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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Jul 29. 2024

미국 고모에게 전하는 눈부신 안부

파독 간호사의 역사적 의미보다는 개인의 눈부신 삶을 생각해봅니다.

어느 날 말로만 듣던 미국 간호사 고모가 우리 집에 오셨다.

창백한 낯빛 그와 같은 무채색의 무늬 없는 단정한 옷차림. 머리는 두상이 드러날 듯 짧게 정돈되어 있고,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다. “네가 큰 딸이구나. 많이 커서 못 알아보겠다” 그녀는 내가 태어나 포대기 업혀 다닐 때 나를 보셨다고 하니 기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존재를 들어는 봤으나 실제를 처음 마주하게 된 나의 미국 고모가, 그렇게 어느 날 우리 집에 오셨다.


안부 인사가 몇 번 돌고 나니,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다들 데면데면 별 할 말이 없다. 반 백이 되어 만난 형제들은 누구 하나 살갑지도 그리 수다스럽지도 않은 탓이다. 서로 사이좋지 못하게 헤어진 걸까. 엄마 말씀으로는 아빠가 누나(미국 고모)를 보면 마음 아파한다고 하신다.


4남매 중 둘째이자 딸인 고모는 좋은 대학교에서 간호학 학사를 마치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큰 고모는 집안을 돕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월급쟁이가 되어 있었고, 남동생 둘은 아직 대학생이던 때 였단다. 옆에서 돕지 않고 홀연히 떠나는 동생을 나무랐던 큰 고모, 연락 없이 살아가던 두 남동생들, 친할머니가 딸의 안부를 챙기셨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게 딸이자 누이, 여동생과 가족들은 생사 정도만 알고 지냈다.


이후 미국 고모는 딱 세 번 귀국했는데, 한 번은 내 아버지인 집안 장손 결혼식, 두 번째는 모친이자 내 친할머니의 장례식이었고, 다른 하나는 본인의 영구 귀국이었다. 평생 혼자셨고, 열심히 일했고,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몸과 마음이 지쳐있었다. '왜 둘째 고모는 재미 간호사가 되었을까.' 집안 분위기 눈치 보던 나는 따로 묻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수업에서 '파독 간호사'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고모도 그런 사연으로 가신 걸까 잠깐 짐작해 본 기억이 난다.


파독 간호사 단어에 이끌려 읽게 된 소설

얼마 전 백수린 작가의 장편 소설  <눈부신 안부>를 만났다. 책 서평에서 다른 무엇보다 내 관심을 끈 단어는 학교에서 어렴풋이 듣고 지나쳤던 그 단어 '파독 간호사'였다.

@문학동네

'파독간호사'는 50년대 시작되었고, 60년대 들어 나라가 실업난과 외화부족에 시달리자 그 타계책으로 인력을 수출한 예다. '가난', '희생', '애국', '외화벌이'와 같은 단어들이 함께 떠오르는데, 소설 속 화자인 해미는 그것만으로는 그녀들의 삶이 충분히 표현되지 않음을 느낀다.


해미의 이모는 독일에 간호사로 파견된 후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에게 송금하며 젊은 생을 살아온 인물이다. 덕분에 형제들이 공부를 마칠 수 있었고 해미의 엄마가 독일어교육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 취중에 해미의 엄마가 딸에게 말한다. “아무리 누군가를 사랑하더라도 절대로 모든 걸 희생해서는 안 돼.(p.54/368 밀리의서재 이북)” 언니의 희생과 삶을 아는 동생의 미안함,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해미의 언니가 세상을 떠난다. 그 충격으로 가족 구성원들은 여러 반목을 겪게 되고, 급기야 가장인 아버지는 부산으로, 독일어교육을 전공했던 엄마는 나머지 두 딸을 데리고 언니가 있는 독일로 유학길에 오른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서는 때로 체념이 필요했다(p.40/368 이북)”, “그 당시 엄마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단지 자신이 한 거짓말로 누구도 다치지 않고 안심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됐다(p.44/368  이북)”라는 주인공 해미는 갑자기 잃은 언니에 대한 슬픔, 그리움, 상실감, 독일에서의 낯선 삶에 맞서지 않는다.


다 괜찮다던 해미가 사실은 모든 것을 그저 품고 삼키는 것으로 버티고 있음을 그녀의 이모는 안다. 해미는 이모 주위의 파독 간호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 중 한명인 선자 이모는  뇌종양 투병을 시작하면서 아들인 한수는 엄마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첫사랑 KH를 찾아주고 싶어 한다. 한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어가 서툰 한수, 한국에서 온 해미, 다른 파독 간호사인 마리아 이모의 혼혈딸 레나. 이렇게 세 아이들은 탐정소설을 쓰듯 특정인을 찾는 단서들을 모아 보는데, 독일에 사는 십 대 어린아이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사실들을 유추해 내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1997년 IMF 사태로 해미의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귀국하게 되고 대입 입시를 코 앞에 둔 해미는 한국 학교에서 적응하느라 어려움을 겪게 된다. 선자 이모의 KH찾기는 그렇게 잊혀져 가는 듯 했다.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뭔가 하려는 바보 같은 마음은 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해미의 물음에 “간절하니까 그런 게 아닐까?” (p80/368 이북)이모가 대답한다. 한수의 그 간절함은 해미가 20년이 지난 후에도 선자 이모의 일기 속 KH를 찾게 되는 이유가 된다. 


그러던 어느날, 해미는 대학시절 마음에 품었던 우재와 미술관에서 우연히 재회하게 된다. 속내를 털어 내는 깊은 관계를 꺼려하는 그녀는 계속해서 우재와 거리를 두는 중이다. 잠깐 귀국했던 이모가 해미에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하는 우재는 그 이모가 독일로 다시 출국하기 전날 찾아뵙는다. 그날 밤, 이모는 해미에게 말한다. “좋은 사람이더라.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 이모는 네가 찬란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삶은 누구에게나 한 번뿐이고 아까운 거니까.(p.264/368  이북)”

@픽사베이Pixabay


미국 고모가 30년 넘게 살아온 뉴욕.

내가 방문했을 당시 뉴욕은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이었다. 영화 화면에서 봤던 것처럼 타임 스퀘어(Time Square)에는 온갖 최신형 상품들이 대형 전광판에서 번쩍이고 세계 언어가 사방에서 들려오는, 가장 이국적이고 자본주의적인 곳이었다. 제시카 파커의 <섹스 앤 더 시티>에 나오는 중앙 공원(Central Park), 그 옆으로는 존 레넌의 손 마크가 기념으로 남아있고,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뭐라도 먹으려면 음식 양은 어마어마했고 짰으며, 끼니마다 팁 내다보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제법 비싼 도심 호텔의 내 방 창가에서 보이는 반대편 건물.  밤새 불 켜진 사무실이 즐비했다. 창을 통해 들려오는 소음은 밤을 잊은 도시답게 차량 통행이 끊이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이 다 있지만, 쉴 수 없는, 가장 외로운 도시처럼 보였다. 이 도시에 살던 미국 고모에게는 해미의 이모와 같이 어려움에 공감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만한 사람이 옆에 있었을까.


내가 선택한 자발적 이민은 좀 더 쉬울 줄 알았다.

나는 자발적 이민자로 영국에서 살고 있다. 현지인인 남편이 있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다른 식구들은 새로운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서 잘 지내는 것에 비하면 나는 지금도 무덤 해질 뿐 적응 중에 있다. 전형적인 한국인인 나는 내 외모나 외국국적이기 때문에 적응이 쉽지 않은가 생각했었다. 몇 년 지나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내가 이민을 하게 된 이유를 질문받으면 항상 아이들 교육 때문에 영국에 왔다고 말했었다.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교육받고 자라는 이 시기, 나에게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인데, ‘나를 채우기’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가족, 언어, 생활. 익숙한 모든 것을 버리고 이민을 떠날 때, 그 이유를 스스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낯선 땅에서 어려움이 닥칠 때면 조금 더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동안 내 목적 의식이 분명하지 못했기 때문에 낯섦, 어려움에 맞서는 힘이 약했다. 시작이 어려웠던 이유를 이민 몇 년이 지나 그때서야 깨달았다.


60년대 어린 여인들이 내린 선택이 스스로 납득한  결정이었을까. 지금처럼 정보가 넘쳐 나는 세상에서 예비 이민자들은 열심히 준비해서 현지에 온다. 하지만 와보면 겪으면서 배워야 할 것이 넘친다. 하물며 그 시절 낯설고 차별에 대한 사회인식이 부족한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그녀들은, 가난한 가족들과 국가에 외화벌이로 도왔고, 새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 많은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한수의 모친인 선자 이모가 세상을 떠나기 전 남긴 편지는, 자신의 첫사랑에게 보내는 글이라 이름 붙여졌지만 내용은 남겨질 자식들과 후세들에게 남기는 인생 교훈이었다.


남들은 나를 가난한 집 막내딸에 이혼녀이며 뇌종양으로 단명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볼 것이다. 극동의 가난한 분단국가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팔려온 노동력일 뿐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내 마음이 이끄는 길을 따랐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존심이 있는 한 내가 겪은 무수한 실패와 좌절마저도 온전한 나의 것이니까. 그렇게 사는 한 우리는 누구나 거룩하고 눈부신 별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알고 있다(p.349/368 이북)”


외롭고 고통스러운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자존심이 있는 거룩하고 눈부신 별.

이 책을 읽다가 보니 이미 작고하신 미국 고모 생각이 많이 난다. 우리 집에 오실 때면 그녀는 밤새 이야기를 하셨다. 아무리 피곤해도 묵묵히 그 이야기를 다 받아내던 내 어머니는 아마도 미국 고모의 상처를 알아보고 그 외로웠던 마음을 헤아리셨던 것 같다. 마음의 상처, 아픔 다 풀어내시라고. 풀어내야 또 다른 시작을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귀국 후 투병생활이 이어졌던 미국 고모는 생의 마지막 순간 평안한 마음의 안식을 얻으셨을까. 돌아가신 어르신 생각이 많이 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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