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주 Sep 23. 2024

2025년 개봉예정 영화, 원작 소설 <파과>

세계 주목할 작품 선정, 뮤지컬에 이어 영화로 제작되는 스릴러 소설 파과

나는 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이민자다. 최근 방문했던 이탈리아에서 구병모 작가의 소설 <파과>를 만나게 됐다. 낯선 곳에서 만나는 한국 소설만으로도 반가운데, 이 책은 2018년 발매 이후 전 세계 13개국에 수출되었고 <뉴욕 타임스> 선정 ‘주목할 만한 책 100선’에 꼽혔다고 한다. 


알고보니 올해 초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이미 국내팬들을 만났고 곧 영화로도 제작된다는 소식이다.  이 책의 어떤 점이 국경을 넘어 읽히고, 여러 창작자들을 열광하게 하며, 관객들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일까. 


2025년 개봉예정영화 <파과> 한 장면, 수필름 제공

고정관념을 깨는 인물 설정

주인공은 40년이 넘도록 청부살인을 해온 65세의 여인.  현역 베테랑 살인청부업자지만 세월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체력이 떨어지고 노화로 몸 이곳저곳이 불편해진다. 세월은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도 흔들어 놓는다. 인정사정없이 의뢰된 살인업무를 처리했고,  살아있기에 저절로 움직이는 ‘기계’ 마냥 살아가는 삶에 익숙하다. 그러던 그녀가 주위의 살아있는 온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소녀는 남의 집 식모로 일하기 시작한다. 서투른 일솜씨를 근면함으로 채우며, 남들의 칭찬에 배고파 눈치를 보는 삶이다. 이후 소녀가 도둑으로 몰려 일터에서 쫓겨난다. 돌아간 친정집은 이미 이사를 떠난 후였다.  갈 곳 잃은 이 십 대 소녀를 젊은 부부가 돌봐주고 일거리도 소개해준다. 소녀는 이 부부의 남편인 ‘류’에게 연정을 품는다. 동시에 그런 마음에 죄책감을 갖는다.  이후 ‘류’는 소녀에게 살해기술을 가르치고 그녀의 보스가 된다. 그녀의 마음이 님에게 닿을 리 없음을 알면서도 그의 곁을 맴돌며 청부 살인업자가 된다. 소녀의 이름은 이제부터 ‘조각’이다. 

뮤지컬 <파과>, (주)페이지1 제공

‘세상에 지켜야 할 것은 만들지 말자’

보스였던 ‘류’와 이인자인 ‘조각’은 사세를 키워 기업형 업체를 운영한다. 성공가도를 달릴수록 원한을 가진 사람은 늘어나고 도처에 죽음이 도사린다. 그러던 중 ‘류’가 누군가의 테러로 생을 마감하자, ‘조각’의 삶은 더욱 의미를 잃지만 사업을 이어받아 계속 활동한다. 


젊은 킬러 ‘투우’는 ‘조각’에게 늙고 예전 같지 않다며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하고 모욕한다. 그녀는 알지 못하지만 ‘투우’는 자신의 아버지를 청부살해한 ‘조각’을 잊지 않고 있었다. 부모는 항상 일에 바빴고 아버지가 살해되자 엄마는 자신을 버린다. 조각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아버지 죽음에 대한 ‘복수’라기보다는 그 살인을 저지른 자를 알고 싶은 ‘궁금증’이 읽힌다. 직접 만난 ‘조각’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분노한다. 끊임 없이 ‘조각’의 일을 방해하거나 그녀가 가장 아파할 지점을 찾아 괴롭힌다.


생명의 온기를 찾는 킬러 ‘조각’

이제는 누가 봐도 어머니 또는 할머니로 불릴 법하게 노쇠해진 ‘조각’은 길에 버려진 늙은 개 ‘무용’을 집으로 들인다. 오랜 시간 집에 혼자 있는 무용이 굶지 않을 만큼 먹을 것을 챙기고, 실내에 갇혀 답답해할까 평생 안전을 위해 철저히 잠가두던 창문을 열어놓고 출근한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책임지는 사랑은, 컴컴하고 온기 없는 집에 나를 기다려 반겨줄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위안이 된다.


조각에게 변화가 일어난다. 피도 눈물도 없는 킬러였던 그녀가 딱한 사정이 있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돕다가 일을 거스리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희망이 없던 그녀가 자신이 죽으면 혼자가 될 ‘무용’의 안위를 걱정하며 만반의 준비를 한다. ‘투우’는 냉혈한인 ‘조각’이 자꾸 생명의 온기를 찾는 모습에 불만이 높아진다. 그녀가 행복해지는 모습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살인 청부 작업 중 조각은 큰 부상을 입는다.  ‘조각’은 자신의 정체를 알아버린 강 박사를 그대로 살려두는 것이 맞는지 확신이 서지 않고, 협박할 거리를 찾는 마음으로 강 박사의 노부모가 운영하는 과일집에 방문한다. 아내를 의료사고로 잃고 아이와 노쇠한 부모를 보살피고 있는 그의 사정을 알게 된다.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사는 강 박사의 모습에, 조각은 묘한 애정을 느낀다. 강 박사의 부모가 운영하는 과일가게에서 평소와 달리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파는 복숭아를 사 집으로 돌아오기도 한다. 


그 이후로도 조각의 청부살인하는 일상은 변함이 없다. ‘맥박이 멈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움직이는 기계의 속성과 같다’는 그녀의 독백은 의미 없이 계속되는 굴레와도 같은 인생을 표현한다.


가장 아름다운 때를 지나버린 썩어버린 복숭아처럼

어느 날 강박사네 과일가게에서 사고 잊어버린 복숭아를 떠올린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복숭아는 그 탐스럽고 과즙이 풍부했던 모습은 간데 없고 썩고 물러 터져 검게 변해 있다. 꼭 ‘조각’ 자신을 보는 것만 같다. 가장 아름다운 때도 모른 채 그저 저물어가는 자신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 다음 날 아침 조용히 늙어 죽은 자신의 개, ‘무용’을 발견한다. 곧 다가올 운명을 예고하는 듯하다. 더 이상 세상에 대한 미련 없이 조각은 죽은 ‘류’의 곁에 갈 그날만을 기다린다. 


‘투우’가 강 박사의 딸을 납치한다. ’조각’을 흔들기 위해 벌인 일이다. 유괴된 아이를 지키기 위한 그녀의 싸움은 흡사 액션 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책 속에 세밀하고 박진감 넘치게 묘사된다. 처절한 싸움 끝, 결국 아이를 지켜낸다. 숨이 끊어져 가는 ‘투우’에게 비로소 ‘조각’이 밝힌다. ‘네가 (그 살인현장에 있던) 그 아이구나’는 말로 상대를 알아보았음을 전한다

2018년 출판된 소설<파과> 표지, 위즈덤 하우스 출판 제공

책의 제목 ‘파과’는 사전적 의미로 흠집이 난 과실 또는 여자나이 16세를 의미한다.  

사랑받지 못했지만 사랑을 원하고 그리워하는, 그 사랑으로 무언가 지키고 싶은 삶의 애착을 바라본 '조각'은 마지막 장면에서 화려하게 손질된 자신의 네일아트 손톱을 바라보며 말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그래서 나는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파과> 교보이북 p.572/574


독자로써 내가 발견한 이 소설의 매력

킬러라 함은 젊고 건장한 남성을 떠올리기 쉽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주인공 설정,  그녀의 인생, 사람을 해하는 반 인간적 행위 뒤에 언제나 ‘사랑’에 목 마른 한 여인이었다는 아이러니. ‘파과’ 라는 제목이 무슨 의미였는지 책 끝머리에서 공감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존재를 인정받고 인정하는 사람의 관계가 인생인가. 세상에 지켜야 할

소중한 사랑이 인생을 관통하는 의미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불러오는 소설은 옳다. <파과>였습니다.






이전 15화 알고리즘이 소개해준 이탈리아 남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