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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반하별 May 14. 2024

2024 유로비전, 시청 후 씁쓸한 이 기분은 무엇

지난 11일 저녁, 2024 유로 비전 송 콘테스트(Eurovision Song Contest, 이하 유로비전)가 스웨덴 말모(Malmö, Sweden)에서 열렸다. 50년 전 스웨덴 출신 아바(ABBA)가 유로비전에 우승하면서 스타덤에 올랐었던 모습이 데자뷔 되면서 현지 열기가 뜨겁다. 우리 가족은 그날 저녁으로 스웨덴식 토마토 미트볼을 만들었다. 맘마미아 콧노래를 불러가며 경연 시작을 기다린다.


 

1956년 스위스 르가 노에서 처음 시작된 유로비전은 미국 팝의 대중성보다는 유럽 문화의 색깔이나 개성에 더 집중한다. 기독교적인 유럽 대륙에서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세상에 다룰 수 없는 주제가 없고, 공연할 수 없는 퍼포먼스가 없어 보인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유로비전은 꿈의 무대다.


 

올해는 개최 전부터 잡음이 많았다. 전쟁 중인 상황에서 이스라엘 팀이 참가하자 그들의 유로 비전 참여에 반대하는 시위가 행사장 주변에서 계속되었다. 참고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후인 2022년부터 유로비전 참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경연팀들 간에서도 이스라엘 참여 반대 움직임이 일자, 유로비전 주최 측인 유럽 방송 연맹(European Broadcasting Union, EBU)은 행사 취지에 어긋나는 팀은 즉각 쇼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에 이르렀다. 실제로 룰을 어긴 팀은 방송 리허설에 참여하지 못하기도 했다. 쇼가 시작되기 8시간 전에 네덜란드 참가자는 행사 직원을 위협했다는 이유로 제명되기도 했다.  


 

표현의 자유라는 큰 의미 아래 사회 소수자와 꿈, 하모니에 대한 메시지를 담아낸다. 올해는 유난히 그 표현이 거칠고 강하다. 음향효과가 많고, 무대 그래픽이 현란할 뿐 아니라 카메라 움직임도 바쁘다. 힘을 표현하는 강한 안무도 많다. 고딕 스타일의 도깨비와 마녀를 아주 어둡고 강렬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속옷도 입지 않은 듯 하의 실종을 테마로 자유를 부르짖기도 한다. 동성애 테마로 화장실 공간 연출한 공연도 있다.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가. 자유와 방종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공연을 보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2024 유로비젼 콘테스트 우승자 네모(Nemo) by Reddit

올해의 우승 트로피는 스위스의 네모(Nemo)에게 돌아갔다. 남성의 외모이지만 스스로를 남성이나 여성으로 구분되기를 거부하는 바이너리(여성도 남성도 아닌 성별로 이분법적인 성별에 속하지 아니하고 트랜스젠더나 젠더퀴어에 속하는 사람인) 다. 핑크빛 의상에 치마를 입고 공연한다.  

“나 자신을 찾기 위해 세상의 룰을 깨고 나의 세상을 찾는다”는 곡의 메시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지만 자신을 찾는 과정으로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였다.  

어린 시절의 오페라 경험을 활용하여 만들었다는 음악 멜로디는 랩, 록, 드럼 앤 베이스, 클래식 오페라를 혼합해 특별하다.  회전하는 디스크 형상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노래하는 모습은 자신을 찾아가는 험난한 여정 같기도 하고, 그 과정을 즐기는 곡예 공연 같기도 하다.  유로비전의 가치를 잘 반영한 이견 없는 1위 곡이 되었다.

 

그런데 네모는 우승 트로피를 받은 순간 그 유리 트로피를 깨뜨려 버렸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룰을 깨고 내 세상을 만났지만, 더불어 나는 유로비전의 규칙을 어겼고, 트로피도 깨뜨렸다. 아마도 트로피는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유로 비전도 수리가 필요할 것이다"라고 인터뷰한다.  어렵게 이뤄낸 자신의 성과와 권위를 스스로 깨뜨리는 퍼포먼스로 그렇게 다시 한번 주목을 받는다.

 

 대중문화에서 보는 관객들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우승 트로피를 스스로 깨는 주인공을 보니 세 시간 공들여 함께 시청한 관객은 존중받지 못한 듯한 씁쓸한 마음 감출 수가 없다. 나에게 내년 유로비전은 보이콧 대상일지도 모르겠다.  



*대문사진은 SKY news 사이트에서 공유되었습니다.

https://images.app.goo.gl/wWnzdAQEBzdKPRjY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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