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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Sep 21. 2024

아무도 모른다

사실과 현실, 그리고 꿈

  우리에겐 88 올림픽으로 알려졌던 그 해 7월에 일본열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발생한다. 당시 40세였던 여성이 방치하고 간 자녀들 다섯 명 중 막내가 비닐봉지에 넣어진 상태로 숲 속에서 발견되고, 잇따라 장롱에서 셋째 아이의 부패한 시신이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일명 ‘스가모 아동방임 사건’. 이 충격적인 사건을 고레이다 히로카즈 감독이 영화로 만든 작품이 ‘아무도 모른다’이다.  

  ‘아무도 알지 못한다(誰も知らない)’가 원제다. 이 문장에는 목적어가 없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알지 못한다는 뜻인지? 이 질문을 꺼내놓고 영화 얘기를 시작해 보자.


  새로 이사 온 집에서 어린 두 아이는 캐리어 속에서 나오고, 둘째 교코는 전철을 타고 역에서 내리면 큰아들 아키라에게 역전에서 교코를 데려오게 하여 한 가정의 이사가 비로소 완성된다.

  이 집의 어머니 후쿠시마(유 粉)는 유흥업소 종업원이다. 첫 결혼에 실패하고, 낳은 아들을 혼자 키우며 생계를 위해 다른 남자들을 만나 아이들을 한 명씩 낳게 되는데 그렇게 미혼모 후쿠시마의 집에는 5명의 아이들이 올망졸망 모여 살고 있다.


  첫째 아키라의 아버지는 하네다 공항 직원, 둘째 교코의 아버지는 음악 프로듀서, 셋째 시게루의 아버지는 파친코 업소의 종업원, 막내 유키의 아버지는 택시기사다. 감독은 아이들 아버지의 직업을 어머니 입을 통해 전달한다. 부모가 모두 멀쩡히 살아있는 누구누구의 자식임을 강조하는 연출이다. 우리 속에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아무개들의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아키라는 어머니에게 학교에 보내달라고 한다. 학교 다니지 않은 위인도 많다며 혼자 공부해도 된다는 어머니의 말에 ‘엄마는 제멋대로’라는 불평을 해보지만 돌아온 건 ‘니 아빠가 제멋대로’였다고 대꾸함으로써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이어서 ‘엄마는 행복하면 안 돼?’라고 되물음으로써 아이들로 하여금 더 이상의 대꾸를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교코는 피아노를 가지고 싶고, 시게루는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고 싶다. 그러나 아이들은 밖에 나오면 안 되고, 소리를 내어서도 안 되며, 심하게는 베란다 밖으로도 나오면 안 된다. 어머니 후쿠시마가 정해 놓은 집안의 규율이다. 밖에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은 큰아들 아키라 혼자 뿐이다. 마트에 가서 장을 봐서 동생들 밥을 해 먹야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은, 어머니에게 남자가 생겨 멀리 가버리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 떠나버린 것이다. 이후부터 아이들은 남루해지고, 관리비를 못 내게 되어 수도가 끊기고, 집세가 밀리게 된다. 어머니가 일하는 곳에 전화를 걸어 보지만, 그만뒀다는 말을 듣고 또 다른 곳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음을 깨닫는다.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얻어 동생들을 먹이고, 놀이터 공용수도에서 물을 길어 동생들을 씻긴다. 소재를 알고 있는 동생들의 아버지에게 가서 돈을 얻어 오기도 하고, 유통기한이 임박해 폐기해야 할 음식의 가격이 떨어질 때를 기다려 사 오기도 하면서 엄마가 있을 때도 그랬고, 엄마가 없을 때도 아키라는 소년가장의 노릇을 충실히 한다.

  편의점에서 알게 된 중학생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게임기 앞에 앉아 함께 놀기도 하고, 운동장에서 야구시합에 끼게 되어 함께 야구시합도 하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아키라, 평범한 중학생의 일과들을 보낸다. 하지만 그건 희망에 지나지 않는 일이다. 그 나이 또래 누구에게나 일상의 삶으로 허용된 부분들이 아키라에게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중학생 친구들로부터 냄새나는 아이 냄새나는 집이라고 놀림을 당하게 되면서 관계는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대신 그들로부터 따돌림당하고 있던 사키(칸 하나에 粉)라는 여학생과 친해져 집에서 함께 노는 사이로 발전한다.

  아키라가 돈이 없어 동생들이 저축해 놓은 용돈까지 생계를 위해 쓰게 되고, 글도 모르는 동생들이 각종 독촉 미납 고지서 위에 낙서를 하며 놀고 있는 것을 본 사키는 원조교제를 해서 마련한 돈을 아키라에게 준다. 그러나 아키라는 그 돈을 뿌리치고 사키로부터 돌아서고 만다.


  자신조차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어머니 후쿠시마, 그녀로부터 방치된 사 남매, 이들이 만들어내는 관계는 일반적이지 않다. 사랑은 하지만 온전히 사랑을 쏟아 줄 수 없는 현실 속에, 사랑의 이름으로 방치되고 혈육의 이름으로 방관해야만 하는 아픈 사실들을 살아내야 한다. 그들이 꾸는 꿈은 현실에도 사실에도 없다.

 언제나 현실은 사실의 테두리 안에서 맴돌며, 현실과 사실에는 아무런 비전이 없다. 우린 그것을 냉혹한 눈빛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그나마 그것을 감독 고레에다의 카메라를 통해 장남 아키라에게서 실낱같은 한 줄기 빛으로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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