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20 년 전, 갓 결혼한 새댁인나는 영국 본가에 인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던 길에로마를 방문했다. 남편과 나는 결혼이라는 낯선 삶에 하나씩 맞춰가는 중이었고, 그 와중에 세계유산들이 즐비한 로마는 재미난 일로 가득한 판타지 세상이었다. 당시에도 한 여름 40도 육박하는 더위였고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로 인산인해였다. 이 신혼부부는 하루 종일 걸었다. 서로를 맞춰가고 익숙해져 가는데 이만한 곳이 없었다.
올해는 이탈리아 제2의 도시 밀라노가 있는 롬바르디 지역을 열흘간 여행했다. 부부는 중년이 되어 머리 위로 서리가 앉기 시작했고, 십 대 청소년인 두 딸이 함께였다. 여전히 무더웠고 음식들은 신선하고 맛있었다. 걷다 보면 다리가 아파 잠깐씩 쉬어가야 했다. 아이들이 언덕을 훌쩍 올라갔다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참 많이 키웠다’ 서로 자축하기도 한다. 어느 하나 놓칠세라 하루 종일 걷던 20년 전과는 달리,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눈에 담고 지역명소 중 꼭 가고 싶은 곳만 골라 느긋하게 즐기기 시작한다.
여행 후 집으로 돌아와 느낀 감상들이 손가락 사이 빠져나가는 모래알이 될까 글로 기록한다. 읽히는 글쓰기로 연재를 하다 보니 슬금슬금 숨어 있던 자기 검열의식이 고개를 든다. 이 아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보다는 ‘그래서 되겠니’ 하는 핀잔을 주는 부정적인 심상이다. 이럴 때면 믿고 읽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이 좋다.
밀라노 밤 거리, 세반하별
이북 사이트에 ‘이탈리아 여행기’를 키워드로 넣자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책이 떠오른다. 예전 <알뜰신잡>이라는 토크쇼를 즐겨 시청했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바라보는 세상이야기를 듣는 좌담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는 패널 중 한 명인 김영하 작가님을 좋아했다. 그의 이야기가 듣기 편했다. 자신의 주장이나 이념을 상대에게 전달한다기보다 ‘이런 생각도 있답니다’ 편안하게 소개하는 여유가 좋았다. 호감 있는 작가의 글과 함께 주말 저녁, 조도를 낮추고 편안한 소파에 앉아 책 읽기를 시작한다.
글의 시작이 예상과는 다르다. 나이 마흔, 세상을 다 가진 한 중년 남성이 서 있다. 국립예술대학 교수, 내어놓는 책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라디오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였으며, 누군가의 남편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이 시기를 바쁜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뒤통수 어딘가에 빨대가 꼽혀 쉬익 쉬익 바람 빠지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한다.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 북북서가, 교보문고
‘자기 안의 어린 예술가를 구하라’
작가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교보이북 p22/220
아내의 지지 덕분에 대학 교수직을 그만둔다. 이후에는 방송일도 그만둔다. 오로지 창작하는 작가로서의 삶에 몰입하기로 한다. 2008년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에 일 년 동안 소설 쓰고 한국 문학 세미나 활동을 하겠으니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한다. 스스로 안식년을 정한 것이다. 아무 보장 없이 말이다. 이즈음이면작가의 능력이 부럽다. 하지만 익숙한 모든 것을 던진 그 용기가 더 부럽다.
작가는 살던 집을 팔고, 주위를 둘러싼 책들을 헌책방에 내다 판다. 쓸모와 의미가 있어 나에게 머물고 있는 물건들을 떠나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에게도 두 번의 해외 이사가 있었다. 집을 팔고, 물건을 팔고 그도 아니면 재활용센터에 버렸다. 며칠을 정리해도 끊임없이 나오는 세간살이를 마주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에 문제가 없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이었다. 김영하 작가도 그 같은 과정을 거치고 막상 미국 일 년 살이로 부치는 물건은 고작 라면 박스 몇 개에 불과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운송비용이 비싸다 보니 나도 그 비슷했다. 대서양을 건너 3개월이 지나 도착한 그 물품들을 영국 새 집에 받아보니, 더 줄일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사는데 필요한 것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김영하 작가는 일 년 전 다큐멘터리 제작을 위해 이탈리아 시칠리아를 방문했던 경험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느린 다큐’를 표방했는데 몇 시간에 걸려 타임랩스로 찍은 장면들을 몇 초만에 보여주는 방식으로, 제작에 인내심이 필요했고 느리게 사물을 바라보는 여유가 꼭 필요한 작업이었다. 좋은 영상은 하나같이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었다고 한다. 영상을 위해 그 악천후 속에서 제작 PD는 “보니까 어떠셨어요?” 끊임없이 작가에게 물었고, 그때마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시칠리아가 마음에 들었다. 왜 마음에 드는지는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궁금했다. 무엇이 그의 마음을 이끄는지 말이다. 집이 빨리 팔리는 바람에 미국으로 가기 전, 주어진 두 달간의 시간을 그는 아내와 둘이 시칠리아와 그 일대로 두 달 살기 여행을 떠난다. 작가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 지도를 보면서 남부 리파리, 아리체, 아그리젠토 등을 여행한다. 어느 날 방송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 위기 소식을 접했다.
전 세계를 덮친 경제 위기 때문이었을까. 현지 기차는 파업 중이다. 제시간에 운영되지 않는 여행길은 여러 번의 좌절, 불신, 혼란, 피곤함을 경험하게 한다. 서울처럼 정확하게 교통편이나 관공서 일들이 처리되는 나라는 드물다. 버스가 몇 분 후에 오는지 확인해서 정거장에 나가고, 도착시간을 알려 다음 일을 도모하는 삶을 사는 서울 시민에게 유럽 생활은 시작부터 만만치 않다. 내 경우에도 영국의 느린 시스템에 감정의 5단계, 놀라고 분노하고 이의를 열심히 제기하다가 어쩔 수 없다 포기하고 또 수긍하는 과정을 수 없이 겪어왔다. 매번 숙소가 바뀌는 여행객에게는 안전까지 걱정해야 하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었을 것이다.
반면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서울에서 작가가 잃어버렸던 삶의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 여유라 함은 부유한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탈리아 남부사람들은 북부에 비해 가난한 농노들이 많다. 해안가를 접하고 있어 변덕스러운 바다와 맞서 살아간다. 남쪽으로는 아프리카, 동쪽으로는 이슬람 문화를 접하고 있다. 큰 문화들이 만나 흐르고 모이는 땅에는 다양한 문화가 싹트기도 하지만, 여러 불협화음을 내기도 한다.
더운 기후 사람들은 비교적 외향적이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다 보니 순수한 배려를 베푸는 경우도 많다. 책 이야기 속에 외국인 환전이 안 되는 우체국에서 대가 없이 자신의 주민증 번호로 편의를 도와주는 사람, 언제나 그 자리에서 지역 신선한 해물들을 내다 파는 상인, 떠나가는 여행객에게 ‘안녕’이 아니라 ‘다시 보자’는 정을 전하는 지역 주민 등의 모습이 그려진다. 달러 가진 외국인에게 비굴하리만치 비루한 모습을 비추는 노파의 모습도 표현되는데,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서라면 간절해지는 날 것의 인간본능도 엿본다.
김영하 작가는 풍족하지 않은 삶이어도 먹는 것에는 진심인 현지 사람들의 심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오래전 대지진을 겪고 삶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음을 배운 사람들은, 지금의 순간에 감사하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지나치지 않는 것이 몸에 밴 듯하다고 말이다. 오늘의 양식은 삶의 기쁨이고, 가질 수 있는 행복이다.
의외로 현지 음식들의 식재료는 무척 간단하다. 올리브오일, 소금, 세몰리나 밀가루, 달걀 그리고 치즈가 전부인 때가 많다. 토마토와 마늘 한쪽, 허브 한 줌으로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어낸다. 대신 정성을 들인다. 생면과 빵을 몇 시간의 치댐과 휴지 시간을 통해 얻고, 두세 시간 생토마토와 올리브오일로 졸여 파스트 소스를 만든다. 결국 맛있는 음식은 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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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의 날, 건달의 세월을 견딜 줄 알았고 그 어떤 것도 함부로 계획하지 않았고 낯선 곳에서 문득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를 새삼 깨닫고 놀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작가 김영하의 <오래 준비해 온 대답> 교보이북 p216/220
작가 자신이 찾은 것은생각을 온전히 받아들여 소화한 창작물을 자연스럽게 세상에 흘려 보내는스트리밍 라이프(Streaming Life). 여행은 잠시나마 그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을 준다.
생활 에피소드를 소재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때로는 그 주변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나 사례들로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읽는 독자 입장에서는 가독성이 떨어질 때도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도 그런 구석을 보인다. 아주 개인적인 감상을 여행기로 적는다는 것은 나의 생각과 독자의 가독성 사이를 적절히 넘나드는 과정인가 보다 글을 읽으며 생각해 본다.
‘쓰고 싶은 대로 우선 써 내보렴. 숨지 말고 보고 배우면서 네 안의 예술가를 살살 달래 보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