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합일, 대화
어릴 적, '야, 우리 컨버세이션 좀 하자!"라고 말하면, 어색함을 뚫고 가벼움을 가장하여 진지한 대화를 좀 하자는 의미로 '컨버세이션'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그런 의도가 담긴 제목이다.
결론을 말하면, 이 영화의 컨버세이션은 남녀의 이질성을 허물어 내는 이벤트(사건)를 말한다. 이질성에 초점을 두어도 되고, 이벤트에 초점을 두어도 상관없다, 결국 그게 그 거니까.
여자 1, 2, 3이 나와서 20대 때 파리 유학 경험을 컨버세이션 한다. 이들의 주요한 대화적 특성은 속마음 털어놓기, 즉 진실게임이다. 때론 관계를 잔혹하게 만드는 가학적인 대화를 즐긴다. 이들의 재미있는 대화 속에는 재미를 가장한 슬픔과 생의 잔혹함, 관계의 단절만이 존재한다. 진정한 관계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없다. 가벼움을 가장한 무거움.
셋 중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여자가 장면을 이어받는다. 그녀의 이야기다. 셋에서 둘에서 하나로 동떨어지는 여자, 그녀의 슬픔과 고립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지금 현실이 싫다는 것. 그녀는 여자 1이다.
갑자기 남자들 1,2,3이 나온다. 1, 2가 따로 만나며 사귄다. 둘의 관계는 서로의 취향이 달라 헤어진다. 그들의 컨버세이션은 현실적이고 직설적이며 유희적이다. 가볍다. 역시 셋에서 시작한 컨버세이션은 둘이 되고, 하나가 되어 혼자 남는다. 그가 남자 1이다.
여자 1과 남자 1이 만난다.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컨버세이션이 지속된다. 둘 사이에는 신뢰가 없다. 대화는 빗나가고, 행동도 빗나간다. 여자의 직업은 상담사, 내담자와 말이 꼬이고 이해의 영역이 좁아지면서 컨버세이션 역시 꼬이는 여자는 갑갑하고 비관적이다, 합치점이 없다, 이건 스쳐 지날 각이다.
남자가 초등학교 선생이란다, 지금까지 남자를 보던 시각에 변화가 생긴다. 여자는 그를 의외의 인물로 생각하고 의미화한다, 그 속에서 이질성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이해심이 발동한다. 출구 없는 컨버세이션, '왜 답을 말하라고 하냐, 왜 속마음을 꼭 알아야 하냐'라고 묻는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왜, 그걸 말하는 게 그렇게 어렵냐, 속마음을 말하면 서로 투명해지고 좋지 않냐'(이게 정확한 스크립트인지 기억이 희미하다. 대충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결국 여자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일어선다.
여기서 최초로 카메라가 움직인다.(이 영화는 시종일관 스탠딩 카메라로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주인공이 누구인지 금방 드러나지 않고, 대화의 흐름도 맥락을 찾기 힘들다.) 이건 큰 의미를 지닌다. 컨버세이션이 차원을 달리하여 발전했다는 뜻. 일어선 여자는 '헤어질 결심'을 할 만큼 단호하게 숲(산)을 향해 걸어 들어간다. 남자가 쫓아간다. 그들의 말싸움이 연장되는가 싶더니 티격태격 끝에 남자가 자빠지고, 거기에 여자가 발로 땅을 차며 강짜를 부린다. 흙이 튀어 남자의 눈에 들어가고(남자의 사기행각일 수 있다.) 여자의 모성애가 발동된다.
-눈깔 까봐! 호- 해 주까?
이렇게 해서 여자는 남자의 아이를 가지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세 여자가 컨버세이션 중이다. 그 속에 여전히 남자는 없다. 여자들이 사는 곳은 지상으로 내려오려면 불가항력의 어쩔 수 없는 상황뿐으로 저만큼이나 높은 고층 아파트, 되돌아갈 수 없는 고립된 공간(담배 피우는 장소)일 수 있다. 그녀들이 지상으로 내려와야만, 남자라는 하등 동물들을 만날 수 있다. 남자들이 겨우 컨버세이션의 장으로 활용하는 곳이 옥탑이라는 곳, 여자는 높은 곳에서 멀리 보고, 죄다 내다보려고 한다. 남자들은 낮은 곳에서 눈앞에 있는 것만 보면서 낄낄거리고 산다. 그들이 서로 만나려면, 컨버세이션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두 그룹의 컨버세이션은 합치점이 처음부터 있을 수 없다. 대화가 안 되는 대화를 열라 시전하는 것이 남녀의 대화다, 그래서 이들에게 컨버세이션이 필요하다.
남녀는 컨버세이션의 벼랑 끝에서 만난다. 가까운 사이에 가끔 이루어지는 진지한 대화, 컨버세이션의 막다른 골목, 더 이상 가지 뻗지 못하는 지점, 단단한 벽이 가로막고 있는 그 지점에서 남녀는 만나서 창조한다, 남자 1과 여자 1이 컨버세이션을 끝내고 만나는 최초의 장소, 뒤에 깔린 녹음(숲), 그것은 평화의 색깔이며, 창조의 공간이다. 에덴동산.
이 영화는 그동안, 잠시, 지리멸렬했던 한국사회에 하나의 비전을 제시해 준다. 최소한 남자와 여자에게라도..., 세상은 두 가지 성이 주를 이룬다는 측면에서 '컨버세이션'이 제대로 가닥을 잡았다고 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