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부모인가..
오늘은 둘째 아이 유치원 소풍날, 나와 남편은 아이의 소풍장소를 듣고는 걱정이 되어 아이를 설득하고 안전한 방문수업 선생님을 불러서 한 시간 반을 보내었다. 아이는 꽤 신났다. 집에 아무도 오지 않는 게 보통인데 선생님을 불러주다니 어찌 안 신날까. 애들 하고픈 거 해주려면 참 돈이 많이 들겠다 싶다.
오후쯤 울리는 알람에 유치원 사진첩을 열어보니 아이들이 큰 버스 앞에서 찍은 사진부터 내 생각과는 달리 안전한 실내공간, 그리고 내가 걱정했던 야외공간에 도시락 먹는 아이들 사진까지 꽤 즐거워 보이기도 하고 안 보내길 잘했다 싶기도 하고 마음이 뒤엉킨다.
내가 좀 더 안정적인 가정과 부모 밑에서 자랐다면, 부모님 사이가 다정하다는 것으로 끝까지 착각하고 자랐더라면 이런 걱정과 불안이 적었을까..?
신기하게도 남편 또한 편안한 학창 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한 번도 뵙지 못한 시아버님은 일터에서 갑자기 사고를 당하셨고 그때 남편은 중학생이었다고 한다.
둘째의 현장학습 장소를 듣고 남편은 아이들 수학여행도 안 보내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속으로 나도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다며, 뉴스 속 사건들이 스쳐 지나간다.
남편이 출근하는 아침, 아이들 모두 유치원과 학교에 가고 혼자 남는 날 새벽강의를 마치고 피곤함에 잠시 낮잠을 자야 하는 상황이 올 때면 나는 현관을 걸어 잠그고, 안방문을 잠그고 나서야 잠이 든다. 타고나길 안방에 소리 나는 시계, 물건 하나 놓지 않는 성향이지만 신혼 때부터 혼자 잠이 들 때면 누군가 우리 집으로 들어오는 가위에 눌리곤 한다.
그것은 정말 가위에 눌리는 것일까?
내 불안이 만들어낸 허상일까?
내 불안이 심하면 우리 아버지 처럼 되는 걸까?
다행이다. 나는 아버지처럼 병은 아니라서..
나의 20대, 자신이 없어서 누군가 질책하거나 나를 탓하는 것을 견디지 않고 덤비거나 또는 피해버렸다. 남자친구를 만나다가 조금만 걸리는 게 있으면 “헤어지자” 통보했다. 그리고 또 외롭고 보고 싶어서 울었다. 그때 나는 아버지를 닮은 걸까 봐.. 아니, 내가 닮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엄마를 닮지 않았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다른 사람을 닮았다 했다. 나는 자기 마음대로 사는 이모, 아니면 욱하는 아버지 그 둘 중 하나를 닮았다. 이젠 인정한다. 딸이 아버지를 닮지 누구를 닮나? 남의 아버지를 닮을 순 없지.
그러나, 나는 달라지겠다는 의지가 아버지와 다르다. 아버지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평생을 싸웠고, 나는 세상을 마주하는 연습 중이다. 내 불안감을
오롯이 느끼고, 이렇게 표현하면서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나의 아들 딸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살아가기에..
부모를 꼭 사랑해야 하는 법은 없다
대부분의 자녀는 부모를 떠올리며 안쓰럽다 하고, 눈물이 난다고 한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충분히 울었고 화났고 지나갔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어느 날을 기다린다.
아버지를 절대 더 이상 보지 않겠다는 동생에게 누군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후회한다”라고 했다고 한다. 나는 동생의 생각을 꺾을 마음이 없다. 가족이 아닌 그 누구도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아니, 심지어 가족도 그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면 안 된다.
아버지를 그리워하기엔 모두가 아버지를 이상하다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만 빼고) 어렸던 나는 돈도 집도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었다. 아버지가 다른 집처럼 멀쩡했으면, 그게 내 바람이었는데 너무 컸나 보다.
어쩌면 사람들은 누구나 바람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그건 “바람” 일 뿐이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할 수는 없겠지. 대신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건 결정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의 마지막에 울까?
아니면 그때도 지금처럼 태평하다 할 것인가?
그때는 아무 어른들의 참견 없이
오롯이 나로 보내드릴 수 있기를,
죄송하다. 이 한마디는 꼭 해야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