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로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 지역을 다녀왔다. 그 곳의 날씨, 음식,문화에 흠뻑 빠졌다가 집으로 돌아와서인지,나는 지금도 이탈리아 관련해서 관심이 많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생처음 파스타 생면을 직접 뽑아 보기도 하고, 안티초크 올리브오일 절임이 맛있기에 집에서 유튜브 따라 담가보기도 하고, 포카치아빵도 레시피 따라 열심히 만들어보고는 맛있다고 손뼉치며 좋아한다.
SNS 알고리즘이 이런 나의 관심사 변화를 눈치챘다. 의도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이탈리아 관련한 정보들이 내 핸드폰 창에 계속 뜬다. 그러다가 '알베르토 몬디' 라는 이탈리아 출신의 한국 방송인의 인터뷰 영상에 까지 닿았다.
나는 영국에 살고 있어서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접하기 쉽지 않다. 이민 세월이 길다 보니 이 분은 금시초문이다. 그런데 잘 모르는 몬디씨가 인터뷰 영상에서 하는 말들이 내 귀에 콕콕 박힌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한국에서 생활하게 된 점, 유럽에서 아시아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온 이야기다.
나와 영국 사람인 내 짝꿍도 비슷한경험을 했다. 다른 문화권의 두 사람이 만나 서로를 궁금해하고 알아가는 과정 이야기에 흥미가 생긴다. 몬디 씨 관련 정보를 살펴보다가 그가 2019년에 발간한 <널보러 왔어> 자서전을 발견한다.
알베르토 몬디 작 <널 보러 왔어> @틈새 책방
이탈리아 중소도시 출신인 몬디씨가 동북아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자신이 속한 세상과는 다른, 좀 더 넓은 세상에 대한궁금함이었다. 책 속 내용처럼 내가 얼마 전 여행한 이탈리아는 온화한 자연환경,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는 안정된 가톨릭 국가였다.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세상에서 근면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먹는 것 좋아하고 어울리기 좋아하는 것을 보면 언뜻 한국 문화와 비슷한 구석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글을 읽다 보니 몬디씨는 무척 자존감이 높고 행동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이탈리아 학생들이 선호하는 일본어가 아닌 아직 시장 개방 전인 중국언어를 선택한 점, 교환학생으로 다수가 선호하는 베이징, 상하이가 아닌 불모지나 다름없던 다롄을 선택했던 이유, 유럽 가톨릭 문화와는 전혀 다른 중국 유교 세상에서 서로 다름의 긍정을 발견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넓히는 기회에 감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 배움에 흠뻑 빠졌던 저자는 자신의 고향에서의 안정된 삶을 버리고 더 넓은 세상, 다른 세상를 마주하기로 마음 먹는다. 물론 교환학생 시절 만난 한국인 연인이 그 결심의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몬디씨는 이탈리아를 떠나 헝가리 부다페스트, 우크라이나 키예프를 지나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7박 8일간 횡단을 한다. 돈 많은 남자의 유랑이야기가 아니다. 힘들게 번 돈을 아끼고 아껴 고생조차 마다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읽는내내 나도 모르게 그 힘든 길을 응원하게 한다. 끝없는 설경에 낯선 언어, 기차 안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의 교감을 통해 세상을 배운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배를 타고 속초에 도착하면서 공식적인 한국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한국에서 남편의 고향인 영국으로 이사를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감행했다. 부부 그리고 어린 두 딸과 함께였다. 인천공항에서 몽골 울란바토르로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게르 체험을 하면서 태어나면 몽고 반점이 있는 우리네 이야기를 했고, 열차를 타고 러시아 우르쿠츠크로 이동했다. 어린 아이들을 감안해서 직행이면 7박 8일간 횡단이 가능한 여정을 15박 16일로 늘려 몇 개의 도시에서 휴식을 취하기 위해 기차에서 타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긴 여행을 했다. 말도 통하지 않고 4월 중순임에도 불구하고 눈 덥힌 러시아였지만, 아시아 대륙에서 가장 큰 나라인 이 문화 경험을 꼭 해보고 싶었고, 고생하면서 직접 느껴봤다.
우랄 산맥에 우뚝서 있는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 핀타워 by 세반하별
무엇보다 우랄 산맥에 위치한 유라시아 경계탑에서의 경험이 생생하다. 때는 4월 중순이었지만 아직 눈이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영국 아빠, 한국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우리 유라시아 딸들은 타워를 중심으로 하나는 유럽, 다른 하나는 아시아 구역에 서서는 서로 눈싸움을 한다. "유럽 받아라.","아시아 받아라" 하면서 말이다.
우리 부부는 아이들에게 아시아와 유럽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고, 이전의 삶과 앞으로의 삶도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도 몬디씨도 그러한 의미와 함께세상을 직접 느껴보고 싶었던 듯 하다.
몬디씨는 그 이후시작된 좌충우돌 한국 사회 적응기를 이야기한다. 지역 소재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무리하고 공기업, 외국계 기업의 영업파트에서 근무하면서 외국인이 접하는 한국 사회 생활을 이야기 한다. 돈이 없을 때는 고시원 생활도 마다하지 않는다. 단락마다 두 문화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유쾌하게 담아냈다.
그렇게 넓어진 그의 인적 네트워크는 우연한 기회에 <비정상회담>이라는 TV채널 PD와의 인연까지 이어지고, 출연과 함께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자서전을 읽은 후 그가 출연하는 몇몇 방송을 찾아 봤다. <외국인의 한국 살이>라는 소재에서 벗어나 여러 국가들을 대표하는 패널들과 함께 세계 문화와 역사들을 심도있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한국어는 또 얼마나 능숙하게 구사하던지. 이 방송들을 보면서 모르던 이야기들이나 정보를 듣는 쏠쏠한 재미를 뒤늦게 경험해봤다. 현재는 가정과 일 간의 조화를 위해 전업 방송인으로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고 나니 건강한 청년의 성장기를 한 권 읽은 듯하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 열렬히 고민했고, 그 뜻을 찾아 낯선 세상으로 나갈 용기가 있었던 이탈리아 청년.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만큼 고생도 많았고, 따로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도 한국 사회에 적응 중에 있을 것이다.
나는 반대로 영국인인 배우자를 따라 아이들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지구 반대편 영국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민 생활은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문화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생각하는 상식과 달라 매번 배우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한다. 지역마다 세월에서 체득하는 경험이나 공감대는 배워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외국인이 현지 생활에 적응해서 사는 것은 어쨋거나 녹록치 않다.
시베리아 열차 안에서 바라본 러시아 해지는 무렵 by 세반하별
“유일한 행복은 기대하는 것”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삶"
책에서 발췌한 두 대목이 마음에 남는다. 세상에 호기심을 잃지않고 내가 원하는 삶의 선택의 결과를 잘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잘 표현하고 서로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
알베르토 몬디님의 자서전을 읽으면서, 내 추억에도 젖어보고 또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의 방향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귀한 시간을 가져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