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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Aug 19. 2024

영국에서 만난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인생의 삼분의 일이 잠이고 꿈인 이유를 생각해보게 한다.

지난주  영국 서점에 갔다. 신간 코너를 둘러보는데 한쪽 매장 벽이 알록달록하니 이쁘게 꾸며져 있다. 어머나 반가워라, 한국 소설이다.  


'대한민국 베스트셀러'라는 부제목과 함께 진열되어 있는 책은 바로 “달러구트 꿈 백화점”. 내가 자주 들여다보는 서점 사이트에서  지나치듯 봤던 기억난다.


요즘 영국 서점가에 일본 문학만큼이나 한국 문학 신작이 종종 발간되어 참 반갑다.  다양한 한국 소설이 영국 시장에 소개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난 서점에서 한국 책을 찾을때마다 한 권씩 사 다. 

'꿈을 파는 백화점이라'


우선 누구나 매일 경험하는 잠, 그 안에서 꿈을 소재로 삼았다는 점이 신선하다. 주인공 '페니'가 그동안 동경하던 달러구트 씨가 운영하는 꿈 백화점에 취직을 하면서 책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자는 것보다 재밌는 일이 많으니까 잠들지 않는 거예요.”(p.360/598 교보이북)


꿈을 사 놓고는 잠을 자지 않는 일명 '노쇼'가 많아지자 꿈 백화점 직원들이 나누는 이야기의 일부다. 내가 '노쇼'를 꿈꾸던 때가 있었던가.


입시생 시절, 나는 마음대로 오르지 않는 성적을 바라보면서 최선이라도 다해보자는 마음에 공부하는 시간을 늘려보기로 한다. 졸리면 밖에 나가 걸어도 보고 그도 안 되면 자판기 커피를 한 사발씩 마셔가며 깨어 있어보려 했다. 하지만 그 무엇도 나의 잠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수시로 올라오는 짜증감, 집중력 저하만이 있을 뿐이었다. 잠을 잔다는 것이 죄스러웠다니. 뒤돌아보면 슬픈 젊은 날이었다.


20대에는 놀러도 다녀야겠고, 회사도 다녀야겠고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 잠을 줄여보려 했다. 잠깐 숙면으로도 피로회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요가명상 호흡을 배워보기도 하고, 안락한 의자를 사서 식후 낮잠 시간을 가져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쪽잠은 밤중 깊은 잠과 비교하면 그 질이 턱없이 부족했다.


서른이 넘어서야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반드시 일정한 시간에 잠이 들고, 하루 일곱 시간을 지켰다. 쓸데없는 잠과의 싸움을 멈추고 나니 오히려 깨어있는 시간이 올곧이 선물처럼 내게로 돌아왔다.  


“생각을 좋은 방향으로 정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향수랍니다.”(p287/598)


깊은 숙면에 큰 무리가 있어 본 적이 없는 내가 꿈꾸기를 바란 적이 있다. 돌아가신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었다. 하지만 바쁘게 살아 너무 피곤해서인지 도통 꿈에서도 엄마가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외할머니는 그런 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씀하셨다. “조상이 꿈에 보이는 것은 경고니라. 니 어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좋은 기라~” 그 말씀이 왠지 안심이 되면서도 속상하다. 엄마의 경고가 없다는 것이 든든한 뒷배같기도 하고, 꿈에서 마저도 만나지 못할 사이가 되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다.


"꿈같은 '해방감'이나 '신기함'이죠. 아니면 '아쉬움'이나 '상실감'"(p.364/598 교보이북)

“자신을 무조건 믿는 마음, 압박감에서 벗어나는 마음. 여자에게는 이런 느슨한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p.292/598)


이 시험에서 떨어지면 과락이라는데. 아무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등 뒤로 진땀이 흐르고 자책과 두려움이 밀려온다. 어디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 어쩔 줄 몰라하다가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이미 대학 졸업한 지 한참이 지나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이런 꿈을 꾸다니. 하는 업무가 과연 계속하고 싶은 일인가 고민이 이만저만 아닌 때였다. 대학 진학하면, 회사 취직하면 고민 없을 줄 알았던 나는 그제야 이런 번민은 평생 안고 갈 조바심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를 믿어야지 누구를 믿겠어.'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크고 작은 선택에 대한 두려움, 불안함이 교차하던 그 꿈들이 사라졌다.


@pixabay


“영감이라는 말은 참 편리하지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뭔가 대단한 게 툭하고 튀어나오는 것 같잖아요? 하지만 결국 고민의 시간이 차이를 만드는 거랍니다.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죠. 손님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했을 뿐이에요.”(p464./598 교보이북)
 

40대에 접어들면서 전에 없던 불면증이 생겼다. 그즈음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것이 없는 듯한 무력감'이 마음을 괴롭히던 때였다. 마음에 소용돌이가 그대로 꿈으로 이어져 복잡하고 어수선하다. 어렵게 잠에 들어도 선잠이 들어 작은 소리에도 깬다.  어떤 날은 꿈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조각나 있기도 하고, 또 다른 날은 대서사시 같은 장편일 때도 있다. 잠을 자도 피곤한 날들이 계속됐다.


글쓰기를 시작했다. 생각으로만 머물던 것을 글로 적는 과정은 다름 아닌 마음의 정화였다. 그 매력에 푹 빠졌다. 어떤 날은 글로 적던 생각이 그대로 꿈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얀 종이 위에서 마저 무의식적으로 내 마음을 재단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꿈속에서는 조금 더 극적이고 조금 더 날 것의 감성이 나타나기도 한다. 밤새 꿈을 꾸느라 정신없이 바빴지만 그 노곤함이 좋아진다. 아마도 '영감'이라는 것이 이것인가 싶다.


책을 읽고나니 인생의 삼분의 일을 잠으로 보내야 하는 이유는 더 명확해진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잘 곱씹으며 삶을 살라고. 그날들을 채워갈 에너지를 매일 꿈을 꾸며 보충해 나가라고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지혜다. 나는 오늘도 그 지혜를 벗 삼아 또 다른 꿈 여행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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