬가지일거라니, 해괴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뭔지 모를 불길한 예감이 가슴한 쪽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한숨 돌린 일행은 다시 나귀를 내어 언덕을 올랐다. 한나절 월미산을 돌고 나면저녁 무렵이 될 것이고 그길로 하산하여 임해산장에 들어 하룻밤 의탁한 후 내일 아침을 먹고 천대운의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정이었다.
언덕길은 제법 가팔랐다. 숨이 턱까지 차며 호흡을 가쁘게 했다.
"마님, 나귀를..."
"아닐세."
가쁜 숨을 참으며 유씨부인은 발목에 힘을 주었다. 이렇게 몸을 움직여 주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미리가라는 미국땅에 갈 수없다. 배를 타고 달포를 가야한다는 긴 여정이라 들었다. 고된 여정을 이겨낼 수 있는 몸에 익혀 놓아야 했다.
가파른 언덕길을 다 오르자 평지가 나왔다.
"마님 이제는 나귀를 타셔야 하옵니다. 이 산을 한바퀴 돌아야 하는 먼 길이옵니다."
유씨부인은 올라온 노고도 쉴 겸 길녀의 권고대로 나귀를 타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소나무숲 사이로 맹렬한 바람이 불어왔다. 유씨부인은 장옷으로 목을 더욱 세게 감싸고 몸을 숙였다. 그러면서 먼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소나무 길을 따라 멀리 툭 터진 길 끝에 허공이 보이고 바다의 수평선이 보였다. 저쪽은 중국일 것이다. 그리고 이쪽 섬의 반대편이 해주쪽얼 것이고, 그럼 아미리가쪽은 어디로나간단 말인가? 유씨부인은 미국이 어디에 붙어 있는 땅인 줄 몰랐다. 그저 중국과 일본을 지나 큰 바다를 건너가면 더할 나위없는 큰 땅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듯했다.
"일본 땅은 저 반대편인데, 어째 배가 이쪽에서 출발을 하는겐가?"
"제물포를 떠난 배는 부산포내 내려갑죠. 거기서 남은 사람을 죄다 싣고 다시 일본 요코하마 항에 가서 신체검사를 하는데 여기에 미달인 자는 돌아와야 한답니다."
유씨부인은 아, 하고 알아차린 듯했다. 신체검사를 해서 미달한 자는 다시 돌아온다? 배를 탔다고 해서 모두아미리가에 갈 수 없는 것이었다.
'일본에 까지 가서 다시 돌아올 일은 만들지 멀아야 할 것이다. 사람의 일은 사람의 힘으로 안되는 일이 없다.'
그 때를 대비한 금품을 간직해야겠다고 유씨부인은 내심 단단히 마음을 다잡았다.
찬바람 속에 월미산을 유람하고 돌아온 일행을 기다리는 건 한상 크게 차려진 저녁밥상이었다. 유씨부인의 상은 큰 상으로 보고, 나씨와 길녀의 상은 작은 소반으로 따로 보아 놓은 것을 보고 유씨부인은 겹상을 하자고 청지기에게 명하였고, 할 수 없이 청지기는 더 큰 상으로 합상을 하였으나 길녀와 나씨가 주장을 굽히지 않아 같이 먹되 상은 따로 먹는 방식을 택했다.
"마을에서 담근 맑은 술이옵니다. 제법 향이 좋사옵니다."
청지기가 권하는 청주를 한잔 곁들이고, 길녀가 마련해 놓은 목욕통 속에서 몸을 녹인 유씨 부인은 몸이 녹아 내리듯 단잠에 빠져들었다. 유씨부인은 주인없는 내당의 안주인 방을 차지하고 그 옆방은 시중을 들 길녀가 차지했다. 나씨는 행랑으로 내려갔고 깊은 밤이 되었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어둠에 묻힌 마당을 가로질러 사랑채를 돌아 들어갔다. 빗장이 풀린 중문을 통과한 그림자는 곧장 안방의 마루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자물쇠를 걸어둔 가운데 문이 아니라 네 짝중 바깥의 문을 들어올려 옆으로 밀었다. 놀랍게도 소리없이 문은 밀려나갔다.
정신없이 곯아 떨어진 유씨부인의 입 위로 무명천이 덮어 씌워지고, 풀어진 머리뒤로 그 무명천이 질끈 동여 매어졌다. 사위가 적막한 방안에는 달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솜이불 소리만이 사그락댔다. 그림자는 유씨부인을 옆으로 눞히고 두 손목을 뒤로 돌려 묶었다. 그리고 가만히 속적삼을 풀어헤쳤다. 단속곳 깊은 곳에 팔을 뻗어 다속곳까지 맨살이 드러나도록 가랑이를 치켜올렸다.
그림자는 유씨부인이 쉽게 깨어나지 않도록 그녀의 몸에서 자신의 몸을 떨어트려 두 사람 사이에 틈을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단단한 양물을 천천히 유씨부인의 몸속으로 밀어 넣었다. 한번 두번, 한번 밀려들어간 사내의 것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점점 빨라졌다. 간단없이 흔들리던 유씨부인의 몸이 어렴풋이 깨어난 것은 사내가 한참 물이 오른 후였다.
두 손목이 묶였고 입까지 틀어막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유씨부인은 그렇게 비참한 모양새로 어둠 속에 던져져 있음을 알아차렸다. 알지 못할 사내의 몸이 자신을 능멸하고 있었다. 내 몸 속에 나의 것이 아닌 것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이다. 내질렀던 고함은 사내의 우악스런 손바닥에 짓눌렸고 발버둥치던 몸은 사내의 몸에 내리 찍힌 채 꼼짝달싹할 수 없었다.
지아비를 선산에 묻고 삼일장을 마무리하던 새벽에 서둘러 마을을 떴다. 멀리 남의 산처럼 마을이 불타올랐고, 양가의 어른들이 모두 세상을 떴을 지도 모를 불운을 보았다. 그리고 종당에는 이런 모욕과 오욕에 몸서리쳐야하는 것이 바깥 세상의 일이라면 더 이상 명을 붙여 살아낼 재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틀린 몸, 돌아간 목, 핏발선 흰 자위 안에 들어온 것은, 고운 숨결로 잠든 천택의 모습이었다.
사지를 비틀 때마다 뒤틀린 비명이 유씨부인의 열린 목구멍 안으로 잦아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길녀의 뜬눈이 가만히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아직 날이 밝으려면 서너시간이 더 남은 깊은 새벽녘, 월미도 바다를 비추는 달빛만이 물고기의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월미도 앞바다에 정박한 거대한 철선 일포드 역시 달빛 아래 고즈늑하게 새벽을 지키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