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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주 Oct 02. 2024

영국, 버리는 식재료로 맛있는 고급 음식 만드는 재미

영국 사람들은 연어 머리 조리법을 잘 모른다.

생선은 어두육미! 머리에 있는 고기가 맛있다고 한다.


영국 사람들은 기름기가 많아 고소한 연어를 즐긴다. 주로 훈제연어를 샐러드나 샌드위치에 넣어 먹기도 하고, 스테이크로도 즐긴다. 일식당 연어 초밥도 무척 사랑받는 메뉴다. 생선으로 치자면 주로 몸통 부위의 부드러운 살을 즐겨 먹는데, 연어 머리는 대부분 먹지 않고 버린다.


요즘 생활물가가 너무 높아졌다며 온 세상이 아우성이다. 다수의 사람들과 조금만 생각을 달리 하면  값싸고 신선한 재료를 사다가 맛있는 한 접시를 만들어 즐길 수 있다. 영국에 사는 나에게 '연어 머리'가 바로 그런 재료다.


자주 가는 마트가 있다. 가끔 연어 한 마리를 머리부터 지느러미 끝까지 긴 플라스틱 포장지에 담아 싸게 파는 곳이다. 영국 상점에서 이렇게 생선 한 마리를 통째로 파는 경우는 드물다. 통 연어를 매대에서 만날 때면 쾌재를 부르며 한 마리씩 사 온다. 비늘도 벗기지 않은 순수하게 바다에서 올라온 자연의 상태다. 손질에 시간이 걸리지만, 그 마저 다 용서될 만큼 값이 싸다. 중간 정도 크기의 연어 한 마리에 17파운드. 한화 삼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얇게 저민 훈제 연어살 서너쪽이 팔 천원에 팔리는 것을 감안하면 무척 저렴한 가격이다.

2-3kg 정도의 통 연어 한 마리 @aldens oxford

집에 온 연어는 먼저 비늘을 벗겨야 한다. 긁어내기 시작한 순간 은빛의 비늘이 사방으로 튀기 때문에, 플라스틱 봉투 안에서 꺼내지 않은 채 팔꿈치까지 올린 장갑을 끼고 작업을 해야 주방 대참사를 막을 수 있다. 큰 비늘이 정리되고 나면 생선을 봉투에서 꺼내 나머지 세부 비늘까지 꼼꼼히 제거한다.


굽거나 간장에 조릴 연어 머리, 지느러미는 국물용으로 남겨 둔다. 몸통은 배를 갈라 내부를 손질하고 척추뼈를 따라 칼로 살을 발라낸다. 이제는 연어껍질을 벗길 차례. 얇지만 살과 기름기 사이에 칼이 잘 자리 잡으면 쉽게 벗겨진다. 나중에 뜨겁게 달군 팬에 연어 껍질을 바삭하게 구우면 과자와 같이 좋은 간식거리가 된다. 다음은 좀 더 얇고 날카로운 칼로 두툼한 연어 몸통 살을 포떠 다음날 연어 샐러드나 샌드위치감을 만들기도 하고, 벽돌모양으로 잘라 연어 스테이크감을 만들어 놓기도 한다. 나머지 뼈와 지느러미는 갖은 향채와 함께 끓여 국물 다시를 만든다. 버릴 것이 없다.


연어 한 마리 해체작업이 끝나면 앞으로 서너 끼니는 충분히 먹을 만큼 연어 부자가 된다. 정리한 후 팬에 바삭하게 구운 연어껍질과 시원한 생맥주를 한잔 하면 그리 행복할 수가 없다.


오늘은 마트에 연어 한 마리의 행운은 없었지만, 연어 대가리가 마트 냉장고에 가득하다. 한 팩에  통 연어머리 두 개를 넣어 놓고 1.5파운드, 한화 2500원. 공짜로 주기는 그러하니 붙여 놓은 가격같다. 집 냉동실 자리를 기억해 보지만 안타깝게도 공간이 많지 않다. 두 팩을 사서 신나게 집으로 향한다.

연어 머리 스프 @pintrest

연어 머리로 음식을 한다면 영국 사람들은 무엇을 만들어 먹을까 궁금하다. 크리미 한 연어 수프가 먼저 떠오른다. 먼저 팬에 버터를 녺이고 거기에 썬 양파를 넣어 갈색빛이 날 때까지 볶는다. 다음 연어 머리와 깍둑썰기한 감자 그리고 육수 또는 물과 야채 스톡을 넣어 끓인다. 팔팔 끓고 나면 연어 머리를 꺼내 머리 주변 살을 뼈에서 발라낸 후 살만 다시 수프 안에 넣는다. 그리고는 딜과 같은 향신채와 취향껏 생크림이나 치즈를 첨가해 뜨끈하고 구수한 연어 수프를 완성한다.


연어 자체가 기름이 많은 생선이기에 나는 그 본연의 고소함을 한껏 느끼고 싶다. 주로 생선머리는 그릴로 굽거나 일식 간장 조림을 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오늘 점심은 둘째 딸과 먹을 참이다. 나는 일식 연어 머리 조림을 준비한다.


막상 예쁜 그릇에 담아 음식을 내어놓으니 딸은 할 말을 잃는다. 자신의 친구가 봤으면 심장마비가 왔을 거란다. 눈알, 입술 그 안의 생선니 까지 비주얼이 아주 솔직하기는 하다.


나는 어두육미 이야기를 섞어가며 생선의 뽈살을 발라 아이의 하얀 밥 위에 올린다. 간장 소스를 좋아하는 아이는 주어지는 생선살과 감자조림을 맛있게 먹고, 나는 생선머리 주변의 젤리같이 보드라운 살들을 발라 먹는다.

예전 어느 노래에 엄마가 생선살은 다 자신에게 주고 생선머리만 드셨다며, 그 사랑에 감사하고 죄송해하는 가사를 들은 적이 있다.  엄마가 정말 생선 대가리의 그 몰캉하고 보드라운 콜라겐 맛이 좋아서 그러셨을 수도 있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고 싶다. 내 식성이 그렇다.


나는 딸들을 데리고 올 한국 겨울을 즐길 예정이다. 벌써 먹고 싶은 한식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한다. 영국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하는 연어 머리찜처럼 또 새로운 아이디어도 가득 담아 올 생각이다. 우선은 장어요리가 아이디어로 떠오른다. 아마 아이들이 생장어를 조리하는 과정을 보면 에구머니나 냅다 도망갈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영국에서 값싼 재료로 맛있게 사는 김여사의 도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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