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xt,라고 외치는 공범 사회
주인공 역을 참 별거 아닌 걸로 봤는데... 딱 들어맞게 연기를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배두나의 연기가 어색하다. 카메라 움직임과 주제의 형상화 등은 기성영화에 버금간다.(독립영화의 아마추어리즘은 안 보였다.)
이영화는 우리나라 최초의 협동조합신문 프레시안의 허환주 기자(지금은 편집국장)가 쓴 책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소위 말해 실업계(특성화고) 학생들의 현장실습(취업)에서 일어나는 부당함, 부조리함을 고발하는 영화다.
특성화고의 생명은 취업이다. 취업률에 따라 교육부로부터 그 성과를 인정받아 예산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그런데, 이 현장에서도 안전은 없다. 오히려 학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자인 학생들이 노동조건과 노동계약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착취당하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소희가 왜?
평소 연습실에서 그렇게 춤연습을 열심히 했던 소희, 아무도 소희가 왜 춤을 그렇게 열심히 배우고자 했는지, 스스로 그렇게 끊임없이 연습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인생이 앞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것처럼, 소희 역시 이 세상에 나서 반드시 하나쯤 이유 없이 해야 할 것만 같은 일을 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꿈이든, 목표든 상관없다. 그냥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 세대, 그들이 청년, 청소년들일 것이다. 해맑고 이유 없이 뭔가를 좋아할 수 있는 세대, 그 세대를 기득권층, 이 사회가 모두 파괴해 버렸다.
팀장을 죽음으로 몰고 갔고, 다시 소희를 죽음으로 몰고 갔으며, 그 '다음'은? 그 '다음 소희'는 또 누가 될 거란 말인가. 왜 이 죽음을 우리 사회는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하는지, 답답하고 슬픈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특성화고뿐 아니라 전문대도 실습을 나가는데, 그들은 성인이라는 이유로 더 심각하게 (현실적으로) 착취를 당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잘못된 작업의 관행 속에서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습생들의 생활은 진짜 직장생활로 연장된다. 그래서 김용균의 죽음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누가 소희를?
소희가 근무한 곳은 대기업 콜센터. 학교는 대기업이라는 명함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전화를 건 사람들, 그들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 곁을 지나가는 그저 평범한, 나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우리들, 우리들이 소희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린 꿈을 짓밟고 절망감에 싸여 죽음에 이르게 한 존재는 바로 평범하간 일상을 사는, 우리들 주변에 흩어져 있는 그런 사람들이다. 모든 불행은 그들의 것이지 내게로 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망상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우리들에게 모든 원죄의 씨앗이 감추어져 있다.
답답하고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날 꽃 한 송이를 우리가 무참히 짓밟아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우리들은 형법 제30조에 따라 공동정범이라고 부른다.
영화의 형사(배두나)는, 취재 다니면서 분노한 허환주의 분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극 중에 유일하게 주먹으로 배두나에게 맞는 역할을 하는 배역이 학교 교감이다. 소위 말해 관리 감독자가 업무태만했고, 업무방기한 결과가 ‘그 누구’를 죽음으로 내 몰았다는 것.
그들은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하고, 실제로 주먹으로도 맞아야 한다. 그러나 소희는 지금, 비난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