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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맘 쑥쌤 Sep 14. 2020

처음부터 엄마가 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다


친구가 놀러오니 물 만난듯 난장판;;;


요새 새벽까지 핸드폰을 붙잡고 블루투스 키보드 두드리는 날이 늘어났다. 블로그 두 개, 인스타그램, 가끔 유튜브, 사진, 글, 영상편집까지 하루가 모자라다. 새벽에 잠드니 아침에는 애들이 날 깨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블로그를 한다고 말한 적은 있어도, 블로거라는 표현을 써본 적이 없다.

아직은 직업으로 생각할 만큼 큰 수익을 얻지도 못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육아하며 어쩔 수 없이 집콕에 하게 된 이 일은 그냥 지나가는 일로 생각하고 싶었던 것 같다.


뭔가 그랬다 “나는 상담사예요”라고 하는 것과 “블로거예요”라는 그 기분이 이상하게 달랐다. 그런데 내가 막상 글로 적고 나니 아차! 싶어진다.

나도 꽤 막힌 사람인가 보다

나를 되게 잘 포장하고 싶구나..

이젠 블로거라고 여기저기 말하고 다녀야겠다


난 육아우울증을 피하고자 선택했고, 복직을 할 수 없어서 집안일과 육아의 쳇바퀴 사이에 내 시간을 블로그에 사용했다




책상에서 몰래 가져온 필기도구와 다이어리에 엄마 일하는걸 흉내내는 둘째..


연년생 둘째가 벌써 4살, 생존 육아에서 조금 살만해지는지 예전 숨 막히게 하루하루 버텨온 건 어느새 또 잊어버리고는 어린 둘째 키우는 친구에게 질문을 하고 있었다


"몇 년 후에는 무슨 일 하고 싶어??"


이제 와서 생각하니 둘째가 갓 돌 돼가는데 친구가 그 생각할 겨를이 있을까?

(내가 겪고 속상했던 말을 내가 결국 하고 있구나.. 참 미안해진다)


그렇지만 엄마들은 어쩔 수 없었다

특히 집에만 있는 전업맘은 얘기할 사람이 없다

코로나에 어린이집 유치원 엄마조차 만날 수가 없고 난 퇴소를 했고 이사도 와서 더더욱 아무도 없다

나도 모르게 친구들에게 하소연을 하게 되고 그게 텅 빈 울림으로 미안함으로 돌아올 때 난 하소연을 멈췄다


그리고 그걸 글로 써 내려갔다

내 공간인데 뭔들 어떠랴, 그리고 그 공간에서 4년을 보내오면서 이젠 동지가 꽤 늘었다




나를 위한 내가 주는 선물 (사실 체험으로 신청한 꽃 신기한 세상)


오늘 새로운 도전을 인스타와 블로그에 알렸고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그동안 육아 지치고 시간도 부족할 엄마들의 소중한 응원에 지금 마음이 너무 벅차고 설렌다


심지어!! 브런치 합격 메일을 지금 받고 바로 올리는 첫 글이라니!!


난 그저 엄마들을 도와주고 싶었다

내가 아는 상담기법, 훈육법, 놀이, 연년생을 낳았으니 그 힘듦을 공유하고 싶었고 애들이 크고서는 책과 교육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블로그도 알려줄 수 있게 되다니!!!

진짜 세상일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엄마 화장품이.. 궁금하고 부러운 둘째딸 딱걸린 현장


둘째가 이제 35개월

아무리 생각해봐도 6시에 퇴근해서 7시까지 데리러 가자니 내가 못 버틸 것만 같았다


작년 말, 첫째 유치원 상담받을 때 어항 구경하겠다고 뒤돌아 앉아있던 둘째가 낯설어서 “엄마” 소리도 못 부르고 몇 번을 가서 물어도 괜찮다고 더 보겠다 했다

어찌 그래도 의자에서 움직이지도 않을까? 멀리서 한 두 번 물어보다가 상담 급히 끝내고 가보니 아이가 왈칵 눈물을 흘리며 안겼다


아직 어려서 성향을 몰랐던 둘째, 집에서 오빠랑 있음 말괄량이 둘째의 모습을 이 날 깨달았다

남편에게 설명하면서도 내가 내 아이를 몰랐다니 미안하고 미안했다

그리고 코로나로 난 결국 두 아이를 퇴소시켰다

두 아이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후 난 상담사를 내려놓고 엄마로 살기로 결정했다




엄마 손 좀 대봐봐 둘째가 그려주는 중, 참견하는 첫째


오랜만에 친한 언니네가 놀러 와서 대차게 수다를 떨었다


"나는 열심히 해보려는데, 왜 엄마는 집안일 밥 걱정에 눈치까지 봐야 하는 거야? 왜 하고 싶은 일이 생겨도 적당히 해야 해?? 엄마는 왜 쉬지 않고 잠을 못 자야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거야??"


문득 글로 정리하니 내 마음을 알겠다


‘난 나를 간절히 찾고 싶었구나.. 나 자신이 아닌 남에게라도 소리치고 싶었구나’




오늘도 또 아이들이랑 사부작 사부작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돕고자 하는 치료사, 상담사라는 직업은 교육비와 각종 연수비가 돈 몇 백이 나간다

친정엄마는 IMF 아빠의 갑작스러운 퇴직 이후 따로 살며 삼 남매를 혼자 키워야 했고 나를 참 버거워했다

삼 남매 중 가장 호기심이 많아서 무언가를 계속 하려했고 돈 많이 드는 직업을 꿈꿨고 내 모든 시도들은 엄마를 참 피곤하게 했다


난 나름 엄마에게 미안해서 돈 백 연수를 차마 듣지 못하고 돈 벌어 하나 하나 돌아서 가야했고 학교도 대학원도 교환학생도 어딜가든 직책을 맡아 용돈을 채웠다

그치만 그마저도 엄마는 버거웠다

그때 동생들은 고3 무렵이었고 대학생이었다


그리고 돈을 안정적으로 벌게 될 무렵 나는 결혼을 했다

지금 첫째는 다섯 살, 둘째는 네 살이 되었다




결혼 8년 처음 먹어보는 남편의 김치찌개


결혼하고 나니 친정엄마에게 참 미안하고 고맙다

이제야 왜 우리 엄마는 옷도 살 줄 모르고 영화관도 갈 줄 모르는지 왜 그땐 대화도 하나도 안 통했는지 안다


결혼 전 엄마랑 저녁을 먹으며 옛날 한풀이를 했더니

“그땐 엄마도 힘들었어”

그 이후 난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요새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들을 하루 종일 보고 있자니 코로나 때문이래도 퇴소하길 잘했다 싶다

난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고 눈 마주치고 웃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그 시간이 필요했고, 오늘도 결핍이 대물림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본다


그리고 아이들이 잠든 후, tv시간 얼른 핸드폰에 블루투스 키보드 하나 연결해서 열심히 글을 써본다

난 엄마로만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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