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청소 번아웃 극복기

청소가 지겨운 날 그의 해소법

by 디어 스프링

아무리 청소를 즐긴다고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도 번아웃을 경험한다.


번아웃 증후군 (burnout)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스트레스로 인하여 정신적, 육체적으로 기력이 소진되어 무기력증, 우울증 따위에 빠지는 현상.


에너지가 넘칠 때는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들을 벌이며 평소에 손길이 잘 닿지 않는 곳까지 청소한다. 그러나 에너지 레벨이 바닥이라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은 날도 있는 법.

청소중독 남편의 손길에 주말이면 깨끗하고 정돈된 집을 만들며 한주의 묵은 때를 벗겨내는 느낌이었는데. 가끔씩 청소 시작조차 안 하고 앉아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면 평소와 다른 모습에 무슨 일이 생겼나 불안하기까지 하다.


일주일 중 평일은 보통 간단 청소라고 불리는 청소기 돌리기, 정리정돈, 빨래를 하고 주말에는 청소기는 물론 운동화 등 밀린 손빨래 거리, 세탁조 화장실 등 미니 대청소 수준의 일을 하곤 한다.

세탁소에 맡길 필요 없이 깨끗해진 신발

어느 날 평소와 달리 늘어져 침대에서 핸드폰만 보는 남편. 이미 일어나 이불까지 정돈하고 청소기를 꺼낼 시점인데. 겨울방학이라 매일같이 온갖 장난감을 꺼내 노는 아이들. 치워도 끝이 없는 반복에 기운이 빠지나 보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치우고 돌아서면 정리할 것들이 투성이 이다. 주부라면 모두가 공감할 청소와 어지럽힘의 사이의 무한반복 싸움이랄까.


그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들과 청소기를 돌리며 집안일을 시작하였다. 한참을 누워있다가 이내 우리의 청소 수준이 못마땅한지 벌떡 일어나 청소를 시작하는 남편! 휴 다행이다.


힘들어도 깨끗해야 적성이 풀리는 청소성향에 결국 다시 시작하는 남편이다. 이렇게 타고난 기질은 바꿀 수 없구나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뜬금없이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고 온다는 남편. 보통 밤늦게 쓰레기를 비우는 일은 그가 가장 귀찮아하는 일이라 아침 아이들 등원길에 내가 하는 일인데. 갑자기 저녁에 스스로 쓰레기를 버리러 가다니?


의아했지만 뭐 깔끔한 성격이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쓰레기를 가지고 나가더니 갑자기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와 신발장을 열어본 후 후다닥 다시 나간다.

놓고 간 게 있나? 잠시 생각하다가 수상한 기운이 느껴지며 여자의 촉이 온다. 의심의 눈초리로 현관을 살피다가 신발장을 열어보니…

맨 위칸에 놓인 수상한 택배박스


택배 내용을 보니 새 양말이다.

내 눈에 보기에는 아주 멀쩡한 양말이라도 보풀이 많이 나면 신지 않는 남편. 웬만큼 낡아야 버리는 나와는 대조적이라 잔소리를 하고는 했더니. 이런 일을 벌일 줄이야.


번아웃이 왔던 그날 주문했던 모양이다. 황당함과 웃음이 터지는 일이었지만 모른 척 넘어갔다. 그렇게 남편은 청소의 번아웃이 올 때면 무엇인가를 주문하곤 한다. 미처 숨기지 못하고 내가 먼저 택배를 발견하는 날이면 멋쩍은 웃음을 짓는 남편.


그리 대단한 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의 스트레스가 풀린다면이야 나도 찬성이다. 몇 번 발각된 후에는 이제 구매 전 미리 선전포고를 하고 주문한다. 이번에는 어그부츠 세탁을 해보겠다고 스웨이드 청소제를 구입했다고 한다. 끝없는 그의 청소에 대한 집념. 청소를 향한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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