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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Sep 02. 2024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퀸의 대각선

세계를 이끄는 힘, 옳고 그름 보다는 모든 것은 전략에 달려 있다.

요즘 미국 대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주, 현재 바이든 정부 부 대통령인 카밀라 해리스(Kamela Harris)의 대통령 후보직 수락 연설을 듣게 되었다. 전당 대회 모습을 봐서는 12년 전,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 정권의 시작을 알리던 때와 비슷하다.


나는 당시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직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에 있었다. 길거리에서 “우리는 할 수 있다 (Yes we can)”을 외치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여기저기 오바마 대통령의 얼굴을 새긴 티셔츠나 플랜 카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었다. 첫 유색인 대통령을 맞이하는 미국민들에게서 아메리칸드림(American Dream), 열심히 일하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그 희망을 가득 담은 민심을 봤다.


이후 오바마 정권에 대해 열렬한 응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후 정치가 더 후퇴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는 카밀라 해리스 후보는 국민에 의한 풀뿌리 정치를 강조하고 있고,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소위 말하는 자본 엘리트 정치, 소수가 다수의 세상을 이끌어가는 정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읽힌다. 두 사람은 확실히 차별화된 대척점에 있는 후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퀸의 대각선 표지>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신작 <퀸의 대각선> 은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선을 가진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난한 미국 가정에서 자라난 모니카는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을 못 견디게 힘들어한다. 지하철을 탄다거나 학교에서 공동생활을 하는 것은 모니카에게는 큰 고통이다. 명석하고 분석력이 뛰어나며 정의감이 강하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괘념치 않는다. 우연히 만난 체스 경기를 통해  그 안에서 세상의 힘을 읽고 방향성을 찾는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은 스코틀랜드의 후손이라는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


반면 호주 출신의 부유한 양 농장집 고명딸 니콜은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들에 사이에 어울려 그들에게서 주목받을 때 가장 행복함을 느낀다. 속한 집단에서 자신의 주도권, 우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주도면밀함을 가지고 있고 대의를 위해서는 희생도 개념치 않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아일랜드 후손으로, 영국으로부터의 아일랜드 해방운동을 하는 무장 단체(IRA)에 자금을 지원하는 인물이다. 집단 지성을 신봉하고 그 안에서의 정치를 바른 길이라 믿는다. 그의 딸인 니콜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집단심리를 꿰뚫어 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힘을 키워 가져가는가에 관심을 갖는다.


첫 만남은 12살의 두 소녀가 체스 경기장에서 만나면서 시작된다. 첫 경기는 폰으로 장벽을 쌓아 주변을 천천히 압박해 나가는 전술인 니콜이 퀸이나 나이트의 현란한 개인기로 목표물을 기습타격하는 스타일인 모니카를 눌러 이긴다. 게임에서 진 분에 못 이겨 모니카는 니콜을 밀어 그 위에 올라타 목을 조른다. 혼절했던 니콜은 다시 깨어나면서 그동안 희미하던 삶의 목표가 분명해진다. 바로 '모니카에게의 복수'다.


다음 두 사람이 격돌한 체스경기에서는 '모니카의 핵심 타격 전략이 니콜의 인해전술을 깨고' 게임을 이긴다. 승부에 의연한 듯 보이던 니콜은 '가짜 폭발물 신고'로 많은 관객들이 몰려 있던 체스 경기장을 공포로 몰아넣고, 그 결과 모니카의 어머니가 압사를 당한다. 예상하고 저지른, 니콜이 경기에 져서 행한 니카를 향한 분풀이였다. 항상 혼자이던 모니카에게 엄마의 죽음,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느꼈던 군중 압박에 의한 공포감은 평생 그녀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니콜을 향한 뿌리 깊은 복수심이 극에 달한다.


이후 니콜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 아일랜드 무장 해방운동 단체(IRA)에서 전략가로 활동하게 된다. 하나의 특수 살해사건을 기 위해 축구장에서 대규모의 압사 사건을 계획해서 성공시킨다. 유례없는 작전이었고 이런 시도를 제지하려는 영국보안국(MI5)은 니콜의 전략을 미리 알 수 있는 인물로 모니카를 찾아 업무를 제안한다.


두 사람은 치열한 수 싸움을 통해 상대의 약점을 찾는다. 모니카는 니콜의 심리를 흔들어 연인이자 IRA수장을 직접 살해한 것으로 상황을 꾸민다. 핵심인물을 동시에 제거하는 핀셋 전략이었다.  


MI5는 모니카의 조언을 바탕으로 니콜이 가장 참기 힘든 형벌인 외로움, 고립을 압박전술로 그녀를 정서적으로 고문한다. 니콜의 아버지는 막강한 자금력과 네트워크의 힘으로 딸을 수감된 감옥에서 무력으로 구출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모니카에 의해 사살된다. 어렵게 탈출한 니콜은 이 모든 고통을 가져다 준 모니카에게 피의 복수를 다짐한다.


<소수의 개인의 역량이 세상을 지배하는가 , 집단의 에너지를 모아 세상을 이끌어가는가.>


소련 국가보안위원회 (KGB)로 자원한 니콜은 미국 중앙 정보국(CIA)으로 활동 중인 모니카와 끊임없이 전략적 대척점에서 서로를 분석하고 싸워간다. 체스로 힘과 흐름을 꿰뚫은 이 두 사람은 냉전 시대 정보그룹의 반대편에 서서 상대의 전술을 읽고 속한 세계의 이익이나 보호를 위해 '용호상박'의 게임을 펼친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전쟁, 중동 정세 등 실제 있었던 사건 배경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현실감을 더해 흥미진진하게 이어진다.


「집단이냐, 개인이냐. 이건 철학과 세계관의 문제야. 우리는 상반된 인식을 가졌지만 어떤 면에선 상호 보완적이라고 할 수 있어.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거나 틀린 게 아니니까. 너와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면서 깨달은 결론도 결국 그거 아닐까.」 (p.131/141 교보이북)


나이가 들어 백발이 된 모니카는 가명으로 글 쓰는 작가가 되어 자신의 뿌리인 스코틀랜드 조용한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다. 혼자서 농사를 지어 자급하고 자신의 세계에 푹 빠져 글을 쓰는 삶은 모니카가 그리도 소망하던 꿈같은 날들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토록 자신을 숨기고자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니콜은 결국 모니카를 찾아낸다. 니콜은 암에 걸려 죽을 날을 받아놓았다 한다. 그간의 두 사람의 소회를 이야기 하고 서로에게 늦은 사과의 말을 나누기도 한다. 어쩌면 가장 특별한 친구 사이인지도 모르겠다. 서로를 가장 잘 알고 그 미움이 강렬했던 만큼 미련도 남지 않은 듯한 두 사람이 그려진다.


니콜은 모니카에게  마지막 체스게임을 제안한다. 일련의 상황으로 니콜의 제안을 거부할 수 없게 된 모니카는 인생일대 마지막이 될 체스 게임을 받아들인다. 이 와중에 니콜은 모니카 모르게, 실명한 눈을 가린 안대 뒤에 숨긴 카메라로 두 사람의 체스 경기를 온라인으로 실시간 중계한다. 다른 체스관람자들이 자신이 생각하는 수를 발제해 게임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집단지성이 모니카 개인기를 누를 수 있는지 실험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니카는 니콜의 게임방식이 조금 달라졌다는 느낌만을 가질 뿐, 자신의 방식으로 체스 경기에 집중한다.


이야기는 끝까지 그 승부 결과는 밝혀지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어느 한쪽의 논리에 치우침 없이 극적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작가 베르베르의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pixabay

작가 베르베르는 장애로 휠체어를 타는 친구가 압사 위기의 공포를 경험한 이야기를 듣고 이 소설을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상하거나 짐작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공포감에 매몰되어 상황에서의 최선을 판단하기 어렵다. 이런 군중의 비이성적 상황을 어떻게 개인이 감당해 낼 것인가 방법을 찾는 이가 모니카였고, 역으로 그 카오스의 힘을 이용하는 방법을 찾는 이가 극중 니콜이었다.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과 원리를 이해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특히 체스는 (베르베르) 작가에게 <모든 것은 전략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줌으로써 단순한 소설적 소재를 넘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을 것이다.”(p.139/141 교보 이북)


옮긴이의 말을 빌려 작가 베르베르는 자신의 어린 시절 배운 체스를 통해 단순히 소설의 소재로서만이 아니라 세상의 흐름을 읽는 세계관을 이야기한다. '성선설-성악설' / '양-음' / '개인 이성 – 집단 지성' 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선들은 큰 그림에서 보면 서로를 보완하고 있다.  이 책은 체스를 통해 생각의 다름을 바탕으로 한 선택의 차이, 즉 <모든 것은 전략이다>라는 대 명제를 이야기하고 있다.


카밀라 해리스가 말하는 개연성 있는 집단 이성의 힘이냐, 도널드 트럼프가 주장하는 전형적 엘리트 기득권을 기반으로 한 우위 경쟁이냐. 이번 대선은 세계 패권을 쥔 미국 민주주위가 나아갈 방향과 함께 전혀 다른 배경과 생각에서 오는 리더십의 대결이 될 전망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장편 소설 <퀸의 대각선>에서 '모든 것은 전략에 달려 있다' 던 말이 이 시기에 유난히 울림 있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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